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그 여백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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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

커피 그 여백 안에서

by 토마토쥔장 2021.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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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 여백 안에서

  김향숙 문화교육기획가행복한 글쟁이 



두 달이나 굶은 월간지 원고 써 보겠다고 여기까지 나왔다르완다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이번에는 커피 글을 쓰리라 마음먹는데웬걸 또 글이 거칠게 꿈틀거린다그게 참 이상하지페이스북이나 SNS에는 폰 자판으로 다다다 잘도 쓰면서이게 무슨 원고이다 생각하면 글이 심하게 거부한다결국 밥벌이 글쟁이로는 텄다는 소리이다그냥 우두두 써 내려가는 잡글은 내리 써지고뭔가 독자를 생각하면서 조금 고상을 떨라 하면 이건 아둔한 비글쟁이가 되어 버리니.

여기 오면 굳이 '르완다드립커피를 시키는 이유는 르완다라 이름 붙여진 싱글오리진 드립이 흔하지 않아서이다그 뭐랄까평소 못 접하는 것에 대한 야릇한 환상이랄까굳이 커피 맛의 이런저런 풍미를 언급하지 않아도 낯선 커피 한 잔으로 대접받았다는 느낌적 특별함이 확 온다는 것그래 간헐적 허세라고 하자매일 접하지 않는 그 간헐적 허세 안에서 잠시 잠깐 내가 살아 있음을 우우우 느낀다하면 이건 대박 허세이지그럼 허세 맞지단지 자주 오는 곳은 아니니그나마 간헐적이다에 동그라미 긋기로.

 

르완다가 어디에 있나아프리카에 속할 것이고아는 것이 별반 없으니 검색이라도 해 보자 싶어검색하니 르완다와 같이 붙어서 뜨는 첫 번째는 검색어는 르완다대학살이다. 그래 맞아종족 간의 대학살로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린 적이 있지그래 그런 잔인한 권력암투가 있었던 나라였어지금은 어떨까 하고 보니대통령 선거가 최근에 있었다네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다네고는 덮었다내가 커피 한 잔 마시면서까지 국제사회 공부해야겠냐고패스

 

그럼에도 르완다 커피 이야기는 자꾸 귓가에 머문다제법 일찍 여기 카페에 왔더니 원두를 볶으면서 르완다 성질에 대해서 선배 바리스타가 후배에게 뭔가 계속 설명한다수분이 어쩌고온도가 어쩌고여러 강약에 따라서 신맛의 풍미가 어쩌고 등등 많은 설명을 하는 것이 귓가에서 웅웅거린다그러고는 내 입안에서는 그 야릇한 신맛이 침으로 살짝 고였다 나간다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에디오피아의 시다모와 다른케냐 더블에이(AA)와는 또 다른 그 야들야들한 신맛이렇게 쓰고는 나는 풋 하고 웃었다또 커피 개똥 맛이 나온다 싶어서그냥 마셔라제발이런저런 평가하지 말고그 뭐 그리 야단스럽게 커피를 마시냐하는 내 안의 자조

이러고 있는데 커피 한 잔이 더 나왔다코스타리카인데요우리 원두가 바뀌었거든요드셔 보세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한 잔 더 권한다아이고 고마와라물 한 잔으로 입안을 가셔내고 새로 들어왔다는 코스타리카 싱글오리진(Single Origin)을 마셔 본다이건 어떤 풍미이지그래 조금 다른 가벼움이 온다가벼움이 주는 단순함이 다시 오네아니다그냥 애써 새로운 커피에 대한 조합을 찾으려는 의도적 노력이 아닐까그래도 좋네휴일 아침동네 카페에서 프랜차이즈 커피가 아닌 드립커피를 두 잔이나 마셔 본다는 거이런 호강이 어디 있나나한테 주는 오랜만의 선물이지좋다.

 

커피에 대한 예민함이 많이 빠져나간 얼마간이었다원두생산지가 어디네로스팅(Roasting)이 약배전이니 강배전이니 혹은 물의 온도가 어쩌네쓰네감칠맛이 나네커피에서 단맛이 나네하면서 오만 유난을 다 떨다가 어느 날 유럽에서 대량 양산된 어느 커피를 마시고는 굳이 갓 볶은’ 커피에 이렇게 목 멜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갓 볶지 않아도 이렇게 커피가 맛있는데굳이 커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붙이면서 그동안 각종 허세를 떨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그러고는 드립이 아닌 소위 에스프레소에 꽂히면서 물 탄 커피는 배가 불러서 못 마시겠네하는 내 안의 어록을 만들면서 에쏘에 또 빠지고 있었다

 

누가 그러대어느 커피집 가서 가장 우아한 목소리로 냉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했더니아이스커피 한 잔 드릴까요해서 한참 생각하다가 네라고 대답했다고커피가 바야흐로 문장의 허세까지 주고 있구나냉커피와 아이스커피의 차이는 뭘까그냥 웃는다.

 

이른 아침에 왔는데도여기 카페는 여러 손님들이 왔다 갔다나처럼 드립커피를 시키는 사람은 드물고 거의 아.....를 시키고 들고 나간다그 아메리카노 커피 이름은 또 어디에서 왔을까....노 커피 이름은 왜 없지스멀스멀 오만 생각이 오간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일을 쳐낸다고 할까그래 일을 쳐낸다는 표현이 맞을 거야정말 정신없었으니그래서 제대로 된 커피 한 잔 온전히못 마시고 보냈다그러면서 커피 맛의 예민함과 까칠함은 빠져나갔고그 까칠함이 어쩌면 다 쓸데없는 허세였음을 자각하며 다시 가을을 준비한다그 와중에 토마토(문화 월간지)에 글 안 쓰나요?라고 물어봐 주는 간..독자도 있더라깜짝 놀라며내 글을 그래도 읽고 있는 소중한 분이 있었구나게으름의 극치를 미안해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꾸준함이 주는 매력지속성이 주는 성실함에 대한 내 안의 개똥철학을 커피 마시며 느낀다르완다 커피든 코스타리카 커피든뭐든 맛있다그렇게 단출하게 의미부여하며

 

다시 나를 돌아다본다밥벌이 글쟁이는 아니더라도 간헐적 글쟁이라도 좀 성실하자는 내 안의 다짐을 하면서커피를 마신다꾸준함과 지속성을 약속하면서그게 사는 것에 대한 얇은 책임임을 인지하면서이렇게 원고는 마무리한다커피 그 여백 안에서.


월간토마토 vol.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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