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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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붉은 단추

by 토마토쥔장 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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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픽션 본 소설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합니다

붉은 단추          

이경원 영화감독 

 

지연은 이틀째 일산의 빌라 주변을 어슬렁대고 있다. 4층에 기원이 있고 1층엔 편의점이 있는 이 건물에 여우가 살고 있다지연은 5개월 전 남편 성호와 샐러드 배달사업을 시작했다한 달 결재하면 매주 원하는 요일에 문 앞까지 배달해 주는 서비스다도시락보다 원가도 저렴하고 손도 덜 가는 데다가다이어트용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아 장사가 잘됐다이 빌라에 사는 여우가 일주일 전 배달 앱에 리뷰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아이디는 사망 여우다다시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이름이다그녀는 배달 온 샐러드에서 붉은 단추가 하나 나왔다며 사진과 함께 앱에 올렸다올리브인지 알고 씹었다가 어금니에 금이 갔다며진료기록도 있지만 한 번은 넘어가 주겠다고 한다참 고-맙다지연과 성호는 매일 아침 장 봐온 깨끗한 재료를 사용했고항상 조리복에 모자까지 착용했다게다가 성호는 10년 경력의 양식 조리사로젊었을 땐 4성 호텔에서 근무한 전문가다청결이 몸에 밴 터라 절대 단추 같은 게 들어갈 리가 없다사망 여우의 리뷰 이후 고객들은 재빠르게 주문을 끊기 시작했다둘은 빠르게 입장을 정리해 사망 여우의 글에 답변하려 했으나그녀는 이미 리뷰를 삭제하고 앱도 탈퇴한 후였다게다가 일회성 번호로 주문해 연락처도 남아있지 않다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배달 주소였다성호는 당장이라도 찾아가 따져 묻겠다고 날뛰었지만남자가 찾아가면 경찰을 부를 게 뻔하다화가 난 건 지연도 마찬가지였다월 1,400만 원까지 오르던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도저히 장사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허위사실 유포로 고소도 생각해봤지만그전에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어젠 자정이 지나도록 203호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건물 반대편에서 창문으로 들여다봐도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오늘은 아침 6시 알람을 맞춰 놓고 나왔다혼자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지 남편에게 물으니주문량이 적어 충분하다며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오늘은 그녀를 만나야 한다. 2시간쯤 서성이니 여름에도 무릎이 시리다아침 운동하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움직여보는데, 2층 복도에 불이 켜지고 어떤 남자 하나가 나온다그녀의 남편인 것 같다그는 흰색 BMW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갔고지연은 남편에게 상황을 알린 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오전 8시 반원래 지금쯤이면 남편과 시장에서 싱싱한 야채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시간이다일주일 전만 해도 새로 적금을 두 개나 들 만큼 둘의 미래는 밝았다이렇게 된 건 모두 사망 여우 때문이다어금니를 꽉 물고 다시 2층을 노려본 그때다시 복도에 불이 켜진다그런데 60세 가까이 돼 보이는 중년 여자가 걸어 나온다. BMW 남자의 모친 같다배달 앱을 못 쓸 만큼의 나이는 아니지만젊은 여자일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였다저 빌라가 세 사람이 살만한 크기는 절대 아니다중년 여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고지연은 그녀를 멀찍이 따랐다.    

 

여자는 동네 풀잎문화센터에 들러 직원들과 잠시 수다를 떤다뭔가를 배웠던 곳인 것 같다이어 근처 부동산에 들른다내놓은 집이 있는지사장은 중년 여자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버스정류장으로 향한 여자는 양산을 접고 부채를 꺼내 앉는다지연은 주위에 서 그녀를 조금 더 세밀히 관찰한다짙은 아이보리색 구두에 흰 양말을 깔끔하게 신고작은 보라색 백을 들었다남색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도 정갈해 보인다결정적으로 인상이 너무 선하다저렇게 멀끔한 중년 여자가 악의적인 글을 올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역시 사람은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곧 88B번 버스가 도착해그녀를 따라 탔다어제 잠을 많이 못 자서인지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졸음이 몰려온다얼마나 갔을까잠깐 졸아버린 사이 버스 안이 시끄러워졌다어떤 고등학생을 두고 중년 여자와 버스 기사와 말싸움을 하는 것 같다들어보니 학생은 타자마자 버스 카드가 없다는 걸 알고 세워달라고 했는데기사는 횡단보도 가까운 도로 한복판에서 앞문을 연 것 같다학생 눈에도 위험해 보였는지 머뭇거리자중년 여자는 어떻게 도로에서 내리라고 하냐며 기사에게 따져 물은 것 같다기사는 오른쪽으로 차를 붙일 수 없으니 횡단보도에 세운 거라 답했지만여자는 그런 기사가 어디 있냐며 지갑을 꺼내 학생의 요금을 대신 결제했다학생은 꾸벅 인사하고는괜히 머쓱한지 지연이 있는 맨 뒷자리로 걸어와 앉았다자기 때문에 소란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가빠진 호흡이 가까이서 느껴진다지연은 다시 중년 여자를 바라봤다아니 저렇게 훌륭한 분이 우리 가게를 악의적으로 흉봤다고정말 사람은 미스터리한 존재다.          

