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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추
글 이경원 영화감독
지연은 이틀째 일산의 빌라 주변을 어슬렁대고 있다. 4층에 기원이 있고 1층엔 편의점이 있는 이 건물에 여우가 살고 있다. 지연은 5개월 전 남편 성호와 샐러드 배달사업을 시작했다. 한 달 결재하면 매주 원하는 요일에 문 앞까지 배달해 주는 서비스다. 도시락보다 원가도 저렴하고 손도 덜 가는 데다가, 다이어트용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아 장사가 잘됐다. 이 빌라에 사는 여우가 일주일 전 배달 앱에 리뷰를 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의 아이디는 사망 여우다. 다시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이름이다. 그녀는 배달 온 샐러드에서 붉은 단추가 하나 나왔다며 사진과 함께 앱에 올렸다. 올리브인지 알고 씹었다가 어금니에 금이 갔다며, 진료기록도 있지만 한 번은 넘어가 주겠다고 한다. 참 고-맙다. 지연과 성호는 매일 아침 장 봐온 깨끗한 재료를 사용했고, 항상 조리복에 모자까지 착용했다. 게다가 성호는 10년 경력의 양식 조리사로, 젊었을 땐 4성 호텔에서 근무한 전문가다. 청결이 몸에 밴 터라 절대 단추 같은 게 들어갈 리가 없다. 사망 여우의 리뷰 이후 고객들은 재빠르게 주문을 끊기 시작했다. 둘은 빠르게 입장을 정리해 사망 여우의 글에 답변하려 했으나, 그녀는 이미 리뷰를 삭제하고 앱도 탈퇴한 후였다. 게다가 일회성 번호로 주문해 연락처도 남아있지 않다.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배달 주소였다. 성호는 당장이라도 찾아가 따져 묻겠다고 날뛰었지만, 남자가 찾아가면 경찰을 부를 게 뻔하다. 화가 난 건 지연도 마찬가지였다. 월 1,400만 원까지 오르던 매출은 반 토막이 났고, 도저히 장사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도 생각해봤지만, 그전에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어젠 자정이 지나도록 203호로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건물 반대편에서 창문으로 들여다봐도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아침 6시 알람을 맞춰 놓고 나왔다. 혼자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지 남편에게 물으니, 주문량이 적어 충분하다며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오늘은 그녀를 만나야 한다. 2시간쯤 서성이니 여름에도 무릎이 시리다. 아침 운동하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움직여보는데, 2층 복도에 불이 켜지고 어떤 남자 하나가 나온다. 그녀의 남편인 것 같다. 그는 흰색 BMW를 타고 골목을 빠져나갔고, 지연은 남편에게 상황을 알린 후 좀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오전 8시 반. 원래 지금쯤이면 남편과 시장에서 싱싱한 야채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시간이다. 일주일 전만 해도 새로 적금을 두 개나 들 만큼 둘의 미래는 밝았다. 이렇게 된 건 모두 사망 여우 때문이다. 어금니를 꽉 물고 다시 2층을 노려본 그때, 다시 복도에 불이 켜진다. 그런데 60세 가까이 돼 보이는 중년 여자가 걸어 나온다. BMW 남자의 모친 같다. 배달 앱을 못 쓸 만큼의 나이는 아니지만, 젊은 여자일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저 빌라가 세 사람이 살만한 크기는 절대 아니다. 중년 여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했고, 지연은 그녀를 멀찍이 따랐다.
여자는 동네 풀잎문화센터에 들러 직원들과 잠시 수다를 떤다. 뭔가를 배웠던 곳인 것 같다. 이어 근처 부동산에 들른다. 내놓은 집이 있는지, 사장은 중년 여자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한 여자는 양산을 접고 부채를 꺼내 앉는다. 지연은 주위에 서 그녀를 조금 더 세밀히 관찰한다. 짙은 아이보리색 구두에 흰 양말을 깔끔하게 신고, 작은 보라색 백을 들었다. 남색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도 정갈해 보인다. 결정적으로 인상이 너무 선하다. 저렇게 멀끔한 중년 여자가 악의적인 글을 올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역시 사람은 겉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곧 88B번 버스가 도착해, 그녀를 따라 탔다. 어제 잠을 많이 못 자서인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졸음이 몰려온다. 얼마나 갔을까. 잠깐 졸아버린 사이 버스 안이 시끄러워졌다. 어떤 고등학생을 두고 중년 여자와 버스 기사와 말싸움을 하는 것 같다. 들어보니 학생은 타자마자 버스 카드가 없다는 걸 알고 세워달라고 했는데, 기사는 횡단보도 가까운 도로 한복판에서 앞문을 연 것 같다. 학생 눈에도 위험해 보였는지 머뭇거리자, 중년 여자는 어떻게 도로에서 내리라고 하냐며 기사에게 따져 물은 것 같다. 기사는 오른쪽으로 차를 붙일 수 없으니 횡단보도에 세운 거라 답했지만, 여자는 그런 기사가 어디 있냐며 지갑을 꺼내 학생의 요금을 대신 결제했다. 학생은 꾸벅 인사하고는, 괜히 머쓱한지 지연이 있는 맨 뒷자리로 걸어와 앉았다. 자기 때문에 소란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가빠진 호흡이 가까이서 느껴진다. 지연은 다시 중년 여자를 바라봤다. 아니 저렇게 훌륭한 분이 우리 가게를 악의적으로 흉봤다고? 정말 사람은 미스터리한 존재다.
