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정인경, 여문책, 2020년)
글 로와
과학책이 대세다. 과거 전 국민이 열광하던 재테크 서적 열풍은 '재테크 관련 책을 살 돈을 아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테크의 시작이다'라는 깨달음을 남기고 사그라들었다. 뒤를 이은 힐링 서적 들은 '대안 없는 토닥토닥의 무한 반복을 활자화한 책을 읽으며 도를 닦을 바에야 신경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을 먹는 편이 더 빨리 힐링되는 방법이다'라는 결론을 주었다. 꾸준히 베스트셀러에 머무르던 자기계발서들조차도 '취직한 사람들의 여가활동 지침서'라는 판단으로 구매가 미뤄지는 시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급변하는 과학 기술 시대에 상식이나 쌓아 두자'가 되기라도 한 걸까? 요즘에 서점 신간 코너에는 과학책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최소한 소설책보다는 훨씬 더 많아 보인다.
선택지가 너무 많다 보면 오히려 결정을 내리기 힘든 법이다. 과학책이 한 달에도 수십 권이나 쏟아져 나오는 통에 독자로서는 대체 뭘 읽어야 할지 판단 하기가 더 어려워 지고 말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과학책의 대표이자 거의 모든 것이던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학 정보는 온라인 뿐 아니라 신문지면과 매스미디어에도 넘쳐난다. 밥도 안 먹고 오직 읽기만 한다 해도 절대 못다 읽고 죽게될 이 무시무시한 과학 정보의 홍수 속에서 대체 나의 소중한 시간을 들여도 아깝지 않을 과학책은 대체 무엇인가. 누가 좀 알려줬으면 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이번 달에는 과학사 서적을 한 권 추천하려 한다. 나처럼 성미 급한 독자분을 위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인경 작가의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이다.
하고 많은 과학사 서적 중에 왜 하필? 이라 물으신다면, 나는 최근 과학 서적 중에서 이 책 만큼 넓고 깊게 통찰한 책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대 장점은 쉽게 읽힌다는 점 이다. 조금만 더 과장 하자면,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문장이다. 게다가 번역서가 아니라 한국 작가가 모국어로 쓴 책이다. 많은 과학 서적이 과학자들의 전공 용어 남발 때문에 제대로 읽히질 못하는 게 현실이다.
《월간토마토》를 꼼꼼히 읽어 오신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내가 책 리뷰로 과학사 서적을 선정하기는 처음이다. 직업이 과학자이다 보니 짬내서 읽는 책은 주로 문학이나 철학서적이었기 때문이다. 뭐든 직업이 되면 다른 이의 결과물을 즐긴다기보다는 분석가가 되어버리고만다. 요리사가 재미로 맛집투어를 하겠는가? 시작은 재미였을지라도 분석과 비평으로 빠질 게 뻔하지 않은가? 내게는 과학 서적이 그렇다. 나는 SF 영화도 재미있게 관람하질 못한다. '산소가 없는 상황에서 저렇게 불이 확 타오르지 못할 텐데'라든지, '중력을 갑자기 느끼는데 벌떡 일어서서 잘 도걷네'라든지, 하는식으로 맞지 않는 설정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서다. 이런 까다로운 독자인 나도 이 책만큼은 푹 빠져들어가며 읽었다. 쉽게 읽히면서도 내용과 구성이 탄탄하다. 이런 책을 만나다니 가슴이 뛴다. 완전 득템한 기분이랄까.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첫 문장은 '과학은 인간이 만든 언어다'이다. 힘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아마도 많은 고민 후에 선택한 첫 문장이리라. 이 책의 부제는 첫 문장과 결이 같은, '과학과 문화로 이해하는 과학 인문학'이다. 책을 읽던 중에도, 모두 읽은 지금에도, 이 표현은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고 느껴진다. 오히려 읽으면서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든다. 과학사를 따분하지 않은 새로운 시각에서 빠르게 훑어 읽게되기 때문이리라. 구석기 시대부터 고대 문명, 중세를 거쳐, 과학 혁명의 근대와 현대 과학 기술까지를 다루는데도 절대 지루하지가 않다. 게다가 그 오랜 기간을 372쪽 안에서 아무런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으니, 작가의 역량이 놀라울 뿐이다.
