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만든 초록 그늘로 숨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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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초록 그늘로 숨어들다

by 토마토쥔장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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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만든 초록 그늘로 숨어들다


만인산 가는 길

월간토마토 vol. 156.


글·사진 이주연


   만인산과 만인산푸른학습원, 만인산휴게소, 생태전시관, 천문대까지 다양한 시설로 채운 자연휴양림은 매년 수만 명의 방문객이 오간다. 만인산 자락에 놓인 만인산자연휴양림의 시작은 이렇다. 1989년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시 관할권에 있는 만인산국유림 198만m²를 충청남도로부터 무상으로 인수하여 휴양림으로 지정했다. 이후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민자유치를 통해 휴양림을 통과하는 17번 국도 추부터널 인근에 만인산휴게소를 건축하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만인산푸른학습원을 조성,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생태전시관, 천문대 등의 시설을 확장 보완하며 완성했다. 그만큼 만인산 안에서 즐길 것이 많다. 자연을 벗 삼아 놀 수 있는 곳이 바로 만인산이다. 만인산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산내 플라타너스 길부터, 만인산휴게소, 만 인산자연휴양림, 만인산까지. 하루를 온전히 보내도 좋은 곳이다. 숙박 시설도 있어 가족 여행으로 오기에도 알맞다. 예약은 온라인에서 가능하다. 만인산푸른학습원, 생태전시관, 천문대 등은 단체 예약만 받는다. 

 

 

 

비록 우리가 잊었을지라도, 산내 플라타너스  

   대전에서 여름의 청량함을 만끽하기 좋은 곳을 꼽자면 아마 개중에 만인산으로 향하는 옛길, ‘산내 플라타너스 길’이 있을 거다. 1960년대부터 하나둘 심어 2,000그루가 넘는 플라타너스 길은 동구 산내동에서 만인산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하소동까지 약 10km가량 연결된다. 긴 시간 뿌리내린 플라타너스는 길게 가지를 뻗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가지를 맞잡은 형태를 하고 있어, 마치 터널을 연상케 한다. 물론 터널처럼 둥근 모습으로 나무가 자란 건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길가에 자리 잡은 플라타너스는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냈다. 그 탓에 길 주변에 심은 농작물이 햇빛을 보지 못해 제대로 자라지 못했고, 주변 농가의 요청으로 일부러 길 안쪽으로 구부러지게 가꿨다. 지금도 꾸준히 전정 작업을 하며 주민과 나무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원인과 과정이 어떠했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찾았고,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안정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잎이 무성할 때면 많은 방문객이 이곳을 찾았고, 만인산으로 향하는 이들은 이곳을 꼭 지나쳤다. 

   물론 지금은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은 아니다. 국도 17호선이 고속화 국도로 확장 개통하면서 사람들은 빠르고 편안한 길을 찾아갔다. 청주 플라타너스 가로수길과 함께 ‘한국의 아름다운 길’,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기도 했고, 지난 2000년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거리 숲 부문 우 수상을 받을 만큼 주목받던 곳이다. 대전 여행지를 소개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곳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최근에는 이곳을 명소로 다루는 이들도 없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좋은 추억은 다시금 그곳으로 발걸음하게 한다. 만인산으로의 여행은 플라타너스 길이 절반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청량함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좁은 길로 들어섰다. 

   몇 해 전 여름, 이곳에서 만났던 눈부신 여름을 기억한다. 만인산에서 가족 모임이 있었고, 대전역에서 홀로 501번 버스를 타고 만인산으로 향했다. 늘 같은 버스를 타고 익숙한 길만 다녔던 터라 새로운 곳으로 간다는 게 정말이지 진짜 여행처럼 낯설고 설렜다. 혹시라도 잘못 내릴 것을 대비해 기사님께 미리 도착지를 말씀드리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긴장 탓인지 온 신경이 곤두섰고 그 덕에 차창 밖으로 빠르게, 가끔은 천천히 지나치는 풍경 하나하나 길목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도로 위를 가득 채운 자동차와 빼곡한 건물로 둘러싸인 도심을 벗어나자, 대전인가 싶을 정도로 한적한 풍경이 이어졌다. 