버스에서 내린 중년 여자는 오래된 지역 백화점으로 향했다. 쇼핑을 하려나 보다. 지연은 매일 달걀만 찌다가 갑자기 백화점에 들어서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어디선가 작게 울리는 음악은 달콤하고, 매장에서 풍기는 시트러스 향도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녀의 쇼핑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숨기고 있는 블랙 컨슈머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다. 여자는 따로 가는 곳이 있는지 곧바로 3층으로 향했다. 그리곤 어느 남성복 매장에 도착해 직원과 인사하더니, 계산대 안쪽에 보라색 백을 넣고 둘러본다. 혹시 점주? 고개를 들어 매장 상호를 보니 ‘젠아더’라고 쓰여 있고 여우 로고가 보인다. 역시 저 여자가 사망 여우다! 자기는 이런 백화점에 입점해 있으면서, 겨우 샐러드 가게에 그런 식으로 피해를 주다니 용서할 수 없다. 지연은 손님 행세를 하며 매장을 들어가 옷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사망 여우는 손님을 발견하고 다가오는데, 지연은 문득 자신이 추리닝 차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백화점에 올 복장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모습은 너무 추레하다. 사망 여우가 점점 다가온다. 그런데 지연을 위아래로 훑는 느낌 없이 꾸벅 인사한다. 그리고는 입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잘 부탁드린다고 말한다. 직원도 뒤따라와 편하게 구경하라며 환하게 웃어 보인다. 왠지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 안 된다. 저번 달 가게의 손해액은 약 800만 원에 가깝고, 남편은 지금 혼자 양배추를 썰고 있다. 불쌍한 그를 떠올리며 다시 독해지기로 한다. 그런데 사망 여우 옆으로 예쁘게 염색된 타이다이 티셔츠가 눈에 꽂힌다. 보자마자 남편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스친다. 직원은 눈치를 챘는지 빠르게 티셔츠를 꺼내 들고, 지금 사면 커플 티셔츠를 50% 할인된 가격으로 준다고 한다. 쇼핑하러 온 게 아니다. 현혹되면 안 된다. 그 순간, 사망 여우가 제이드 그린 색(옥색) 타이다이 티셔츠를 꺼내 내 가슴팍에 가져다 댄다. 몸에 흡수되는 느낌이다.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데, 오늘 개시 손님이니 하나를 사면 하나는 서비스로 주겠다고 한다. 50%도 아니고, 1+1이다.
화장실 거울에 비춰본 옥색 티셔츠는 너무 예뻤다.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카드를 꺼냈고, 정신을 차려보니 사망 여우를 보며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순간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아직 그녀가 매장 안에 있으니 잠시 숨을 돌려도 될 것 같다. 사망 여우의 안목은 대단했다. 지연은 어릴 때부터 연두색 계열의 옷을 입었을 때 피부와 이목구비가 확 살았다. 그리고 이 티셔츠의 염색 상태는 정확히 지연을 돋보이게 하는 톤이다. 여기에 조금 큰 펜던트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눈을 질끈 감았다. 약해지면 안 된다. 우리 가정의 존폐가 달려있다. 크게 심호흡하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고생 많지? 아직 기회를 보고 있어. 걱정 말고 점심 먹어.’ 화장실을 나와 복도 끝에 몸을 숨기고, 사망 여우가 매장을 나서길 기다렸다. 그녀의 안목 때문인지 매장을 나서는 모두의 손엔 여우 로고가 박힌 쇼핑백이 들려있다. 지연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분하고 이가 갈린다. 몇 분 뒤 매장을 떠나는 그녀를 다시 뒤따랐다.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택시에 올랐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지연도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를 쫓는다. 택시는 아파트 단지 몇 개를 지나더니 얕은 언덕길로 오른다. 이곳은 일산시장이다. 5개월간 남편과 매일 새벽 장을 보러 오던 익숙한 곳이다. 여자는 구불구불한 골목 어디쯤 내리더니 허름한 참기름 집으로 들어갔다. 지연은 처음 와보는 가게인데, 딱 봐도 진짜배기 참기름을 파는 곳임이 확실하다. 