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만루홈런처럼 통쾌하고 시원한 책!
- 이승미 작가의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 』
김운하/소설가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웃어보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9회 말 역전 홈런을 보는 것처럼 시원하고 통쾌하고, 유쾌하게 섹시하기까지 하다!
새침 떼지 않고, 고상한 척하지 않고,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고 질주하듯 여성의 몸과 섹스, 사랑과 결혼 생활 등 인간 욕망의 드라마가 빚어내는 빛과 어둠에 대해 돌직구로 “그냥 말해버리는” 용기에 먼저 홀딱 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프랑스 여교수 얼굴에도 육포를 던져 버리고 싶다…. 여성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체향과 문향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작품은 정말로 드물다.”
맞다. 작가는 육포를 던져버리듯, 가식과 위선을 걷어낸 사랑과 섹스, 결혼, 인생과 행복에 대한 진짜 진실을 보여주려 한다. 책의 첫 번째 꼭지 제목부터 남다르다. <페미니스트지만 섹스는 하고싶어>라니! “지퍼 터지는 섹스(zippless sex)” - 이게 무얼 뜻하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나온다 –를 논하고 “나는 심지어 책이나 논문을 읽더라도 팬티만큼은 섹시하게 입어야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이야기, 벌써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생의 정글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해온 과학자 직장맘의 분투기
작가는 현직 과학자이기도 하다. 열 살 때부터 이미 독서일기라는 걸 줄곧 써왔던 문학소녀였는데 중학교 때 읽은 칼 세이건의 그 유명한『코스모스』라는 책이 꿈을 바꾸어놓고 말았다. 작가는 그 책을 열 번 넘게 읽었다고 한다! 역시 책은 위험한 물건이다. 그런데 그녀는 또 책에 낚였다. 이번엔 그녀가 생존을 위한 정글에서 고군분투하며 과학자로, 직장맘으로, 일과 육아를 고되게 병행하다 지치고 공허해진 끝에 발견한 책, 바로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라는 소설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멀어져 있었던 결국 문학과 글쓰기로 운명처럼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이 멋진 한 권의 에세이는 그녀의 문학 데뷔작이자, 그동안 마음속에 꾹꾹 눌러두었던 아픔과 분노, 깨달음, 아름다움과 행복 등 삶의 전반을 문학작품의 목소리를 빌리고, 거기에 자신의 독특한 문체와 사고, 감정을 혼합 시켜 만든 ‘고백록’이기도 하다.
과학자의 글이라 딱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는 달리, 객관적이고 냉철하면서도 시종 유머와 감칠맛 나는 흥미로운 표현의 유려함 덕에, 그 반전매력에 더 놀라게 된다. 작가는 솔직하게 고백한다. “양자역학 방정식을 풀어 물질 재료 특성을 해석하고 예측도 할 줄 알았지만…, 정작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원자의 결합방식이나 전자가 회전하는 방향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과 그들의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인간은 자연법칙에 따라 예측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심지어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지도 않았다.”
체향과 문향이 매력적인 웃슬픈 우리 인생 이야기
이 책은 여러 가지 매력 포인트와 훔치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아 즐겁지만, 정말로 놀라운 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문학작품을 단 한 작품도 읽지 않은 독자라 해도, 각 장이 모두 독립된 단편소설처럼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힌다는 점이다. 더욱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들 모두 ‘내 인생의 책’이 될 수 있는 수준의 재미와 깊이를 갖춘 작품들이다. 작가의 맛깔난 솜씨 덕에 나도 다시 꺼내 읽고 싶어지는 책들.
그런데도 다음번엔 작가 자신의 이야기만을 담은 에세이를 내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게 했다(정말 그랬으면 하는 기대가 잔뜩 든다!) 그러면 또 어떤 개성 넘치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게 될지가 자못 궁금해지는 탓이다.
이 책의 마법 같은 가독성은 역시 대담한 솔직 화법과 쇼펜하우어를 연상케 하는 신랄한 유머 감각 때문일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지금 여자로 태어나 마흔 넘어 인생 이야기를 쓴다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문장에서 그야말로 “체향과 문향”을 느끼게 한다. “그나저나 왜 남자는 여자가 근육남을 좋아하리라 생각할까? 빨래판 복근이나 역삼각형 상체가 페니스의 능력을 보장해주는 것도 아닌데.” 이런 문장을 읽으면 나 같은 남자들이라면 푸핫 하고 웃으면서도 속으론 뜨끔할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가차 없다.
