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고픈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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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

먼 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고픈 그대에게

by 토마토쥔장 2021.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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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뮤제로의 짧은 산책

먼 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가고픈 그대에게

글 사진 전한별

 

 

프랑스에는 아주 애매한 직업이 있다. Médiateur culturel, 직역하면 문화 연결사다. 가이드도 아니고 안전 스태프도 아닌, 가이드 및 각종 문화체험을 진행하고 다양한 문화행사에 관여해 관람객에게 정보전달과 감정적 소통의 길을 터 주는 멀티태스킹 직업이라 하겠다. 현재 프랑스 문화시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직책이나 대다수가 지자체의 알바생 신분으로 아주 불안한 고용상태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바로 프랑스 북부 릴 메트로폴리스의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일하는 알바생, 문화 연결사이다.

가장 최근까지 일하는 곳은 작은 시립 향토박물관이다. 이런 시설은 학교에서 단체로 오는 학생들로 항상 붐비는데, 어린 나이대의 관람객을 맞이하면 서론이 더 필요하다.

“여러분, 이전에도 뮤제musées에 가 본 적 있어요?”

“네”

“그곳에서 무얼 봤어요?”

“공룡 뼈요!” 그러면, 그곳은 자연사 박물관 un musée d'Histoire naturelle 일 것이다.

“그림이랑 조각상이요!” 아마도 미술관 un musée des Beaux-arts 일 것이고.

“막 총이랑 헬멧이랑 땅굴 같은 게 있었어요.” 아, 전쟁기념관 같은 역사박물관 un musée de l'Histoire에 갔다 왔나보다.

뮤제 musée는 프랑스어로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많은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 높은 물건을 한데 모아 분류하고 연구한 후 보존해 그 물건을 모두가 볼 수 있게 하는 공간이다. 이를테면 미술관은 박물관, 뮤제의 하위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박물관과 미술관이란 개념이 동등한 개체처럼 분리해 사용한다. 매번 박물관/미술관이라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좀 더 포괄적인 뮤제 musée라는 외래어를 쓰고자 한다.

오스피스 꽁떼스 박물관, 릴 토속 역사 박물관, 릴

프랑스에는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프랑스의 박물관 musées de France" 라벨을 붙인 곳들만 2020년 3월 기준 1,219개다.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해서 라디오 박물관, 신발 미술관처럼 한 물건에 집중하거나 향수나 초콜릿 같은 한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지은 박물관도 있다. 건축물도 각양각색이라 네모반듯한 20세기 건축이나 화려한 궁전부터 다 허물어질 거 같은 옛 탄약 창고로 구성한 곳까지 별의별 곳을 다 볼 수 있다.

이 독특한 공간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코로나 19 사태 이후로 프랑스의 뮤제들은 여닫기를 반복하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5월 중순까지 임시 폐장을 했다. 1년 동안 내가 제대로 일한 기간은 겨우 두세 달. 관람객과의 소통이 없어진 몇 달 후, 나에게도 이제 뮤제는 이국적인 상상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익숙했던 곳과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리자 나에게 뮤제는 어떤 공간이었는지 고민하게 됐다. 어려서부터 많은 뮤제로 놀러 나간 덕에 이 장소들은 익숙하다. 익숙하다는 것이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해하지 못한다고 불안해하지 않는 정도의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언제나 가벼운 마음으로 가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어떤 뮤제는 지나치게 크고 웅장해서 압사당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떤 뮤제는 너무나 볼 게 없어서 몇 푼 안 되는 입장료를 환불해달라고 하고 싶게 만들고, 어떤 뮤제는 동선이 뒤죽박죽이고 앉을 자리가 없어 피곤함만 남긴다. 어떤 뮤제는 가고 싶어도 짜인 여행경로에서 너무 동떨어져 가지 못하기도 한다. 하물며 거리도 멀고 하나하나 번역기를 켜야 설명을 이해할 수 있는 남의 나라 뮤제의 입구에 발을 들인다는 것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는가 ? 

라 삐신-앙드레 딜리정 미술 공업 박물관, 루베, 시립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누군가가 부담 갖지 않고 놀러 왔으면.’ 이 생각이 글을 쓰게 도와줬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오르세 미술관이 아닌, 여러분이 프랑스에 오더라도 가기 어려울 수 있는 박물관 및 미술관을 선보이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주로 지방에 위치하고 (파리의 거대시설에 비해) 중간 내지 소규모의 시설을 다루기로 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일단은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가려 한다.

뮈바-외젠 르화, 뚜륵고앙 시립 미술관

지금 갈 수 없는 곳을 갈망하고 색다른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은 그대와 잠시 동네 마실 가듯 가볍게 마실 나가고 싶다. 매달 한 번씩 이불 안에서, 집 소파에 앉아, 동네 공원 벤치에서 함께 프랑스 뮤제로 산책을 떠나보자.

 

월간토마토 vol.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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