 

버스에서 내린 중년 여자는 오래된 지역 백화점으로 향했다쇼핑을 하려나 보다지연은 매일 달걀만 찌다가 갑자기 백화점에 들어서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어디선가 작게 울리는 음악은 달콤하고매장에서 풍기는 시트러스 향도 사랑스럽다하지만 그녀의 쇼핑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숨기고 있는 블랙 컨슈머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여자는 따로 가는 곳이 있는지 곧바로 3층으로 향했다그리곤 어느 남성복 매장에 도착해 직원과 인사하더니계산대 안쪽에 보라색 백을 넣고 둘러본다혹시 점주고개를 들어 매장 상호를 보니 젠아더라고 쓰여 있고 여우 로고가 보인다역시 저 여자가 사망 여우다자기는 이런 백화점에 입점해 있으면서겨우 샐러드 가게에 그런 식으로 피해를 주다니 용서할 수 없다지연은 손님 행세를 하며 매장을 들어가 옷을 구경하기 시작한다사망 여우는 손님을 발견하고 다가오는데지연은 문득 자신이 추리닝 차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백화점에 올 복장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지금 이 모습은 너무 추레하다사망 여우가 점점 다가온다그런데 지연을 위아래로 훑는 느낌 없이 꾸벅 인사한다그리고는 입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잘 부탁드린다고 말한다직원도 뒤따라와 편하게 구경하라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왠지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안 된다저번 달 가게의 손해액은 약 800만 원에 가깝고남편은 지금 혼자 양배추를 썰고 있다불쌍한 그를 떠올리며 다시 독해지기로 한다그런데 사망 여우 옆으로 예쁘게 염색된 타이다이 티셔츠가 눈에 꽂힌다보자마자 남편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스친다직원은 눈치를 챘는지 빠르게 티셔츠를 꺼내 들고지금 사면 커플 티셔츠를 50% 할인된 가격으로 준다고 한다쇼핑하러 온 게 아니다현혹되면 안 된다그 순간사망 여우가 제이드 그린 색(옥색타이다이 티셔츠를 꺼내 내 가슴팍에 가져다 댄다몸에 흡수되는 느낌이다벗어나려 발버둥 치는데오늘 개시 손님이니 하나를 사면 하나는 서비스로 주겠다고 한다. 50%도 아니고, 1+1이다

 

