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독도 방문 - "이제는 고향에 가는 것처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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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

세 번째 독도 방문 - "이제는 고향에 가는 것처럼 설렌다"

by 토마토쥔장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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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독도 방문

"이제는 고향에 가는 것처럼 설렌다"

 

글·그림 장미선

현재 나는 독도아카데미 독도수호 국제연대 대학생 팀장이다. 독도아카데미는 일본의 독도에 대한 자국 영토 주장에 대응하여 합리적이고 실질적 대안을 마련하고 독도에 관한 올바른 정신과 애국심을 함양시키고자 구성한 시민단체다. 내가 이곳에서 2019년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올해로 3년째 대학생들을 독도로 이끌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매년 독도를 마주한다. 누구는 한 번 다녀오기도 힘든 곳이라 하지만, 나는 이번에 세 번째 입도 시도를 했다. 물론 지금껏 독도에 아무런 문제 없이 순순히 다녀온 것은 아니고, 매년 2~3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다. 독도 입도를 한 번에 성공한 이는 삼대가 덕을 잘 쌓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인지 정말 많은 실패를 겪었다. 울진 후포항까지 가서 배가 안 떠 되돌아 적도 있고, 울릉도 입도는 성공했지만, 독도까지 못 간 경우도 많았으며, 심지어는 울릉도에 갇혀 육지에 못 나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한 번의 실패 후 독도 입도에 성공했다. 지금부터 가장 순조로웠던 세 번째 독도 방문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독도로 가는 첫 발걸음, 후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울릉도로 가기 위해 5월 8일 새벽 6시, 경북 울진 후포항에 도착했다. 아침 식사 시간인 7시 전까지 잠시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막 해가 뜨기 시작한 바다는 몹시 아름다웠다. 옅게 깔린 안개는 후포바다를 더욱 신비하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니 바다 냄새와 함께 신선한 아침 공기가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 덕에 나는 세 번째 독도에 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었고, 앞으로 이어질 탐방에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다.

 

아침 식사 후 늘 그랬듯 멀미약을 챙겨 먹고, 울릉도로 가는 Sea Flower 호에 승선했다. 후포항에서 울릉도까지는 배로 2시간 30분이 걸린다. 출발하기 전부터 파도 때문에 선체가 흔들렸으며, 일찍이 멀미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구토는 화장실이 아닌 앉은 자리에서 구토 봉투에 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구역질 소리가 난무한다. 그래서 귀마개나 이어폰은 필수 준비물이 됐다. 그렇게 2시간 반을 달려 울릉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울릉도에 내리면 바로 탐방 전용 버스에 탑승한다. 울릉도 바다를 끼고 달리는 버스는 제법 덜컹거린다. 비포장길이 많기 때문이다. 처음 온 학생들은 차가 흔들려도 울릉도의 아름다운 경치를 찍느라 정신이 없다.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간간이 보이는 높은 절벽 바위, 에메랄드빛 영롱한 바다는 절대 잊지 못할 풍경이다.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해 선녀들이 내려와 바위 뒤에서 목욕했다는 전설을 가진 선녀바위가 나타나자 그 너머로 펼쳐진 아름다운 물빛에 다들 넋을 놓기도 했다. “이런 맑은 바다는 외국에나 있는 줄 알았다”는 사람들의 찬탄이 들려왔다.

 

 

독도를 지켜온 고결한 영혼들

독도의용수비대·안용복 기념관은 울릉도의 높은 산꼭대기에 있다. 버스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이리저리 부딪힐 정도로 오르는 길이 가파르고 구불거린다. 그러나 산 위에서 보이는 울릉도의 장관에 학생들은 이내 다시 감탄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정상에 있는 기념관에 도착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대형 독도 모형이다. 푸른 바다 한복판에 당당하게 솟은 독도의 위용에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안내원에게서 독도를 지킨 조선 백성 안용복의 희생과 독도의용수비대의 활약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안용복은 조선 숙종 대에 일본의 침입으로부터 우리의 영토인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낸 어부이자 민간 외교가다. 그는 1693년에 울릉도에서 고기잡이하던 중 불법 조업 중인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힐책하다가 오히려 일본으로 잡혀갔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서 울릉도가 조선의 땅임을 강력히 주장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아냈다. 독도를 최초로 수비한 독도의용수비대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독도의용수비대는 1953년부터 1956년에 이르는 약 3년 8개월 동안 일본의 무단 침입에 맞서 독도를 지킨 순수 민간 조직이다. 1953년 4월 한국전쟁에 특무상사로 참전한 경력이 있던 홍순칠이 주도해 울릉도에 살고 있던 청년들을 중심으로 독도의용수비대가 결성됐다. 이들은 독도에 몰래 들어온 일본인이 설치한 ‘다케시마(竹島)’ 푯말을 제거하고, 불법 조업을 위해 건너온 일본인 어부들을 도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또한 1953년 8월 수비대는 독도에 접근한 일본 순시선을 물리쳤으며, 11월에는 일본 순시함 세 척 및 비행기 한 대와 격렬한 총격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는 등, 독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한 전투도 마다하지 않았다.

 

숭고한 희생으로 지킨 독도, 그 압도적 고고함

다음 날 아침 독도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버스에 탑승했다. 모두 처음과 달리 흥겨움을 잠시 접어둔 채 독도를 방문한다는 경건한 마음으로 임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독도행 여객선이 보였다.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배는 오전 9시, 하루에 한 편밖에 없다. 독도로 가는 데에는 약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 파도는 전날 후포항에서 울릉도로 갈 때보다 잔잔해 문제없이 독도 앞 해상에 접근할 수 있었다.

 

 

배가 독도 선착장 접안에 성공했고, 세 번째 독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매년 방문해도 처음 방문했던 그날처럼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올해 본 독도는 날씨가 좋아서인지, 그 어떤 때보다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는 갈매기 떼가 선회하며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이 울었고, 파도들이 간간이 보행을 위한 바닥구조물을 넘어와 발을 적셨다.

 

 

독도경비대를 만나다

독도에는 독도를 24시간 지키는 독도경비대가 있다. 지난 독도 입도 당시에는 사진 찍기에 바빴다면 이번 방문 때는 꼭 독도경비대와 인터뷰를 해보고자 나름의 계획을 세워갔다. 독도경비대원 중 한 분에게 간단한 인터뷰 요청을 드리니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힘든 점이 있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우리 경비대는 식수를 바다에서 끌어와 사용하고 있는데, 기상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물을 마실 수 없다. 식수 문제가 아무래도 가장 힘들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힘든 상황임에도 국민에게 “독도를 수호하는 자리에서 우리를 응원하는 이들에게 감사드리며, 그 보답으로 독도를 잘 지키겠다”라고 말하며 결의를 다졌다.

 

 

비록 독도에 발을 디딘 시간은 30여 분 남짓이었지만 그 순간에 느꼈던 감정과 그곳의 풍경은 잊히지 않는다. 주위에서 ‘독도는 한 번쯤 가봐야 한다’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것이다. 그 정도의 가치를 품은 곳이란 것을 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또한 독도경비대와의 만남, 그들의 결의를 직접 두 눈으로 접하니, 국민으로서, 학생으로서 독도 수호에 동참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도는 독도경비대가 지키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지켜내야 할 우리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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