“지금, 가장 필요한 건 공감 능력입니다”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공감 능력입니다”

by 토마토쥔장 2021. 6. 9.
728x90
반응형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공감 능력입니다”

코로나19, 시대를 말하다

 - 정초시 충북연구원 원장 인터뷰 -

인터뷰 이용원 정리 황훈주 사진 양다휘

 

인터뷰는 ‘프롤로그’ 성격으로 기획했습니다. 대안과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던져야 할 질문을 정리한다는 의도가 강했습니다. 인터뷰 대상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는데, 코로나19가 심각해지면서 연구원 자체적으로 콜로키움 등을 진행하며 다양한 담론을 만들어 간 충북연구원 정초시 원장님을 소개받았습니다. 이웃 도시에서 발행하는 문화예술 잡지사가 청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지금껏 인류 역사에는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중 근래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위기는 대부분 경제 체제 내부의 문제였지요. 1997년 우리나라 IMF 금융 위기 문제도 국제 금융 관계 속 특정 국가의 문제였고, 2008년 국제 금융 위기도 인간이 만든 경제 체제 문제였어요. 그러나, 전염병은 인간이 만든 체제 외부에서 온 충격입니다.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경제 문제는 보통 양적완화라는 방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해요. 통화량을 늘려 죽어 가는 기업을 살리는 경제적 처방이지요. 코로나19로 촉발한 이번 문제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가장 큰 차이는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는 데 있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회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요. 질문지를 받아 보고 이번 사태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경제학자인 내가 제대로 답변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평소 생각을 편하게 얘기해 보겠습니다. "

 

코로나19는 지금껏 당대 우리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질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사회에 거대 담론을 형성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인간이 노력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국가적 관점에선 경제 성장을 위해 노력해 왔지요. 경제 성장 과정을 보면 과거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경쟁하였고 그 결과 자본주의가 살아남았어요. 이후 우리 사회는 경제 성장이라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모든 것이 정지되어 버렸죠.

이번 사태를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경제 성장에 가장 생산적인 방식은 분업이었죠. 국가 경제도 분업을 통해 성장해 왔는데 이를 GVC(글로벌 가치 사슬)라고 해요. 예를 들어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 땐 세계 각국에서 가져온 부품을 조립해 상품을 완성하지요. 세계 각국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그러나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이 멈췄습니다. 국제 분업이 이뤄질 수 없게 되니 생산이 멈추게 된 거죠. 이번 상황이 우리 사회에 던진 의미는 ‘과연 이런 방식,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내며 풍요로움을 추구하고 경제를 끊임없이 성장시키는 것이 올바른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 같아요.

국가 경제 성장은 일반적으로 GDP를 통해 측정하지요. GDP는 한 나라가 생산하는 생산물의 시장 가치를 표현하는 수치인데 이는 옳고 그름을 판별할 수 없는 가치 중립적인 수치예요. 예를 들어 전쟁으로 인한 군수 물자 생산도 GDP 수치를 상승하게 하고 평화롭게 사는 나라는 전쟁 무기를 생산할 필요가 없어 GDP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대신 국민 행복도는 더 높을 수 있잖아요.

재밌는 예가 있어요. 아프리카엔 스프링복스라는 영양이 있어요. 이들은 집단생활을 하는데 집단 맨 앞에 있는 영양이 앞으로 뛰어나가면 뒤에 있는 무리가 먼저 뛰어나간 영양을 따라잡기 위해 달려 나간다고 해요. 서로 경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러다 절벽을 만나도 멈추지 못하고 뒤따라오는 영양과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져요. 이처럼 우리 사회가 무엇을 향해 가야 할지 모르고 경쟁적으로 경제 성장만 추구하면 파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죠. 어쩌면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잠시 멈추고 새로운 생각을 해 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우리에게 삶의 가치는 무엇이며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죠. "

 

정치, 경제, 교육,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 코로나19가 미친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가장 즉각적이고 크게 영향을 미칠 영역이 경제 분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렇지요. 최근 한 통계를 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경제 활동의 약 70%가 제약받는다고 해요. 경제 가치는 상호관계를 통해 만들 수 있는데 제약을 받으니 즉각적으로 타격이 나타날 수밖에 없지요. 실제로 중국은 1/4분기 성장률이 -6.8%고 우리나라는 -1.4%예요. IMF에서는 올해 우리나라의 GDP 성장률을 -1.2%로 예상하고 있고요. "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분위기가 곧 회복되진 않을까요? 현재 사회 분위기가 코로나19 사태 초반보다 많이 풀어진 것 같은데요. 거리에도 사람들이 많아졌고요. 경제도 함께 회복하지 않을까요? 

