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 쉬어 가고 싶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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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러 쉬어 가고 싶은 곳

by 토마토쥔장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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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러

쉬어 가고 

싶은 곳

광주 동계로 'LOCAL BOOKS 리을피읖'


황훈주 사진 황훈주, 리을피읖 제공

월간토마토 vol. 147.


   예쁜 건물이야 언제든 생겨난다. 그러나 오래 자리를 지키는 공간은 점점 줄어든다. 빠르게 변화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책방 하나가 문을 열었다. ‘이 힘든 시기에 또?’ 싶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읊는다는 말이 생소한 요즘이다. 네이버 검색창에 ‘읊다’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니 옛 시조만 한가득 나온다. 아무래도 시대에 따라 책 읽는 방법도 달라진 것 같다. 글을 정독하며 읊었던 날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글을 ‘읽다’라기보다는 ‘본다’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빠르고 쉽게 읽기. 요즘의 트렌드이다. 그래서 이 서점이 걱정이다. 이곳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책방은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쉬어 가는 시간,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연다. 장사 시간을 조금이라도 길게 해서 손님을 받기보단 찾아오는 손님에게 더 집중하겠다는 마음이다. 돈을 벌려면 그 흔한 베스트셀러 책이라도 놓아야 할 텐데 그럴 마음도 없다. 손님의 지갑을 열기 위한 예쁜 엽서나 포스터도 없다. 대신 몇 권의 책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옛날 집 특유의 낮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옛날 선풍기가 선반에서 돌고 있다. 광주 동구 동계로의 걷기 좋은 길에 위치한 ‘LOCAL BOOKS 리을피읖’ 이야기다. 

   책방 이름이 리을피읖이다. 오로지 한 글자 ‘읊다’만을 위해 존재하는 받침이 ‘ᄅᄑ’이라고 한다. 받침이 한 글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이 책방은 한 달 동안 하나의 지역출판사 책을 전시한다. 책으로 내가 가 보지 못한 곳을 간접 경험하듯, 이곳에선 내가 쉽게 읽지 못할 지역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책방은 책을 판다는 느낌보단 미술관에서 한 지역출판사를 전시한다는 느낌이다. 리을피읖 책방은 책과 관련된 사진을 전시하고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풀어낸다. 이곳을 운영하는 윤재경 대표는 책방에 들어오는 책과 지역출판사를 이해한 뒤 그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도록 노력한다. 그는 “책을 판다는 것은 출판사뿐만 아니라 책방도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방 건물은 못 해도 50~60년은 되어 보인다. 이전에는 세탁소로 쓰인 공간이라는데 건물 모양을 그대로 살렸다. 그래서 흙벽도, 천장의 나무 뼈대도 다 보인다. 오랜 건물이 주는 특유의 아늑함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공간이다. 윤재경 대표는 이 공간에 들어오면서부터 빨간색과 인연이 깊어졌다고 한다. 공간 여기저기에 있는 빨간색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두 사 온 것이 아닌 절로 인연이 되어 책방에 자리 잡은 것들이다. 아는 선배에게 부탁해서 받은 포스터,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고 작가에게 안부 인사 전하다 선물 받은 작품, 팔리지 않아 여기저기 헤매다 자리 잡은 작품까지 이 공간에 들어오게 된 작품들을 모아 보니 모두 빨갛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작품 들은 원래 자기 자리였던 듯 튀지 않고 각자의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나이 많은 집 안에 여러 사연 있는 작품들이 걸려 있고,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모여 있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여기엔 윤재경 대표가 조곤조곤 공간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이유도 있다. 

   그리 크지 않은 책방이지만 곳곳마다 발길이 머물러 책방에 대해 알려면 시간이 걸린다. 하나하나 책방과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해 주는 윤재경 대표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이곳은 책방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 주는 곳이란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이곳은 계속 이 거리에 남아 지역의 이야기를 전해 줄 것 같다. 단순히 요즘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만한 공간이라서가 아니다. 이야기가 머물고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치 예전 마당을 열어 손님이 마음껏 들어올 수 있었던 집처럼 이곳은 작업실 주인이 모두를 위해 열어 놓은 마당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5월에는 광주 지역출판사 ‘전라도닷컴’ 책들을 전시했고 7월 12일까지는 대전 지역출판사로 월간 토마토가 함께한다. 책을 파는 것은 출판사와 서점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윤재경 대표는 각 출판사와 함께할 때마다 새로운 이벤트를 준비한다. 이번에는 책을 구매하는 분들에게 방울토마토 씨앗을 줄 계획이라고 한다. 여러모로 기대되는 책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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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훈주 사진 황훈주, 리을피읖 제공

월간토마토 vol.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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