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무엇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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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대중은 무엇에 열광하는가

by 토마토쥔장 202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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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무엇에 열광하는가

대전시립미술관 《트라우마: 퓰리처상 사진전 & 15분》 

 

글 사진 황훈주

 

소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사진이 소설 같을 때가 있다. 순간을 포착한 사진은 강렬하다. 일상적이지 않은 그러나 있을 법한 순간이 사진에 담겼으니 그 순간 사진은 소설이 된다.

요즘 소설을 읽다 보면 “또 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지구는 맨날 멸망하고, 살인 사건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소설 속 세계는 명탐정 코난과 소년 탐정 김전일이 함께 사는 세상인 걸까. 소설 속 세계관은 언제나 세기말이다. 소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김영하 작가는 소설을 읽는 이유를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 했다. 세상이 멸망해도, 아무리 세기말적인 세계 속에서도 주인공은 살아남는다.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내게 일어날 가능성 발견과 위로가 아닐까. 과거에도 사람들은 같은 문제로 슬퍼하고 분노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알 수 없는 위로를 느끼기도 한다. 세상은 언제나 어려웠고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위로. 가끔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 위로를 주기도 한다.

대전시립미술관은 2021년 전시의 큰 맥을 인간성의 성찰과 회복으로 잡았다. 코로나19로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는 이 시대에 각자의 아픔을 돌아보고 치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 《상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이어 《트라우마: 퓰리처상 사진전 & 15분》을 선보이는 대전시립미술관은 1~2전시실에서 퓰리처 사진전을 통해 과거 개인의 상처를 마주하고 3~4전시실에서 유명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을 통해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마주할지 생각할 수 있게 전시를 준비했다.

 

남의 나라 잔치에 우리가 왜 열광하나

퓰리처 사진전은 1998년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린 후 이번 대전시립미술관에서 5번째 전시를 맞고 있다. 퓰리처 사진전 의미는 시대를 지나며 조금씩 바뀌어 왔다. 1998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퓰리처상 사진대전: 죽음으로 남긴 20세기의 증언》은 퓰리처상 사진전을 처음 대중에게 알리는 전시인 만큼 퓰리처상의 의미와 포토 저널리즘의 의미 전달에 전시 초점을 둔 듯하다.

 

“카메라맨들은 한 컷의 사진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버린다. 이런 포토 저널리즘이 다른 사진보다 더 유명한 것은 사진 속에 카메라맨의 정열과 목숨까지 바치는 용기, 현장의 땀 냄새가 녹아들었기 때문.” - 경향신문, 1998년 12월 23일

 

퓰리처상 2021년도 수상작도 만나볼 수 있다

 

이후 2010년, 12년 만에 다시 퓰리처상 사진전이 열렸다. 《캡처 더 모멘트》라는 전시 타이틀은 사진전의 의미를 보다 세계사 흐름 이해와 교육 측면에서 부여한 듯한데 당시 대부분 신문 보도는 ‘지구촌 주요 뉴스를 한 컷으로 보는 만큼 세계사를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라고 보도했다. 또한 ‘청소년들에겐 사진의 예술성과 뉴스 보도의 진정성을 동시에 배울 수 있는 현장 학습의 장’이 될 것이라며 학습 효과 측면을 강조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러한 보도는 대중이 세계화에 관심을 가지는 시점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2010년은 우리나라가 G20 정상회의 개최국, 의장국을 맡은 해이다. 2010년 퓰리처상 사진전은 전국에서 25만 명이 관람하며 높은 호응을 보였다.

그 후, 2014년 《순간의 역사, 역사의 순간: 퓰리처상 사진전》, 2020년 《SHOOTING THE PULITZER》 전시를 진행했다. 2014년 전시부터는 사진 자체 스토리에 집중하게 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2014년 당시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사진전에 <베트남-전쟁의 테러> 사진을 찍은 닉 우트가 내한해 사진 찍을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2020년은 퓰리처상 최초로 한국인 기자가 상을 받아 화제가 되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알았다”라고 말한 김경훈 로이터 통신 사진 기자의 작품이다. 사진 제목은 <최루탄 피하는 모녀>. 멕시코 국경지대 장벽 앞, 최루탄을 피해 도망치는 이민자와 두 딸을 담은 사진이다. 그는 ‘비주얼 스토리텔러’를 말했다. 한 장의 사진이 나오기까진 사진 대상에 대한 이해와 깊은 취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중남미 카라반 사태를 3주간 이주민과 함께 이동하며 밀착 취재를 했다. 전시 기획 의도는 퓰리처상 인지에서 시작해 사진의 기록적 가치를 조명하고 한 장의 사진이 나오기까지 치열한 기자의 삶을 이해하는 쪽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기자의 치열한 삶에 대한 기억이다.