화장실 거울에 비춰본 옥색 티셔츠는 너무 예뻤다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카드를 꺼냈고정신을 차려보니 사망 여우를 보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순간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화장실로 숨어들었다아직 그녀가 매장 안에 있으니 잠시 숨을 돌려도 될 것 같다사망 여우의 안목은 대단했다지연은 어릴 때부터 연두색 계열의 옷을 입었을 때 피부와 이목구비가 확 살았다그리고 이 티셔츠의 염색 상태는 정확히 지연을 돋보이게 하는 톤이다여기에 조금 큰 펜던트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눈을 질끈 감았다약해지면 안 된다우리 가정의 존폐가 달려있다크게 심호흡하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고생 많지아직 기회를 보고 있어걱정 말고 점심 먹어.’ 화장실을 나와 복도 끝에 몸을 숨기고사망 여우가 매장을 나서길 기다렸다그녀의 안목 때문인지 매장을 나서는 모두의 손엔 여우 로고가 박힌 쇼핑백이 들려있다지연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분하고 이가 갈린다몇 분 뒤 매장을 떠나는 그녀를 다시 뒤따랐다.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택시에 올랐다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지연도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를 쫓는다택시는 아파트 단지 몇 개를 지나더니 얕은 언덕길로 오른다이곳은 일산시장이다. 5개월간 남편과 매일 새벽 장을 보러 오던 익숙한 곳이다여자는 구불구불한 골목 어디쯤 내리더니 허름한 참기름 집으로 들어갔다지연은 처음 와보는 가게인데딱 봐도 진짜배기 참기름을 파는 곳임이 확실하다당장이라도 한 병 사 가고 싶지만 멀리 떨어져 여자의 동태를 살핀다여자는 가게 주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방금 백화점에서 본 점주의 모습도허름한 시장에서 본 손님의 모습도 모두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더 이상 현혹되거나 뜸 들일 수 없다지연은 그녀가 가게에서 나오면 무섭게 따져 묻기로 마음먹었다아니 알만한 분이 왜 저희 샐러드에 단추가 들어있다고 거짓 글을 올렸죠그것 때문에 얼마나 피해가 큰지 아세요돈도 벌 만큼 버신 것 같으니까 손해 배상하세요모른 척하면저희도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연습했다오늘 아침 남편 앞에서도 연습했다잘할 수 있다박지연얼마 후 그녀가 신문지에 참기름 두 병을 싸 들고 다시 도로 쪽으로 걷는 게 보였다택시를 타려나 보다지연은 얼른 따라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저 아까 백화점에서 만났던 사람인데요.” 여자는 지연을 돌아보는데마치 매일 보는 옆집 새댁을 마주친 것처럼 환하게 웃는다그녀의 고풍스러운 미소에 잠시 머뭇했지만 말을 잇는다집에 샐러드 시켜 드시죠제가 뱃살도둑 일산점 주인이거든요?” 여자는 이런 우연이 다 있냐는 듯 다시 웃어 보이는데일주일 전에 안 좋은 리뷰 올리셨죠?” 그녀는 잠시 의아한 얼굴로 지연을 바라본다올리셨잖아요샐러드에 붉은 단추가 들어가 있었다고.” 단추라는 단어를 듣자 여자의 눈이 잠시 반짝인다그리곤 자기가 아니라 같이 사는 아들이 샐러드를 시켜 먹는다고 대답한다그럼 이 여자가 아니라 아침에 스친 그 남자가 사망 여우였단 말인가여자는 아들이 얼마 전 단추를 씹어 이에 금이 갔다며밥 먹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도 전한다리뷰와 똑같은 이야기다아니., 그럴 리가 없거든요저희 가게가 얼마나.. 청결한데.” 그런데 지연의 눈에도 이 여자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다잠시 바라보던 여자는 아들과 통화해보겠냐고 묻는데지연은 왠지 자신이 없다정말 샐러드에서 나왔으면 어쩌지일단 빨리 남편과 상의를 해야겠다지연이 뒤돌아서려는데 여자가 명함을 하나 꺼내 준다아들 명함이니문제 있으면 연락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택시를 잡아탄다.     

성호는 단추가 들어갈 리 없다면서도남자의 엄마까지 알고 있다면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하자며 힘없이 전화를 끊는데 왠지 미안하다문득 중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맡은 참기름 냄새가 떠오른다온 김에 진짜배기 참기름과 젓갈을 사 가야겠다가게에 들어서니 고소한 냄새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살짝 찍어 먹어보니 맛도 좋다왜 온종일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한 병을 껴안고 매번 거래하는 젓갈 할머니네로 향한다할머니는 갈 때마다 플라스틱 국자로 봉지 가득 젓갈을 담아 준다지연이 예뻐서 남들보다 많이 주는 거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오늘도 한가득 퍼 담고 봉지를 싸매는데문득 할머니가 입은 여름 조끼가 눈에 들어온다자주색에 붉은 단추가 달린설마 하며 가까이 들여다보니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다사망 여우가 리뷰에 올린작고 오목한 붉은색 단추다지연은 순간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핑 돈다할머니는 그런 지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다시 흰 봉지를 풀어 젓갈 한 국자를 더 담는다그리곤 조끼 단추가 떨어져 나갈 만큼 경쾌하게펄럭검은 봉투의 입을 벌렸다.

Epilogue     

얼마 전 애용하는 동네 횟집에 악플이 달렸습니다
화병이 난 사장님은 배달을 접었고저는 혼술 세트를 주문할 수 없게 되었죠. 19,900원에 정말 푸짐했는데누구의 잘못인지는 알 수 없지만그때의 아쉬운 마음을 담아 이번 호를 때우게 되었습니다
사망 여우는 소비자 고발 형식의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의 닉네임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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