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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25

엄마와 치보 커피 엄마와 치보 커피 글 김향숙/ 교육•문화기획가,꿈꾸는 글쟁이 손님 오면 쓴다고 냄비나 그릇 선반에 올려 두고, 헌그릇 쓰는 엄마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되었다, 어릴 때부터. 1년에 집에 손님이 몇 번 오고.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집에 도대체 올 손님들이 누구냐고. 그 버전이 연결되어 거실에 책이나 서류들이 널려 있으면 그걸 위치 이동해 버리는 엄마가 또 이해가 안 된다. 내 책은 내가 정리하니 그냥 좀 두면 좋겠다고 하면, 또 그런 이야기를 한다. 누가 집에 오기라도 하면 흉본다, 라고. 도대체 누가 우리 집에 오느냐 말이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은 내 지인들밖에 없다.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이. 그것도 불쑥 오는 손님이 아니라, 나랑 사전 약속하고 오고. 거실에 책이 좀 널려 있다 한들 그들이 욕할까. .. 2021. 8. 10.
먼 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고픈 그대에게 프랑스 뮤제로의 짧은 산책 먼 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고픈 그대에게 글 사진 전한별 프랑스에는 아주 애매한 직업이 있다. Médiateur culturel, 직역하면 문화 연결사다. 가이드도 아니고 안전 스태프도 아닌, 가이드 및 각종 문화체험을 진행하고 다양한 문화행사에 관여해 관람객에게 정보전달과 감정적 소통의 길을 터 주는 멀티태스킹 직업이라 하겠다. 현재 프랑스 문화시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직책이나 대다수가 지자체의 알바생 신분으로 아주 불안한 고용상태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바로 프랑스 북부 릴 메트로폴리스의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일하는 알바생, 문화 연결사이다. 가장 최근까지 일하는 곳은 작은 시립 향토박물관이다. 이런 시설은 학교에서 단체로 오는 학생들로 항상 붐비는데, 어린.. 2021. 8. 9.
나의 살던 고향은 대전(3) 나의 살던 고향은 대전 글 조성남 사진 대전찰칵 제공 3. 유소년시절 여름의 추억 더운 여름이지만, 지금은 가는 곳마다 에어컨이 있어 더위를 식혀준다. 그러나 60여 년 전인 1950년대 말 또는 1960년대 필자가 살던 동네의 가옥구조는 대부분 목조 기와집이었고, 초가집도 여러 채 있었다. 필자가 살던 옆집의 울타리는 탱자나무였는데 집에 들락날락하면서 탱자나무 가시를 만지곤 했었다. 동네의 가운데는 우물이 있었는데 꽤 깊었다.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볼 때) 또, 넓은 마당을 지닌 집에서는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벼를 수확해 마당에서 타작하기도 했다. 국민학교 3학년 때까지 5, 6월이 되면 아버지는 새벽 동틀 무렵 필자를 깨워 깡통을 들려 동네 앞 논에 나가 개구리를 잡았다. 벼가 자라는 논이나 논둑에.. 2021. 8. 6.
첫 사랑 다시 만나기 VS 인생 책 다시 읽기 첫 사랑 다시 만나기 vs 인생 책 다시 읽기 『코스모스』(칼 세이건 저, 홍승수 역, 사이언스 북스_2006) 글 로와 이번 달은 내 인생 책 『코스모스』(칼 세이건 저, 홍승수 역, 사이언스 북스_2006) 이야기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학년 때였다. 대학 신입생이던 언니가 교양과목 과제 제출용으로 사용하고선 방구석에 방치한 책이었다. 언니 방에 뭐 간식거리라도 있나 살짝 들여다보던 내가 하필 그 책을 집어든 것이다. 만일 그곳에 새우깡 반 봉지라도 있었더라면 『코스모스』와 나의 만남은 한참 뒤로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과자 봉지 대신이라는 사소한 우연으로 시작한 인연이었지만 그 인연은 탄탄히 이어졌다. 나는 첫 만남 이후로 『코스모스』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는데.. 2021. 8. 6.
지표면 아래, 우리가 만들어 둔 '틈'이 존재한다. 지표면 아래, 우리가 만들어 둔 ‘틈’이 존재한다 글·사진 이용원 대전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시내’에 나가는 문화다. 이걸 문화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외지에서 온 사람은 ‘시내’라는 말을 들으면, 의아함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쳐다본다. 이 큰 도시에 ‘시내’라는 말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일 게다. 시골 마을에서 읍내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대전에도 상권이 밀집한 크고 작은 시가지는 많다. 그러나 ‘시내’를 뺀 나머지는 그냥 행정동 이름으로 부른다. 둔산동, 탄방동, 봉명동처럼 말이다. ‘시내’는 흔히 은행동 일대를 이야기하지만, 말하는 사람마다 권역은 조금씩 다르다. 사람마다 주요 활동 반경이 다르니 ‘시내’를 정확하게 획정할 수는 없다. ‘대전 시내’는 과거 여러 단관 극.. 2021. 7. 23.
