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지 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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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지 마요

by 토마토쥔장 2021.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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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지 마요  

글 사진 김선정

 

이 여행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하고 살지만, 가보고 싶었다. 유럽 배낭여행. 여행한 도시는 런던, 파리, 베를린, 프라하, 로마다.   

 

가지 마요외로우니까 

유럽여행 첫 도착지인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서가 아니다봄이 왔는데도 추워서가 아니다(삼월 중순부터 사월 초까지 여행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모든 이유는 외로움에서 시작했다. 26일간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외로웠고외로웠으며또 외로웠다새로운 세상을 만나보자는 기대감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행하는 내내 외로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내가 왜 여기에 와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싶어 떨치려고 노력을 해봤으나 쉽지 않았다오히려 더 깊어져만 갔다

여행지에서 외로움은 알지 못한다는 무지에서 왔고낯선 장소낯선 이에서 오기도 했다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잘 알지 못하니 이게 뭔가 싶어 외로웠다이런 와중에 아주 가끔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해도 이 감동을 나눌 이가 곁에 없었다나는 외로웠다내가 이토록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걸 이때 알았다집에 가고 싶었다

 

나는 왜 뛰고 있는가

나는 낯선 곳을 걷는 게 좋다길을 헤매는 것도 좋다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어 결국에 헤매다 찾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대충 지도로 목적지를 보고 이 정도면 걸어갈 수 있다.’ 싶으면 무조건 걷는다이런 무모한 자신감은 가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불러오곤 한다그럴 때는 뛴다

파리여행 첫날 오전 8시 50분에 나는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열심히 뛰고 있었다모든 도시 여행 첫날은 시내투어를 신청했다여행하는 도시를 조금이라도 알고 돌아다니고 싶어 인터넷으로 시내관광을 예약해 두었다이날은 오르세미술관과 몽마르뜨 언덕에펠탑을 둘러보는 투어였다약속 장소는 파리 숙소에서 꽤 떨어진 듯했지만, 30분 정도면 간다는 숙소 주인 말에 걸어서 가기로 했다약속 장소로 모이는 시간은 오전 8시 50숙소에서 나온 시간은 7시 50분이었다걸어서 가기엔 아주 충분한 시간이었다게다가 나는 길도 잘 찾으니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었다걸음도 빠른 내가 걷기를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자신만만하게 숙소에서 나온 나는 언제부턴가 약속장소까지 열심히 뛰고 있었다부지런히 걸었지만 길을 헤매다 결국 늦었다다행히 약속 장소에 모인 투어 일행은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미안한 마음에 조용히 인사를 하고 여행 주의사항을 들었다

뜀박질로 맞이한 파리여행은 만만하지 않았다나는 파리여행을 하는 동안 대부분 걸어 다녔다교통비를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하철 타는 게 무서워서다지하철을 탄 첫 날 나를 빤히 쳐다보던 외국인의 인상이 너무 강했다낯선 환경과 낯선 이가 주는 무서움을 파리 지하철에서 느낀 후지하철을 타기가 꺼려졌다.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어두웠지만아침에 걸어온 길이기도 했고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니 걸을 만하다고 생각했다루브르 박물관에서 숙소까지는 한 시간 거리였다루브르 박물관과 오랑쥬박물관을 잇는 길에 튈르리 정원이 있다이 주변에 집시가 많아 나처럼 혼자 다니는 여행객은 늘 그들의 소매치기 대상이 된다사실 오전에 나는 이 길을 뛰어다녔다집시를 피하기 위해 조깅하는 사람처럼 바람막이 점퍼 모자를 뒤집어 쓴 채 뛰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인 세느강을 따라 걷는데 생각보다 길이 어둡다가로등이 많지 않았다이건 생각지 못했다지하철을 탈까 하다가 이미 세느강을 건너왔고 바로 옆에서 에펠탑이 반짝이며 그냥 걸어서가라는 신호를 보내왔다나는 무서웠지만 에펠탑 뜻을 받아들여 걷기로 했다나는 다시 바람막이 모자를 뒤집어 쓰고 한밤중에 의도치 않은 조깅을 시작했다분명히 오전에 걸어온 길이었지만가로등 하나 없는 길은 무서울 뿐이었다빛이 있는 곳을 찾아 열심히 뛰다보니 어느새 숙소 근처다어둠 속에서도 길을 잘 찾는 나를 대견해하며 다시 자신감을 회복한 나는 숙소에 들어갔다의도치 않게 뛴 적이 많았지만운동한 샘 치니 그리 불평할 일도 아니었다