 

" 코로나19 이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 메르스나 사스 땐 비대면 문화로 인해 위축된 소비가 2~3개월 지나 사태가 안정되면서 보복 소비로 회복되었죠. 어떤 이유로 위축된 소비 심리가 사태의 진정세와 함께 반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보복 소비라고 해요. 문제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지면 보복 소비 심리가 사라지고 위축된 소비가 그대로 정착될 가능성이 커요.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그럴 것 같아요. 이로 인해 음식점은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죠. 잘되는 곳은 잘되고 안되는 곳은 완전 사람이 없어요. 이처럼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경쟁력이 없는 업종과 기업은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

 

우리 사회 경제 시스템 안에서 구조조정 문제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시는 건가요?

 

" 그렇죠. 현재는 비대면 문화에 즉각 타격받는 사업인 서비스업, 숙박업, 관광업에서 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후 구조조정 문제는 제조업으로도 확산되면서 심화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도가 70% 정도죠. 국내 코로나19 문제만 해결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에요. 세계 경제 상황이 모두 회복되어야 우리 경제 문제도 풀리는 구조입니다. 국내에서 충분히 자체 소비되는 서비스업은 몰라도 수출 경제 상황의 어려움은 무척 오래갈 것 같아요. "

 

이런 상황에서 현재 준비하거나 이미 지급을 시작한 각 지자체와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국내 소비 진작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시나요?

 

" 물론입니다. 우리가 느낄 수 있을 만큼 효과는 있을 겁니다. 다만, 대부분 긴급재난지원금을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 등 다른 수단으로 지급하지요. 또 사용처와 사용기간에 제한을 두어요. 지원금 사용 기간이 끝난 후가 여전히 문제로 남습니다. 효과가 있더라도 단기적인 임시방편일 수밖에 없지요.

불황의 경제학이란 말이 있어요. 불황은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이지요. 평상시에 경쟁력이 없는 부실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좀비기업을 만드는 것과 같아요. 그러나 위기 상황에선 경쟁력 없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하지요. 결론적으론 아픔을 겪으며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많은 학자가 우리나라 IMF 금융 위기 상황이 3~5년 지속되었으면 한국 경제 안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년 반 만에 빠르게 회복하며 도태되어야 할 기업도 살아남았고 전체 경제 생태계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인 거죠.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를 빠르게 되살리기 위해 긴급재난지원금을 사용하지만 나중엔 구조조정의 문제가 생길 겁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 구조조정은 있어야 할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 후 정리된 인원에 대한 전환 대책을 본격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데 있죠. 단순 직업 교육의 차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요. 지금은 전환이 필요한 시기죠. "

 

전환이 필요한 시대라고 말씀하셨는데, 결국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우리가 지금껏 구축해 놓은 다양한 시스템이 지닌 문제를 들춰내며 변화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의 문제라고 보는데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며 이에 대해 요구받는 변화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변화를 겪어 왔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처럼 모든 국민이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IMF 금융 위기 때에도 어려움은 인식했지만, 이 경제 위기가 왜 생겼는지 모르고, 알려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지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달라요. 코로나19는 모든 국민 삶의 방식과 틀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이것은 우리에게 변화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들, 불변이라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해 볼 때가 온 거죠. 예를 들면 국제 분업이 옳은지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최근 리쇼어링이 이뤄지고 있잖아요. 중국에 세운 기업을 다시 자국으로 들어오게 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요. 국제 분업을 위해 국외로 나간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며 국가 내 자급자족 경제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이러한 현상은 향후 자국 우선 무역, 보호 무역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을 가능하게 해요.

