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면 아래, 우리가 만들어 둔 '틈'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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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

지표면 아래, 우리가 만들어 둔 '틈'이 존재한다.

by 토마토쥔장 2021.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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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표면 아래, 우리가 만들어 둔 ‘틈’이 존재한다

글·사진 이용원

 

대전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시내’에 나가는 문화다. 이걸 문화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외지에서 온 사람은 ‘시내’라는 말을 들으면, 의아함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쳐다본다. 이 큰 도시에 ‘시내’라는 말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일 게다. 시골 마을에서 읍내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대전에도 상권이 밀집한 크고 작은 시가지는 많다. 그러나 ‘시내’를 뺀 나머지는 그냥 행정동 이름으로 부른다. 둔산동, 탄방동, 봉명동처럼 말이다. ‘시내’는 흔히 은행동 일대를 이야기하지만, 말하는 사람마다 권역은 조금씩 다르다. 사람마다 주요 활동 반경이 다르니 ‘시내’를 정확하게 획정할 수는 없다.

‘대전 시내’는 과거 여러 단관 극장이 밀집했고 갤러리와 소극장도 많았다. 백화점과 대형 상가 건물, 오랜 역사와 맛을 자랑하는 찻집과 음식점도 가득했다. ‘시내에 나간다’라는 말은 이런 시설과 콘텐츠를 즐기거나 구매하러 간다는, 일종의 선택이었다. ‘시내’라는 말은 도시 확장에 따라 ‘도심’이 여러 곳에 생기면서 천천히 사라졌어야 했다. 아무래도 대전이라는 도시는 그럴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너무 빨리 팽창했던 모양이다. ‘시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시내’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 싶다.

당시, 이런 ‘시내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 시설이 지하상가였다. 대전역부터 옛 충남도청 사이를 잇는 중앙로 땅 아래에 있다.

대전역 아래에서 대전천 건너기 전까지 형성한 지하상가가 먼저 생겼다. 역전지하도상가라는 공식 이름이 있고 트레일존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구지하상가라고도 부른다. 대전천을 건너 시작하는 중앙로지하상가는 나중에 생겨 신지하상가라고도 부른다.

 

1.

중앙로지하상가는 모두 네 개 구역으로 나눈다. 그 구역에는 알파벳으로 구역 명칭을 붙였다. 목척교 아래에서 옛 충남도청 쪽으로 가면서 차례로 A, B, C구역이다. 중앙분수대에서 한밭종합운동장 쪽으로 가지를 뻗은 구역이 D구역이다. 전체 연장은 1.1km가 조금 넘는다. 구역별로 1990년 1차로 준공하고, 1991년 2차 준공을 한 후 1994년 7월 5일, D구역을 마지막으로 준공하면서 중앙로지하상가 공사를 모두 마무리했다.

당시 중앙로지하상가 조성사업은 ㈜영진건설, ㈜대우건설이 맡았다. 준공 후 20년 동안 무상 사용권과 상가 관리, 운영권을 가졌다. 기한이 끝난 후에 대전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이었다. 이 조건에 따라 2014년부터 모든 권리를 대전시가 갖고 ㈔중앙로지하상가와 관리·운영에 관한 위탁계약을 맺은 상태다.

평일 낮에 찾아간 중앙로지하상가는 한산했지만, 예상보다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와플과 피자, 음료 등을 파는 가게가 모인 C구역 앞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가 함께 간식을 먹으며 휴게 공간에서 휴식을 취했다. 짧지만 학교도 방학에 들어가고 휴가 시즌도 시작한 영향으로 보였다. 이 공간은 중앙로지하상가 중에서도 사람이 꾸준히 모여드는 곳이다. 쉴 수 있도록 분수대에 의자를 설치한 공간에, 간단히 허기와 목마름을 달랠 수 있는 점포가 함께 있어서다. 예전에는 이 공간에서 경쟁적 호객 행위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건 없다. 자정 노력 결과인 모양이다.

“지금은 학원에 가는 길이에요. 중학교 때는 시내랑 지하상가에 많이 놀러 왔어요. 비가 올 때는 비도 안 맞고 안 덥고, 안 춥고 먹는 것부터 입는 것까지 전부 다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아요. 여기 와플 가게 조각 피자가 정말 맛있거든요.”

