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숲길을 걷다 시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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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대전의 숲길을 걷다 시를 읽다

by 토마토쥔장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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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숲길을 걷다 를 읽다

詩숲 여행

사진 김연정미



유월 어느 날 새벽그날도 어김없이 숲을 걸었다산책보다 운동에 가까웠던 시간앞서 걷던 아주머니가 걸음을 멈춘다산책로가 끝나고 등산로가 시작되는 지점옆엔 계곡물이 흘렀다너른 돌 위에 두 발을 지지하고 쪼그려 앉는 아주머니오른손을 오목하게 모아 물을 떠 마신다한 번두 번세 번.

먹어도 되나요?

그럼요. 1급수인걸요맛있어요.

따라 마셔본다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거 알아요길을 걷다보면 구간구간 숲 향이 달라요.

 

숲의 향과 맛이라니내가 아는 길과 그녀가 아는 길은 같지만 다른 듯 했다새벽마다 걸었던 계룡산 수통골 행복탐방로산책길에 주고받은 대화는 신선했다숲 향이라시인이 따로 없었다시집 들고 떠나는 대전여행이 시()와 숲을 결합한 숲 여행으로 바뀐 계기였다시인들은 대전의 숲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대전문학관으로 향했다그곳에서 지역을 대표하는 작고시인 박용래와 정훈의 시를 읽었다대전이 소재가 되고 배경이고 공간이 되었을 텐데 숲을 언급한 시는 많지 않았다그러다 大田八景과 대전사랑시선집을 만났다보문산식장산계족산장태산 그리고 계룡산 수통골까지대전 숲에 대한 가 책 속 가득 우거졌다로 읽는 대전은 느낌부터 달랐다산을 굳이 숲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오르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거니는데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산세나 지형이 아니라 풀과 나무에 집중했기 때문이다나무 이파리들의 아우성에 눈 열고물소리와 새소리에도 귀 기울여 볼 것을 권하기 위함이기도 하다와 함께 詩人과 함께.

수런수런 햇빛 마시는 잎파랑이

푸른 보문산에 오르면

햇빛 금가루가 안개처럼 내리고

 

푸른 보문산에 오르면 대천 바닷가 모래알보다 많은

 햇빛 마시는 잎파랑이들이 수런수런 일어서는 소리가 들린다.

 

 -박동규 <보문산에 오르면> 중에서

 

한국전쟁 이후 보문산은 속 알 머리 없는 민둥산이었다참 많은 학생들의 식목일 묘목심기를 통해 오늘의 푸르름을 얻었다고 한다녹음 짙은 울창한 숲에서 사람들은 과거를 추억하고 오늘을 위로받았다햇빛 마시는 잎파랑이가 수런수런 일어날 때 보문산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감정을 깨웠다전민 시인은 해와 달과 크고 작은 별들이 눈 맞춤 하다 마음 맡긴 곳이 보문산이라고 했다유년의 풀꽃청춘의 나뭇가지가 책장처럼 넘어가는비장의 옛 추억을 소환하는 곳이 또한 보문산이다.

숲 여행에 나선 날은 비가 오기 직전이었다덥고 눅눅한 공기를 예상했지만 초여름 보문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나무터널 안에 더위가 머물 자리는 없었다첫인상을 책임지는 주인공은 산딸나무다주차장 가는 길 가로수로 만난 산딸나무엔 흰 꽃이 풍성했다예수 그리스도가 산딸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넉 장의 꽃잎이 십자가를 닮아서 성스러운 나무로 여겨진다는 이야기꽃은 피었다기보다 앉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길이 만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갈라진다보문산 산책길이 그렇다완만하게 걷고 싶으면 오른쪽오르내림도 괜찮으면 왼쪽아무래도 좋으면 다 걸으면 된다단풍나무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전민 시인이 <寶文山>에서 말한 소낙비 깨끗이 씻고 간 여름 숲속의 싱그러움김우열 시인이 <보문산 쉼터>에서 말했던 녹풍의 의미를김우열 시인은 한없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와 그을린 가슴 틔워주는 싱그런 녹풍을 보문산의 으뜸으로 꼽았다느리게 가는 숲의 시간보문산의 버찌는 유월이 되어서야 검붉은 열매를 새들에게 내어줬다가을을 기다리는 초여름 단풍나무는 그늘마저 수줍다이도현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산에 오르면 산처럼 사는 거다

 

육지에 떠 있는 자상한 푸른 섬

여기는 부르주아의 교만이 없다 

여기는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이 없다

생명이 생명을 착취하지 않는다

다만 깊이 쉬게 할 뿐이다

 

 세상의 높고 낮음도 없이 서로의 불평불만도 없이 

위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평등한 흙의 교훈이 있는 곳

 우리가 사모하는 무형의 스승은 나이를 초월한 자상한 마음으로

 

 육지에 떠 있는 하얀 바다를 키우는

 푸른 섬.