또한, 세계 추세 중 하나는 도시화였잖아요. 현대사회의 특징인데 도시화가 얼마나 위험한지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어요. 심각한 코로나19 감염과 전염은 전부 대도시에서 일어났잖아요. 전염병의 역사는 전부 접촉에 의해 생긴 역사입니다. 접촉을 피하기 위해선 사람들은 밀집된 공간이 아닌 저밀도 공간으로 가야 하죠. 세계적 추세가 지금까진 도시화였지만 다시 농촌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비즈니스를 위해선 도시의 모습이 좋겠지만 삶의 거주 환경으로는 농촌이 우위를 점하죠. 귀농귀촌 현상이 지금보다 더 강화될 가능성도 있어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적 갈등도 매우 심해질 겁니다. 외부 충격에 따른 체감은 개개인이 다 다르죠. 개인은 자신의 피해를 다른 사람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점 때문에 향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사회 갈등이 더욱 증폭될 수도 있지요. 

우리 사회가 갈등을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시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갈등을 조정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가 진보하고 있다 볼 수 없는 거죠. 예전 역사를 보면 제국이 망하는 것은 결국 관용이 부족해서였어요. 국가 구성원이 서로 상황을 공감해야 하는데 제국 말기로 갈수록 남을 착취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다 보니 결국 무너지게 되는 거죠. 우리도 이런 상황에서 남의 고통을 보지 않고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게 되면 남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감 능력을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봅니다. "

코로나19 이후 기존에 인류가 저지른 실수를 반성하며 ‘역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긍정적 측면을 얘기할 때 주로 사용합니다. 환경, 경제,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오는데, 이번 기회에 다양한 영역에 관한 대안을 모색하는 시민 공론장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민이 다가올 미래를 새롭게 준비하기 위해 학습하고 의견을 나누며 공론을 형성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 있고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요?

 

" 요즘 나오는 ‘역설’은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쓴 앤서니 기든슨이 사용한 ‘역설’을 말하는 것 같아요. 지구 온난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 지구 평균 기온이 1도만 올라가도 지구가 회복 불가능하다고 하지요. 그러나 평균 기온이 1도 올라가는 것은 일반인은 잘 느끼지 못하죠. 기든슨의 역설은 지구 온난화의 위험은 손으로 직접 만져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할 수 없기에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험이 다가온다 한들 대부분은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자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잘 감지합니다. 그렇기에 학자 등 전문가 그룹이 미리 다가올 위험을 파악하고 많은 사람에게 공유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전문가 그룹은 자기 분야의 것만 안다는 것이지요. 다른 분야와의 융합이 어렵습니다.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과학 기술은 무척 가치 중립적입니다. 기술 발달이 가져올 4차산업혁명 시대에 기술은 인간에게 유익한 것인지 가치 판단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 기술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할 공론의 장이 필요한 것입니다.

공론은 생각이 같은 사람이 모여 진행하는 것이 아니지요.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모여 거대 담론을 놓고 서로 각자 다른 분야에서 이야기해야 하지요. 몇 년에 걸친 논의가 된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진행해야 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지기엔 현실적으로 어렵고 많은 규제와 제약이 따를 수 있기 때문에 민간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에도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 미래를 위해 재단을 만들어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학자 등 전문가 그룹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면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확산해야 하지요.

이런 부분을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코로나19는 단순한 경제 위기가 아닌 인간 생명과 관련된 인문학적인 문제잖아요. "

 

경제 측면에서 2008년 국제 금융 위기에 나타난 뉴노멀 현상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도 있습니다.

 

" 2008년 국제 금융 위기 이후 경제학자들이 뉴노멀을 말한 건 과거 고도성장의 시기가 지나고 세계적 저성장 시대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했지요. 금융 위기를 겪으며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 예측한 것이고요. 이것이 새로운 정상, 새로운 경제적 기준이라 말한 것인데, 이것은 순전히 경제 파트의 뉴노멀이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뉴노멀은 경제뿐 아니라 인간 삶의 방식, 사회 구조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뉴노멀이라 합니다. 어떤 변화를 가져올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생명의 가치와 안전 등 경제 이외 영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 같기는 해요.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고요. 내 다음 세대도 나와 비슷한 삶을 누릴 것인가에 대한 생각 말입니다.

현재 미국 사회는 해고되는 순간 바로 노숙자가 돼요. 그 이유는 미국 사회 노동 문화에서 찾을 수 있어요. 평상시에 미국은 일자리가 계속 순환되어 실직 후에도 한 달만 있으면 바로 구직할 수 있었지요. 그렇기에 굳이 저축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사회가 불안해지자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많은 시민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바로 노숙자 신세가 되었지요.