아이들은 비밀을 얘기해 주듯 맛난 조각 피자를 추천해 준다. 아이들은 중앙로지하상가를 통해 학원에 가는 중이었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3학년 학생에게 지하상가는 중학교 시절 간혹 놀러 왔던 추억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학원에 갈 때 이용하는, 더위나 추위, 비를 피할 수 있어 좋은 보행 통로로서 기능이 더 크다.

수줍음 많은 아이들과 헤어지고 걷다가 킥보드 탄 아주머니를 만났다.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익숙한 솜씨로 킥보드 위에 다리 하나를 올리고 지하도를 달린다. 옆에서 함께 달리며 말을 걸었다.

“킥보드를 즐겨 타시나 봐요?”

“편하니까요.”

아주머니는 순간, 당황했지만 질문에는 꼬박꼬박 답변한다.

“지하상가에서 킥보드를 타는 곳은 대전 지하상가 밖에 없다는 거 아세요?”

“저야, 모르죠….”

아줌마는 B구역 즈음에 있는 옷가게 앞에 멈춰 하얀색 윗도리를 받아서는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돌아간다. 옛 충남도청 아래쪽에 있는 C구역을 향해서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킥보드 타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제 한 10년 탔어요. 배달하니까요.”

아주머니는 자기가 운영하는 옷 수선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킥보드를 멈추지 않았다. 수선집 앞에는 공교롭게도 또 다른 킥보드가 잠시 정차 중이었다. 음료와 가벼운 먹거리를 판매하는 가게 로고가 붙은 바구니를 킥보드 앞에 매달았다. 킥보드는 주로 물건을 가지고 이동해야 하는 업체에서 이용한다. 수선집에서 옷가게에 가고 옷가게에서 수선집으로도 간다. 음료나 간식을 주로 배달하는 식음료점에서도 사용한다.

지하상가를 누비는 킥보드는 외지에서 대전 지하상가를 찾는 사람이 신기하게 보는 풍경 중 하나다. 부드럽게 물속을 유영하듯 소리없이 달리는 킥보드는 중앙로지하상가에 묘한 생동감을 주는 요소다.

“방학이라서 친척집에 놀러 왔어요. 다른 지역 지하상가보다 덜 복잡하고 깔끔해 보여요. 걸어다닐 수 있는 폭이 넓어서 그런 거 같아요.”

인천에서 대전 친척집에 놀러 온 열네 살 친구 얘기다. 아이의 친척 아주머니는 멀리서 온 조카를 데리고 ‘대전 시내’를 구경 중이었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아주머니 네 명은 한데 뭉쳐서 옛 충남도청 쪽으로 걸었다.

“청결하고 시원해요. 버스나 지하철 타기도 편하고 의외로 점포가 정말 다양하게 있어서 좋아요. 자주 오지는 않아도 한 번 올 때마다 참 재미있어요.”

다른 지역에서 대전에 방문한 지인에게 지하상가를 보여주면 대부분 놀란다. 넓고 쾌적한 쇼핑환경과 생각보다 많은 유동인구 때문이다. 지역에서는 쇠락한 원도심으로 활성화가 필요한 곳으로 생각한다고 말하면, 한 번 더 놀란다. 그들 눈에는 결코 쇠락한 곳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코로나19와 긴 장마 이전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올해 중앙로지하상가는 개점 후 최악의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점포 상담이 내걸린 공실

2.

“정말 힘들어요. 점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매출이 전년 대비 70%정도 줄었어요.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긴급 지원 대책을 내놨지만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가장 힘든 건 지하상가 공용 시설 관리비예요. 장사가 잘 될 때는 우리 고객을 위한 거니까 부담이 없지만, 요즘 같을 때는 회원에게 공용 시설 관리비를 납부해 달라는 것도 민망할 정도죠. 이런 영역에서 지원 대책을 강구해주면 좋겠어요.”

중앙로지하상가를 위탁 관리하는 ㈔중앙로지하상가 운영위원회 김진호 회장 얘기다.

중앙로지하상가에는 점포 601개가 있다. 두 개, 세 개 점포를 한 곳이 임대하기도 하니, 등록한 점포 개수로는 480개다. 대전 중구청 자료에 따르면, 의류가 대략 61%로 압도적이고 신발이 7%, 액세서리가 4%, 휴대폰기기 7%, 식음료 3%, 화장품 3% 비율이다. 올해 최악의 영업 상태를 반영하듯 유례없는 공실률을 기록 중이다. 8월 현재, 대략 30여 개 점포가 비었다.