당장이라도 한 병 사 가고 싶지만 멀리 떨어져 여자의 동태를 살핀다. 여자는 가게 주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방금 백화점에서 본 점주의 모습도, 허름한 시장에서 본 손님의 모습도 모두 어색하지 않게 어울린다. 더 이상 현혹되거나 뜸 들일 수 없다. 지연은 그녀가 가게에서 나오면 무섭게 따져 묻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알만한 분이 왜 저희 샐러드에 단추가 들어있다고 거짓 글을 올렸죠? 그것 때문에 얼마나 피해가 큰지 아세요? 돈도 벌 만큼 버신 것 같으니까 손해 배상하세요. 모른 척하면, 저희도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매일 연습했다. 오늘 아침 남편 앞에서도 연습했다. 잘할 수 있다, 박지연. 얼마 후 그녀가 신문지에 참기름 두 병을 싸 들고 다시 도로 쪽으로 걷는 게 보였다. 택시를 타려나 보다. 지연은 얼른 따라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저 아까 백화점에서 만났던 사람인데요.” 여자는 지연을 돌아보는데, 마치 매일 보는 옆집 새댁을 마주친 것처럼 환하게 웃는다. 그녀의 고풍스러운 미소에 잠시 머뭇했지만 말을 잇는다. “집에 샐러드 시켜 드시죠? 제가 뱃살도둑 일산점 주인이거든요?” 여자는 이런 우연이 다 있냐는 듯 다시 웃어 보이는데. “일주일 전에 안 좋은 리뷰 올리셨죠?” 그녀는 잠시 의아한 얼굴로 지연을 바라본다. “올리셨잖아요. 샐러드에 붉은 단추가 들어가 있었다고.” 단추라는 단어를 듣자 여자의 눈이 잠시 반짝인다. 그리곤 자기가 아니라 같이 사는 아들이 샐러드를 시켜 먹는다고 대답한다. 그럼 이 여자가 아니라 아침에 스친 그 남자가 사망 여우였단 말인가? 여자는 아들이 얼마 전 단추를 씹어 이에 금이 갔다며, 밥 먹기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도 전한다. 리뷰와 똑같은 이야기다. “아니., 그럴 리가 없거든요? 저희 가게가 얼마나.. 청결한데.” 그런데 지연의 눈에도 이 여자가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 않다. 잠시 바라보던 여자는 아들과 통화해보겠냐고 묻는데, 지연은 왠지 자신이 없다. 정말 샐러드에서 나왔으면 어쩌지? 일단 빨리 남편과 상의를 해야겠다. 지연이 뒤돌아서려는데 여자가 명함을 하나 꺼내 준다. 아들 명함이니, 문제 있으면 연락해보라는 말을 남기고 택시를 잡아탄다.
성호는 단추가 들어갈 리 없다면서도, 남자의 엄마까지 알고 있다면 사실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일단 들어와서 이야기하자며 힘없이 전화를 끊는데 왠지 미안하다. 문득 중년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맡은 참기름 냄새가 떠오른다. 온 김에 진짜배기 참기름과 젓갈을 사 가야겠다. 가게에 들어서니 고소한 냄새에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살짝 찍어 먹어보니 맛도 좋다. 왜 온종일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한 병을 껴안고 매번 거래하는 젓갈 할머니네로 향한다. 할머니는 갈 때마다 플라스틱 국자로 봉지 가득 젓갈을 담아 준다. 지연이 예뻐서 남들보다 많이 주는 거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오늘도 한가득 퍼 담고 봉지를 싸매는데, 문득 할머니가 입은 여름 조끼가 눈에 들어온다. 자주색에 붉은 단추가 달린. 설마 하며 가까이 들여다보니 단추 하나가 떨어져 있다. 사망 여우가 리뷰에 올린, 작고 오목한 붉은색 단추다. 지연은 순간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핑 돈다. 할머니는 그런 지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다시 흰 봉지를 풀어 젓갈 한 국자를 더 담는다. 그리곤 조끼 단추가 떨어져 나갈 만큼 경쾌하게, 펄럭! 검은 봉투의 입을 벌렸다.

Epilogue 얼마 전 애용하는 동네 횟집에 악플이 달렸습니다. 화병이 난 사장님은 배달을 접었고, 저는 혼술 세트를 주문할 수 없게 되었죠. 19,900원에 정말 푸짐했는데. 누구의 잘못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의 아쉬운 마음을 담아 이번 호를 때우게 되었습니다. ‘사망 여우’는 소비자 고발 형식의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의 닉네임에서 따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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