이 현상을 통해서 현 사회가 얼마나 불완전한 사회였는지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태를 겪었다면 이제 우리는 얼마나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환경 문제를 생각할 때도, 우리가 원시 상태로 다시 환경을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최소한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더 나쁜 상태의 환경을 물려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환경 문제의 해결책이라 생각해요. 이처럼 경제 성장을 위해 달려오다 큰 충격을 받게 되었을 때 안전, 생명, 지속 가능성, 환경 문제 등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둘 겁니다. "

 

이번 사태로 다양한 현상이나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말이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닐까 합니다. ‘거리두기’는 현대사회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추진해 온 ‘공동체 복원’이라는 개념과는 대치되는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공동체 복원을 위한 다양한 사업이 있었고 예산 지원도 있었는데 이제 이 공동체 파트는 어떤 활동 방식을 선택해야 할까요?

 

" 많은 학자가 코로나19를 통해 개인주의가 심화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왜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했고 우리는 나름 성공적으로 막았을까 생각해 보면 유럽과 미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 정신사적 기초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서구에서는 합리적인 개인이 집단을 이뤄 사회를 만든다고 생각하죠. 개인의 합리성을 증식시키고 사회적 계약을 맺으며 국가를 이루는 것, 이것이 전통적인 사회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렇기에 공동체보다는 합리적인 개인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겼지요.

또 유럽과 미국 역사를 통틀어 현재 자신이 가장 성숙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서양 문화에 대한 우월감이 있었어요. 그렇기에 마스크 쓰는 것에 대한 동양과 서구의 반응이 달랐어요. 우리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남을 감염시킬 수 있으니 조심하려 하지만 서양에서는 자신이 아프다고 판단하면 마스크를 써요. 그렇기에 서양에선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개인이 생각했을 때 아픈 사람이지요. 본인이 판단해 아프지 않으면 밖에 나갈 때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코로나19는 무증상 감염이 특징 중 하나였지요. 개인이 감염 여부를 판단할 수 없어 문제가 생겼어요.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거리는 정확히는 물리적 거리죠. 그러나 이 물리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 심리적 거리도 멀어질 수밖에 없죠. 심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여러 사회 문제가 생길 거예요. 이 심리적 거리를 어떻게 좁힐 것인지가 중요하죠. 심리적 거리를 멀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화상채팅, SNS 등 4차산업 기술을 적용하는 현상이 나타날 거예요. 심리적 거리는 단축시키고 사회적 거리는 유지하며 이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는 기술을 가지고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

 

물리적 거리두기에 따른 심리적 거리가 생기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시는 건가요?

 

" 그렇지요. 그런 측면에서 공동체성은 더욱 중요해요.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드러난 사회적 문제를 덮지 말고 해결하며 궁극적으론 공동체를 회복해야 하지요. 다음 질문에 논의되지만 기본소득도 공동체성이 없으면 불가능하잖아요. 사회적 추세는 기본소득으로 가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돈만 준다고 될 일이 아니거든요. 기본소득은 복합적이며 깊은 철학적 문제를 포함하고 있잖아요. "

 

그럼 기본소득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보도록 하죠. 기본소득은 세계적으로 논의된 지도 오래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없지는 않았지만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받지 못했지요. LAB2050이라는 민간 연구소에서 작년 말에 굉장히 구체적 데이터로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지만, 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많았습니다. 국민 관심을 끌며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내지는 못했고요. 그랬던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데이터 발표 불과 3개월 후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향후 이에 관한 논의가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확대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데요.

 

" 기본소득은 논쟁거리고 계속 논쟁을 이어 가야 한다고 봐요. 개인적 의견으론 기본소득으로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 개념이 나온 배경은 노동을 통한 생계 영위와 관련이 있어요. 경제가 성장할 땐 경쟁력 있는 곳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죠. 단순하게 말하면, 경쟁력은 좋은 품질을 보다 싸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좋은 품질을 저렴한 가격에 만들기 위해 가장 효율이 좋은 건 기계화, 자동화고요. 과거 산업혁명의 핵심도 사람 대신 기계가 노동을 한 것이지요. 산업혁명 당시엔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란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론 기계를 통한 생산량이 늘며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겼어요. 즉, 기술의 발전과 필요 인력은 정비례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 공식은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요.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나오죠. 4차산업혁명 개념이 나오며 본격적으로 인공지능 기계가 일자리를 줄인다는 인식이 생겼고 인간과 인공지능 기계의 차이도 점차 좁혀지고 있어요. 오히려 인공지능이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인간보다 능률이 더 좋지요. 미국 작가이며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2045년이면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때 생산력은 무한으로 커질 것입니다.