30년 넘게 지하상가에서 장사한 김 회장은 IMF 경제 위기 때는 물론이고 지금껏 이렇게 공실이 많이 발생한 때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본래, 지하상가가 유행에 굉장히 민감해요. 장사가 좀 되는 업종이다, 싶으면 금방 비슷한 가게가 막 생기죠. 한동안은 휴대폰 매장이 밀고 들어와서 공실이 거의 없었어요. 공실이 생기는 걸 보니 다른 때보다 힘들긴 한 모양이에요. 지하상가에서 단골 만들려면, 특별한 업종이 아니라면 10년 이상은 꾸준히 장사를 해야 해요. 가게 구하려고요?”

A구역에서 옷을 판매하는 한 가게 주인 얘기다. 취재 중이라는 설명에 보였던 관심을 거둔다. 유행에 민감한 지하상가 특성은 자주 찾는 고객에게도 쉽게 눈에 띈다. 한동안 휴대전화기 판매점이 비약적으로 늘더니 최근에는 네일아트숍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이 보인다. 이렇듯 유행에 민감할 수 있는 이유는 지하상가가 ‘소자본 창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실평수 4평 정도를 가지고 장사할 데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인테리어 비용까지 고려하면 지하상가가 훨씬 경쟁력이 있지요. 지하상가는 인테리어에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거든요. 지하상가에서 돈 좀 벌어가지고 지상에 올라가 크게 가게를 냈다가 실패한 사람을 많이 보았어요. 성공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내가 여기서 30년을 장사했으니까, 잘 알죠.”

지하상가 일부 구간에는 통로 중간에도 점포를 냈다. B구역에서 모자를 파는 점포 주인 얘기다. 시내라 불렀던 원도심 영역 침체와 코로나19, 긴 장마 등 올해 불어닥친 외부 위협 요인이 영업을 더욱 어렵게 만들지만 그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요즘 중앙로지하상가 화두는 ‘고객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올 것인가?’다.

“젊은 주인들 보면, 아침에 일찍 나와서 가게 앞에 택배 상자를 가득 쌓아놓고 있어요. 온라인에서 판매한 상품을 발송하는 거지요. 이제 오프라인 장사는 끝난 게 아닌가 싶어요. 젊은 친구들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교육을 받아도 젊은 애들은 못 따라 가겠어요.”

앞서 만난 30년 경력 업주 얘기다. 연령대가 제법 높은 편인데, SNS 관련 용어가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온다. 고민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중앙로지하상가 상인회 차원에서도 교육과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온라인 판매 병행 전략에 힘을 싣는다.

“다양한 공모사업에 신청을 해서 SNS 활용, 온라인 상거래, 온라인 마케팅 관련 교육을 진행했어요. 지난 7월 8일에는 중앙로지하상가에서는 처음으로 라이브 커머스 유튜브 생중계도 시도했고요. 유튜브 생중계를 하려면 구독자 1,200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해서 정말 고생했지요. 처음이라 상가 홍보에 치중했지만 장기적으로 매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요. 점포가 작아서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기 어려워요. 예산을 확보할 수 있다면, 옛 충남도청 아래 공연장을 손 좀 봐서 다문화 복합 스튜디오로 만들 계획이에요. 공연도 하고 공연이 없을 때는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 쓰려고요.”

㈔중앙로지하상가 운영위원회 김진호 회장이 온라인 판매 강화 계획을 설명했다.

중아로지하상가 곳곳에는 분수대와 휴게 공간을 설치했다.

3.

장마 끝이라 그런지 비가 오락가락 한다. 한 번 쏟아질 때는 무섭게 쏟아진다. 중앙로지하상가 A구역 끄트머리 부문,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사람 몇이 서서 웅성거린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 한 사람들이 처마 밑에 모여 나서길 망설인다.

이곳으로 올라가 목척교를 건너 미카 열차 조형물을 통해 역전지하도상가로 들어갈 계획이다. 신구지하상가 연결 사업 과정에서 미카 열차 조형물은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고 다시 비슷한 장소에 설치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하든 당분간 철거해 둘 것으로 보인다. 미카 열차 조형물 아래로 들어가는 길은 V자로 꺾였다. 계단이 아닌 경사로다.