보다 자유로운 여행 보다 자유로운 여행 글 윤대진 1. 수많은 시인이 인생을 길에 비유한 것처럼, 길을 걷는 것은 마치 인생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길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한다. 마음 따뜻한 친구를 만나 위로를 받기도 하고, 때론 어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인생을 배운다. 누군가 내게, 교육에서 가장 완벽한 커리큘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여행”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행길에서 만나는 사람과 다양한 경험은 인생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값진 순간이기 때문이다. 다윈(Charles Darwin), 마르크스(Karl Marx)와 함께 20세기 인류정신문명의 3대 혁신가로 꼽히는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는 인간이 정신적 어려.. 2021. 7. 21.
커피 그 여백 안에서 커피 그 여백 안에서 글 김향숙 / 문화‧교육기획가. 행복한 글쟁이 두 달이나 굶은 월간지 원고 써 보겠다고 여기까지 나왔다. 르완다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이번에는 커피 글을 쓰리라 마음먹는데, 웬걸 또 글이 거칠게 꿈틀거린다. 그게 참 이상하지. 페이스북이나 SNS에는 폰 자판으로 다다다 잘도 쓰면서, 이게 무슨 원고이다 생각하면 글이 심하게 거부한다. 결국 밥벌이 글쟁이로는 텄다는 소리이다. 그냥 우두두 써 내려가는 잡글은 내리 써지고, 뭔가 독자를 생각하면서 조금 고상을 떨라 하면 이건 아둔한 비글쟁이가 되어 버리니. 여기 오면 굳이 '르완다' 드립커피를 시키는 이유는 르완다, 라 이름 붙여진 싱글오리진 드립이 흔하지 않아서이다. 그 뭐랄까. 평소 못 접하는 것에 대한 야릇한 환상이랄까. 굳이 커.. 2021. 7. 16.
나의 살던 고향은 대전 (2) 나의 살던 고향은 대전 글 사진 조성남 2. 유년 시절의 기억과 추억 1954년생인 필자가 태어나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자란 공간은 대전시 중구 목동(지금은 중구 선화로43번길77)에 있는 충남여자고등학교와 맞닿아 있는 대전학생교육문화원(전 학생도서관)과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는 용두동 언덕에 있는 동네다. 이곳은 피난민촌으로 불리던 곳으로 지금도 5,60년대의 가옥구조가 일부분 남아 있는, 대전의 몇 안 되는 영세한 지역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대전에는 갑자기 수많은 피난민이 몰려들어 살 집이 모자라자 곳곳에 판자와 푸대자루, 종이박스 등으로 집 모양을 갖추고 사람들이 살았는데 대전 천변을 비롯한 옛 KBS대전방송국이 있던 목동, 용두동, 대동.. 2021. 7. 15.
정작 중요한 건, '살기 좋은 도시 대전'이다 정작 중요한 건, ‘살기 좋은 도시 대전’이다 대전형 1인 가구 정책을 기대하며 글 그림 이창원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대전이다. 대전 1인 가구 비율은 33.7%로 전국 평균 30.2%보다 높다. 4인 가구, 전통적인 ‘가족’을 중심으로 추진하는 정책 일변도에서 벗어나 ‘1인 가구’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1인 가구는 ‘사회적 문제’인가? 미래 사회문제를 예측할 때 빼놓을 수 없는 3가지 주제는 ‘고령화·저출생·저성장’이다. 1인 가구 증가는 ‘고령화·저출생’과 관련이 있다. 이를 “사회적 문제로 볼 것이냐?”라는 물음에서 답변은 나뉜다. ‘가족’을 중심으로 설계한 국가 정책에서 바라보는 1인 가구는 ‘사회적 문제’라고 .. 2021. 7. 15.
