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지하도상가로 재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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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

동굴, 지하도상가로 재현하다

by 토마토쥔장 2021.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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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지하도상가로 재현하다

이용원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는 '동굴'과 만난다. 따가운 햇볕과 눈보라, 맹수 등을 피해 몸을 안락하게 뉠 수 있는 곳이었다. 때로는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려 흔적도 남겼다. 사방이 최대한 막혀 좁고 어두컴컴한 곳은 두려운 대상인 반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외부 시선에서 나를 지켜주는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이런 동굴살이 경험은 인류 DNA를 통해 전해져 우리에게 자기 동굴을 갈망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뒷산을 헤매고 다니다가 동굴이라 하기엔 좀 민망한, 움푹한 곳을 발견하면 비집고 들어가 앉아 있었다. 비 오는 날 마당에 커다란 아버지 우산을 펄쳐 놓은 채 그 아래 들어가 빗소리를 들었다. 어두컴컴한 장롱에 들어가 뭉개다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하고, 풀 먹여 잘 개어 둔 손님용 이불을 흐트러뜨려 혼나기도 했다. 가을걷이가 끝난 후, 논 한쪽에 쌓은 볏짚 더미에 굴을 파 놓고 들어가 앉았다. 밤에 그곳에 거지가 들어가 불을 피웠다가 볏단과 함께 홀라당 타버렸다는 괴담도 돌았다.

이중 몇몇 행위는 마을에 살던 친구들과 함께 한 일이니,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은 아니다. 이 모든 게 먼 과거 인류의 동굴살이 경험 탓이라고 생각한다.

동굴은 그 종류에 따라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여하튼 지하다. 지하 세계는 다양한 공상과 음모론을 낳았다. 일상적으로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공간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눈에 보이지 않는 땅속이 흥미로운 공간임에는 틀림없다.

서빙고 동빙고처럼 겨우내 채취한 얼음을 한여름까지 보관하기 위해서나, 시골에서 김장 김치를 땅에 묻는 등 그동안 땅속 공간을 활용한 사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지하 공간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도시가 급격히 팽창하면서다.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이런저런 효율성을 고려하면서 인류는 땅 위 뿐만 아니라 땅 밑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높은 빌딩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시설을 지하에 배치하거나, 보행자의 안전한 통행 편의를 높이려 지하보도를 만들거나, 정시성을 강화한 지하철을 만들어 땅속 대중교통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하상가는 이런 영역에 상업 기능을 추가한 독특한 공간이다. 지하상가는 앞서 말한 지하 공간 기능에 연계하거나 때로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지하상가는 1967년 12월 20일 문을 연 서울시청 앞 을지로 1가 ‘새서울 지하상가’였다. 조선일보가 2010년 1월 보도한 ‘[대한민국 제1호] 지하상가’라는 기사를 참고했다. 변명을 하자면, 지하상가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았다. 여하튼, 이 기사를 참고하면 우리나라에서 건설한 지하상가는 아픈 시대상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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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 사회는 반공이데올로기가 강하게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남북 대치 상황이었다. 남침이든 북침이든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첨예한 대립이었다. 당시, 서울시장은 군 장교 출신인 구자춘 시장이었다. 구 시장은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시민이 대피할 수 있는 벙커를 구상했고 마침 ㈜대현실업 창업주인 손현수 씨가 ‘국토 이용 효율화, 교통난 해소, 민방위 대피시설로 활용에 기여하겠다.’라는 취지로 지하상가 개발을 제안하며 설득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마케팅 소구지점을 정확하게 파고든 것이다.

지하 공간을 상업적으로 개발한 사업은 공공이 앞서 기획하고 추진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먼저 제안하고 시작한 셈이다. ㈜대현실업은 지하상가를 개발하고 20년간 무상으로 사용하다가 지자체에 기부채납했다. 

이런 개발 방식은 대전 신, 구 지하도상가 건설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했다. 어쩌면 최초로 지하도상가를 개발한 민간기업이 제시한 방식이 향후 50년 가까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최초 지하상가를 개발한 ㈜대현실업과 계열사는 지금도 존재한다.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청주 창원 대구 등 많은 도시에서 지하상가를 개발해 운영하거나 관리를 위탁 받았다. 홈페이지 등을 참고하면 부동산 개발과 호텔, 주차장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했지만, 지하 공간을 대상으로 한 주력 사업은 변하지 않았다. 2009년 지하도상가 사업 부문을 별도로 분리해 ㈜대현프리몰이 출범했다. “인간중심의 지하 공간 창조”라는 홈페이지 문구가 인상적이다. 한 기업의 홍보 문구가 대전에서 지하 공간은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대현프리몰을 홍보하는 듯하지만, 결코 그런 의도는 없다. 이번에 대전 지하상가를 취재하기 전까지는 들어본 적도 없는 기업이다. 다만, 일찌감치 우리나라에서 지하 공간을 처음 개발하고 전국 많은 자치단체에서 사업을 펼치는 기업이 대전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고(혹은 못 하고) 있는 상황이 흥미로워서다. 여하튼, 대한민국이 지하도상가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것은 이제 50년 정도다.

인류는 수만 년 전부터 이용한 지하 공간을 현대에 ‘지하도상가’라는 형태로 재현해냈다. 이제 또 한 번의 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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