   왕복 2차선 도로로 들어선 버스는 울창한 플라타너스 길을 달렸다. 그제야 맨 앞자리에 앉은 나는 기사님과 같은 풍경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버스 안 가장 큰 창문으로 앞에서 달려오는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 냈다. 눈 앞에 펼쳐진 초록빛 풍경은 모든 걱정과 묵은 스트레스도 한꺼번에 날려 버렸다. 마치 길 위에 서 있는 듯 풍경이 오롯하게 온 시야를 감쌌다. 자연이 긴 시간 만들어 낸 푸르른 녹색 터널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바람을 맞는 듯 가슴이 뻥 뚫렸다. 살면서 만난 여름 중 가장 눈부신 여름날이었다. 누군가 버스를 타고 이 길을 나선다면, 꼭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가라고 말해 주고 싶다.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할 계획이라면 501번 버스를 타고 가다가 삼괴동/덕산마을 정류장에서 내려 지나온 길을 5분 정도 다시 걸어가면 플라타너스 길을 만날 수 있다. 버스는 12분 간격으로 자주 지나기 때문에 언제든 정류장으로 돌아가 버스를 타고 다시 만인산으로 향하면 된다. 

   차량을 운전할 거라면 가는 길이 초행자에게 조금은 복잡할 수 있다. 이미 오래전 새 길이 들어섰기에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은 옛길을 알려 주지 않는다. 501번 버스 노선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적당한 방법이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산내까지 왔다면 대별삼거리에서 직진하지 말고 좌회전해 오른편에 오투그란데아파트를 끼고 달려야 한다. 그렇게 쭉 직진하다 보면 플라타너스 길이 나온다. 

   나의 경우, 추억을 상기하며 직접 운전해 길을 나섰다. 당시에 운전면허도 없던 나는 어느덧 자라, 운전도 제법 잘하는 사회인이 되었다. 운전을 하며 빠르게 지난 시간이 무색하다 느낄 때쯤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푸릇한 풍경이 나를 반겼다. 주택가나 농지가 있는 곳은 전정 작업을 끝내 풍성한 모습은 없지만, 그 외에는 예전에 만난 모습 그대로였다. 

   잠깐 플라타너스 길을 걸어 보기로 한다. 인도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걷기에는 조금 위험하지만, 지나는 차들이 조심히 사람을 피해 간다. 플라타너스 길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잎이 빼곡해 무더운 여름날, 뜨거운 햇살로부터 넓은 품을 내어 준다. 간간이 자전거를 타고 플라타너스 터널로 흘러드는 이들도 보인다. 승객들을 싣고 달리는 501번 버스가 플라타너스 길을 여러 차례 지나쳤다. 만인산을 등지고 플라타너스 길을 걷다 보니 힘차게 물 흐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다. 왼편으로 대전천이 흐른다. 만인산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흘러 흘러 플라타너스 길을 지나 대전 시내로 흘러든다. 스치는 바람과 소리, 그때도 지금도 여전한 풍경은 완벽하다. 이 완벽함이 왠지 모르게 가슴 터질 듯 설레 큰 목소리로 뜻 모를 소리를 내 보기도, 이유 없이 달려 보기도 한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이유도 없이 행복한 순간이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순간순간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여행할 때면 유난히 온 신경이 곤두선다. 아마도 눈 깜빡할 새에 지나가 버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나온 수많은 길과 풍경, 갑작스레 귀로 들어온 노랫소리,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곧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추억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가까운 자연이 주는 나른함 

   푸릇한 플라타너스 터널을 감상하며 지나다 보면 금세 만인산휴게소에 도착한다. 평일 낮임에도 주차장에 차가 꽤 들어찼다. 코로나 19로 인해 멀리 가지 못하기에 잠깐이라도 바람을 쐬기 위해 들른 것 같다. 그도 아니면 만인산 명물인 ‘봉이호떡’을 맛보러 온 이들일 지도 모른다.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라는 말이 이곳을 보고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호떡이 계절을 타는 간식임에도 사시사철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1994년 김봉희 대표가 만인산휴게소에서 호떡을 팔며 봉이호떡 역사가 시작됐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변함없는 맛에 있다. 찹쌀과 중력 밀가루, 옥수수 전분 등을 섞어 반죽하고 하루 동안 숙성하여 다른 호떡에 비해 쫀득하고, 바삭하다. 또한 계핏가루와 흑설탕만을 넣는 일반적인 호떡과 달리 여러 견과류를 잘게 빻아 속 재료로 넣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센 불에 빠르게 구워 내 바삭하고 고소한 맛에 질림이 없어 다들 네다섯 개씩 포장해 가고, 일부러 호떡을 포장하려 만인산으로 드라이브 오는 이들도 심심찮다. 

