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글 김운하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
이 문장은 프랑스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자신의 최후이자 최대 걸작품이 될 작품에 스스로 붙였던 제목이다. 그는 죽기 5년 전, 자살을 결행하기에 앞서 자신의 생과 예술을 돌아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작품에 매달렸다. 캔버스를 살 돈조차 없었던 그는, 길이만 해도 4.2 미터가 넘는 이 그림을 캔버스가 아닌 코코넛을 운반하는데 쓰던 삼베자루를 나무틀에 끼워 그렸다. 폴 고갱은 55세 때 1903년, 타히티에서 질병과 영양실조 상태 속에서 미완성 작인 <눈 덮인 브루타뉴의 풍경>을 그리던 중에 세상을 떠났다.
일상의 무게에 짓눌리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보다는 더 편하고 덜 힘든 쪽으로 자꾸만 시선이 가면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폴 고갱, 그를 떠올리곤 한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남긴 화가로서의 폴 고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가 부닥쳤던 고난들, 그의 용기들, 그가 걸어갔던 삶의 궤적들.
나는 무엇보다 그의 <용기>에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살아가는 가운데 누구나 결정적인 용기를 필요로 하는 때가 있다. 자신의 삶을 바꾸어 놓을 중대한 운명의 분기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 운명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적 성찰과 비전 속에서 선택하는 운명, 내부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활화산의 폭발같은 운명이다.
자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화산을 발견하는 몫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을 폭발시키는 힘도, 바로 자기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폴 고갱은 그런 식으로 자기 운명을 선택했고, 스스로 운명을 결정지었다.
"내 운명을 세상에 맞추지 말라.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웠던 것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족쇄였을 뿐이다."
나는 폴 고갱의 이 한마디에 언제나 깊은 감동을 받곤 한다. 그는 처자식을 거느린, 그리고 성공한 주식 중개인이었다. 처음엔 그저 예술 애호가로서 시작했던 그림이었지만, 그림을 그려 가면서 마침내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 잠재하고 있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자기의 운명이라고 굳게 확신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확신이 서고 그 확신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그는 그때까지 자신이 쌓아왔던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내, 아이들,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새생활까지. 그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소망이기도 한 소박하고 평범한 행복을 포기했다. 조금 무미건조하긴 하지만 큰 사고도 위험도, 굴곡도 없이 조용한 강물처럼 흘러가는 범속한 삶의 행복이란 것.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무난하게 대학 잘 나와서 무난한 직업에 무난한 결혼을 하고, 이후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지고 자가용 배기량을 늘려가고, 자식들 좋은 대학 보내는데 한평생을 보내는, 그렇고 그런 무난한(?) 삶. 어쩌면 주식 중개인, 현대적 트렌드로 표현하면 잘 나가는 펀드 매니저였던 폴 고갱도 그림을 그리기 이전엔 그런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결국 포기했다.
삶의 가치와 의미에 관한 한, 무엇이 옳고 그런지를 판단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고갱은 그런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삶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 아니 무엇보다 자신이 가야만 할 길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신했다.
물론 고갱의 그런 결단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예감한 자에게는 그런 용기가 있다.
그리고 마흔셋이 나이, 화가로서 7년여의 세월을 힘들게 보낸 그는 또 한 번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혐오스런 도시 문명, 가난과 고독, 이 모든 것으로부터 그는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탈출을 꿈꾼다. 우리에 갇힌 북극곰처럼 한 덩어리 얼음조각을 갖고 더운 여름을 버텨야 하는 그런 고단한 삶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아마겟돈의 예고편 같은 문명의 충돌이 벌어지고, 마네킹 같은 여인들이 밤거리를 배회하는 소돔의 도시에서 나의 타히티를 꿈꾼다."
그때 그의 나이 43세, 위험하고 무모할지도 모를 모험을 감행하기엔 너무 많다고 할 수도 있을 그런 나이다. 그런 나이에 친숙한 한 세계를 등지고 낯선 야생의 세계로 떠나는 일은 결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예전에도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결단을 내린 적이 있었다.
삶은 무(無)의 바다 위에 떠다니는 낙엽 같은 것.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것.
벌거벗고 와서 벌거벗고 가는 것.
그는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썼다.
그렇게 해서 그는 파리를 떠나 미지의 섬, 타히티로 떠났다.
고고한 달을 꿈꾸었지만, 고작 6펜스짜리밖에 안 되는 고단하고, 거칠고, 방황하는 삶을 살았던 고갱. 낯선 타향의 땅에서 병과 가난, 고독의 극한 상황에서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인생을 끝장낼 결심을 했다. 죽기 5년 전,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심각한 제목을 단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그림은 그의 최대 걸작이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폴고갱이야말로 진정한 로맨티스트였다고. 로맨틱한 삶이란, 달콤한 핑크빛이 아니라,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어둡고 컴컴한 숲 속을 걸어들어가는 검푸른 빛의 삶이다. 우리는 로맨틱을 오해하고 있다. 로맨틱한 삶은, 혹독한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그저 멀리서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전에, 자기가 오를 산이 어떤 산인지 발견할 수 있는 안목과 통찰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기 인생의 앞길에 놓인 산을 발견하기. 신중하고, 깊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시선. 그러나 실은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그 단계에서 보다 더 큰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용기>라는 덕목이다. 자기가 발견한 높고 험한 산을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오를 용기. 그 용기를 더욱 빛나게 해 주고 결실로 이끌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불굴의 집념이다. 되돌아 보지 않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끝까지 걸어갈 집념과 끈기. 설사 실패할 수도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더 두려워할 뚝심 같은 것. 자기가 선택한 운명에 자기 존재와 생명 전부를 가볍게 던져 넣고서도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 그런 용기를 가진 이들만이 삶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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