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한 개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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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시대의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한 개비 향

by 토마토쥔장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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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피해자들에게 보내는 개비  

연극 <그을린 사랑>리뷰

 

정현구 사진 대전예술의전당 제공

2020년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 벌써 2년째다. 요식업계엔 피바람이 불었고, 여행과 항공업계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파산의 고배를 마셨다. 학생들은 교실이 아닌 모니터 속 ZOOM으로 등교했다. 코로나19가 휩쓴 자리엔 깊은 상흔이 남았다. 실직자와 폐업자가 속출했고, 초등학교 저학년의 언어 발달과 학업 수준이 1년 이상 뒤쳐졌다는 기사도 보도됐다. 모두가 시대의 피해자가 됐다. 

2021년 7월 2일에서 4일,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홀에서 상연한 <그을린 사랑>도 시대의 피해자 이야기다. 연극은 그 인물이 겪은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건네지만 나는 피해자 그 자체에 집중했다. 

<그을린 사랑>은 와즈디 무야와드의 희곡, <화염>이 원작이다. <그을린 사랑>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일어난 1차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채택한 만큼 이 연극은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배경이 된 레바논 내전에 대해 알고 있다면 극의 몰입에 도움이 되지만 알지 못해도 괜찮다. 연극도 특정 시간을 언급하지 않으며 역사와 거리를 뒀다. 역사가 배제되니 피해자와 참혹한 모습이 돋보였다. 

연극의 줄거리는 나왈 마르안이라는 인물의 유언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유언의 내용은 딸 잔느는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에게, 아들 시몽은 생전 알지 못했던 형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는 것이다. 

두 자녀는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나왈의 삶을 거슬러 오르며 그 두 사람과 접점을 찾는다. 나왈은 이야기의 핵심 인물로, 전쟁의 피해자다. 전쟁 후 타지로 이주해 정착했지만, 죽기 전까지 전쟁의 그림자 속에 살았다. 

연극은 나왈이 살아있을 때의 시점과 두 자녀가 나왈의 흔적을 추적하는 시점. 두 모습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관객들이 마주하는 나왈의 첫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는 모습이다.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행복과 축복이 가득한 모습과는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종의 이유로 도망치듯 떠나야 하고, 가족은 임신 사실을 부정하며 나왈에게 아이를 입양 보내든 모든 것을 놓고 집을 떠나든, 결정을 강요한다. 

 

벌거벗은 채로 내 곁을 떠나, 제 배와 그 애가 지는 삶과 함께.
아니면 남아서 무릎을 꿇어라, 나왈, 무릎을 꿇어. 

 

결국 나왈은 아이를 떠나보낸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널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는 말을 외치며. 

아이를 떠내 보낸 나왈은 삶을 놓아버린 듯 시간을 보낸다. 그에 나왈의 할머니, 나지라는 이 고통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선 배워야 한다며 고향을 떠나 공부하라는 말을 건넨다. 그리고 마을에 아무도 쓸 줄 아는 자가 없었기에 본인의 흔적은 사라질 것이라며, 돌아와 묘비에 이름을 새겨달라고 한다. 

 

이곳을 벗어나라. 읽고, 쓰고, 셈하고, 말하는 걸 배워. 생각하는 걸 배워라. 나왈, 배워야 한다. 

 

몇 년 뒤, 나왈은 할머니의 말마따나 읽고, 쓰고, 셈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걸 배웠다. 할머니의 부탁을 지킨 뒤, 글을 가르쳐 달라는 동료, 사우다와 함께 떠나보냈던 자식을 찾아간다. 

자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보육원은 이미 텅 비어있었다. 남은 사람에게 행방을 물으니 난민이 들어왔고, 정착을 거부한 원주민과 전쟁이 일어났으며 보육원에 들이닥친 난민이 갓난아이까지 모두 잡아갔다고 했다. 그에 나왈 일행은 난민촌으로 가는 버스로 향하고, 이어서 1막의 제일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우리에게 휘발유를 뿌려댈 때, 내가 외쳤어. “저는 난민 캠프 사람이 아니에요, 난민이 아니라고요,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들이 제게서 빼앗아 갔던 아이를 찾고 있어요!” 그랬더니 그들이 날 내리게 했어, 그리고 총을 쏜 거야, 순식간에, 정말 순식간에, 버스가 불타 버렸어, 버스가 그 안에 있었던 모든 이들과 함께 불타 버린 거지, 노인들, 아이들, 여자들, 모두와 함께 불타 버렸어! 