대중은 무엇에 열광하는가

이번 퓰리처상 사진전은 《트라우마: 퓰리처상 사진전 & 15분》이라는 타이틀을 걸었다. 사진이 미술관에 걸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는 왜 퓰리처상 사진전에 열광할까. 퓰리처상 사진은 기본적으로 뉴스 사진, 다큐 사진의 성격을 가진다. 애초에 영감을 주기 위해 찍는 작품 사진과는 다른 분야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퓰리처상 사진전에 열광하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우리는 왜 외국서 비싼 저작권을 지불하며 외국 기자상 작품을 보는가.

살아가는 건 믿음 때문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리고 내가 그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다. 퓰리처상 사진은 그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고 위로한다.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수많은 비극이 있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이겨낼 거란 위로다. 네이팜 탄이 터진 마을에서 도망치며 절규하는 소녀 사진이 담긴 <베트남-전쟁의 테러>, 한국 전쟁 때 대동강 철교를 폭파해야 했던 순간이 담긴 <대동강 철교>가 그렇다. <베트남-전쟁의 테러>는 베트남 전쟁을 멈추게 했고, <대동강 철교>처럼 비극적 순간이 있었지만 그 사진을 바라보는, 다시 일어난 지금이 있다.

퓰리처상 사진은 치열한 삶에 대한 동경을 느끼게된다. 포화 속으로 뛰어들고, 국가 감시 속에서 사진 필름을 감춰나오고, 다시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는 그들의 삶. 삶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을 이루기 위한 치열함이 담긴 사진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예술 작품을 볼 때 느끼는 것과 같다. 예술은 장르가 중요하지 않다. 삶에 치열하게 뛰어드는 그 행위 자체가 예술이지 않을까.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리버티 은행 대출 부서에서 일하던 찰스 포터, 세인트루이스의 가구 도매업자 론 올슈웽거, 프리랜서 사진가인 스티브 루들럼, 집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존 곤튼 기자까지. 세상을 바꾼 사진은 항상 사진 기자의 몫이 아니었다. 삶에 대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이 보는 것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위로와 희망이 생긴다. 이것이 퓰리처상 사진전의 의미가 아닐까. 그렇기에 이번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퓰리처상 사진전의 타이틀로 ‘트라우마’를 내세운 것이 주목할 만하다. 

 

나는 무엇에 열광하는가

3~4전시실은 현대 미술 작가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트라우마: 15분》에서 ‘15분’은 인생 찰나의 순간을 뜻한다. 사진이 세상을 향해 있다면 현대 미술은 작가 개인을 향한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전시 부제는 ‘오늘과 내일’이다.

아마 이 전시실에서 가장 익숙한 작품은 앤디 워홀의 <달러 사인>과 <캠벨 수프 캔>일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돈을 상징하는 ‘달러’와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오뚜기 케첩 정도 될 법한 ‘캠벨 수프 캔’을 그린 앤디 워홀의 작품이다. 현대 작품은 작가 의도가 담겨있지만 시간에 따라, 작품 배치에 따라 얼마든지 자유롭게 해석 할 수 있다. 앤디 워홀의 두 작품이 함께 놓임으로 ‘부자가 되고 싶지만 적당히 간편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다’라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 마음대로 편집과 더하기. 이것이 현대 미술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트라우마: 15분》에서 앤디 워홀 외에도 장 미셀 바스키아, 이동욱, 슈퍼플랙스 등 유명 작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현대 미술에 취미를 붙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관람 할 만 하다. 작가에 대한 덕질을 시작하기 좋은 기회다. 아무런 이유는 모르겠는데 내 마음 와 닿는 작품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미술관을 나설 때 예술이 시작된다. 왜 나는 이 작품을 사랑하는가. 이 질문이 내 마음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소설 책을 이제 싫어하게 된 내 친구에게

이번 대전시립미술관 전시는 보다 직관적이다. 사진이란 매체가 그렇다. 최근 책을 고르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복잡한 건 싫고, 그냥 가볍게 읽고 싶은 책 추천 좀 해줘.”

이제 복잡한 건 싫다. 가벼워야 한다. 하지만 너무 가벼우면 또 그건 싫다. 이번 전시에는 작품 설명이 많지 않다. 대전시립미술관 선승혜 관장은 다양한 작품을 만나다 문득 자신의 발걸음이 멈추는 작품이 있을 거라 말했다. 그것이 내 마음 어느 부분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작품을 만나보길 기대했다. 사진이란 소재는 부담 없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어쩌면 대중이 열광하는 것은 소재의 가벼움과 내용의 진실성에 있을지 모른다. 김경훈 사진 기자가 말했던 비주얼 스토리텔러가 지금 이 시대에 더욱 강렬해지는 이유다. 

책을 추천해달라는 친구에겐 영화 리뷰 책을 권했다. 영화라는 소재는 가볍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던 책이다. 그 친구가 만족했기를 바란다.

 

 

월간토마토 vol.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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