노벨문학상을 받은 휴머니스트 작가가 깊은 고찰 없이 SF를 썼을 때 벌어지는 비극 노벨문학상을 받은 휴머니스트 작가가 깊은 고찰 없이 SF를 썼을 때 벌어지는 비극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21년) 글 로와 2017년 노벨문학상은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다. “소설의 위대한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적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과 함께였다. 그가 노벨상 작가로서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이 바로 이번 달에 우리가 톺아볼 『클라라와 태양』(2021, 민음사)이다. 올해 3월에 출판한 따끈한 책이다. 노벨상 수상 작가가 6년 만에 처음 발표하는 신작, 게다가 인공지능 관련 소설이라니. 왜 굳이 하드커버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꺼이 17,000원을 지불하고 빨간색 표지를 펼쳤다. 그러나 30쪽 정도.. 2021. 7. 5.
동굴, 지하도상가로 재현하다 동굴, 지하도상가로 재현하다 글 이용원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는 '동굴'과 만난다. 따가운 햇볕과 눈보라, 맹수 등을 피해 몸을 안락하게 뉠 수 있는 곳이었다. 때로는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려 흔적도 남겼다. 사방이 최대한 막혀 좁고 어두컴컴한 곳은 두려운 대상인 반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외부 시선에서 나를 지켜주는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이런 동굴살이 경험은 인류 DNA를 통해 전해져 우리에게 자기 동굴을 갈망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뒷산을 헤매고 다니다가 동굴이라 하기엔 좀 민망한, 움푹한 곳을 발견하면 비집고 들어가 앉아 있었다. 비 오는 날 마당에 커다란 아버지 우산을 펄쳐 놓은 채 그 아래 들어가 빗소리를 들었다. 어두컴컴한 장롱에 들어가 뭉개다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하고, 풀 .. 2021. 6. 24.
9회 말 만루 홈런처럼 통쾌하고 시원한 책! 9회 말 만루홈런처럼 통쾌하고 시원한 책! - 이승미 작가의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 』 김운하/소설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웃어보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9회 말 역전 홈런을 보는 것처럼 시원하고 통쾌하고, 유쾌하게 섹시하기까지 하다! 새침 떼지 않고, 고상한 척하지 않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고 질주하듯 여성의 몸과 섹스, 사랑과 결혼 생활 등 인간 욕망의 드라마가 빚어내는 빛과 어둠에 대해 돌직구로 “그냥 말해버리는” 용기에 먼저 홀딱 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프랑스 여교수 얼굴에도 육포를 던져 버리고 싶다…. 여성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체향과 문향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작품은 정말로 드물다.” 맞다. 작가는 육포를 던져버리듯, 가식과 위선을 걷어낸 사랑과 섹스.. 2021. 6. 23.
나의 살던 고향은 대전 나의 살던 고향은 대전 글 조성남 사진 대전찰칵 제공 1. 연재를 시작하며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언론인 출신 소설가 故 이병주 작가의 유명한 말이다. 새삼 이 말이 떠오른 것은 SNS가 주류를 이루는 2021년, 역사의 의미도 퇴색돼 가고 더욱이 신화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진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또 모든 가치의 중심에는 자본이 자리하고, 도시는 외적인 성장만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왔던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도 예외가 아니고, 필자를 포함한 도시에 사는 사람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모든 가치의 중심에 자본이 있고, 또 외적인 성장 위주의 도시정책이 가져온 결과가 오늘의 대전이라는 도시의 모습이라면 지나친 표.. 2021. 6. 10.
세 번째 독도 방문 - "이제는 고향에 가는 것처럼 설렌다" 세 번째 독도 방문 "이제는 고향에 가는 것처럼 설렌다" 글·그림 장미선 현재 나는 독도아카데미 독도수호 국제연대 대학생 팀장이다. 독도아카데미는 일본의 독도에 대한 자국 영토 주장에 대응하여 합리적이고 실질적 대안을 마련하고 독도에 관한 올바른 정신과 애국심을 함양시키고자 구성한 시민단체다. 내가 이곳에서 2019년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올해로 3년째 대학생들을 독도로 이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년 독도를 마주한다. 누구는 한 번 다녀오기도 힘든 곳이라 하지만, 나는 이번에 세 번째 입도 시도를 했다. 물론 지금껏 독도에 아무런 문제 없이 순순히 다녀온 것은 아니고, 매년 2~3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다. 독도 입도를 한 번에 성공한 이는 삼대가 덕을 잘 쌓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인지 정말 많.. 2021. 6. 8.
