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굳센, 소박하지만 열정적인 창원 공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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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작지만 굳센, 소박하지만 열정적인 창원 공간들

by 토마토쥔장 202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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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굳센소박하지만 열정적인 창원 공간들

로그캠프와 무하유

글 사진 이서후

 

성장을 준비하는 예술가를 위한 대안공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사림동 주택가에 있는 로그캠프는 창원에서 유일한 대안 전시공간이다창원대학교 기숙사 쪽 후문을 빠져나와 쭉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갈색 벽돌 건물이 보인다그 건물 모서리 낡은 알루미늄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온통 하얀 벽으로 된 자그마한 전시장이 있다.

로그캠프는 2017년 창원대 미술학과 10학번 동기 장건율, 박준우, 방상환 작가가 함께 만들었다당시 창원에 자신을 포함해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작가들이 마음껏 자신의 작업을 내걸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원에서 우리가 뛰어놀 공간이 없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어요공간에 대한 결핍이 항상 있었죠젊은 예술가가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림동을 온통 돌아다니며 찾은 게 지금 로그캠프 자리다원래는 대학생들이 애용하던 슈퍼가 있던 곳이었다.



로그캠프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 '디아블로 2' 1막에 등장하는 마을이자 게임 시작 지점이다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캐릭터가 처음 머무르는 장소이자 성장의 초석을 다지는 공간이다.

"게임 속 캐릭터들이 다양한 출구를 가진 로그캠프에서 자신만의 방향성을 찾아가듯이젊은 예술가들이 긴 여정의 채비를 점검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죠로그캠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우리 사회랑 비슷하게 몬스터 잡고 경험치도 올려야 해요로그캠프는 캐릭터가 밖으로 나갈 채비도 하고 마을 사람들 만나서 캐스트 받고 정비를 하는 공간인데 대안공간 로그캠프도 예술가들한테 그런 공간이었으면 해요."

그래서 로그캠프에서는 문턱 높은 미술관의 권위주의나화랑 갤러리의 상업주의가 아닌 실험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데 중점을 둔다예를 들어 2019년 6월에 열린 노순천이수진유가영의 '그리기 그리기 그리기'전 같은 전시다조각과 드로잉을 하는 노순천 작가를 빼고 나머지는 두 명은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온 이들이 아니다다만그리는 일을 통해 기쁨을 얻고부끄러운 내면을 드러낼 수 있었기에 전시까지 할 용기를 냈을 뿐이다.

원래는 이수진유가영 2인 전시를 계획했다가다들 전시가 처음이라 전시 경험이 있는 노순천 작가도 함께하게 됐다노 작가가 두 달 정도 이들의 그림을 가르쳤기 때문이다이들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나 방식의 순수함에 노 작가 자신이 감동한 이유도 있다.

"저는 미술을 전공하긴 했지만사실 졸업하고서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어요세상에는 잘 그리는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그래서 그림을 그릴 용기도자신도 없었어요하지만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했어요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그림을 꼭 잘 그려야 하나그냥 내가 즐거우라고 그리면 되지 않을까그때부터 혼자 사부작사부작 그린 그림들입니다." (이수진)

"원래 무의식적으로 선을 잘 그었어요불안한 마음이나자격지심을 반성하는 글 같은 걸 자주 쓰는 편인데글 옆에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선을 긋다 보면 어떤 형태가 나오기도 하고요사실은 말이 안 되는 그림이라고 생각도 하지만그런 걸 모아 보다 보면 내가 잘 몰랐던 나 자신이 이렇게 표현되는구나 싶고그런 걸 더 알고 싶기도 해서 계속 그렸던 거 같아요." (유가영)

이 외에도 로그캠프는 수많은 젊은 작가를 발굴해 전시를 했다부산이나 대구 지역 다른 공간과 교류전도 더러 열었다.

한창 자신의 작업 방향을 찾는 젊은 친구들의 작품이 내걸리기에 다양성재치 등 재밌는 구석이 많다이런 부분이 실제 예술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여러모로 자극을 주기도 한다창원대 교정과 가까워서 문화예술계열 학부생들이 수시로 공간을 찾았다때로 미대 교수들도 전시 기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학생들과 함께 와 둘러보기도 했다

비영리 목적인 대안공간이어서 때문에 입장료나 대관료는 없다전시 작품이 팔렸을 때 갤러리에서 가져가는 수수료도 없다세 작가가 스스로 돈을 벌어 운영비를 충당해야 했다의욕적으로 시작했으나 한창 활동을 많이 해야 할 젊은 작가들이 자기 작업을 하면서 전시 기획까지 하기가 녹록지 않았다지난해 말에는 진지하게 문을 닫을 고민까지 했다다행히 올해부터 창원시 청년 공유공간 지원사업 '창원형 청년꿈터'에 선정되어 임대료와 운영비활동비를 지원받고 있다.