생산을 통한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은 기계가 하고 창출된 부가가치는 국가가 잘 관리하여 국민에게 나눠 주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겠지요. 이것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기본소득이 적용되기 위해선 우리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 해요. 지금까지 일을 바라보는 우리 관점이 있었습니다. 일터에 대한 보람과 사명 같이 일에 의미를 부여했지요. 그러나 기본소득이 보편화되면 인간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겠지요. 인간이 현재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돈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척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기본소득은 부가가치를 똑같이 나누는 것인데, 사회가 모두에게 똑같이 결과물을 나눠 줄 때 과연 개인이 수용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기본소득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동체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동체성을 다르게 표현하면 사회적 자본이라 생각합니다. 서로에 대한 배려, 관용, 신뢰가 잘 형성되면 경제적으로 경쟁하지 않고 다른 분야로 경쟁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비관적으로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소수가 기계를 독점하고 대다수에게는 먹고살 만큼만 소득을 배분할 것이란 이야기도 합니다. 미래 세계에 대한 담론을 모두가 공유하고 공동체 의식을 만들어야 하는 건 중요한 문제죠. "

 

많은 논쟁과 논란이 있지만 결국 우리 사회는 기본소득 제도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지금까지 기본소득에 관한 이야기는 주로 연구자 그룹인 학자가 말해 왔지만 이번엔 정치권에서 언급한 만큼 기본소득 현실화에 한 단계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복지 제도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추가하는 형태여서 누더기 같은 모습이지요. 기본소득 제도는 이를 해결하는 데도 아주 유용한 제도이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고 봅니다. 또, 노동에서 우리가 완전 해방되었을 때 어떻게 살지 생각해야겠지요. 영화 ‹써로게이트›에서는 일을 인공지능이 대신할 때 사람은 그저 누워 있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영화는 노동에서 해방되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기본소득은 사회 전반을 바꾸는 담론입니다. 제도 채택에 앞서 우려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충분히 논의해야 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

 

공동체성 복원과 함께 혁신적인 시스템 전환을 위해 추구한 다양한 영역에서 ‘분권’은 더욱 힘을 받고 가속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봅니다. 세계화, 중앙 집중 현상 등이 이번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분석도 있고요. 개인적으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분권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 단위, 혹은 더 작은 마을 단위에서 자치역량을 키우며 독립적인 삶을 지향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분권과 자치 문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순히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국제적 관계도 폐쇄되고 IMF에서는 ‘락다운’이라고 표현하듯 단위는 더 작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국제 관계 속 그리고 우리나라 안에서도 행정 구역별로 폐쇄적 경향성이 더 강화될 것 같은 생각은 듭니다. 이것이 반드시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분권이라는 표현이 사실은 행정학에서 주로 쓰는 말이지요. 분권이라는 말에 크게 동의하고 싶지 않은 것은 분권을 통해 모두가 이득이 되면 좋겠지만 오히려 갈등이 더 부추겨진다면 이를 해결하지 않고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중앙 정부에서 지방분권을 추진하지만 지방분권을 시행하면 자립도가 떨어지는 지방은 문제가 생깁니다. 분권을 추진하면 제일 이득 보는 곳은 사실 서울, 경기도가 아닐까요? 이런 것을 생각해 본다면 분권이 이상적인 것 같지만, 자립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양한 문제와 갈등을 낳을 수 있습니다. 

