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마을-대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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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지도 시리즈

우리가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마을-대화동

by 토마토쥔장 2021.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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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마을-대화동

[월간토마토 3월호 대전여지도 中] Part 4.

 

 

 

대화동 ‘명동길’이라 부를 만큼 북적북적

글·사진 이용원

 

대화동에서는 계족산과 그 주변 풍광이 아주 시원하게 보인다

 대화동에도 인구가 늘었다. 대전 1, 2산업단지가 모두 조성된 이후에는 공장 노동자까지 더해져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난민’을 강제 이주시켰던 대화동 동쪽 편 산자락은 주요한 산업단지 배후 주거지로 변모했다. 1993년 12월 기준 대화동 인구는 1만 6,849명이었다는 자료를 확인했다. 대덕구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 기준, 주민등록 인구는 7,158명이었다. 20년이 채 안 되는 시간, 1만 명 가까이 인구가 줄었다.

 

 당시 대화동으로 들어오는 주 출입구 구실을 했던 대전병원 아래쪽 길은 차량 교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좁다. 현재는 일방통행로다. 그곳이 차를 가지고 대화동에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 길에서 시작해 오광아파트까지 이어지는, 현재 동심 1길 주변은 대화동 상권 중심지였다. 지금도 식당과 미용실, 학원, 큰 슈퍼마켓 등 다양한 근린생활시설이 밀집했다.

 

“예전에는 여기를 명동길이라고 불렀어요. 이곳에서 장사한 지 30년 정도 되었는데, 옛날에는 사람이 꽉 차서 걸어 다니기도 힘들 정도였어요. 특히 산업단지 월급날이면 일하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술집이며 가게가 들썩거렸어요. 이날은 외상값을 값는 날이기도 해서 산업단지 노동자뿐만 아니라 상가도 함께 술렁였죠. 구마니나 무다리 쪽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리어카나 경운기에 각종 채소를 가득 싣고 이곳에 오면, 늘 금방 다 팔고 간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당시 이곳 사람들은 이대로 대화동이 커지면 대전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죠. 지리적으로도 대화동이 대전광역시 가운데 있다고 하고요.”

 

 대화동 동심1길에서 30년 정도 건강원을 운영하는 백운복 대표 얘기다. 위성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유등천과 갑천이 만나 흐르기 시작하는 그 지점은 정말 대전 중심부였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당시 사람들 가슴 속에 차오르는 희망이 어떠했을지 짐작된다. 그렇게 북적였던 대화동이 다시 쇠락한 이유로 백운복 씨는 널찍하니 깨끗한 주거 공간이 없어서였던 것으로 분석했다.

 

“이인구 국회의원 있을 때, 지금 소망교회 인근에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어요. 명동길 진입로도 확장하려고 했고요. 근데, 주민 반대로 무산되었죠. 아마 당시에는 집마다 세를 놓아 벌어들이는 수익이 적지 않아서 반대했을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서 널찍하고 깔끔한 곳을 원하는 주민이 판암동이나 둔산동, 송촌동 등 아파트 단지로 이사한 거죠.”

 

 백 대표도 대화동 두레아파트에 살면서 통장을 맡아 보았다. 근데 집이 좁아 이사를 결정했다. 가게는 그냥 두고 사는 집만 올봄에 오정동으로 옮길 계획이다. 이사를 가는 건, 순전히 좁은 집 때문이지 마을이 싫어서는 아니라고 여러 번 얘기했다. 백 대표가 운영하는 건강원에 놀러 온 김에 일을 돕던 옛 이웃 이희선(74) 씨는 백 대표가 이사하는 사실을 몰랐던 모양이다. 이희선 씨도 1979년에 대화동에 들어와 40년 넘게 살다가 최근에 법동으로 이사했다. 그래도 시간이 있을 때면 이렇게 놀러와 옛 이웃을 만난다.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듣자니, 시골 방앗간에라도 와 있는 듯하다.

 

“대화동은 정말 좋아요. 오순도순 이웃간에 정도 깊고요. 저도 한 3년 있다가 대화 1, 2지구 개발되면 다시 이사 올 생각이에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렇게 계획을 세웠어요. 이 동네 정말 좋거든요.”

 

 지금 대화동 명동길은 저녁이면 불도 일찌감치 꺼져 깜깜하고 쓸쓸하지만, 긴 시간 골목 구석구석에 쌓인 따뜻한 시간은 여전히 머무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래전부터 논의가 이어진 1, 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을 본격 추진하면서 산업단지 조성 이후 또 한 번 급격한 변화를 예고한다. 1구역은 두레아파트 인근, 2구역은 오광아파트 인근이다.

산동네에서 아랫집 지붕을 보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대화동 동편 마을은 조금만 걷다 보면, 과거 산이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산등성이 부분에 해당하는 곳을 정점으로 좌우에 급한 경사면이 이어진다. 가장 낮은 곳에서 조금씩 오르다보면 건너편이 보이지 않고 하늘이 보인다. 예전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을 하늘이 이제는 건물 사이로 보인다. 한때는 자본이 정책적으로 접근해 대화동에 인위적 변화를 가하기 전부터 있었던 자연 마을의 뒤를 지켜주는 든든한 뒷산 노릇을 했을 거다. 지금은 그곳 경사면에 다닥다닥 집이 들어앉았다. 그곳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계족산을 중심으로 주변 풍광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유성구 전민동 지역 아파트 단지도 어렵지 않게 보인다. 마을을 쏘다니며 공간 구석구석에서 자유롭게 트이는 시야가 좋다. 산자락에 자유롭게 집을 지으며 생긴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가면 의외의 공간을 마주하기 일쑤다. 효율보다 상황을 우선했다. 급한 경사면은 계단을 활용해 극복했다. 높다랗게 쌓은 석축도 마을 곳곳에서 만난다. 삶을 대하는 치열함을 느낄 수 있다.

경사면은 계단으로 극복했다

 아무리 쇠락한 주거지라도 빈 채 방치한 건물이 과할 정도로 많다. 소멸을 우려하는 시골 마을처럼 말이다. 몇몇 빈 건물은 조금만 손보면 당장이라도 들어가 살림을 꾸릴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 보였다. 울도 담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공간에서 얼마 전까지 삶을 꾸려갔을 사람의 흔적을 발견하는 건, 묘한 감동을 준다. 반면에 시간의 흐름과 무관심을 견디지 못한 채 무너져 내리며 회색빛으로 숨어드는 빈 건물도 무척 많다. 사람에게 등짝을 오롯이 내주었던 산이 숨죽인 채 버려둔 건물과 삶의 시간을 조금씩 소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할 과정인 것처럼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대덕구는 주택 재개발정비사업에서 빠진 구역 중심 부분에서 도시재생뉴딜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2020년 공모에서는 한 차례 고배를 마셨다. 2021년 계속 활성화 계획을 수정 보완하며 응모 준비를 한다. 이제는 사라질 구마니 마을부터 산업단지에 포위당한 무다리 마을, 산업단지 지역을 넘어 동편 주택단지까지 살펴보며 우리가 보낸 시간을 한 번에 훑어본 듯했다. 대화동은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층위를 드러냈다. 더 늦기 전에 대화동 역사를 잘 갈무리한  뒤에 도시재생사업 구역 안에 마을박물관을 건립한다면, 우리 도시에 중요한 자산으로 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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