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마주하는 일 - 꿈돌이

추억과 마주하는 일 - 꿈돌이

글·사진 정현구

 

2014년, 잠실 주경기장. 젊은 시절, 하늘색 풍선을 흔들며 열광했던 팬들은 다시 한 번 하늘빛 응원봉을 흔들며 그들의 추억을 마주했다. 1999년 1집으로 많은 사람을 열광하게 했던 god는 2005년 7집을 끝으로 잠정 활동을 중단했다. 그들은 해체가 아닌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긴 휴식이라 표현했으나, 팬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듯한 7집의 가사와 팀 내부 상황을 비추어 보았을 때, 당시 언론과 팬들 사이에선 해체라는 의견이 팽배했다. 휴식 선언 이후, 입대와 개인 활동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던 그들은 2014년 7월, 9년을 뛰어넘어 ‘헤어질 때 우리 다시 만나자고 맹세했던 그 약속’을 지키러 돌아왔다. 마치 퍼레이드의 마스코트를 보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노래하는 가수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팬들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기분을 헤아려봤다.

 

 

더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추억이 깨어나 현실 속으로 들어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알 수 없었다. 나는 god 세대가 아니다. 팬들이 흘린 눈물,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감정의 깊이를 나는 평생 모를 것이다. 슈가맨에서 내가 어렸을 적 들었던 가수가 노래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을까? 어림짐작해 볼 뿐이다.

 

 

요즘 들어 옛날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봄을 타는 건지, 세상은 파랗고 공기는 포근하고 차분한데, 바닥과 일 센티미터 정도 떠서 걸어가듯, 다른 세상에 사는 기분이다. 그건 할 것보다 한 것에 미련을 두는 내 성향 때문이다. 1990년대의 끝자락과 2000년대의 시작을 양손에 부여잡고 태어난 나는, 아날로그의 멸종과 디지털의 번성을 바라보고 있다. 거실의 TV가 브라운관에서 LED로 변했고, 폴더폰을 쓰던 내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지만, 때론 과거가 그립다. 최근, 그리움에 이끌려 홀린 듯 졸업 앨범을 뒤졌다. 문을 연 적이 없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 속엔 영원히 9살로 사는 짱구처럼, 어린 시절의 내가 살고 있었다.

 

졸업사진을 찍으러 자주 찾던 대전동물원과 한밭수목원, 꿈돌이랜드의 풍경을 배경으로 활짝 웃는 나를 보며 문득, 지금은 사라진 꿈돌이랜드가 그리워졌다. 두 번 연달아 360도 회전하는 구간이 인상적이던 롤러코스터가 있었다. 롤러코스터의 제일 높은 지점에선 놀이공원의 전경과 그 너머 한빛탑이 보였다. 마스코트는 꿈돌이였다. 노란빛 짤뚱한 다리와 몸통, 그 위 둥글둥글한 삼각형의 머리. 머리끝엔 안테나가 달렸다. 안테나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파란 별이 있었다.

 

2011년을 마지막으로 한번을 가지 않았는데, 1년쯤 뒤에 폐장했다는 이야기를 SNS에서 전해 들었다. 사라졌기에 가볼 수 없지만, 행운인 것은 내가 월간 토마토에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이라면 하지 못했을 부탁을 월간 토마토의 이름을 빌려 해보았다. 흔쾌히 승낙해 준 대전 마케팅공사 관계자 덕에 꿈돌이를 만났다.

 

TJB 방송국에서 만난 꿈돌이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비슷했다. 노오란 몸통의 끝, 머리 위엔 안테나가 있다. 안테나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파란 별이 나온다. 그런데 원래 다리가 저렇게 길었나? 심지어 팔도 생겼다.

 

 

