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그 여백 안에서
글 김향숙 / 문화‧교육기획가. 행복한 글쟁이
두 달이나 굶은 월간지 원고 써 보겠다고 여기까지 나왔다. 르완다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이번에는 커피 글을 쓰리라 마음먹는데, 웬걸 또 글이 거칠게 꿈틀거린다. 그게 참 이상하지. 페이스북이나 SNS에는 폰 자판으로 다다다 잘도 쓰면서, 이게 무슨 원고이다 생각하면 글이 심하게 거부한다. 결국 밥벌이 글쟁이로는 텄다는 소리이다. 그냥 우두두 써 내려가는 잡글은 내리 써지고, 뭔가 독자를 생각하면서 조금 고상을 떨라 하면 이건 아둔한 비글쟁이가 되어 버리니.
여기 오면 굳이 '르완다' 드립커피를 시키는 이유는 르완다, 라 이름 붙여진 싱글오리진 드립이 흔하지 않아서이다. 그 뭐랄까. 평소 못 접하는 것에 대한 야릇한 환상이랄까. 굳이 커피 맛의 이런저런 풍미를 언급하지 않아도 낯선 커피 한 잔으로 대접받았다는 느낌적 특별함이 확 온다는 것. 그래 간헐적 허세라고 하자. 매일 접하지 않는 그 간헐적 허세 안에서 잠시 잠깐 내가 살아 있음을 우우우 느낀다하면 이건 대박 허세이지. 그럼 허세 맞지. 단지 자주 오는 곳은 아니니, 그나마 간헐적이다, 에 동그라미 긋기로.
르완다, 가 어디에 있나? 아프리카에 속할 것이고. 아는 것이 별반 없으니 검색이라도 해 보자 싶어, 검색하니 르완다와 같이 붙어서 뜨는 첫 번째는 검색어는 ‘르완다대학살’이다. 그래 맞아. 종족 간의 대학살로 국제사회에 이름을 알린 적이 있지. 그래 그런 잔인한 권력암투가 있었던 나라였어. 지금은 어떨까 하고 보니, 대통령 선거가 최근에 있었다네.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다네. 그러고는 덮었다. 내가 커피 한 잔 마시면서까지 국제사회 공부해야겠냐고. 패스.
그럼에도 르완다 커피 이야기는 자꾸 귓가에 머문다. 제법 일찍 여기 카페에 왔더니 원두를 볶으면서 르완다 성질에 대해서 선배 바리스타가 후배에게 뭔가 계속 설명한다. 수분이 어쩌고. 온도가 어쩌고. 여러 강약에 따라서 신맛의 풍미가 어쩌고 등등 많은 설명을 하는 것이 귓가에서 웅웅거린다. 그러고는 내 입안에서는 그 야릇한 신맛이 침으로 살짝 고였다 나간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에디오피아의 시다모와 다른, 케냐 더블에이(AA)와는 또 다른 그 야들야들한 신맛. 이렇게 쓰고는 나는 풋 하고 웃었다. 또 커피 개똥 맛이 나온다 싶어서. 그냥 마셔라, 제발. 이런저런 평가하지 말고. 그 뭐 그리 야단스럽게 커피를 마시냐, 하는 내 안의 자조.
이러고 있는데 커피 한 잔이 더 나왔다. 코스타리카인데요, 우리 원두가 바뀌었거든요. 드셔 보세요, 라고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한 잔 더 권한다. 아이고 고마와라. 물 한 잔으로 입안을 가셔내고 새로 들어왔다는 코스타리카 싱글오리진(Single Origin)을 마셔 본다. 이건 어떤 풍미이지. 그래 조금 다른 가벼움이 온다. 가벼움이 주는 단순함이 다시 오네. 아니다, 그냥 애써 새로운 커피에 대한 조합을 찾으려는 의도적 노력이 아닐까. 그래도 좋네. 휴일 아침, 동네 카페에서 프랜차이즈 커피가 아닌 드립커피를 두 잔이나 마셔 본다는 거, 이런 호강이 어디 있나. 나한테 주는 오랜만의 선물이지. 좋다.
커피에 대한 예민함이 많이 빠져나간 얼마간이었다. 원두생산지가 어디네, 로스팅(Roasting)이 약배전이니 강배전이니 혹은 물의 온도가 어쩌네, 쓰네, 감칠맛이 나네, 커피에서 단맛이 나네, 하면서 오만 유난을 다 떨다가 어느 날 유럽에서 대량 양산된 어느 커피를 마시고는 굳이 ‘갓 볶은’ 커피에 이렇게 목 멜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갓 볶지 않아도 이렇게 커피가 맛있는데, 굳이 커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붙이면서 그동안 각종 허세를 떨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또, 그러고는 드립이 아닌 소위 에스프레소에 꽂히면서 물 탄 커피는 배가 불러서 못 마시겠네, 하는 내 안의 어록을 만들면서 ‘에쏘’에 또 빠지고 있었다.
누가 그러대. 어느 커피집 가서 가장 우아한 목소리로 “냉커피 한 잔 주세요”라고 했더니, 아이스커피 한 잔 드릴까요, 해서 한참 생각하다가 네, 라고 대답했다고. 커피가 바야흐로 문장의 허세까지 주고 있구나. 냉커피와 아이스커피의 차이는 뭘까. 그냥 웃는다.
이른 아침에 왔는데도, 여기 카페는 여러 손님들이 왔다 갔다. 나처럼 드립커피를 시키는 사람은 드물고 거의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들고 나간다. 그 아메리카노 커피 이름은 또 어디에서 왔을까. 이.탈.리.아.노 커피 이름은 왜 없지. 스멀스멀 오만 생각이 오간다. 호!
유난히 더웠던 여름, 일을 쳐낸다고 할까. 그래 일을 쳐낸다는 표현이 맞을 거야. 정말 정신없었으니. 그래서 제대로 된 커피 한 잔 온전히, 못 마시고 보냈다. 그러면서 커피 맛의 예민함과 까칠함은 빠져나갔고, 그 까칠함이 어쩌면 다 쓸데없는 허세였음을 자각하며 다시 가을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토마토(문화 월간지)에 글 안 쓰나요?라고 물어봐 주는 간.헐.적. 독자도 있더라. 깜짝 놀라며, 내 글을 그래도 읽고 있는 소중한 분이 있었구나. 게으름의 극치를 미안해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꾸준함이 주는 매력, 지속성이 주는 성실함에 대한 내 안의 개똥철학을 커피 마시며 느낀다. 르완다 커피든 코스타리카 커피든. 뭐든 맛있다, 그렇게 단출하게 의미부여하며.
다시 나를 돌아다본다. 밥벌이 글쟁이는 아니더라도 간헐적 글쟁이라도 좀 성실하자는 내 안의 다짐을 하면서, 커피를 마신다. 꾸준함과 지속성을 약속하면서. 그게 사는 것에 대한 얇은 책임임을 인지하면서, 이렇게 원고는 마무리한다. 커피 그 여백 안에서.
월간토마토 vol.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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