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을 받은 휴머니스트 작가가 깊은 고찰 없이 SF를 썼을 때 벌어지는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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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

노벨문학상을 받은 휴머니스트 작가가 깊은 고찰 없이 SF를 썼을 때 벌어지는 비극

by 토마토쥔장 202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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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받은 휴머니스트 작가가 깊은 고찰 없이 SF를 썼을 때 벌어지는 비극

클라라와 태양(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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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노벨문학상은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했다. “소설의 위대한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적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과 함께였다. 그가 노벨상 작가로서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이 바로 이번 달에 우리가 톺아볼 『클라라와 태양』(2021, 민음사)이다. 올해 3월에 출판한 따끈한 책이다. 

  

노벨상 수상 작가가 6년 만에 처음 발표하는 신작, 게다가 인공지능 관련 소설이라니. 왜 굳이 하드커버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두근대는 마음으로 기꺼이 17,000원을 지불하고 빨간색 표지를 펼쳤다. 그러나 30쪽 정도 읽은 후부터는 슬슬 분노 게이지가 상승했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을 때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책값과 종이가 아까워서다. 상이란 게 반드시 작품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음을 이미 알고 있는 나였건만, 이 소설은 나의 소박한 기대조차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SF 소설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나 할까.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장편소설 결말이 이렇게나 신파일 수가!”(2001년도 영화 <A.I.>와 뭐가 달라?)라든지, “세계관이나 사건 전개가 이렇게나 엉성할 수가!”(가까운 미래 사회의 경비 시스템이 쌍팔년도만 못하다고?)라든지, “고작 이런 작품이 전 세계에서 출판되다니!”(노벨상이 좋긴 좋구나!), 뭐 이런 차원에서 놀라운 작품이긴 했다.

  

스포일러가 되기는 미안하니 너무 구체적인 이야기는 빼더라도, 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렇게 실망과 분노를 했는지는 이곳에 좀 적어야겠다. 소유한 자본을 비롯하여 유전자 편집 등 생물공학적으로도 계급이 나뉜 가까운 미래 미국이 배경이다. 주인공 클라라는 인공지능 탑재 로봇 AF(artificial friend)이다. 홀로 가정학습을 받으며 성장하는 ‘향상된 계급’의 외로운 청소년 친구 역할로 제조한 AF다. 클라라 같은 2세대 AF는 태양광으로 작동하기에, 클라라에게는 태양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클라라의 주인 조시가 생명이 오가는 병에 시달렸을 때 클라라가 한 행동은 당최 이해되지 않는다. 초지능이 탑재된 AF라며! 이시구로 작가님, 대체 인공지능이나 초지능에 관해 알아보시고 소설을 쓰신 겁니까? 이 원고를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아니라 SF 작가 지망생이 출판사로 들고 가면, 전 세계 동시 출판은커녕 에디터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데에 제가 만 원 겁니다. 아니, 오만 원!

  

애초에 작가 이시구로에게서 SF스러운 SF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번 작품과 맥락이 같은 전작 『나를 떠나지 마』(2005년)에서도 복제인간이라는 SF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주제 자체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었던 작가다. 사람은 잘 안 바뀐다. 

  

잠시 이시구로의 전작을 기억해보자면, 『나를 떠나지 마』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장기이식을 위해 만든 복제인간들의 인격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 그러니까 이른바 원본(앞으로 이 글에서는 원본인간이라 부르자)에게 신체적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체할 장기를 제공하느라 계획적으로 생산한 복제인간들은 ‘인간적으로’ 학교도 다니고, 그림이나 글을 쓰는 등의 예술 활동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단, 자신의 미래 설계 따위는 복제인간은 꿈도 꿀 수 없다. 직업을 정한다거나, 결혼이나 출산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확실하게 선을 넘는 일이다. ‘영혼’은 있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원본인간들이 복제인간에게서 장기를 적출할 때 양심에 꺼림칙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복제인간들은 탈출하거나, 반란을 일으키거나 혁명을 꿈꾸지 않는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우리에게도 영혼이 있어요.’ 하는 정도의 소심하고 얌전한 주장뿐이다. (아우, 지긋지긋한 그놈의 영혼 타령!)