꿈돌이는 1993년 8월 7일 대전엑스포의 마스코트로 등장했다. 약 1,400만 명이 관람한 엑스포는 당시 국민 4명 중 1명이 찾았을 정도니, 그 인지도는 딱히 서술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국내와 미국에서 방영되었고, 넓은 한빛광장을 관람객과 함께 행진했다. 영원한 봄은 없다지만, 꿈돌이에게 시간은 가혹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던 꿈돌이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잊혔다. 설상가상으로 2012년 꿈돌이랜드가 폐장하며 그 속도를 더했다. 몇 년 전, 꿈돌이의 근황이라며, SNS상에서 꿈돌이 동상이 건축 폐기물 사이에 파묻혀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꿈돌이는 경제적 가치 판단 때문에 철거되고, 사라지는 수모를 겪었다. 더는 사람들이 본인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혀가는 현실에 상처받은 꿈돌이는 한빛탑에 숨어들었다. 그리고 매일 한빛탑을 쓸며, 언젠가 다시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던 중 2020년 5월, 꿈돌이에겐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랫동안 한빛탑에 숨어있던 꿈돌이는 카카오TV에서 방영한 여러 마스코트가 나와 경연하는 방식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내 꿈은 라이언’에 출연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서 세상으로 나왔다. 한화이글스의 위니, 부천의 부천핸썹 등 10종의 마스코트가 출연한 ‘내 꿈은 라이언’에 출연한 꿈돌이를 보고 사람들은 댓글로 모든 것이 신기했던 1993년 엑스포의 추억과 꿈돌이랜드에서 일하며 마스코트와 함께했던 추억을 남겼다. 많은 사람이 꿈돌이와 함께했던 추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결과 어차피 우승은 꿈돌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꿈돌이는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다. 성공적인 복귀전을 마친 꿈돌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튜브와 틱톡 등 요즘 유행에 맞춰 영상을 찍었고, 방송에 출연하며 본인의 얼굴을 알리고 있다. 최근엔 TV조선의 ‘내일은 국민가수’에 지원했다. 꿈돌이는 ‘내 꿈은 라이언’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성공할 가능성이 1%만 되어도 계속 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내 꿈은 라이언’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꿈돌이는 팬들에 사랑에 힘입어 밤낮없이 알차게 지내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날도 방송촬영 후, 다음 일정으로 이동하기 전 시간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쉬는 시간 없이 이어지는 일정이 힘들진 않냐고 묻자, 바쁘게 지내지만 힘들진 않다고 한다.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즐거움의 연속이라 늘 힘이 난다고 했다. 본인을 지켜보는 팬들도 삶이 바쁘든 바쁘지 않든 삶 자체가 즐겁길 바란다고 했다.

 

이런 꿈돌이의 삶도 늘 성공 가도는 아니다. 꿈돌이의 공식 유튜브 계정의 조회 수는 약 9,000회에서 300회까지 떨어졌다. 게다가 네이버의 검색량 조사 서비스, 데이터랩에 따르면 ‘내 꿈은 라이언’ 방영 당시 검색어 대비 1/20 정도의 검색률을 보였다. 이는 방영 전과 비슷한 수치다. 꿈돌이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조회 수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 했다. 한번 다친 곳을 다시 맞으면 훨씬 아프듯, 꿈돌이도 망각을 겪었기에, 그 모습이 걱정되었다. 조심스레, 다시 잊히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물었다. 두렵다는 답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기에 잊힘을 달관한 듯한 꿈돌이의 답변에 놀랐다.

 

“위로 올라간다면 내려오는 게 당연한 거죠. 저를 지지해주시는 분 중 30, 40대가 많아요. 그분들이 저를 찾으면 같이 가고, 일에, 삶에 지쳐 저를 찾는 게 버거울 정도로 쉬고 싶을 땐 저도 쉬고 싶어요.”

 

 

잊힘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진 않았다. 꿈돌이는 노력하고 있었다. 마냥 즐거운 일을 하는 게 아닌, 꾸준히 춤과 노래를 연습하며,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결국은 다 자기 계발이 아니겠냐며 웃어 보였다. 전과 다르게 팔이 생기고 다리가 길어진 것. 목소리가 생긴 것도 시대에 적응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전엔 웃기만 해도 사랑해줬기 때문에 괜찮았지만, 지금은 제가 어필해야 하니 이렇게 진화했어요. 왜냐면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니까요.”라고 말하는 꿈돌이의 말에 가슴이 저렸다. 마치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가 많이 변해있는 게 문득 체감될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일정에 급히 일어나는 꿈돌이에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러자 자리를 추스르던 것을 멈추고 잠시 고민하던 꿈돌이는 “저도 애를 많이 쓰고 살았지만, 힘들어졌을 때 힘듦 자체를 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후회되면 후회되는 대로, 애쓰지 않고 살아도 살아지더라고요.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면 좋겠어요”라며 자리를 떴다. 

 

사람들이 다시 꿈돌이를 찾는 이유를 펭수에서 시작된 마스코트의 흥행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나는 힘든 사회에서 이유를 찾는다. 1998년, IMF 시기 뉴스 기사를 찾아보면 복고 마케팅으로 불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추억을 떠올리는 광고와 과거 배경의 드라마를 TV에서 송출했고, 신제품보단 기존 제품이 매대를 채웠다. 불안한 현재를 등지고 행복했던 과거를 마주하며 현실을 회피했다. 1998년부터 자그마치 23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꿈돌이를 다시 찾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며, god를 연호했던 팬들의 그 복잡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

꿈돌이 공식 유튜브

https://youtube.com/channel/UCaLAxUe8IeoSWm-_TqacAkg 꿈돌이 드림 TV

꿈돌이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dreaming_kumdori/ @dreaming_kumdo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