“결혼이야말로 ‘사랑과 섹스 최악의 조합’이리라. 사랑하는 상대와 환상적인 섹스를 지속하고 싶은 소망이 결혼으로 표출되지만, 그건 19세기 소설 속에나 있는 허구일 뿐이고, 현실에서 막상 결혼이란 걸 하고 나면 둘 다 없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지 않나.”
많은 결혼한 남자들은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영혼과 뼈를 갈아 넣는다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한다. 그럼,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육아까지 책임져야 하는 직장맘의 삶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그녀의 문장은 아프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스턴트 볶음밥 따위가 어떻게 애들 아침밥이냐고 호통하는 배우자의 비난 속에 꾸역꾸역 출근하는 아침에, 온종일 출장 다녀온 후에 ‘가정’이라는 이름의 제2의 무급 직장에 출근해서 더러운 그릇으로 가득한 식탁을 치우는 밤 열한 시에, 나는 이 ‘사랑이 넘치는 불평등한 가정’에서 서서히 닳아 없어지는 연료가 바로 나임을 새삼 깨닫는다.”
낭만적이고 순수한 사랑, 그 결실인 결혼이란 게 결국 “사랑과 섹스 최악의 조합”이고 “못이 숨겨진 푹신한 침대”같은 거라면, ‘일과 사랑’이 거의 전부인 생에서 무얼 기대하고 추구하며 살아야만 할까? 그런 생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지 않을까? 작가는 그럼, 무엇을 위해, 무엇으로 이 고역 같은 생을 버티며 살아가는 걸까?
아, 물론 그녀가 사랑과 섹스를 포기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노년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는 오히려 여성 독자들에겐 무척 반가운 전언이 될 듯하다. 작가는 “성욕과 생식력은 무관하다”고 외치며 에리카 종의 문장을 통쾌하다며 인용한다.
“우리는 포기를 모르는 세대다. 오르가슴은 우리의 권리장전에 들어있다.”
그렇다. 인생 백세시대, 인생은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랑도, 섹스도, 자아 찾기도, 글의 초고를 고쳐 쓰듯, 인생의 초고도, 교정본도, 완성본이 나올 때까지 계속 수정하며 더 나은 원고를 만들 수 있다. 그러자고 우리는 이런 책을 읽는다.
아무것도 당연한 게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내 인생을 만들어갈까?
“나는 깨달았다.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의무, 역할, 사랑, 가족, 여성, 남성처럼 한 단어로 명료하게 정의되어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진정 나 자신을 위한 걸까? 계속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져야만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을 수 있음을 나는 새삼 느꼈다. 설령 안내된 포장도로 대신에 맨발로 자갈길을 밟게 된다 해도, 그것은 내가 찾은 나의 길일 터였다.”
작가가 경험과 오랜 독서와 성찰로 결국 깨달은 건 바로 세상의 규칙과 내가 원하는, 추구해야 할 규칙 사이에 놓인 깊은 간극이다.
물론 세상과 삶의 규칙에 관해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하더라도 막상 행동으로, “맨발로 자갈길을 밟게” 되는 길을 새롭게 선택하는 건 쉽지 않다. 용기 부족 혹은 우리를 옥죄는‘생존’을 빌미로.
그래서 무엇보다 ‘열정’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맨발로 자갈길을 밟게 된다 해도”포기하지 않는 ‘용기’가 절실하게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결론적으로 찾아낸 깨달음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인간은 심장과 맞닿아 있는 그 무엇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에서‘인생’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작가는 책 속에 나오는 <나이트우드>라는 소설의 대사를 빌어 말한다.
“삶이란 손수 발명할 때 비로소 제 고유의 삶이 되기 마련이죠.”
자기 스스로 자기 삶의 게임의 규칙을 창조하는 멋진 생. 그래서 작가는 과학자에 그치지 않고 글을 쓰는 작가로, 글쓰기를 통해 새로운 삶의 게임을 시작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말대로, 거기서 약간의 행복이 따른다면 그건 단지 덤일 뿐이고. 그래, 이제 진짜 생의 게임이 시작되고 있지만, 열정이 있다면 무엇이 문제이랴.
[월간토마토 vol.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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