   봉이호떡이 자리 잡고 운영 중인 만인산휴게소는 자연휴양림 편의시설로 1990년도에 민간자본을 들여 조성한 곳이다. 동구청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건축 당시 산림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 계곡 역시 그대로 두어 자연경관과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 덕에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리나라 휴게소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건축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설명처럼 땅을 깎아 내거나 메우지 않고, 연못을 중심으로 기둥을 세운 뒤 그 위에 나무 데크로 길을 조성했다. 연못 주변을 거닐며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키 큰 나무 사이로 보이는 휴게소 건물들이 마치 연못을 끼고 마을을 이룬 곳처럼 이질감이 없다. 

   호떡 하나를 사 들고 휴게소를 거닐었다. 한창 풀이 무성하게 자라날 시기인지라 곳곳에서 제초 작업이 한창이다. 나무 계단을 올라 연못 근처로 가던 중 길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어쩌다 이곳으로 흘러들어 왔는지는 몰라도, 제법 붙임성이 좋은 녀석은 천천히 걸어와 다리에 제 얼굴을 비비며 한껏 나른한 표정을 짓는다. 애교 많은 고양이가 내는 그르릉거리는 소리와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반갑기만 하다. 

   연못 주변을 걷다 보면 이곳의 터줏대감이자 마스코트를 만날 수 있다. 바로 거위 부부 한 쌍이다. 이들이 언제부터 이곳을 보금자리로 잡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곳을 관리하는 이 들도 정확히 언제부터 거위 부부가 살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거위 수명이 4~50년 정도이고, 꽤 오래전부터 만인산을 방문했던 사람들 입에서 거위 부부의 이야기가 오르내린 걸 보면 짧은 시간 만인산에 거주한 건 아닌 듯하다. 거위 부부가 만인산 터줏대감으로 이름난 건 아마도 이들의 유난히도 좋은 금슬 때문일 것이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어딜 가나 함께 다닌다. 한 마리가 뒤를 보면 다른 한 마리도 따라 뒤를 보고, 한 마리가 울면 똑같이 따라 운다. 뒤뚱뒤뚱 한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것 보고 있으니, 둘도 없는 천생연분이지 않나 싶다. 

 

 

 

지나온 수많은 길과 풍경, 갑작스레 귀로 들어온 노랫소리,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풍경을 둘러보던 눈을 거두고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이 보였다. 멀리 갈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렇게 잠깐이라도 놀러 올 수 있는 곳이 가까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다. 산책하며 두어 번 얼굴을 마주친 가족과 또 한 번 마주쳤다.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할아버지 품에서 벗어나 산책로를 내달린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아이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아이는 그대로 다시 뛰어갔고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내가 지은 웃음이 아이에게 온전히 전달되었을까. 혹여 무섭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온 세상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지금 시대가 저 아이에게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하는 생각 말이다. 

 

 

 

산은 올라야지만 있는 것들이 있다.

   만인산휴게소까지 왔으니 만인산 정상에 오르지 않을 수 없어, 정상으로 향했다. 만인산은 높이 538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왕복하는 데 약 2시간 정도 소요되어 가족끼리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다만 시작을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강도가 조금 다를 수는 있다. 사실 무엇이 더 나은지는 알 수 없다. 

