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할 건 무엇인가
본문 바로가기
편집장 편지

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할 건 무엇인가

by 토마토쥔장 2021. 3. 24.
728x90
반응형

우리가 진짜 걱정해야 할 건 무엇인가

[2021년 2월호 월간토마토 편집장 편지]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데, 벌써 한 달이 후딱 지나가 버렸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고 다음해로 넘어갈 때는 무언가 좀 왁자지껄하면서 연말연초 분위기를 내어야 한번 끊고 가는 느낌이 들었을 텐데, 5인 이상 모일 수 없는 ‘코로나19’ 상황이 이어지면서 그렇지 못했습니다. 해가 바뀐 걸 느끼는 순간은, 메시지로 활기차지 못한 새해 인사와 덕담을 주고 받을 때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텔레비전 시청 시간도 늘었습니다. 최근에 텔레비전을 보면 유독 ‘코로나19 2.5 단계 상황 이전에 촬영했습니다. 소독과 방역을 철저히 했으며 발열 체크 등 규정 사항을 준수했습니다. 출연자 전원이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등 내용을 담은 자막을 자주 봅니다. 이 자막을 반복해서 보면서 무언가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복잡한 생각입니다. 과거 독재 정권이나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권력이 시민을 감시했다면 이제는 시민이 시민을 감시하는 시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신뢰하고 믿고 넘어가야 할 부분도 끊임없이 증명하고 인증해야 하는 시대로 진입한 듯합니다. SNS를 비롯해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늘면서 비난과 지적, 혹은 정당한 비평일지라도 한 개인이나 단위가 감당하기에는 가혹할 정도로 휘몰아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면전에서 얼굴을 보고 쏟아낼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알아서 철저한 자기 검열과 대비책을 마련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습니다. 언제 불어닥칠지 모를 감사와 검열, 소송 등에서 자기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서류를 갖춰놓는 행정 업무처리 방식처럼 말입니다. 이거 어마어마 하거든요. 이런 증빙자료를 갖추느라 정작 해야 할 고유 업무에 쏟을 에너지 손실이 엄청납니다. 가전제품만 에너지 효율을 생각할 게 아닌데 말이죠.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지만, 방송국 야외 촬영 과정에서 출연진을 제외한 나머지 얼굴을 안 보이게 블러 처리하는 모습도 이제 상식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편집 프로그램 기술의 발전도 한몫을 했겠죠? 예전에는 우연히 텔레비전 촬영 현장을 지나가다가 찍히면 무척 재미있어 하며 자랑하지 않았나요? 심지어 아이들은 스튜디오 밖에서 리포팅 하는 아나운서 주변에 몰려들어 V자를 그리며 개구진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말이죠. 

 

 이런 현상은 일반적인 회의나 강의에 참여했을 때 참석자와 강사 등에게 온갖 동의서를 제시하고 사인을 받는 문화와도 연결됩니다. 강의비 지급을 위한 개인정보 이용 동의야 그렇다치고,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동의까지 받지요. 물론 이도 대부분 증빙서류에 구색을 갖추기 위한 촬영일 때가 많지만요. 직접 대놓고 찍을 대상이 아니라도 받습니다. 혹시 화면 안에 들어올까 봐요. 만일을 대비하는 거죠.

 

 지난해 말, 코로나19 상황에서 대부분 행사를 취소하거나 부득이 진행하면 ‘ZOOM(줌)’이라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12월 초, 대전에서 제법 큰 규모의 행사가 열렸습니다. 허태정 시장이 무대에 올랐고 많은 시민은 ‘ZOOM’에 접속해 행사를 지켜보았죠. ‘ZOOM’은 내 얼굴과 목소리가 나타나지 않도록 감출 수 있습니다. 대형 스크린에 여러 시민 얼굴이 모자이크처럼 나오는데, 개인이 얼굴과 목소리를 감추면 그 사람에게 할당한 화면은 시커멓게 변합니다. 온갖 얼굴로 가득해야 할 대형 스크린이 군데군데 시커멓게 변하니 아름답지는 않죠. 행사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는 계속 반복해서 참가자에게 얼굴을 볼 수 있게 ‘비디오’를 켜달라고 요청했지만, 호응은 높지 않았습니다. 무대에 앉아 시컿먼 화면을 보며 얘기해야 할 사람 입장에서는 무척 당혹스러운 현상이지요.

 

 심지어, 컨설팅조차 얼굴을 보지 못하고 진행할 뻔 했습니다. 컨설팅 의뢰가 들어와서 업체 대표와 직원, 두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처음에는 얼굴이 나오지 않게 비디오를 꺼놓더라고요. 웃으며 얼굴을 보면서 컨설팅을 해야하지 않겠느냐, 라고 요청했습니다. 대표는 비디오를 켰는데, 직원은 두 시간 정도 컨설팅이 끝날 때까지 비디오를 켜지 않았습니다. 이건 ‘ZOOM’으로 강의할 때도 흔히 겪는 일입니다. ‘ZOOM’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건, 우리 사회 외모지상주의 경향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쉽게 외모를 평가하고 평가받는 사회니까요.

 

 코로나19 상황이 제게 던진 여러 질문 중 하나였습니다. 특히, 한참 전에 대두한 ‘익명성’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경험입니다. 도시가 만들어낸 문화 중 하나죠. 새로운 기술과 상황에서 ‘익명성’은 진화하며 또다른 문화를 만들어내는 중입니다. 이런 문화는 월간 토마토 취재도 무척 힘들게 만듭니다. 예전에 비해 이야기를 나누고 이름을 확인하거나 사진을 찍는 것은 물론이고 잡지에 이야기를 담기 위해 섭외하는 것부터 어렵습니다. 이제는 취재를 진행하며 각종 동의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사인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동의서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을 듯합니다. 자기 이름과 얼굴을 걸고 의견을 말하거나 조곤조곤 이야기 들려줄 사람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콘텐츠 생산 방식 자체에 변화를 꾀해야 하거나 아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으로 치닫는 느낌입니다. 

 

 집단을 중심으로 사고하던 문화가 개인으로 옮겨가고, 그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형태로 변화하는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존중 받는 듯해 기분이 좋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결과가 점점 이 사회에서 개인의 심각한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존중 받아야 할 개인 영역과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영역을 구별하지 못하는 거죠. 무엇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회 전체가 보수적으로 변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낼 용기(?)를 가진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 될 가능성도 높아지지 않을까요? 이런 경우 우리 사회를 위해 용기를 내지 않는 게 나을 사람이, 강한 전투력으로 무장한 채 끈질기게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건, 아이러니죠. 지금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현상이니까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하나씩 답해 가며 2021년을 보내야겠습니다.

 

 

2021년 1월 21일

- 월간 토마토 편집장 이용원 -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