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과 시작, 그 사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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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끝과 시작, 그 사이의 이야기

by 토마토쥔장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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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사이의 이야기

정현구 사진 정현구/커넥티드컴퍼니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캐스트 이미지 (위: 배우 손상규, 아래: 배우 윤나무)

 

2021년 6월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가 재상연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2019년 12월, 9일간 상연하며 전석 매진을 기록한 바 있다.

이 연극은 교통사고로 코마에 빠진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클레르에게 이식되는 사이의 24시간을 그린다. 흐름은 소설과 같다. 하지만 300쪽에 달하는 책을 100분으로 압축하기 위해 여러 인물을 생략했고, 표현도 간결해졌다. 예를 들어, 시몽 랭브르의 동생은 소설 속에선 등장하나, 연극에선 생략했다.

이 연극에서 제일 이목을 끄는 점은, 단 한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일인극이란 것이다.

 

6월 9일, 오후 8시 무대에서는 배우 윤나무가 극을 이끌었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포스터

연극을 보기 위해 오후 4시에 무궁화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조금 걸어 내려와 502번 버스를 탔다. 그리고 두 정거장 지나 시청 앞. 왕복 8차선을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를 건너고 덕수궁 돌담길이 나올 때까지 걷는다. 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가의 가사를 따라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정동길을 걸었다.

정동극장에 도착해 티켓팅부터 입장까지, 모든 과정은 신속, 정확, 간결했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 극장의 입구에서 온도 체크와 손 소독, QR 체크를 진행했고, 이어지는 티켓 수령과 입장까지 안전거리를 지키며 물 흐르듯 부드럽게 이어졌다. 마치 회전목마의 목마가 도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대기실에 앉아 멍하니 그 모습을 봤다. 잘 짜인 동선과 절차는 시선을 머물게 하는 힘이 있다. 대기실 입구 반대편엔 상연할 연극의 배우를 알리는 안내판이 입구와 마주 보고 있고, 그 오른편엔 관람객의 인증을 위한 포토존이 있다.

“연극 도중엔 화장실 이용이 불가합니다.”라고 말하는 안내원의 말에 화장실에 들렀다. 화장실은 상연관을 보고 왼쪽에 있다. 옅은 상아색을 주로 사용한 인테리어 탓에 투명한 병에 3부 정도 들어 있는 녹색 세정제가 눈에 띄었다.

배우 손상규 공연사진(제공: 프로젝트그룹일다)

화장실을 나오니 8시 10분 전이었다. 검표하는 관계자를 지나쳐 검고, 깊은 극장으로 들어갔다. 계단은 가팔랐다. 어두운 주변 때문에 높이를 가늠하기 힘들어 더 가팔라 보였다. 자리는 맨 앞에서 두 번째. 사진촬영은 일절 금지였다. 부채꼴 모양으로 좌석을 배치했고, 모서리엔 무대가 있었다. 무대 높이는 1미터가량이었다. 가로로는 7미터가 족히 넘어 보였다. 뒤쪽으론 사다리꼴 모양으로 기울어진 벽이 있어 무대가 실제보다 커 보이는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남은 자의 이야기

 

이 연극의 주인공은 특정하기 힘들지만, 굳이 뽑자면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다. 인물이 아닌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중심이 되어 얽히고설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마치 주인공인 것처럼 제일 먼저 등장하는 심장의 주인공은 서핑 후 교통사고로 뇌사에 빠진다. 극의 남은 시간은 그의 심장이 심근염 환자, 클레르에게 이식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시몽의 나빠져 가는 상태를 부모님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사와 이야기를 듣고 절규하는 부모님. 장기 적출과 이식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 속 인물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각자의 이야기와 감정을 풀어낸다. 시몽의 이야기는 갈수록 희미해지고, 남아있는 자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간 첫 기회를 잡아 기뻐하는 감정의 대비와 교차. 장기이식이라는 단어로 퉁치기엔 그 속에 꿰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했다.

 

작은 거인

 

연극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배우 한 명이 연기하는 일인극이다. 극 중 흐름을 설명하는 내레이터를 포함하여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배우가 연기한다. 연극의 처음, 서핑하며 생기를 뿜어대는 시몽 랭브르는 곧이어 뒷짐을 지고 목소리가 잠긴 의사 피에르 레볼이 된다. 인물 간 대화가 호흡이 짧은 부분은 녹음된 음성을 사용해 호흡을 맞춘다.

일인극을 보는 건,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 넓은 무대를 100분간 쉬는 시간 없이 혼자 끌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극이 시작되고 곧 그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았다. 홀로 무대 위에 선 윤나무는 물리적 공백을 축지법을 쓰듯 뛰어다니며 메꿨고, 과장된 말투와 표정으로 대사를 소화하며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는 관객의 이목을 본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시선뿐 아니라, 본인이 극 중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해 감정 역시 이끌었다. 배우가 웃으면 관객도 웃었고, 배우가 울면 관객도 울었다. 마치 숙달된 마술사처럼 관객의 호흡을 조절했다. 배우 외에도, 다양한 장치가 몰입감을 더했다. 서프보드로 사용한 검정 금속 프레임의 책상은 상황에 따라 침대가, 수술대가, 너저분한 사무실 속 책상이 되었다. 필요하면 같은 톤의 걸상도 등장했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시스템과의 호흡. 마치 초능력으로 직접 조정하는 듯 일심동체로 움직이는 조명은 날카로운 메스 끝 날카로운 빛이, 여닫히는 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줄기가 되었고, 배우의 이곳저곳을 비추며 심리를 과장해 표현하는 역할도 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배우 윤나무 공연사진 (제공: 프로젝트그룹일다)

나도 그 마술에 흠뻑 빠졌다. 제일 인상 깊은 것은 극의 시작, 시몽 랭브르의 서핑 장면이다. 윤배우는 서핑하는 장면에서 시몽의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포효에 가까운 탄성을 내지르며 너무 기쁜 나머지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파란빛의 조명은 배우의 뒤에서 배우를 비추며, 그에게 후광을 더했다. 배우에게선 유토피아를 발견한 것 같은 순수한 기쁨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광대가 팽팽해짐을 느꼈다.

 

누군가 새 삶을 얻고 누군가는 소멸하는 과정을 보며 문득, 내 삶이 비쳤다. 순식간에 사그라진 시몽을 보며 아등바등하는 삶이 안쓰럽기도 했고, 찢어질 듯 절규하는 부모님을 보며 감사하기도 했다. 다양한 감정이 오가니, 주마등이 흘러가듯 번쩍였다. 연극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마치 심장이 나에게 이식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많은 감정이 과장되어 느껴졌다.

비로소 도착한 연극의 끝. 조명이 꺼진 순간 둘러본 주변은 다양한 감정이 혼재했다. 내 좌석 주변의 다른 관객 중 하나는 눈물을 닦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연극 속에 아직 빠져있는 듯, 고개를 주욱 빼고 있었다. 나는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박동하는 심장의 울림을 찾기 위해 흉곽 왼쪽 위를 더듬었다. 다시 불이 켜지고, 커튼콜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쳤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심장 박동을 손끝으로 더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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