공동체역량과 개인역량 간에 비례적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구는 지금까지 공동체역량보다는 개인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했지요. 동양은 공동체역량을 더 키우려다 보니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에 소홀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 두가지를 어떻게 융합할지가 중요합니다. 자급자족 경제란 표현이 있습니다. 자급자족 경제는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방식이고 자본주의 방식은 세계화였습니다. 현재 상황에선 다시 자급자족 경제 방식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급자족을 통해 경제도 분업이 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분권도 있어야 하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적절히 체계화시킬 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책을 보면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를 끌고 가고 시민들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반대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민이 주도적 역량을 키워 중앙 정부를 설득해 따라오게 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현재 전국 곳곳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여해 진행하는 사업 중 하나가 도시재생사업입니다. 하드웨어 중심의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재개발 방식의 도시환경정비사업에서, 소프트웨어 측면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동안 축적한 정체성이 사라지지 않는 방식의 재생을 현지 주민 손으로 추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이런 도시재생 기본 방향이나 철학을 더욱 공고히 하거나 혁명적인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까요? 현재는 고밀도 도시화였지만 향후 도시재생 방식이 저밀도 형태로 자립 내지 자급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도시재생 방식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시재생은 국토교통부가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는 도시 삶의 모습을 정부가 정하는 느낌을 줍니다. 도시재생을 하는 이유는 한국 전쟁 이후 짧은 시간에 재건된 도시가 체계적이지 못했던 부분을 고쳐 삶을 개선하는 것에 있습니다.

삶을 개선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주민 의사입니다. 주민이 모여 도시 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설계안을 만들어 중앙 정부에 건의하고 추진하는 방식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이뤄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사람들은 삶의 터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집에만 있다 보면 비로소 집 안이 보이듯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이 보일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내가 사는 도시를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도시재생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하고 운영하는 방식은 사업에 예산을 투입한 후 평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결국 국가 기준에 맞춰 도시를 재생하는 것인데 이러한 불합리한 부분이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인지될 것입니다. "

 

앞선 질문에서도 어느 정도 이야기가 나왔던 4차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재택근무, 비대면 문화의 활성화는 4차산업혁명과 직결된 문제로 보입니다. 4차산업혁명을 앞두고 다양한 논의와 시민 합의가 필요할 텐데, 이런 준비 기간 없이 ‘혁명’이 일어나면 많은 혼란과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도 있을 거란 우려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해야 할까요?

 

"‘4차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은 독일식 표현입니다. 미국에서는 ‘진흥정보화사회’라고도 부릅니다. 이 혁명의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입니다. 우리 사회를 디지털 기반의 사회로 만든다는 것이죠. 이에 따라 예전에는 물적 자산이 많은 사람이 부자였다면 4차산업혁명 속에선 디지털을 효과적으로 쓰는 사람이 부를 축적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4차산업혁명 속에선 디지털 활용도에 따라 디지털 격차가 생기겠죠. 이 디지털 격차가 부와 소득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교육계에서는 거대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지요. 바로 온라인 수업입니다. 과거에 교육은 정해진 교육 장소에서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선 강의실이 교육 장소였습니다. 그 안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척 강했지요. 그러나 온라인 수업이 활성화되면 교육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 기록으로 남습니다. 기록은 실력 있는 교수와 실력 없는 교수를 외부에서도 평가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요. 면대면 수업이 익숙했던 교수는 디지털 사용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디지털에 익숙한 교수와 그렇지 못한 교수의 교육 방식에서 차이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도 일종의 디지털 격차죠. 이로 인한 사회 양극화가 커질 것입니다. 이런 4차산업혁명 구조는 어쩔 수 없이 순응해야 합니다. 수용하는 자와 하지 못하는 자의 격차가 있을 때 수용하지 못하는 그룹을 어떻게 관리해 줄지가 중요한 사회 이슈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지만, 교육계에 대표적 실험으로 온라인 수업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대학교 수준에서 이런 교육 방식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효율성 측면에선 온라인 수업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교육 콘텐츠 간의 경쟁이 있을 것입니다. 가상 공간에서 수업을 접하게 되면 다른 대학 수업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학생들에게는 원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쉽게 접할 기회가 생긴다는 걸 의미하지요. 대학의 브랜드 가치가 아닌 본질적인 수업의 가치를 평가하게 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대학의 가치가 바뀌게 되겠지요. 근본적으로 대학의 기능과 역할이 확장되면서 현실 세계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것입니다.