   우선 정기봉을 제외하고 만인산 정상을 목표로 두고 오르기로 동행자와 합의했다. 종종 등산해 봤던 나와 달리 동행자는 산이라고는 쳐다만 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었기에 초반에 어르고 달랠 필요가 있었다. 차라리 처음 힘들게 바짝 오르자는 생각에 태조대왕태실 방향이 아닌 만인산 정상 팻말만을 보고 길을 나섰다. 그랬더니 대뜸 끝없이 이어진 나무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낮은 산이라고 얕잡아 봤던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호기롭게 한 발 한 발 힘차게 계단을 올랐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중간중간 계속해서 숨 고르기를 하며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길 바랐다. 인내하면 그 끝에 다디단 바람과 좋은 풍경이 있을 거란 믿음으로 앞에 놓인 계단만 보고 올랐다. 만약 다시 만인산을 오른다면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을 택하리라. 물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무릎에 더 안 좋다고는 하지만 정신 건강에는 더 이로울 듯하다. 

   약 20분간의 끊임없는 고난과 번뇌 끝에 끝날 것 같지 않던 천국의 계단은 끝이 났다. 그 끝에 정상이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 정표와 벤치 하나만 놓여 있었다. 잠시 벤치 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땀이 흐른 탓에 바람은 더없이 시원했다. 혹시나 해서 챙겨 온 젤리를 사이좋게 나눠 먹다 보니 다른 등산객이 올라오는 게 보여 인사를 건넸다. 몇 번 등산하면서 등산객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게 익숙해졌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동네 주민과도 나누지 못하는 인사를 이곳에서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모쪼록 서로가 안전한 산행을 할 수 있길 바라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안부와 같다는 생각에, 언젠가부터 먼 저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산에 대해 알려 주는 분들도 있었고, 힘내라며 간식을 챙겨 주는 분들도 있었다. 낯선 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 익숙지 않은 요즘이기에, 그래서 더 등산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잠시 정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만인루로 향했다. 이왕 오른 산, 볼 건 다 보고 가자는 마음에서였다. 만인루에서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던 동 행자는 “여기가 정상 같다, 그렇지?”라며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이러다 주저앉아 안 가겠다고 할 것 같아 걸음을 재촉했다. 

   산을 오른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우린 제대로 숨을 쉬었고 풍경을 눈에 담았다. 끝이 없는 계단을 오르며 나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고, 동행자는 한껏 눈이 풀려 있었던 터라 여유를 가질 겨를이 없었다. 제대로 된 흙길을 밟으며 숲의 향긋한 냄새가 콧속을 밀고 들어왔고, 더 진한 여운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부풀 정도로 힘껏 숨을 들이켰다. 길을 걸으며 시답잖은 이야기에 웃음을 터트리고, 멋진 풍경 앞에 감탄하며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눈으로도 담았다. 

   살짝 경사가 높아질 때쯤 정상에 다 와 간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다시 살짝 숨이 차올랐고, 동행자는 또다시 넋을 놓기 시작했다. 헉헉거리며 걷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내려오던 아주머니, 아저씨를 보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을까요?”

   “어이! 금방이야, 다 왔어! 다섯 걸음만 더 가면 돼!”

   산에서 항상 듣는 희망 고문과도 같은 말인데, 또 항상 믿게 되는 말이다. 물론 정상에서 내려온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어쨌든 우린 그 말만 믿고 열심히 올랐고 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폈다. 정상은 소박했다. 이렇다 할 비석도 없이 나무 팻 말 하나가 전부였고, 대전 시내가 내려다보일 풍경은 울창한 나무들로 가로막혀, 까치 발을 들어야지 겨우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비록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지만 어쨌든 성취감은 남았다. 정상에서 마시는 물과 젤리는 달고 맛나니 그거면 충분하다. 멋지고 좋은 풍경은 이미 산을 오르며 수없이 만났다. 정상에서 만나는 풍경만이 가장 좋은 것은 아니다. 산은 올라야지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물줄기의 시작이자 태평성대를 염원하던