 

나왈의 아이를 찾기 위한 여정은 전쟁 속으로 그녀를 끌어들인다. 위에 언급된 버스 사건은 나왈이 목격자에서 피해자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이후, 나왈은 20여 년간 아이를 찾아 헤매며 전쟁에 가담한다. 글을 쓰고 사상을 주입한다는 이유로 본인을 추격하는 세력 때문에 가죽과 동료가 죽어가는 모습을 봤으며, 여정의 끝에선 수용소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한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의 아들을 찾기 위한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타지에 정착했지만, 매일같이 아들을 찾기 위해 조금이라도 관련돼 보이는 재판엔 전부 참석했다. 그리고 죽기 5년 전, 비로소 아이를 찾지만, 그 아이가 본인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임을 알게 되고, 이후 그 아이와 두 자녀에게 편지를 남긴 후 삶을 마감한다.

전쟁의 파장은 두 자녀의 삶에도 들어앉았다. 나왈은 재판소를 다니느냐 아이들을 등한시했고, 충분히 사랑해주지 않았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두 자녀는 전쟁 중 수용소에서 성폭행 피해로 탄생한 아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이야기의 진행을 도와주는 듯했던 두 인물도 비극의 중심으로 빨려 든다. 나왈이 찾던 아이가 두 자녀의 아버지이자, 형인 셈이다.

나왈은 두 자녀에게 구태여 편지를 전하게 하여 본인이 그들을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속죄하고, 본인을 고문했던 아이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이 이야기는 비극이다. 행복의 모습은 짧고 파편적으로 나열된 반면 비극은 길고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 저절로 연상될 정도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행복한 시간보단 버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식이다.

행복이 비극의 전개를 위한 장치로 보일 정도다. 이는 신유청 연출가는 무대장치를 최소화하며 비극적인 모습을 극대화했는데, 시선을 배우에 고정시키고, 대사와 표정으로 상황을 묘사하여 관객들이 인물의 절규하는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묘사를 상상하게끔 유도했다. 그리고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 홀 무대 뒤편의 넓은 공간을 장면에 따라 가렸다, 열었다 하며 그 공백을 절묘히 조절했다. 특히 인물이 비극을 구술할 땐 공간이 양껏 넓어져 마치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느낌을 주었는데, 그럴 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자칫 관객이 지칠 수 있는 부분에선 시점이 전환됐다. 관객들이 숨을 집어삼킬 땐 어김없이 두 자녀의 이야기가 등장했고, 연극에서 제일 충격적인 장면인 버스 사건 뒤엔 인터미션이 배치되며 관객의 호흡을 끌어갔다. 

 

연극 

 

나왈이 겪은 전쟁 속 사람들은 가해자 되었다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곧 가해자가 됐다. 피해는 작은 곳에서 점점 번져갔다. 끝을 알 수 없는 굴레는 마치 연못에 던진 돌멩이가 만든 파장처럼 멀리, 넓게 퍼졌다. 연극은 그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줬다. 

연극을 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흐느끼는 소리였다. 사방에서 관객들은 수시로 질식할 듯 숨을 집어삼켰고, 내뱉으며 울음을 흘렸다. 연극 전에 간만의 문화생활에 들떠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1부와 2부 사이 쉬는 시간엔 한숨소리와 힘들었다는 말로 변했다. 나 역시 연극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배우들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없었다. 

2021년에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상연한 <그을린 사랑>은 사실 2020년 상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의 확산으로 취소되었고, 반년이 지나서야 무대에 올랐다. 연극은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 피해를 다루지만, 곱씹을수록 피해자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문득, 전쟁은 개인이 선택하지 않은 일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을린 사랑은 버거운 이 시대에 보내는 한 개비의 향 같았다. 우리에게 건네는 매캐한 위로 같았다.

 

 

월간토마토 vol.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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