 -빈명숙 <식장산 뉴스레터>

오랜 기간 식장산은 시인의 간절한 고백을 들었다보다많은 이들에게 기꺼이 치유의 숲이 되어준 산빈명숙 시인은 산으로 가는 날이 많아지는 것은 마음이 컬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삶이 컬컬한 사람들은 숲의 향기에 취해 어지러운 시간을 잊는다다만 생명을 쉬게 하는 육지 속의 푸른 섬식장산에서.

 

카페가 자리 잡은 오른쪽 오르막길로 가면 전망대세천생태공원으로 향하면 물길 끼고 걸을 수 있는 숲속 산책로가 나온다전망대를 향해 자동차 한 대가 가쁘게 올라가고 있었다예사로 넘겼을 풍경이 詩 무장을 하고 보니 떨떠름했다일찍부터 여러 시인이 숲의 미래를 걱정했다산속으로 질주하는 자가용과 패러글라이더가 날고 있는 산꼭대기 전망대의 변화를김정수 시인은 <식장산 뻐꾸기>에서 남부고속도로 개설로 산자락 잘린 식장산을 이렇게 안타까워했다.

 

식장산 뻐꾸기 소리가 맑고 크게 들려

십여년간 아래 살면서 기다려지는 날이 많아졌다

南部高速道路 개설로 식장산 자락이 잘리고 있는 요즘

뻐꾸기 소리는 불도저 바퀴에 깔려 매일 죽는다 

식장산 初入의 무당집 밤낮없이 올려대던 들린 징소리도 불도저 엔진소리에 묻힌다

오오듣고 싶다 울림 같이 살아 있는 식장산의 뻐꾸기 소리

오오듣고 싶다 더 옥중한 바퀴에 깔리는 사람 같은 사람의 목소리

오오정녕 듣고 싶다 더더 시끄러운 잡음에 묻히는 옳은 생각의 옳은 소리가,

 

 -김정수 <식장산 뻐꾸기>

 

시인의 집은 식장산 아래에 있었다매일 산을 올랐고나 홀로 산행을 통해 사물에 깊이 빠질 수 있었고잔잔한 감동의 맛을 알게 됐다고 했다누군가에겐 산책누군가에겐 산행으로 불리는 숲길 걷기는 비움과 채움의 연속이다걸으며 비우지 못할 것은 없다꺼이꺼이 발걸음이 울면 무장무장 삼켜주고여유 없이 소란하면 바람 한줌으로도 시선 돌려세울 수 있는 곳이 숲이다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으로 단풍나무 보호수가 서 있다. 200년도 더 된 나무의 늘어진 줄기는 초록 동굴을 만들고 말았다주변시선 아랑곳 않고 평상에 누워본다바람에 일렁이는 잎 구름 잎 물결은 차라리 프로파간다빈명숙 시인이 그랬고 김정수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오래된 단풍나무는 사랑하고 누리는 만큼 지켜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나무의 말로 시푸른 를 흩뿌린다.

 

물 위에 서 있는 나무땅에 가로 누운 나무우뚝 선 채 말라버린 나무죽은 나무를 받치고 있는 산 나무까지 식장산의 숲길 풍경은 스산하지만 따뜻하고엉뚱하지만 조화롭다비바람에 쓰러졌을 나무는 끝내 계곡물을 향해 가지를 뻗었다생명이 생명을 착취하지 않고높고 낮음도 없이 다만 쉬게 할 뿐이라는 빈명숙 시인의 뉴스레터는 울림이 컸다그래서 걷기보다 자주 멈출 것을 권한다계곡 물에 손 발 한 번 안 담가 보는 것은 반칙죽은 나뭇가지에서 놀이밥 먹겠다는 아이를 잡아끌어도 역시 반칙깊은 잠에 빠진 늙은 나무는 새싹 미련을 버리고 이끼를 품었다두어 시간을 머물다 돌아오는 길숲에 들어갈 땐 보지 못했던 어린 신나무가 햇볕에 그을려 검게 죽어 있다법복의 염료로 쓰였던 나무죽어서도 흑 빛으로 수행중이다겨울이 오면 다시 식장산을 걸어볼 것이다눈 덮인 겨울 산속을 한 마리 노루처럼 발자국을 내면서 산등성이를 타고  다녔다는 빈명숙 시인처럼 말이다컬컬한 삶도 설설(雪雪)하게 녹을 테지.

