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전지하상가의 작은 책방을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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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대전역전지하상가의 작은 책방을 아나요?

by 토마토쥔장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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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온 서적이 모이는 곳 

해풍사 

 

글 사진 이지선

 

계절을 가리지 않고 북적이는 대전 중앙로지하상가를 빠져나와 대전역으로 가는 역전지하상가에 들어서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저 다리 하나를 건너왔을 뿐인데 마치 멀리 떨어진 다른 동네에 놀러 온 기분이다. ‘지구촌 양말, 양말 천국’부터 가발을 파는 ‘야누스’, ‘미성모자’, ‘화개장터’까지 이름마저 특색 있는 간판 사이에 ‘해풍사’가 있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모이는 곳. 이름마저 멋들어진 이곳은 외국 서적을 판매하는 서점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 

주인의 눈길을 피할 조금의 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3평 남짓한 서점에 들어서자 주인은 젊은 아가씨가 웬일인가 싶은 눈으로 “어서 오세요”라며 짧은 인사를 전한다. 

작은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책장에는 오래된 외국잡지를 별다른 순서나 규칙 없이 채워 놨다. 책 한 권을 집어들 때마다 묵은 먼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손에 쌓인 먼지로 공간이 지나온 시간을 가늠해 본다.

90년대 잡지부터 만화책, 애니메이션 포스터, CD, 지금은 사용할 수 있을까 싶은 비디오테이프 등이 해풍사를 가득 채운다. 판매는 할 수 있는 책인가 싶을 정도로 오래된 책도 더러 보인다. 패션 잡지부터 미용 잡지, 드로잉북까지 의외로 다양한 종류의 외국 서적이 속절없이 주인을 기다린다. 중간중간 한국 가수의 일본 앨범도 보인다.

비록 읽을 수는 없지만 잡지 안에 그림과 사진을 보며 어떤 내용의 책이겠거니 짐작해 본다.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일본 패션잡지 한 권을 보면서 역시 유행은 돌고 돈다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힙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책장 앞에 투박하게 쌓여 있는 상자에는 옛날 문방구에서 자주 만나던 장난감부터 카세트용 테이프가 그득하다. 

“그거는 다 우리 아저씨가 안 버리고 가지고 있다가 찾는 사람 있을까 싶어 갖다 둔 거예요.” 

여기저기 공간을 살피고 있으면 정이 담긴 말 한마디가 들려온다. 약간의 눈치를 살피며 이것, 저것 꺼내 보는 게 여간 재밌는 일이 아니다. 한참을 살피다 알법한 연예인이나 캐릭터를 발견하면 괜스레 반가운 마음도 든다. 이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물건들은 어디서 어떻게 구했을까. 아직도 찾는 사람은 있나. 공간을 둘러볼수록 물어보고 싶은 질문만 늘어난다. 

  

  

 어쩌면 다행인 공간 

해풍사는 지하상가가 문을 여는 날이면 어김없이 가게를 연다. 오전 10부터 오후 4시까지는 아내 정혜자 씨가 가게를 담당하고 그 이후 시간은 남편 신동협 씨가 가게를 지킨다. 지금은 일본 서적만 취급하지만, 과거에는 유럽, 미국 등의 책도 판매했다. 무역업자를 통해서 책을 수입하고 배달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원래 시아버지가 운영하던 서점이에요. 남편이 시아버지를 도와서 같이 일하면서 이제까지 한 거죠. 시아버지 때부터니까 60년이 넘었지, 아마. 예전에는 손님 많았죠. 서점 운영하는 집에 시집왔으니까, 집안일하다가 서점일 돕고 했죠. 그때는 따로 배달원 두 명을 썼을 정도니까요. 지금도 보통 전화로 주문 받아요. 이 근방에 있는 정기구독자한테는 우리 아저씨가 직접 배달해 주고 있어요.”

  

해풍사에는 과거의 추억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오다가다 무슨 책을 파나 싶어 들어와 구경하는 뜨내기손님도 더러 있다. 

