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하는 바다에서의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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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책과 함께하는 바다에서의 휴가

by 토마토쥔장 2021.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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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영원하며 무한한 책의 여행

바닷가 서점 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

 

이혜정 사진 이혜정, 아난티 제공



폭염이 들이닥쳤다. 폭염은 여름휴가의 풍경마저 바꾸어 버렸다. 바닷가도, 계곡도 폭염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없었다. 그래서 유독, 올해는 ‘호캉스’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쾌적한 호텔에서 쉬는 여행이다. 거기에 더해 ‘북캉스’라는 말도 함께 유행이었다. 책과 함께 쉬어 가는 여행. 이 더위에 가장 적절한 피서법이다. 

이런 점에서 서점 이터널 저니(Eternal Journey)는 호캉스와 북캉스를 동시에 즐기기 더없는 장소이자, 이상적인 책 공간이다. 영원한 여행이라는 이름은, 바닷가 서점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아난티 코브에서 내려다본 바다



바닷가 서점

이터널 저니가 있는 부산 기장 해안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8월 첫째 주 폭염은 절정에 다다랐다. 부산역에서 내려 지하철역으로 이동하는 그 잠깐의 시간,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진 공기를 들이마시며 이번 취재가 만만치 않겠구나 싶었다. 노트북과 카메라가 든 무거운 가방을 추스르며 1호선에 올랐다. 지하철을 타는 데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동해선 교대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언덕 위로 다닥다닥 붙은 집을 보며 이곳이 부산이구나 싶었다. 큰외삼촌 댁이 부산에 있어, 부산은 얽힌 추억들이 있다. 엄마와 함께 기차를 타고 오며 어린 나는 물었다. “엄마 집들이 왜 산에 있어?” 나에게 부산은 집이 산에 올라앉은 곳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흐릿한 향수와 어린 시절의 몇몇 기억 이외에 부산은 내게 완벽히 낯선 도시다. 오시리아역에 내려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했다. 택시에서 내리자 모던한 회색 건물들 사이로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길게 이어진 해안 산책로 위로 햇볕이 쏟아지고, 그 아래로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여유롭게 오갔다. 이곳이 부산이구나, 그리고 바다구나, KTX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두어 시간 만에 만난 이 낯선 공간 앞에서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이터널 저니는 부산 기장 해안가에 있는 휴양단지 ‘아난티 코브’에 자리했다. 작년 7월 오픈한 서점 이터널 저니는 (주)아난티가 운영한다. 

이터널 저니는 아난티 코브의 심장이라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선사하고” 싶었다는 (주)아난티 이만규 대표의 철학이 이터널 저니 곳곳에 녹아 있다. 약 500평 규모의 이터널 저니에는 도서검색대와 자기계발서가 없다. 그리고 모든 책은 표지가 보이게 진열되어 있다. 베스트셀러와 신간 위주로 도서를 비치하는 일반 서점들과 달리, 50여 가지의 주제를 정해 도서를 비치했다.

‘이터널 저니’라는 이름에서도 남다른 감각이 느껴진다. 서점 이터널 저니의 이름은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의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다. ‘Spotless Mind’는 순수한 마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람들이 ‘이터널 저니’라는 서점 이름을 통해 순수한 공간이라는 이미지를 갖기 원했다고 한다. 

이런 마음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이터널 저니는 책을 파는 장소라기보다 책 애호가가 정성스레 꾸며 놓은 책 박물관 같다.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도록 돕는 도서 편집숍이기도 한 이곳에 머문다면 바쁜 일상에서 멀어져 버린 독서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날 듯하다.

 

책이 바다를 향해 얼굴을 보이고 있는 곳

아난티 타운의 건물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힐튼 부산 지하 2층의 이터널 저니로 들어서는 입구가 보인다. 건물은 동해 바다와 마주하고 있다. 모던한 회색 건물과 푸른빛의 바다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청량감을 준다. 

이터널 저니 입구는 물음표를 연상시킨다. 여러 겹의 둥근 나선이 이어진 터널 안쪽을 지나면 서점 유리문이 나온다. 마치, 이쪽과 저쪽을 잇는 이 나선의 중간 지대가 영원한 여행이 시작되는 출입로와 같이 신비한 느낌을 준다. 자유롭고 대담한 건축으로 유명한 민성진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답게 심플하면서도 자연을 연상시키는 유연하면서도 과감한 선이 인상적이다. 

안쪽으로 들어서서 뒤를 돌아보면 푸른 바다와 환한 빛이 동굴의 입구를 비춘다. 그리고 어둑한 안쪽 편으로 두 개의 유리문을 지나면 시간을 초월한 지성의 세계가 펼쳐진다. 150개가 넘는 책장에 2만 권의 장서를 보관한 서점 공간이다.