제도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 학교상담의 모순 제도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 학교상담의 모순 글 윤대진 다수의 학자들이 현대사회의 핵심문제로 “물질만능주의에 의한 인간소외”를 지적한다. 물질의 가치가 사람의 가치를 초월하며,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이 사라지고,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사회가 된 것이다. 따뜻함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에게 찾아 온 것은 우울, 불안, 분노, 분열등과 같은 정신질환이다. 사회의 한 부분이며 우리사회의 미래라고 하는 학교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시험지로 학생의 가치를 매기며 지나친 경쟁구도 속에 그들을 몰아넣는다. 곧 무기력한 학생, 폭력이 난무하는 교실, 정규학교를 거부하게 되는 현상 등 소위 중2병이 난무한다. 대개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경우, 우리사회는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래서 도입한.. 2021. 6. 3.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정인경, 여문책, 2020년) 글 로와 과학책이 대세다. 과거 전 국민이 열광하던 재테크 서적 열풍은 '재테크 관련 책을 살 돈을 아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테크의 시작이다'라는 깨달음을 남기고 사그라들었다. 뒤를 이은 힐링 서적 들은 '대안 없는 토닥토닥의 무한 반복을 활자화한 책을 읽으며 도를 닦을 바에야 신경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을 먹는 편이 더 빨리 힐링되는 방법이다'라는 결론을 주었다.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머무르던 자기계발서들조차도 '취직한 사람들의 여가활동 지침서'라는 판단으로 구매가 미뤄지는 시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급변하는 과학 기술 시대에 상식이나 쌓아 두자'가 되기라도 한 걸까? 요즘에 서점 신간 코너에는 과학책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최소한 .. 2021. 5. 14.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글 김운하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이 문장은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자신의 최후이자 최대 걸작품이 될 작품에 스스로 붙였던 제목이다. 그는 죽기 5년 전, 자살을 결행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과 예술을 돌아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작품에 매달렸다. 캔버스를 살 돈조차 없었던 그는, 길이만 해도 4.2 미터가 넘는 이 그림을 캔버스가 아닌 코코넛을 운반하는데 쓰던 삼베자루를 나무틀에 끼워 그렸다. 폴 고갱은 55세 때 1903년, 타히티에서 질병과 영양실조 상태 속에서 미완성 작인 을 그리던 중에 세상을 떠났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보다는 더 편하고 덜 힘든 쪽으로 .. 2021. 4. 26.
마음의 건축 마음의 건축 글·그림 이혜정 마음이 끝나도 나는 살아 있구나 숲길을 걸으면서 그가 결국 벌집을 깨트렸던 것을 떠올렸다 걸어갈수록 숲길은 더 어둡고 가끔 무슨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는 시간이 오래 흘러 내가 죽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때는 아름다운 겨울이고 나는 여전히 친척의 별장에 있다 잔뜩 쌓인 눈이 소리를 모두 흡수해서 아주 고요하다 세상에는 온통 텅 빈 벌집뿐이다 그런 꿈을 꾼 것 같았다 (황인찬, 〈건축〉 부분, 《희지의 세계》, 민음사, 2015)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읽히지 않는 책도 있고 읽어도 모르는 책도 있다. 황인찬의 시는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잘 읽히지만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데, 그 이해되지 않음이 아름다운 여백을 만들어 낸다. 그 여백에는 남은 시간들이.. 2021. 4. 20.
불면의 새벽, 조에 부스케를 읽다 불면의 새벽, 조에 부스케를 읽다 글 김운하 잠깐 잠이 들었다 어지러운 꿈 탓인지 그만 설핏 잠이 깨고 말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온갖 잡념에 시달리며 몸을 뒤척이던 끝에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다. 새벽 다섯 시라니, 아침 잠이 많은 내게 이런 일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결국 서재의 불을 켜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곤 한 개비의 담배와 함께 멍한 상태로 앉아 희부윰하게 동이 터 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또 하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내겐 너무 낯선 이른 시각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또 하루의 일상을 위해 억지로라도 눈을 떠야 할 시각일 터이다. 나는 늘 너댓시간만 자도 충분하여 긴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아침형 인간이란, 내겐 늘 요령부득의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 .. 2021. 4. 19.
‘저들’은 왜 파리를 겨냥했는가? ‘저들’은 왜 파리를 겨냥했는가? 글 임기대 파리가 되든 브뤼셀이 되든 유럽의 대도시를 방문해보면 불과 10 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도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삼엄한 경계를 하는 군과 경찰이 도심을 순찰하는 모습이다. 과거 필자가 유학했던 1990년대에는 거의 보기 힘든 장면이었지만 지금은 도심 곳곳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테러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며 자연스레 이민자 집단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국가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지난 4월호에서도 밝혔듯이 파리 몽마르트(Montmartre)의 거리는 예술가의 거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갈 곳 없는 마그레브 이민자 2-3세대와 동유럽 출신의 집시들이 득실대는 곳이다. 이곳을 올라가다 보면 이.. 2021.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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