 

저문 하늘에 별이 반짝여요

보배로운 산은 이름을 감춰야 했다한 마리 봉황새가 단정하게 앉아 있는 모양의 봉황산은 그렇게 계족산이 됐다대전의 동쪽에 보문산남쪽에 식장산이 있다면 북쪽엔 계족산이 있다이곳에 황톳길이 조성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걷기 여행길한국관광 100선에 세 번 연속 선정됐다황톳길장동산림욕장과 목재체험장 그리고 주말(·오후 230분마다 열리는 뻔뻔한 클래식까지 계족산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숲과 흙의 기운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플라타너스 밑을 지나노라니

어깨를 슬쩍 치는 놈이 있다

 

 누렇도록 야윈 손길 

허리를 들면 머얼리 마주치는 곳 

계족산이 곱게 물들었다

 

실없는 녀석 

내 청춘이 간줄 아는 게지

 

-정훈 <플라타너스 잎새>

 

꾹꾹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들이 숲을 읽는다나무를 키워낸 흙의 시간발아래 열리는 상큼한 깨달음신정순 시인은 <계족산시에서 이렇게 적었다크고 작은 발자욱에 몸체를 맡기고 따가운 소음쯤 새 노래로 착각해도 즐거움이 있다’ 계족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숲에 깃들어 피로를 씻고 숲 향을 입는다조인자 시인의 <계족산 큰 스승>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산을 읽다보면 나무들 푸르름이 살 속 깊이 스며들고 햇살도 달게 달게 스미어 온몸에서 진동하는 꽃향내.’ 나무처럼 살고 바위처럼 사는 일은 쉽지가 않다향기를 입는 것은 더욱 어렵다강신용 시인이 <木尺橋를 지나며읊조렸던 질문이 떠오른다산다는 것은 나를 버린다는 것일까산다는 것은 버려진 나를 찾아다닌다는 것일까

 

저문 하늘에 별이 반짝여요

성돌을 쌓아올리는 청년의 눈빛

날리는 깃발 아래 넘치는 기백이

천년 지나서 노을로 왔어요

 

저녁 연기에 고향 그리워요 

우물터 물 긷는 아시 꽃다운 댕기

곱다란 치마 깃에 흐르는 연정이

금강 건너서 노을로 왔어요

 

계족산 자락에능선에봉우리에

노을이 내려서 그리움을 지어요.

 

 -리헌석 <계족산 저녁노을>

계족산에 이어 찾은 곳은 계룡산국립공원에 속한 수통골이다비 내리는 오후 수통골을 찾았다는 이선 시인은 작은 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보며 이렇게 읽고 썼다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까입도 없는 것이 목울대를 빳빳하게 세우고 돌부리에 머리를 박으며 거품을 물고 고함친다.’ 새벽 수통골은 날마다 새롭다. 4월엔 물안개 사이로 어린잎들을 내보이는가 싶더니 5월이 되자 무성해져 버찌의 노래를 부른다때죽나무 꽃이 지면 산딸나무 꽃이 핀다산딸기에 질 세라 뱀딸기 입술이 붉게 익어가는 계절나는 지금 초여름 숲길을 걷고 있다.

 

한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붕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중국집 처마밑 鳥籠 속의 새였다가

먼 먼 윤회 끝 

이제는 돌아와 

오류동의 동전.

 

 -박용래 <오류동의 동전>

 

혼탁한 절망켜켜이 쌓인 감정 속에서도 고운 시선 하나 쯤 주워오는 기쁨숲 여행길에서 호흡을 가다듬는다는 숨이다삶이다한때 나는 땅을 향해 피는 때죽나무 흰 꽃이었다가그 꽃이 앉은 질경이였다가생강나무 여린 잎으로 흔들렸다가산수국이 되었다가 이제는 돌아와 수통골의 아침을 읽는 마침내 시인이어라

 

 

 월간토마토 vol.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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