첫 번째 유리문으로 들어서면 붉은색 우체통이 있고, 검붉은 벽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책은 우리가 알게 된 모든 것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도구이자 어느 시대 어느 곳으로도 보내주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여행 도구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서면, 또 다른 멋진 글귀가 방문객을 반긴다. 

가장 발전한 문명사회에도 책은 최고의 기쁨을 준다.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재앙에 맞설 방법을 얻은 것이다.”(랠프 월도 에머슨)  

두 번째 유리문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문구들이 방문자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책의 표지가 모두 보이도록 진열한 서가는, 정면으로 책과 마주하게 한다. 책과 놀이하며 여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 고독, 사랑, 디자인, 청년, 음악과 무용, 작가가 추천한 책, 웃음이 나게 하는 한 줄의 문장, 50개의 테마로 나누어진 서가와 진열대는 그 책을 들추어보지 않고, 서가와 진열대를 바라보기만 해도 책의 내용을 가늠하게 해 준다. 

검은색 천장, 노란 조명, 나무 바닥, 널찍한 나무 테이블. 책과 함께 적절히 어우러진 개성 있는 상품들. 최근에 서점들이 나아가는 경향에서 좀 더 고급화된 것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좀 더 내밀하게 책이 다가오는 비밀이 이 공간에는 존재했다.

‘예술의 시대’, ‘칼 세이건’, ‘1988’이란 테마가 붙은 서가에서 보여 주는 주제에 따른 다양한 도서의 모음들과 연대기별 정리는 전시실에 온 듯한 기분을 준다. 가령 예술의 시대 한쪽에 모아 둔 수전 손택의 저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중에 한 권은 꼭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작가들의 선택’ 서가가 소개하는 명사들이 애장하는 도서 앞에서는 마치 개인 서재에 와 있는 것만 같다. 저절로 평소 관심을 두었던 명사가 추천한 책에 손이 간다. 이 모두가 철저히 상업적 계산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 누군가에 의해 한 번은 걸러진 선별 도서의 목록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그러니 이곳은 팔려는 욕망보다 발견하려는 욕망이 바탕색으로 깔려 있는 장소인 셈이다.

 

책이 주는 순수한 기쁨

안내해 준 직원이 말했다. “이터널 저니의 가장 큰 매력은 바닷가에 있는 서점이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서 바닷가로 한번 나가 보았다. 해변 산책로를 걷다가 다시 이터널 저니로 왔다. 바다가 있다는 것, 그리고 휴가지에서 누군가 섬세하게 책을 읽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 속삭이는 파도소리처럼. 그것이 이 서점의 매력이었다.

날이 덜 뜨겁다면, 책 한 권을 사서 해변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이터널 저니를 찾은 사람들은 슬리퍼에 챙 넓은 모자를 손에 들고, 느릿느릿 서점으로 들어온다. 천천히 책을 구경한다. 이들은 이 공간에 무심히 들어섰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책의 얼굴과 마주한다. 곧장 검색대로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서점 안을 여유롭게 주유(周遊)한다.

삶의 한계와 일상의 굴레 속에서 사람이 찾을 수 있는 기쁨이란 그리 다양하지 않다. 그렇기에 무한한 바다 앞에서 느껴지는 건 삶의 하찮음과 덧없음이다. 책은 인간의 삶과 삶을, 단절된 시간과 시간을 이어 준다는 점에서 영원한 여행의 유일한 매개체이다. 이 우주와 대자연은 영원히 이어지는 여행이고 인간은 그 일부이다. 책은, 그 연결을 잇는 유일하게 가장 인간적인 물체(物體)이다. 책의 영원불변함과 그 가치가 이터널 저니라는 공간에서 재확인된다. 

 

“영원하고 무한한 것에 대한 활기찬 사랑은 그 어떤 슬픔도 찾아볼 수 없는 기쁨, 순수한 기쁨으로 정신을 만족시킨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욕망의 대상이자 우리의 모든 힘을 기울여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스피노자)

 

스피노자는 영원에 대한 사랑이 우리에게 순수한 기쁨을 준다고 말한다. 칼 세이건, 윤동주…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 담은, 죽거나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느끼고 발견한 인생의 진리는 기쁨의 단초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존재 본원의 가치와 기쁨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그 기쁨으로 힘을 얻기 위해서다. 

바다가 보여 주는 영원과 인생의 덧없음, 영원불변하는 것에 대한 인간의 열망, 이 모든 모순 속에서 ‘이터널 저니’가 있다. 여행하는 자들이 잠깐 머무는 터미널.

늦은 오후 시간 서점에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 사내가 국가 테마 서가에 자리한 그랜드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는 직원도 아닌 방문객이었다. 쇼팽의 피아노곡. 영원과 책이, 바다와 책이 마주한 이 공간에서 누군가의 피아노 소리와 함께, 우리는 영원의 일부로 녹아든다.

 

월간토마토 vol.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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