과학이란 대체 무엇인가? 딱딱하기 그지 없는 학문의 일종, 소위 전문가들만의 영역 일까?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탄생 시키면서까지 중요하게 여겨지는 서양의 과학 혁명이 어째서 동양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나? 유럽의 과학이 승승장구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우리에게 현대 과학이란 무엇 일까? 이러한 다소 무거운 질문들에 관해 답을 주는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최초의 근대 과학자는 누구였을까? 과학혁명이라는 단어는 언제 생겨났을까? 등, 회식 자리에서 아는 척 하기에 좋을 법한 질문과 답변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조선의 과학자가 있다. 동양의 코페르니쿠스라 불리는 18세기 조선의 과학자 홍대용이다. 그는 『 의산문답 』이라는 책에서 세상에 중심이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든 중심이될 수 있다고 썼다. 사람과 천지만물이 모두 귀한 존재라는 인물균(人物均)사상을 펼쳤다하니, 우리 역사 최초의 포스트휴머니즘이 아닌가? 이런 멋진 철학자를 왜 나는 기억하지 못한 걸까? 나에게는 역사 교과서에서 딱 한 번 언급되었던 학자를 재발견 한 셈이다.
한편 정인경 작가는 전작 『뉴턴의 무정한 세계』(정인경, 돌베개, 2014년)에서도 '우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과학사'를 들려준 적이 있다. 나는 이 책도 마음에 들었다. 작가의 전공이 현대 과학사라서 깊이가 남다르기도 하려니와, 근대 한국의 시선으로 바라본 과학사 책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완성품처럼 인식되어 온 근대 과학이 우리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바라보고, 현재 내가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과학 기술자로 살고 있는지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꼭지 마다 『무정』이나 이상의 시등 한국 근대 문학을 도입부에 넣고, 당시의 시대 상황과 과학의 의미까지를 융합하여 써내려간 글은 더없이 신선했다.
역사에 조예가 깊지 못한 평범한 시민인 내게 한국의 근대는 그저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암울한 흑역사일 뿐이다. 최근에는 영화 속에서나 낭만적으로 비칠 뿐이지, 우리의 근대가 침울했던 이유가 바로 서양의 과학 때문이었음을 새삼 알게 되었다. 대포와 함장으로 표현된 근대 과학은 소위 비문명국들을 굴복시키고 착취하는 데 일등 공신이었음을 말이다. 과학 혁명으로 새로이 패권을 잡게 된 유럽을 두려운 시선 으로 바라보며 얼른 따라 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세상의 변화와 과학이라는 무기를 감지하지 못했고 그것은 아시아의 오랜 패권 국가 중 국도 마찬가지였다. 역사로 나타난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근대 과학은 고대 자연 철학과 달리 학자들만의 학문이 아니었다.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 뒤표지에 문장처럼, "과학은 모든 이의 것이고 모든 곳에 있었다." 과학은 도서관 속 박제된 학문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인 문화 활동임을 조명한다. 오늘날은 흰 가운 입은 과학자만이 실험실 안에 틀어박혀서 과학을 하는 시대가 아니다. 과학은 기술과 융합되었고, 그 창조물은 이미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자동차, 전기, 인터넷, 핸드폰, 와이파이 등 과학 기술의 결과물은 수없이 많다. 간단한 예로, 평범한 현대인이 전기와 인터넷 없이 하루라도 문명 생활을 유지 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과학 기술은 생활 필수 조건이 된 지 오래다. 입는 것도 먹는 것도 화학적 가공품이 많아진 오늘날, 과학을 아는 것은 현대인의 생존 상식이다.
개인의 생존뿐이랴. 우리는 이제 개인의 생존뿐 아니라 지구의 생존까지도 걱정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고 모든 것을 지배 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던 근대 과학은 마냥 무궁무진할 줄로만 여겼던 토양과 공기를 오염시켰고, 지구의 온도조차 올려 버렸다. 환경과 인류는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현대 과학이 나아가는 방향에 따라 인류뿐 아니라 지구의 존속 가능성도 달라지리라. 알아야만 행동하고, 행동해야만 살아남는다. 그러니 우리 과학책을 읽자. 우선 『모든 이의 과학사 강의』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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