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마을-구마니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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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여지도 시리즈

우리가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마을-구마니 마을

by 토마토쥔장 2021.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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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시간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마을-구마니 마을

[월간토마토 3월호 대전여지도 中] Part 1.

 

 

오랜 전통 마을 구마니, 역사 속으로

글·사진 이용원

 

구마니 마을 전경

 마을은 절망적인 미래를 담은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한쪽이 힘없이 무너지고 유리창도 모두 깨진 주택이 폭격 후 잔해처럼 남았다. 버려둔 세간과 온갖 생활 쓰레기는 한데 엉켜 공터 곳곳에 산을 이뤘다. 공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골목에는 온기가 모두 사라진 채 차가운 바람만 가득했다. 마을 전체에 쓸쓸함이 가득하다. 주인이 미처 챙겨가지 못한 유치원 졸업 사진과 건반, 부서진 가구 등 버려진 삶의 흔적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갑천 건너 공사 중인 사이언스 콤플렉스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 공사 중이어서 회색빛 덩어리로 보이는 육중한 그 건물까지 더해 주위를 둘러싼 풍광은 한없이 비현실적이다. 유등천을 훌쩍 뛰어넘어 마을 코앞까지 건설한 거대한 다리는 아직 완공하지 않아 그 모습이 기괴하다. 마을 뒤를 지켰던 산등성이에 도로를 닦아 연결해야 비로소 다리는 온전한 제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였다. 서구 둔산동 평송수련원삼거리에서 시작해 대전산업단지 서쪽으로 들어가는 진입도로 구실을 할 한샘대교였다. 2019년 착공해 446억 원을 들여 2021년 말에 준공할 예정이다.

 

 

 이렇듯 눈앞에 폐허로 남은 쓸쓸한 마을은 구마니다. 혹은 구만리라고도 부른다. 대덕구 대화동에 속한 마을이다. 마을이 모두 대전산업단지 재생사업지구로 묶이면서 LH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토지와 건물을 매입했다. 이곳에 지식산업센터, 창업보육센터 등을 도입해 무선통신융합이나 바이오기능소재 등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근로자 주택 및 문화 편의 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불과 몇 달 새 구마니 마을 시계가 멈추고 그동안 쌓인 시간이 희미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2020년 12월 초순에도 사람이 살았다는데, 해를 넘기자마자 2월이 채 다 가기도 전에 구마니 주민은 서둘러 고향 마을을 빠져나갔다. 마을에 큰 영향을 끼친 마지막 변화였다. 1969년부터 1973년까지 제1산업단지,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제2산업단지가 구마니 마을 뒤편 삶터와 농토, 산을 뒤엎고 들어서면서 마을은 큰 변화를 겪었다. 유등천과 갑천에 기대 농사를 짓던 조용한 마을이 산업지역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마근골이나 말랭이, 밤절골(율사동), 토골, 황소와 같은 많은 구마니 이웃 마을이 사라졌다.

 

 

 조선후기 진안현감 등을 지낸 송이창이 1613년 계축화옥으로 파직당하고 고향인 회덕현에 돌아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정자 읍호정도 산업단지 어딘가에 묻혔다. 그 위치조차도 정확히 가리킬 수가 없다.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 속에서도 구마니는 남았다. 온전히 과거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오래 함께 살아온 이웃은 변화에 적응하며 함께 삶을 꾸렸다. 산업단지 조성 후에도 남은 안구마니와 무다리라는 이웃한 마을과 더불어 한마을처럼 지냈다. 산자락에 싸여있던 작은 마을 안구마니는 구마니보다 앞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대전천변도시고속화도로 사무실과 가스충전소가 들어앉았다. 구마니보다 더 유등천 상류 쪽으로 붙은 마을이었다. 무다리는 이번에 LH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매입한 구역에서는 빠졌지만 옛 모습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주민이 떠난 마을에 새치름 남은 건반이 인상적이다

 구마니는 대화동의 뿌리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대전시립박물관 문화재 지명자료를 보면, 1914년 율사동과 법동 일부, 구만리 등을 합해 대화리라 하고 대전군 내남면에 편입했다. 대화리 출발은 1914년이지만 구마니(구만리)는 그 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이후 1963년 충남 대덕군 회덕면 대화리에서 대전시 오정동으로 편입한다. 다시 1983년 동구 대화동으로 분동했다가 1989년 대전직할시 대덕구 대화동으로 바뀐다. 대화동이라는 이름은 한자로 ‘大禾’라고 쓴다. 큰 대자에 벼 화자다. 벼농사가 잘 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유등천과 갑천을 따라 길게 마을을 형성한 안구마니, 구마니, 무다리 마을에서도 주로 농사를 지었다. ‘대화’라는 마을 이름을 만들어낸 벼농사다. 대전천을 더한 유등천이 구마니 마을 남서쪽을 흐르다 갑천을 만나 마을 서북쪽으로 빠져나간다. 풍부한 수량과 간혹 강이 범람하며 만들어냈을 비옥한 토지는 훌륭한 삶터를 꾸리기에 적지였을 터다. 지금은 마을 동쪽으로 산등성이가 옹색하게 남았지만, 개발 이전에는 날씬하게 빠진 산등성이가 제법 든든하게 마을을 지켜줬을 것이다.

 

 주민에게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안구마니 뒤쪽 시루봉에서 흘러내려 온 이 산줄기를 ‘됨비알삐대기’라고 불렀다는 대전시립박물관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위성지도를 보면 더 과거에는 이곳부터 회덕 쪽에 안산까지 산자락이 계속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풍수는 모르지만 구마니를 비롯한 대화동 자연마을은 뒤에 산을 두고 앞에 물을 둔 곳에 들어섰다.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도 한 개가 아닌 두 개다. 여기에 산자락에서 흘러내려온 시냇물 줄기도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 유등천이나 갑천으로 흘러들었다. 

 

-다음 화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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