역전지하도상가 초입에서 받는 느낌은 중앙로지하상가와는 완전히 다르다. 중앙로지하상가에 비해 더 한산하다. 점포 주인은 애가 탈 상황이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묘한 여유도 느껴진다. 관록일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알록달록한 중앙로지하상가에서 신경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긴장감이 생겼는데, 역전지하도상가에서는 차분해진다. 이곳의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로지하상가가 생기기 10여 년 전인 1981년 6월 계룡건설은 역전지하도상가를 준공한다. 20년 무상으로 사용하고 대전시에 기부채납하는 조건이었다. 약속한 시간이 경과한 후 2001년부터 대전광역시시설관리공단이 인수해 관리 운영 중이다.

“아무래도 역전지하도상가에는 연세 드신 엄마들, 중장년층이 주요 고객층이죠. 신지하상가는 젊은층이고요. 고객층이 그러니 상품 구성도 고객에 맞춘 경향이 있어요. 60% 정도가 숙녀복이라고 생각하면 되어요. 신구지하상가 연결 공사를 하면 아무래도 고객이 좀 섞이면서 상품 구성도 다양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대전역전지하상가 상인회 이정숙 상인회장은 만 39년 동안 역전지하도상가에서 영업 중이다.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신구지하상가 연결사업에 거는 기대는 구지하상가 쪽이 더 강렬한 듯했다. 이 회장이 말한 것처럼 신구 두 지하상가 간에 뚜렷한 고객 연령층 차이는 상식처럼 알려진 바다. 아무래도 지하 위쪽에 있는 지상상가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젊은층이 많이 찾는, 시내 핵심 구역인 은행동과 대흥동 일대, 최근 선화단길이라고 불리며 새로운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는 선화동이 모두 중앙로지하상가 인근이다. 반면, 역전지하도상가는 중앙시장 등과 인접했다. 고객 흐름이 이런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지상으로 올라올 일 없이 대전역 아래부터 옛 충남도청 아래까지 한 번에 걸어갈 수 있는 조건이 유입 고객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대전광역시시설관리공단 자료를 살펴보면, 역전지하도상가 점포는 모두 210개다. 중앙로지하상가 1/3 수준이다. 업종별 현황을 보면, 의류가 113개로 53.8%를 차지한다. 전자 통신 관련 업종이 21.9%로 다음을 차지하고 신발이 9곳으로 4.28%다. 특이한 건, 가발 판매점이 6곳이라는 점이다.

코로나19, 긴 장마 탓에 며칠 동안 개시도 못할 정도로 어려운 여건이지만 공실은 한 곳도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번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가신 분은 안 계세요. 정확하게 통계를 잡아본 건 아니지만, 듣기로는 점포 대부분이 최소 10년 이상 영업을 하신 분들이더라고요.” 

대전광역시시설관리공단 관계자 얘기다. 장사를 오래한 점포가 많아 나름 단골이 형성되었고 대전역을 끼고 있어 안정적인 성장 가능성이 여전한 데다 신구지하상가 연결사업에 거는 기대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위기를 타고 넘는 ‘구력’을 무시할 수 없을 거다.

“이제 40년 되었어요. 제가 중학교 때도 있던 가게예요. 제가 이곳을 운영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저도 결혼하고 이곳에서 캐주얼복도 팔고 남성복도 취급했어요. 이 가게는 아버님 어머님이 하셨고요. 몇 년 전부터 왔다갔다 도와 드리다가 제가 아예 이어서 하는 거죠. 이제 아버님이 80세가 되셔서 장사하기 힘드시니까요.”

‘청코너’라는 청바지 전문점은 눈에 무척 익은 집이다. 이제 50대에 접어든 며느리 오 씨가 운영 중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정말 힘들었다가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잠깐 괜찮은가 싶더니 대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비약적으로 늘고 장마가 시작되면서 다시 매출이 바닥을 치는 중이라고 설명한다. ㈔대전역전지하상가상인회 이정숙 회장을 찾아와 ‘며칠째 매출이 하나도 없다’라고 하소연하는 회원이 많다는 소리가 괜한 소리는 아닌 듯싶다. 오 씨는 암울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표정은 무척 밝다. 역시 힘든 상황에서도 마음에 여유가 느껴진다. 관록이다.

 

4.