  

그보다도 더 전작인 『남아 있는 나날』(1989년)은 이시구로를 세계적 작가로 성장시킨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대를 이어 주인에게 헌신한 영국 집사 이야기로서, 1994년에는 안소니 홉킨스가 주연인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인공인 달링턴 홀의 집사 스티븐스는 아버지의 임종도, 본인의 결혼도 포기해가며 주인을 보필하는 데에 말 그대로 인생을 바친다. 심지어 주인 달링턴 경이 독일 나치의 적극 지지자임이 밝혀진 순간까지도 그를 감싸주며 끝까지 지지하는, 평생 집사 스티븐스. 작가 이시구로가 일본인이 아닌 영국 작가로 인식되려고 일부러 지극히 영국적인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게 문단의 평이지만, 내가 볼 때 그는 천생 일본 작가다. 옳고 그름을 가리기 이전에, 주인에 관한 맹목적 헌신과 희생을 고귀하게 여기지 않는가 말이다. 할복, 가미카제 특공대, 뭐 이런 게 연상되는 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내가 볼 때 그는 ‘집사 마니아’같다. 이번 소설 출판 때 이시구로 자신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클라라와 태양』은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떠나지 마』 사이 어딘가에 걸친 작품이다. 우리가 앞서 살펴봤듯, 세 작품의 공통점은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던가! 주인 성격이 아무리 더럽다 해도(『클라라와 태양』), 틀린 판단을 했다 해도(『남아 있는 나날』), 혹은 오직 착취만을 일삼았다 해도(『나를 떠나지 마』), ‘아랫것’ 위치에 있는 주인공을 아무리 심하게 홀대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 간대도,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퍼주고 퍼주다가 먼지처럼 스러져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게 세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나는 주인을 사랑하니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건가? 이런 게 사랑이라고? 이건 그냥 착취다. 내 생각으로는 착취인데, 작가 이시구로 생각으로는 숭고한 희생적 사랑이요, 그가 추구하는 “집사다움”의 미덕인가보다. 

  

『클라라와 태양』은 내 취향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으며, “노벨문학상 작가가 쓴 SF 소설”이라기에는 너무나 함량 미달인, ‘SF적 요소를 차용한 신파 소설’에 불과했다. 내가 비록 이시구로의 작품을 모두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차라리 나는 단편 소설집 『녹턴』(2009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따뜻한 휴머니스트인 작가가 음악을 모티브로 풍부하게 유머를 섞어가며 쓴 작품집이었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가즈오 이시구로는 5세 때 해양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국에 이민, 음악에 빠져 기타와 작곡에 몰입하며 영국 청소년으로 자라면서 100곡 이상 작곡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이력을 가진 작가에게는 디스토피아든 유토피아든 과학기술에 관한 주관과 세계관이 드러나야 하는 SF보다는 따뜻한 휴머니즘 문학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소재나 주제로 드러나면 금상첨화이리라. 아마 그래서 나는 이시구로의 대표작으로 『녹턴』을 떠올리나보다. 

  

어설픈 설정에도 불구하고 『클라라와 태양』이 한 가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기는 했다. “현대인은 과연 신체를 가진 인공지능 등의 비인간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물론 이 질문이 신선하지는 않다. 백 년 전에 출판한 카렐 차페크의 희곡 <R.U.R.>(1920년)에서부터 제기되어 온, 낡은 질문이다. 작품들로 미루어 짐작건대 작가 이시구로는 레알 휴머니스트, 즉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최상위 계층에 주인 격인 인간을 두고 나머지 존재들은 집사처럼 인간을 위해 무한 희생해야 하는 존재들로 여기는 듯싶다. 인격과 지성을 가진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존이 가시화되어가는 21세기, 설마 이시구로식의 “집사 주의”가 최선일까? 무조건 인간은 주인이고, 비인간 존재들은 인격체건 아니건, 혹은 지성(이것의 정의도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이 있건 없건 간에, 무한 희생과 복종을 강요하는 게 옳을까?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복종을 강요할 권력이 주인에게는 있는데 그게 인간이라고, 이시구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인간의 근거 없는 오만함이여! 

  

이번 글에 만연한 내 분노의 원인은 이 책에 투자한 내 시간과 책값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문학계의 최고 영예인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이렇게까지 현시대의 과학기술과 윤리의식에 무지하고 무책임해도 되는가에 관한 것이다.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신작 SF 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읽을 시간이 있는 독자에게라면,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100년 묵은 SF 작품 『R.U.R.』이나 『압솔루트노 공장』『도롱뇽과의 전쟁』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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