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시선과 걸음을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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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잠시 시선과 걸음을 멈추고

by 토마토쥔장 2021.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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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선과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점


글•사진 이지선

월간토마토 vol. 148.


   뜨거운 날숨을 내뱉으며 서점에 들어섰다. 얼굴에 스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달다. 여름 한낮의 뜨거운 햇볕이 공간에 스며든다.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바깥의 더위를 잠시 잊는다. 주인장은 들어온 손님에게 편하게 구경하라는 말을 남기곤 제 할 일을 한다. 책장에는 주인장의 취향이 듬뿍 담긴 독립출판물과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정리해 놨다. 책에 적힌 추천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장은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로 정성스러운 마음을 전한다. 잠시 머무르다 가기 좋은 ‘잠시, 서점’을 찾았다. 

 

머무르다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요?” 청소년들에게 꿈을 찾아 주는 일을 하던 이상은 대표가 학생들에게 항상 묻는 말이었다. 어느 날 문득 그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왔다. 

   “그때 여러 가지 상황이 엄청나게 불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일에 대한 권태가 왔던 거 같아요. 아이들에게 행복을 물으면서 제 행복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거죠. 내가 제일 행복하게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그 공간이 서점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서점을 열기로 마음먹었지만, 시작이 쉽지만은 않았다. 막연하기만 했던 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전에서는 마땅히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서점을 준비하던 2017년 하반기는 서울에 독립서점이 붐처럼 생겨나기 시작하던 때다. 서울의 서점학교에 다니며 서점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대전은 물론이고 서울의 독립서점을 방문하며 운영방식 등도 배웠다. 자신이 생각하는 독립서점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정리해 보는 시간이었다. 

   공간을 마련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전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마땅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서점이 위치한 오류동은 이 대표가 생각했던 조건에 딱 알맞게 부합하는 곳이었다. 오룡역이 가까이에 있고, 을지대학교 대전캠퍼스가 인근에 있으면서 대전의 기존 독립서점들과도 거리가 있다. 상권이 발달한 마을이 아닌 탓에 월세도 굉장히 저렴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공간을 찾은 후 페인트칠부터 인테리어까지 이 대표가 직접 진행했다.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탓에 손볼 곳이 많았다. 몸은 고됐지만, 나만의 공간에 나의 꿈을 불어넣는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 대표는 잠시, 서점이 ‘잠시 시선과 걸음을 멈추고 쉴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제가 평생 서점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이 공간은 제가 가지고 있는 꿈을 잠시 펼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서점을 찾는 손님들도 편하게 와서 잠시 머물다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시, 서점’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지난 3월 여러 가지 이유로 서점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4월에 다시 오픈했다. 처음 잠시, 서점을 열었던 곳과는 걸어서 3분 거리로 굉장히 가깝다. 이전에 있던 공간보다 훨씬 넓고 작은 독립공간도 있다. 이곳 역시 페인트도 칠하며 인테리어를 직접 진행했다. 처음 공간을 오픈했을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함께하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이다. 각종 소모임을 진행하는 작은 방 안에는 또 다른 문이 하나 있다. 문을 열고 좁은 계단을 오르면 1평 남짓한 다락방이 나온다. 작은 전등 하나로 밝힌 공간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던 밤이 떠올랐다. 바깥 분위기와는 또 다른 아늑함에 빠진다. 

   “건물 자체가 굉장히 오래된 곳이라 그런지 구조가 되게 특이한 편이에요. 식당을 운영하던 곳이었어요. 처음 잠시, 서점을 운영했던 공간도 다락이 있었거든요. 여기도 다락이 있어서 좋아요. 가끔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와서 책도 읽고, 잠도 자고, 쉬다 가곤 하세요.” 

 

실현하다 

   책장을 보면 책장 주인의 성격과 취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고, 소설만 읽는 사람도 있다. 한 명의 작가에게 마음이 꽂히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 

   독립서점의 책장도 마찬가지다. 서점마다 주인장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물론 비슷한 책도 많지만, 다른 책도 많다. 한참 동안 책장에 책들을 골라 봤다. 다른 서점들에 비해 취미 서적이 많이 보였다. 주인장은 책을 읽고 느낀 자신의 감상에 맞춰 책을 분류했다. 어떤 책은 회사가 가기 싫을 때 보면 좋은 책이고, 어떤 책은 나에게 위로가 필요할 때 좋은 책이다. 

   잠시, 서점의 콘셉트는 ‘취미와 쉼’이다. 평소 무엇이든 배우는 걸 좋아하는 이상은 대표는 서점에서 취미 클래스를 열기 시작했다.

   “제가 뭘 배우는 걸 좋아하는데 학원이나 공방을 다니기엔 좀 부담스럽고 해서 책을 사서 취미생활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사실 하다 보면 금방 질려서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서점을 열면서 ‘끝장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끝장프로젝트는 한 권의 책을 끝내는 프로젝트에요. 혼자 하면 어렵지만 다 같이 모여서 하면 쉽고 재밌잖아요. 취미생활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모여서 함께하는 거예요. 커리큘럼은 제가 직접 짜요. 전에 교육 쪽 일을 해서 제가 커리큘럼은 잘 짜거든요. 교재를 선택할 때 직접 해 보고, 고민을 많이 하죠.” 

   현재 잠시, 서점은 그림, 작곡, 글쓰기, 프랑스자수 등 다양한 끝장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프로젝트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 정도 진행하고 한 권의 책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독학 소모임이다. 지금은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강사와 함께하는 원데이 클래스, 4주 완성 작곡 수업, 캘리그라피 등 취미 수업도 진행한다. 

   취미 수업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을 만났다. 현재 클래스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한다. 어느 날 한 참가자는 “여기에 오면 누구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불려서 참 좋아요”라고 이야기했다. 울컥하는 말이었다. 

   “사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내가 혼자 해내기 어려웠던 일을 내 공간에서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멀리서도 찾아와 주시고, 정말 재미있다고 이야기해 주시니까 책임감도 생기고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기죠.” 

   서점을 시작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동안 상상만 해 왔던 일을 하나하나 실현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이 대표는 이야기한다. 큰 욕심은 없다. 지금처럼 사람들과 복닥복닥하며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 뜨거운 태양은 공간을 따듯한 빛으로 물들였다. 


글•사진 이지선

월간토마토 vol.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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