 

걷고뛰고먹는 와중에도 외로웠다  

파리 시내 투어 약속 시간에 늦어 열심히 뛰는 동안 어느 공원을 지나갔는데 너무 넓어서 그때만 해도 왜 이리 넓나.하는 불만만 가득했다이곳은 뤽상부르 공원이었다투어를 마치고 일정 없이 돌아다니는 날 다시 가보았다그전에 안 좋은 말을 퍼부은 게 미안할 정도로 멋진 공원이었다대전으로 (굳이따지자면 서대전공원처럼 많은 시민이 찾는 공원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요가체조명상조깅 등 다양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공원 가운데에 있는 분수대 근처에는 의자가 많이 놓여 있었다사람들은 이곳에 앉아 책을 읽거나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바람막이 점퍼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쓰고 조깅하는 사람들을 따라 공원을 두 바퀴 정도 달려 보았다이대로 뛰어서 한국에 가고 싶었다

뤽상부르 공원

여행한 다섯 도시 중 걷기 좋았던 곳을 뽑자면파리와 로마다특히 파리는 세느강을 따라 걷다보면 우중충한 날씨와 함께 우울함이 내안으로 깊숙이 밀려 들어온다이 느낌이 나쁘지가 않다더욱더 나에게 찾아왔으면 하는 기분이 든다파리에 예술가들이 많이 이유가 바로 이 세느강이 있어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인지 알겠다정말 기분 좋은 우울함이다로마는 골목이 굉장히 복잡하게 이어져 있어 걷는 재미가 다른 곳에 두 세배다일부러 지도를 보지 않고 걸어야 한다골목마다 볼거리가 다양해 보물찾기 하듯 즐겁다특히 젤라또 가게를 찾는 재미가 있다지나가다 여기서 한 번 먹고또 다른 데서 한 번 먹고 하다보면 세 번은 먹게 된다이 맛있는 걸 혼자 먹고 있으니 다시 찾아온다외로움.    

세느강과 젤라또

일인실은 행복하지 않다  

여행에서 잠을 잘 자는 건 아주 중요하기에 숙소만큼은 꽤 투자했다런던을 빼곤 모두 혼자 쓰는 숙소를 이용했다하지만일인실이라고 해서 모두 만족할 숙소는 아니었다오히려 아침을 푸짐하게 차려준 6인실 런던 민박이 괜찮은 숙소에 속했다파리 숙소 침대는 스프링 결이 등으로 그대로 느껴지는 입체 침대에다프라하 숙소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때늦은 3월 추위의 매서움을 맞보며 자야했다그래도 다른 숙소는 로마에 비하면 단 한 가지 단점만 갖고 있는 평범한 곳이었다

로마 숙소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벽이 아주 얇아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는 물론 옆 방앞 방모든 소리가 들려왔다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마저 들려와도 다 이해할 수 있었다가격이 싼 데는 이유가 있으니까

로마는 유럽여행 마지막 도시였는데 이곳에서 보낸 6일 동안 나는 여행 중 가장 조용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와이파이... 와이파이가 연결이 되지 않았다나는 또다시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로밍을 하지 않았던 나에게 와이파이는 여행지에서 쌓인 외로움을 풀어주는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수단이었다호텔 직원에게 말하니 와이파이 쓰고 싶으면 복도에 나와서 사용하라고 한다뭐라고요복도복도요?” 몇 번을 복도라는 말을 반복한 뒤 나는 방안에 들어왔다침대에 앉아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탈리아 방송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그리고 스마트폰 없이와이파이 없이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을 꾸짖었다나는 언제부터 전자기기에 의존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는가’ 부터 시작해왜 로밍을 하지 않았는가지금이라도 유심칩을 살 것인가왜 이 호텔을 예약했는가왜 유럽여행을 왔는가나는 뭐하는 인간인가왜 나는 외로운가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는 생각을 접었다답 없는 고민을 너무 오래 했다는 것을 유럽여행 막바지에서야 알았다그리고 TV를 끄고와이파이 신호를 찾아 호텔 복도로 나갔다신호가 약하다다시 방에 들어와 생각이란 걸 했다빌어먹을 호텔이 다시 나에게 외로움을 불러왔다.          

 

월간토마토 vol.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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