대전에서 처음으로 생긴 역전지하도상가에는 일반 점포와는 별도로 대전광역시공예품전시판매장이 대전역 쪽에 붙어 있다. 대전역에서 내려 역전지하도상가로 들어서는 초입이다. 맨 첫 집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매장으로 쓴다. 역전지하도상가 점포 개수인 210개소에는 포함하지 않는 구역이다.

대전광역시 지원으로 2006년부터 대전광역시공예협동조합이 위탁 관리를 맡았다. 무상임대로 관리비만 납부한다. 공예 작가가 직접 나와 작업을 하기도 하고 본인 작품과 위탁 받은 작품을 판매한다. 칠보, 가죽, 구리, 섬유, 도자기 등 다양한 품목이 들어찼다.

“지금은 예술가가 굶어 죽기 딱 좋아요. 긴급재난지원금 나왔을 때 기대를 좀 했는데, 역시 안 되더라고. 의식주가 기본이니까, 그것에만 집중하지 이런 곳에는 들어오지도 않아요. 처음 전시 판매장 문을 열었을 때는 판매가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요.”

대전공예품전시판매장 모습

구리공예 ‘다듬’이라는 전시판매장을 운영하는 배정길(80) 작가 얘기다.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한 다양한 작품이 내걸렸지만 가게 앞을 오가는 행인은 눈길만 잠깐 두거나 관심 없이 지나칠 뿐이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배 작가 얘기 속에서 단순히 판매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용자와 소통을 숙명으로 하는 예술가로서 느끼는 ‘고립감’이 더욱 클지도 모르겠다.

부부가 운영하는 다른 공예품 판매 매장에서는 하늘길이 막힌 게 이곳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외국에 나갈 수가 없으니까 매출이 전혀 발생하지 않아요. 우리 구역 주요 고객은 외국에 나가는 기업인이나 정치·행정가, 아니면 해외 봉사 나가는 대학생이나 고향에 들어가는 외국인 유학생, 업무나 관광 차 대전을 찾은 외국인 등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외국에 나가거나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니 매출이 발생할 수가 없죠.”

구리공예품 판매점에서 본 ‘한국의 탈’이라는 작품 속, 산대박탈이 짓는 웃음이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공예품전시판매장 구간을 둘러보고 나올 때 저녁 7시 부근이었다. 좀 이른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대부분 점포가 문을 닫았거나 닫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보통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 30분 정도까지는 영업을 하고 매장마다 조금 더 영업을 하는 곳도 있었는데, 요즘 분위기가 뒤숭숭하니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다. 직장인이 퇴근 후에 잠깐 들러 쇼핑을 할 수도 있을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불 켜진 몇몇 점포에서는 마지막 손님과 흥정이 막바지에 다다른 듯하다. 목척교 부근 맨 끝자락 점포도 부부가 함께 셔터를 내리는 중이었다. ‘홍명악기총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홍명상가에서 30년 가까이 영업을 하고 2009년, 대전천 복원을 위해 홍명상가를 철거할 때 역전지하도상가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이어 영업을 한 것이 10년이다.

“손님이 많이 없어서 이제 문 닫고 집에 가려고요. 우리 내려올 때 구지하상가로 다른 가게도 많이 내려 왔어요.”

여든이 넘었다는 사장님은 낯선 이에게 수줍게 웃어 보이며 발걸음을 돌린다. 수천 번 반복했을 일련의 몸짓이 지하 공간에 잘 스며든다.

목척교를 지나 다시 찾아간 중앙로지하상가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전지하도상가보다는 여전히 문을 연 비율이 높기는 해도 저녁 8시가 가까워지면서 파장 분위기다. 중앙로지하상가 공식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신구지하상가 모두 그걸 굳이 지킬 시국은 아니다.

점포가 하나둘 문을 닫고 지상에도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 지하 공간은 여전히 환하다. 보행로로 활용하는 공간이니, 완전히 어둠에 휩싸이지는 않을 것이다. 천천히 혹은 잰 걸음으로, 인류가 만들어낸 지표면 아래 틈을 파고드는 사람들은 직선으로 이동한다. 간혹 출구로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 막힌 공간에서 싫든 좋든 끊임없이 마주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마다 표정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늘 난, 어떤 표정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지 궁금해져 쇼윈도에 얼굴을 비쳐본다. 공간을 꽉 채웠던 오늘의 시간이 지하 공간 구석구석으로 흩어져 달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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