   만인산 정상을 찍고 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저 산을 오른 것밖에 없는데 숙제 하나를 해결한 듯한 기분에 몸이 한결 더 가벼워 뛰듯이 산에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들러야지 싶었던 곳이 있어 더 늦기 전에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다음 목적지는 태조대왕태실과 대전천 발원지인 봉수레미골 이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건 태조대왕태실이다. 태조대왕태실은 태조 이성계의 태가 안치된 곳으로, 이곳은 충남 금산 추부면 마전리에 속한다. 원래 이성계의 태는 무학대사의 지시로 함경도 용연에 비장했는데, 조선 건국 후인 1393년에 당시 전북 완주군 진동현이었던 이곳 마전리로 옮겨 와 태실비를 세웠다. 이곳에 태조대왕태실이 자리한 건 풍수지리학적 이유에서다. 고려 말, 조선 초에 풍수지리에 능했던 한 시인이 만인산을 지나면서 “산의 모양이 깊고 두터우며 굽이굽이 겹쳐진 봉우리는 연꽃이 만발한 것 같고 계곡의 물이 한곳에 모여 흐른다”라며 명당으로 꼽았다. 그러한 이유로 함경도 용 연에 있던 태가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그러나 현재 태가 안치된 곳이 본 자리는 아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8년 조선총독부는 전국 수십 개 소의 태실을 파헤쳐 훼손하고 태 항아리를 창덕궁으로 옮겨 가, 경기도 고양군에 합장하며 서삼릉이라 이름 붙였다. 시간이 흘러 1993년 지역민들이 남은 석비와 석물을 수습해 복원을 진행했다. 하지만 원래 태실이 묻힌 자리는 이미 사유지였기에 그곳과 멀지 않은 또 다른 명당인 현재 자리에 복원했다. 

   실제로 본 태실은 생각보다 더 크고 웅장했다. 나라를 이끄는 왕의 태를 안치한 곳이기도 하고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고 하니, 그 웅장함과 정성에서 염원을 느낄 수 있었다. 각 기둥이 안쪽을 감싸고 있고, 정면에는 비석과 이를 바치고 있는 조형물이 있는데, 특히 조형물의 익살스러우면서도 괴이한 표정이 눈에 띈다. 이 조형물은 귀부라고 불리는데, 거북 모양을 한 석비 받침돌을 말한다. 귀부는 중국 전설 속 비희에서 유래한 것으로, 비희는 용왕의 아홉 자식 중 하나로 거북이 등딱지에 용의 몸을 하고 있으며 무거운 것을 짊어지길 좋아한다고 한다. 중국 당나라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귀부 받침돌은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처럼, 비석이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되어 본래 자리를 잃고 새로운 곳에 안치되었지만, 뜻있는 주민들의 힘으로 다시금 복원한 이 자리도 분명 의미가 깊다. 어쩌면 귀부가 가진 영원성이 힘을 발휘한 건지도 모르겠다. 탁 트인 풍경과 커다란 느티나무 몇 그루가 놓여, 그들이 내어 주는 그늘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난히 평화롭다. 

   태조대왕태실에서 내려오면 처음 등산을 시작했던 세 갈림길이 나온다. 하나는 태조대왕태실, 하나는 만인산 정상, 또 다른 하나가 대전천 발원지 봉수레미골이다. 봉수 레미골 만인산에서 달맞이나 큰 제향이 있을 때 정상에서 봉화를 올리던 골짜기라 하여 ‘봉수내미골’이라 불리던 것이 이후에 ‘봉수레미골’로 변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대전천 발원지라고 해서 엄청난 기대를 품고 간다면 크게 실망할 게 분명하다. ‘대전천 발원지 봉수레미골입니다’라고 새긴 비석 하나와 작은 웅덩이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은 웅덩이가 가진 연결성과 생명력은 무한하다. 대전의 3대 하천 중 유일하게 대전에서 생성된 하천인 대전천의 발원지로, 봉수레미골에서 시작한 물줄기는 옥계동, 인동, 원도심을 거쳐 삼성동에서 대동천과 합류한 뒤 오정동에서 유등천과 만난다. 그리고 만년동에서 대전의 가장 큰 하천인 갑천과 합류해 전민동을 지나 금강으로 흘러든다. 이 작은 웅덩이가 지나간 길은 결코 짧지도, 얕지도 않다. 

   땀을 식힐 겸 물가로 내려가 살짝 손을 담갔다. 물의 냉기가 뜨거웠던 몸을 천천히 식혀 준다. 손을 담그느라 생긴 파동에 물속에 있던 올챙이들이 포르르 움직인다. 저 작은 웅덩이에도 많은 것들이 집을 짓고 산다. 


 

글·사진 이주연

월간토마토 vol.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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