지금은 처음 공간을 만든 세 작가 중 장건율방상환 작가가 빠지고박준우 작가와 새로 합류한 젊은 작가들이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지난 5월 열린 창원대와 동아대 미대 출신 작가 교류전 '덴 오브 이블'은 새 운영진이 어떤 마음으로 공간을 운영하는지 잘 보여주는 전시였다.. 

덴 오브 이블 역시 로그캠프 처럼 디아블로 2에서 가져온 개념이다로그캠프가 게임의 시작지점이라면 덴 오브 이블은 첫 번째 임무를 말한다전시 제목 자체가 로그캠프가 다시 의욕적으로 운영을 시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야."

전시 공지에 적힌 이 말이 선뜻 와 닿는 이유다젊은 작가들의 치기 어린 선언 같기도 하지만어찌 보면 이 또한 삶의 지독한 진실이기도 하다로그캠프 전시는 지금도 이런 젊음이 가득하다.

 

서점, 옷가게, 갤러리가 공유하는 지하공간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 주택가에 지하에 있는 무하유(無何有)는 여러모로 톡특한 공간이다. 부산 사람 이인영 씨가 운영하는 독립서점 '업스테어' 창원에 사는 일본인 이노우레 리에 씨가 운영하는 빈티지 옷가게 '리틀 버드 빈티지' 그리고 노순천 조각가가 운영하는 '한 점'이란 갤러리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칸막이도 따로 없이 전체를 하나의 공간처럼 쓰는 게 독특하다. 

무하유 내 작은 전시 공간 한 점은 말 그대로 작품 딱 한 점만 설치한다는 뜻이다빈티지 옷가게는 경상도 사투리가 유창한 일본인 사장이 주로 일본에서 직접 상품을 구해와 판매한다

독립서점 업스테어는 셀렉트 북숍(Select Book shop)이자 소품과 음료도 파는무하유 전체적으로 보면 커뮤니티 공간 노릇을 한다업스테어에서는 단순히 인기가 있다거나 유명한 작가라는 이유로 판매할 책을 선정하지 않는다판매대에 올려진 책은 대부분 서점 주인의 주관적인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들이다매우 낡았지만 뭔가 느낌이 있다거나독일어로 적혀 있어 읽을 수는 없지만 가치가 있다거나새책이라도 책 내용과 디자인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거나 하는 식이다.

업스테어는 원래 부산 중구 인쇄 골목에 있던부산에서도 나름 알려진 작은 서점이었다하지만인영 씨 몸이 아프면서 문을 닫고 쉬고 있다가 창원에 친한 지인들이 공간을 연다는 말을 듣고 합류했다.

"부산에서 할 때보다 개념은 더 커졌고책은 오히려 줄었어요일반적인 책은 이미 살 곳이 아주 많잖아요저도 사실 인터넷으로 책 사요작은 서점은 오히려 더 작아져야 한다고 봐요더 전문적이거나 더 주관적으로 가야 한다는 거죠여기 있는 책들은요진짜 제가 개인적으로 아끼는 거예요." 

무하유는 매주 금·토·일요일 3일만 문을 연다. 실험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이상적인 영업시간이다그러면서 세 곳이 함께 또는 따로 음악 공연강연전시독서모임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기도 한다.

무하유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줄인말이다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인데어떠한 인위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낙토를 뜻한다그래서일까무하유에서 열리는 행사는 주로 환경 문제나 편안한 휴식채식주의와 관련이 많다.

예컨대 지난해에는 환경 관련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내는 예술가와 환경 전문가들을 초대해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나누는 프로그램 '루프 포레스트(LOOP FOREST)'를 진행했다구체적으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이 강연을 했고경남 밀양에 사는 안시형 작가가 고물상에서 주운 밥통과 폐차장에서 발견한 녹순 자동차 부품 등에 이끼를 키운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중고책을 교환하는 헌책 마켓도 열렸다.

무하유는 지하에 있지만 알루미늄 미닫이문을 열고 내려가면 뜻밖에 공간이 환하고 넓다지면과 같은 높이에 걸쳐진 작은 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기 때문이다그렇게 들어온 햇살은 공간 자체를 따뜻하게 물들인다.


월간토마토 vol. 159

로그캠프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roguecamp/?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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