특히 일자리와 연관해서 보면, 일반적으로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의 생각 차이가 큽니다. 취업 현장을 관리하는 곳이 고용노동부이고 일자리에 필요한 인력을 길러 내는 곳이 교육부라고 보면, 수요자와 공급자의 관계인데 이 둘의 인식 차이가 크지요. 이런 문제가 교육의 디지털화로 해결될 것입니다. 교육의 내용을 수요자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은 보다 우리 사회에 적합하고 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교수가 아는 지식을 가르치기보단 문제를 해결할 힘을 키우는 프로젝트 교육이 높아질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온라인 수업이 지속되면 교육 부분에 혁명이 있을 것입니다. 대학이 지금까진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대상으로 교육했지만 이제는 사회에 밀접한 지식을 가르치는 평생 교육을 담당할 수도 있습니다. "

 

이번 코로나19 관련해 대한민국의 대응이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높은 평가가 이뤄지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코로나19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그리고 이런 결과가 드러내는 시사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서구와 동양의 시각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을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산에서 꺾어 온 꽃을 가져와 사 주기만을 기다리다 돌아가는, 길가에서 꽃을 파는 처녀와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한국 역사의 기조를 고난의 역사라고 본 것입니다. 이 말에 공감해요. 과거 병자호란과 같은 역사를 보면 조선의 사신이 청나라에 가서도 끝까지 명나라를 섬기려는 의지를 표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이것은 우리가 한번 옳다고 생각한 명분을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시대가 변했으면 변한 시대에 빠르게 적응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임진왜란 때엔 선조 왕은 왕실을 버리고 도망가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가가 주저앉는 것이 서양의 역사지만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왕이 도망가니 의병이 일어났지요. 우리는 국가가 어려울 때, 국민 공감 능력이 높았던 것 같아요. 특이한 일이지요.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도 의사는 사회적으로 고소득계층임에도 개인 사업을 접고 대구에 내려가 의료 봉사를 해요. 대단한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는 공감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적 공감 능력이 방역 대책에 효과적이었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힘든 시기가 지나가고서도 서로에 대한 공감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공감 능력이 유지, 확대되어야 해요. "

 

많은 전문가는 이 바이러스가 사스, 메르스, 이와 유사한 것이 유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보건적 측면 말고 사회 구조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 바이러스 문제를 바라볼 때, 일시적이고 임시적 처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미래를 위한 대비가 필요해요. 의료산업, 바이오의학산업은 많이 커질 것입니다. 이와 별개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더 체계적 방식으로 변화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하나가 공동체 의식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경제학자 중 밀튼 프리드먼이 쓴 『선택할 자유』란 책을 보면 책 표지에 연필 한 자루를 들고 있는 프리드만의 사진이 나옵니다. 이 연필을 만들기 위해선 인도네시아의 나무, 스리랑카의 흑연과 노동자의 노력이 결합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유무역과 노동 분업을 통해 좋은 연필을 값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러나 소비자는 제품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현재 자본주의 경제 특징이지요. 우리 자본주의는 사회 공감 능력을 극도로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농부가 어떻게 채소를 생산하느라 고생하는지 생각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습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감 능력을 키워 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이 고민이고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정부 정책 담당자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함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정책을 세우기도 훨씬 좋을 것입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우리가 대응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큰 기구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룬다는 것은 갈등 요소가 있을 때 통합적 사고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서 의식 개혁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의식 개혁 운동의 시작은 새마을 운동이었지요. 이 운동은 비록 경제 재건을 위해 강제로 시킨 운동이었지만 이를 통해 60년간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발적 운동입니다. 우리는 전근대적인 의식 수준에서 경제 성장만 이루며 이 둘 사이에 괴리가 있었지요. 우리나라가 사회 위기 속 공감 능력의 높낮이가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제 성장과 사회적 의식 개혁이 함께 가야 합니다. 정치, 문화 부분 등 다방면에서 의식 개혁 운동이 사회적 합의 기구를 통해 이뤄진다면 그 후엔 굳이 1인당 국민 소득이나 GDP를 높이기 위한 논의보다는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게 될 것입니다. "

 

원장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우리 사회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담론을 형성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적절한 시스템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긴 시간 고맙습니다.

 

"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에 거대 실험의 기회를 준 것 같습니다.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기만 바란다면 긍정적 변화는 없을 겁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

 

[2020 155호 월간 토마토 인터뷰 中]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