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다시 만나기 vs 인생 책 다시 읽기
『코스모스』(칼 세이건 저, 홍승수 역, 사이언스 북스_2006)
글 로와
이번 달은 내 인생 책 『코스모스』(칼 세이건 저, 홍승수 역, 사이언스 북스_2006) 이야기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학년 때였다. 대학 신입생이던 언니가 교양과목 과제 제출용으로 사용하고선 방구석에 방치한 책이었다. 언니 방에 뭐 간식거리라도 있나 살짝 들여다보던 내가 하필 그 책을 집어든 것이다. 만일 그곳에 새우깡 반 봉지라도 있었더라면 『코스모스』와 나의 만남은 한참 뒤로 미뤄졌을지도 모른다.
과자 봉지 대신이라는 사소한 우연으로 시작한 인연이었지만 그 인연은 탄탄히 이어졌다. 나는 첫 만남 이후로 『코스모스』에 완전히 빠져들고 말았는데, 그토록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책은 12년, 내 인생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동화, 소설, 학습만화밖에는 읽어보지 못한 나에게 『코스모스』는 말 그대로 신세계를 열어준 셈이었다. 별과 우주, 인류의 시작부터 원자의 세계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내용에 압도되고, 씨줄 날줄을 멋지게 엮어내는 저자의 글솜씨에 독자인 나까지 엮여 들어가서, 나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책이란 게 이렇게 대단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구나! 멋지다!’라는 게 처음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이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 두꺼운 책을 학교까지 들고 가서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읽는 것은 물론이었다. 수업 중에도 방금까지 읽다가 쉬는 시간이 끝나서 덮어야 했던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좀이 쑤셨다.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쳤으니, 『코스모스』는 내 인생 책이다. 역시 책이란 위험한 물건이 아닌가! 손도 발도 없는 물체일 뿐인데 삶의 방향까지도 바꿔버리니 말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상을 현실로 바로 복사-붙여넣기 할 수는 없다. 꿈을 현실로 이루기까지는 오만가지 사소하고 잡다한 사건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코스모스』의 저자처럼 천문학자가 되고 싶다는 내게 큰아버지는 “천문학은 물리학과에서 배우는 한 과목이다. 게다가 천문학과 졸업생은 취직할 곳도 너무 적지.”라며, 물리학과를 가라고 설득하셨다. (여기서 물리학과 졸업생이라 해서 취직 비율이 썩 높지 않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다는 게 함정) 집안 사정 등 여러 이유로 나는 물리학과에 입학하였고, 천체 관측은 아마추어 천문그룹에서 가끔 별 사진 찍으러 가는 정도로 만족했다. 별은 빛의 속도로 달려도 평생이 걸릴 만큼 멀리에 있고, 별만 바라보다가는 발끝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게 내가 겪는 현실이었다. 장학금이 걸린 성적, 졸업이 걸린 논문, 밥벌이가 걸린 실적. 『코스모스』는 잊혀 갔다. 설사 책을 읽더라도 직업적 시선으로 바라보기 십상인 과학책은 일단 뒷전이었다. 문학의 세계는 깊고도 넓어서 평생을 빠져 지내도 모자를 테니까.
그러던 내가, 이번 달에 『코스모스』를 다시 읽게 되었다. 첫 만남으로부터 따져보면 무려 30여 년만이다. 십대 시절 내게 가장 중요했던 책이자, 인생 향방을 결정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며, 내가 청소년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 『코스모스』. 첫 출판 후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독자에게 꾸준히 읽히고 거론되는, 가히 ‘부동의 과학책’. 지금의 내가 이 책을 다시 읽는다면 과연 다르게 읽힐 것인가? 그 궁금증을 못 이겨 책장을 펼쳤다. 우주가 펼쳐졌다. 30여 년 전처럼, 마지막 페이지까지 나는 다시 착실한 독자가 되어 보았다. 마치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수십 년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문득 제임스 셜터의 단편소설 <프라자 호텔>이 떠올랐다. <프라자 호텔>의 내용을 잠시 기억해보자. 잘 나가는 중년의 주식중개업자 아서는 퇴근 시간 즈음 전화를 받는다. 젊은 시절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3년간 사랑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련되었던 노린으로부터였다. 전화기로 들리는 노린의 목소리만으로도 아서는 20년 전처럼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프라자 호텔 로비에서 재회하는 옛 연인들. 하지만 아서에게 노린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나이 들고 퉁퉁했고, 그녀가 입은 옷 한 자락까지도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아서와는 달리 “다시 만난 지 고작 5분 만인데 헤어진 적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하는 노린. 그녀에게 “사랑은 죽지 않으니까.”라는 로맨틱한 대답을 하면서도 저녁을 함께 먹자는 노린의 제안에 아서는 약혼자가 생겼다는 거짓말을 남긴 채 서둘러 프라자 호텔을 빠져나오고 만다. 소설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인쇄된 책 내용이 달라질 리는 없다. 달라진 것은 독자인 나, 그리고 책을 읽는 시대 상황이다. 『코스모스』에서 사과파이를 90번 자르면 원자에 도달한다는 설명과 원자를 일렬로 1억 개 줄을 세우면 겨우 손톱 크기가 된다는 설명에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던 꼬마는 반도체 표면에서 원자 이동을 예측하느라 양자역학 방정식을 계산하는 과학자가 되었다. 이 책에서 원자 줄 세우기 설명은 어디론가 사라졌고(또는 내가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연구비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꽤 자주 언급된다는 것과 냉전 시대의 얼어붙은 분위기가 책 전반에 넘친다는 것을 알아보는 독자가 되었다. 사과파이를 10cm라 가정할 때 반씩 자르기를 많이 잡아봐야 30번만 자르면 충분히 원자 크기에 도달하지 않느냐는 동료의 주장을 검산해보고서 동료가 맞고 책이 틀렸다고 대답할 줄 아는 과학자로 성장했다. 80년대 특유의 비장한 분위기, 웅장하게 번역된 문체, 최근에는 틀린 것으로 밝혀진 낡은 뇌과학 이론, 지극히 혜택받은 존재인 백인 남성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표현한 글들로부터 때로는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는 독자가 된 것이다. 『코스모스』는 현상을 단순히 설명하는 데에 그치는 과학 교과서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과학책이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도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내 기억력으로는 읽은 책에서 대개 한 부분만 기억하곤 한다. 이번에도 내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은 문장을 선명하게 발견하고는 연필로 밑줄을 쳐가며 기뻐했다. 제3장의 마지막에 나오는 뉴턴의 문장들이다. 시대와 상황에 무관하게, 누구나 공감할만한 문장이 아닐까.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 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이 문장을 새기며 두근대는 마음으로 나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고, 지금도 위 문장은 내 심장을 뛰게 만든다. 어찌 됐든, 12세에 만난 『코스모스』는 지금의 내가 있도록 큰 영향을 끼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옛사랑은 다시 보는 대신 기억 속에 간직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의 내가 행복했던 것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데에 역할을 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추억이란 박제되었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미라가 되살아난 영화치고 해피엔딩은 없었다.
월간토마토 vol.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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