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건넨 시집 한 권에 담긴, 그만큼의 다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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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슬쩍 건넨 시집 한 권에 담긴, 그만큼의 다정함

by 토마토쥔장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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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건넨

시집 한 권에 담긴,

그만큼의 다정함

맞배집


사진 이주연

월간토마토 vol. 147.


   맞배집에서는 음식과 술을 주문하면 시집 한 권이 나온다. 술 한잔하기 위해 들른 곳에서 뜬금없이 시집 한 권을 건네받는다면 꽤 당황스러울 것이다. 김우리 대표가 건넨 시집은 그만의 배려다. 음식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특별하게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시를 좋아하는 김 대표의 취향을 공유하는 첫 번째 순간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공유하기 위해 운영하는 맞배집은 김우리, 김다영 대표의 깊은 사유와 진중함에서 시작한다. 단순 공급자와 소비자, 표면적 관계를 넘어 다정히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공간, 다정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 맞배집이다. 

 

다정한 당신들, 다정한 공간. 

   맞배집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건물로 들어서 맞배집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머뭇거렸다. 2층에 도착해 왼쪽 통로로 들어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쭉 들어가면 맞배집이 있다. 맞배집으로 향하는 통로 왼편에는 대안학교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수업하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작고 좁은 길 안에 두 공간이 있는 게 독특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맞배집 대문까지 가는 그 짧은 길이 꽤 복잡하다. 일부러 더 깊숙이 숨어든 것 같다. 

   오픈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간 김우리, 김다영 대표를 기다리며 천천히 2층 통로 곳곳을 둘러봤다. 계단 벽면에는 맞배집에서 진행한 공연 포스터가 빼곡하다. 포스터 한 장 한 장에서 두 사람의 진중함을 읽는다. 

   코르크 보드에 붙여 놓은 메뉴판도 인상적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맞배집의 쓰임을 알려 주는 것만 같다. 보드에 붙은 메뉴판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살짝 들춰 보니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두 대표가 상의해 메뉴를 조금씩 달리하며 세계 각국의 음식을 나름의 솜씨로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메뉴판 상단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맞배집은 호스트가 여행 중 쌓아 둔 것들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것들을 맞배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장님, 손님보다는 서로의 이름을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김우리, 김다영입니다. 다정한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세요.” 메뉴판에 적어 넣은 문구 하나에도 따뜻함과 다정함이 묻어난다. 어색하고 간질거리겠지만, 그럼에도 불러 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한 번의 만남이, 쭈뼛거리며 나직이 부른 이름으로 인연이라는 실을 만든다. 

   먼저 도착한 김우리 대표 안내로 맞배집에 들어섰다. 어둡고 무거운 느낌에 조심히 발걸음 한다. 그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조명은 한껏 특별하다. 각 테이블을 비추는 조명이, 맞배집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오롯한 시간을 내어 준다. 어둠 속 은은한 조명 아래 사람들은 자신에게, 또는 내 앞의 상대에게 집중한다. 

   문을 열어 준 뒤 김우리 대표는 바삐 화분을 햇볕 잘 드는 곳으로 옮긴다. 문득 오픈 준비를 하며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궁금해져 물었다. 매번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은 음악을 트는 일이라고 한다. 그날의 감정 상태, 날씨 등을 고려해 선곡한다. 고심해 노래를 고르듯, 두 사람은 그렇게 하나하나 정성스레 준비하며 맞배집의 하루를 시작한다. 

 

가진 것을 당신들과 나눕니다 

   “여행을 하며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문화적 요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싶었고요.” 

   맞배집을 시작하기 전, 김우리 대표는 같은 이름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었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생각과 마음으로 공간을 운영했다. 김 대표가 여행하며 쌓아 둔 것들을 호스트와 나누는 공간이길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운영하다 많은 것을 나누기에 공간이 협소하다는 생각에 새로운 공간을 알아봤고, 지금의 맞배집을 만들었다. 

   맞배집이 있는 자리는 원래 전통 찻집이었다.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차에 이곳을 둘러봤고, 공간을 보는 순간 김우리 대표 머릿속에 맞배집의 모습이 그려졌다. 약간 턱이 진 안쪽 공간에서 공연하고 바깥쪽에는 사람들이 앉아 그네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 말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공간을 운영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김우리 대표는 혼자서 꼬박 석 달 동안 공간을 꾸몄다. 기존 한옥 분위기를 살려 옛 창호를 그대로 두었다. 바닥에 새로운 타일을 깔고 그동안 수집한 북유럽 고가구로 공간을 채웠다. 공간 속 다른 성향의 요소들은 묘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다.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어려있다. 그런 묘함이 맞배집만의 매력을 더한다. 

   내가 가진 것을 공유한다는 것, 결국은 커뮤니티다. 두 대표는 맞배집을 운영하며 작은 소모임을 진행하고,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하며 좀 더 다양한 것을 공유하고 관계의 밀도를 높여 갔다. 

   이들이 준비한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매달 진행하는 문화행사 ‘연월’이다. 연월은 ‘인연의 달’, ‘연속의 달’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는다. 김우리 대표가 처음 맞배집을 열며 진행한 토크 콘서트를 시작으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했다. 그러다 맞배집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를 아우를만한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은 이름이 바로 연월이다. 매일같이 손님을 맞이하며 행사도 함께 기획하는 일이 힘들만도 하지만, 이들에게 있어 연월은 좋은 원동력이자, 일상의 환기다. 

   “오히려 행사를 준비하면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고 다시금 에너지를 얻죠. 평소 좋아하던 아티스트를 우리 공간에 초대하는 일이기에 팬의 입장에서 준비해요. 기획서 하나도 고심하고 또 고심해 작성하고 진중한 마음과 자세로 아티스트를 초청하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일이에요. 몸집을 키우기보다는 지금처럼 꾸준히 쌓아 가다 보면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날 거로 생각해요.” 

   두 대표에게 있어 맞배집과 이곳을 찾는 이들 모두는 소중하다. 많은 사람이 찾지 않더라도 여행하듯 맞배집에 들러 지친 일상을 툭툭 털고 떠나길 바란다. ‘저기요’, ‘사장님’, ‘손님’이 아닌 거리낌 없이 서로의 이름을 알려 주고 ‘누구누구 님’ 이라 부를 수 있는 다정한 공간. 계속해서 그런 공간이길 소원한다. 

   “꾸준히 가진 것을 나누며, 침투하기보다는 녹아드는 공간이길 바라요. 그저 내가 사는 도시, 동네 안에 ‘맞배집이라는 공간이 있다’라고 정도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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