“이 나이에 무슨 일을 하겠어요. 그냥 이제 놀러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냥 앉아서 텔레비전도 보고 사람도 보고 그러고 있는 거죠. 그래도 나와 있을 때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생계이자 일상이었던 이 공간은 도시의 변화에도 끄떡없이 자리를 지키며, 언제나처럼 불을 밝힌다. 작은 공간이 지겨울 법도 한데 몸에 밴 습관은 쉬이 버려지지 않는다. 

작은 책상 앞에 의자도 아닌 책장 한 귀퉁이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교대해 줘야 하는 남편이 오지 않자 아내 정혜자 씨는 갈 데가 있다며 짐을 싼다. 

  

 그냥 보통 사람 이야기 

늦은 저녁 시간 해풍사로 다시 발길을 옮겼다. 뜨겁고 습한 날씨에 해풍사로 옮기는 걸음이 무겁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지하상가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 역전지하상가는 며칠 전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반긴다. 저녁이라 그런지 일찌감치 문을 닫은 가게도 몇몇 보인다.

“여기 뭐 볼 게 있고, 쓸 게 있다고 왔대.”

저녁 시간 해풍사를 지키는 신동협 씨는 투박하면서도 정 있는 말투로 반겨 준다. 자연스럽게 전과 같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고향은 원래 황해도야. 대전은 제2의 고향이지. 태어나고 1년 뒤에 6·25전쟁이 났어. 그래서 서울로 피난 갔다가 대전으로 왔지. 아버지가 그 시절에 일본 유학을 다녀온 분이었어. 거기서 어머니도 만나셨고. 52년부터 해풍사를 했을 거야. 그때부터 이름은 해풍사였어. 서점이랑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지.”

  

  

서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도와 스물다섯 살부터 해풍사를 운영했다. 장사 수완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늘 재고를 쌓아 두기 일쑤였고, 보다 못한 신동협 씨가 팔을 걷어붙이고 서점 일을 맡았다. 꿈이라고 왜 없었겠는가.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당장 생계를 위해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다닌 열아홉 번의 이사와 집 없는 설움은 지금까지 해풍사를 있게 한 힘이기도 하다. 

초장기에는 지금처럼 가게가 아닌, 집에서 서점을 운영했다. 따로 서점이라는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때다. 전화로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을 나가는 형식이었다. 과거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충남 일대를 돌아야 할 정도로 주문이 많았다. 이후 은행동, 대흥동을 오가며 작은 가게에서 서점을 운영하다 대전역전지하상가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20년이다. 

“공간은 이 정도면 충분해. 넓은 공간이 필요한 곳이 아냐. 답답할 게 뭐 있어. 지금이야 뭐, 그냥 집에만 있으면 뭐해. 그러니까 나오는 거지.”

신동협 씨의 최근 취미는 역학이다. 오후 4시부터 늦게는 10시, 11시까지 가게를 지키면서 역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전처럼 바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진즉부터 예상한 일이다. 지금은 그저 여기 앉아 오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책을 보고, TV를 보는 것이 하루의 낙이다. 

“그때는 기술부터 교육까지 일본 책이 아니면, 배울 데가 없었어. 우리나라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뭐 내가 특별한 사명감이 있고 철이 일찍 들어서 여기를 운영한 건 아냐. 그냥 먹고살려니까 그렇게 여기까지 온 거지. 다 평범한 사람이야.” 

신동협 씨는 그저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마음 한쪽 어딘가를 건드리는 말이다. 말 한마디, 마디에 담긴 통찰은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이해할 수 있을까. 온전히 이해하는 날이 오기나 할까. “오랜만에 시간 잘 가고 재밌었어”라는 따뜻한 인사를 뒤로하고 나섰다.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인생길이 그 어떤 책보다 그립다. 괜스레 마음이 울컥하는 여름밤이다.

 

해풍사

주소 대전 동구 중앙로 218 대전역전지하상가 가6

문의 042-256-2039

 

이 글은 2018년 9월, 13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해풍사는 여전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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