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특집: 여름 여행
모녀의 충북 제천 & 단양 여행
글 사진 양지연
여행을 기획한다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누구와’ 여행을 떠날 것인지 그리고 ‘어디로’ 향할 것인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세부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더라도 이 정도는 미리 정하기 마련인데, 이번 여행의 ‘어디로’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진 바가 있었다. 충북 제천과 단양.
단양은 약 3년 전쯤 당일치기 여행으로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역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게 남았다. 시장에서 먹은 순대 전골과 흑마늘 닭강정은 여전히 단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맛이 좋았고, 온통 초록색으로 뒤덮인 곳에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한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반면에 제천은 단양과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지만 아직 방문 경험이 없었다. 얼마 전, 평소 좋아하던 사진작가의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제천이라는 곳을 나에게 인지시켰고 이번 여행 계획을 그리는 중에 바로 떠올랐다.
그럼 이제 이 여행을 ‘누구와’ 가볼까?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찰나였기 때문에 혼자 떠나볼 생각을 하다가 초록으로 둘러싸인 자연의 느낌을 누구보다 좋아할 한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핸드폰을 들어 “다음 주 주말에 놀러 갈까?” 메시지를 보냈고 확실한 긍정의 표시로 “ㅇ”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천으로
오전 10시경, ‘제천 중앙 시장’을 도착지로 설정하고 출발했다. 엄마와 지금까지 함께 했던 여행에서 얻은 정보로는, 엄마는 지역 전통 시장을 방문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 지역 특산물, 저렴한 과일과 떡(우리 모녀는 특히 떡 앞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지나가다 충동적으로 맛보는 시장 음식에 엄마는 항상 즐거워했다. 물론 나도 다양한 먹거리 앞에서 신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제천에는 우리나라 3대 약초 시장 중 하나가 자리한다. 1929년 처음으로 제천약령시가 열렸다. 약재 산지인 강원도와 가깝기 때문에 약재의 집산이 풍부한 특성이 큰 약초시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제천의 자연환경이 최고의 토산 약재를 채취하기에 적합하다고 하니 말만 들어도 치유가 되는 기분이다. 그러니 직접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제천에서의 첫 점심 식사는 흰민들레에 표고버섯, 대추 등을 넣은 하얀민들레밥으로 결정했는데 하필 우리가 방문한 날이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시장 근처에는 일요일에 문을 닫는 곳이 많았다. 어쩐지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시장 골목을 걸어 지나오면서 본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아 평소 시장에서 느낄 수 있는 활기를 느낄 수 없어 의아했던 참이었다.
계획했던 하얀민들레밥을 먹을 수 없게 되자 그때서야 아차 싶었던 나는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었기에 빠르게 대안을 찾아야 했다. 주변에 문을 연 식당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다가 ‘제천 가스트로 투어’ 라고 적힌 표지판을 발견했다. 급히 검색해보니 제천시가 주관하는 시티투어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숨은 맛집을 방문하여 입이 즐거운 여행을 하도록 하는 투어가 있었다. 어차피 투어를 즉시 예약해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가까운 국숫집에서 식사를 했다.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인터넷 검색을 좀 더 해보니, 가스트로 투어에는 맛집으로 시작해 맛집으로 끝내는 ‘가스트로 단일 상품’과 맛집을 포함하여 제천의 관광지까지 둘러보는 ‘가스트로 패키지 상품’도 있어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했다.
아쉬운 마음에 국수를 다 먹고는 제천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빨간 어묵이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빨간 어묵을 파는 가게를 찾아갔다. 제천과 빨간 어묵,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어째서 유명한가 했더니 제천이 가진 산지 특성상 고추 맛이 좋다고 한다. 제천 중앙 시장이 들어서기도 전에 1986년부터 빨간 어묵을 개발해 팔았다는 사장님의 맛 취향도 칼칼한 제천의 빨간 어묵이 유명해지는데 한몫했다고 한다.

제천 10경 중 1경, 의림지와 용추폭포

1999년, 제천시는 관광 도시로서 이미지를 확대하고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존의 제천 8경을 토대로 제천 10경을 지정했다. 엄마와 내가 찾은 의림지는 제천 10경 중 1경에 해당하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 시설 중 하나다. 의림지는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 저수지 주변 제방을 따라서 수백 살을 살아온 소나무와 수양버들이 푸르름을 더하고 있어 제림이라 불린다.
호서(호수의 서쪽)라는 충청도의 다른 이름은 의림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며, 내제(큰 제방)라는 제천의 옛 이름도 의림지에서 비롯되었다니 제천의 핵심 장소에 온 것은 확실한 듯했다. 저수지 옆으로는 가족 단위의 지역민과 관광객이 휴식하며 즐길 수 있는 유원 시설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의림지를 따라 걸으면 뻥튀기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보기에 낡았지만 즐기는 사람이 많아 활기가 느껴지는 의림지 파크랜드와 제천시 캐릭터라는 박달신선과 금봉선녀 동상을 지나면 용추폭포를 만날 수 있다.
유리로 만든 다리 아래로 폭포가 떨어지는 게 보이고 폭포를 등지고 약 50m만 걸어가면 폭포가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이 있었다. 조금은 이국적이면서도 푸르른 배경을 뒤로하고 떨어지는 폭포가 한 폭의 여름을 담아내는 듯했다. 용추폭포는 마을 사람들에게 ‘용터지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유래는 신월동에서 올라온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터져 죽었다는 전설에서 왔다고 전해진다. 이름도 범상치 않은 용추폭포는 제천에서 꼭 들러볼 만하다.
엄마와 나는 의림지를 따라 듬성듬성 놓인 벤치 하나에 앉아 떠다니는 오리배를 구경했다. 엄마도 나도 오리배를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리배는 운전자만 발을 구르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더위에 너무 힘들 것 같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오리배를 타는 건 낯간지럽다 등의 감상을 던지며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해서 우리는 더운 줄을 몰랐다.

단양구경시장
이 당일치기 여행의 처음과 끝은 시장으로 시작하여 시장으로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단양 구경 시장은 우리의 마지막 코스였다. 그 이유는 딱 하나, 마늘이 유명한 단양의 흑마늘 닭강정을 사기 위함이었다. 돌아보면 단양에서 한 일은 단지 흑마늘 닭강정 사는 일 정도였으니, 기사의 타이틀에서 단양을 빼야 하나 싶었지만, 흑마늘 닭강정은 그 정도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빼지 않기로 했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흑마늘 닭강정과 강냉이 막걸리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여름에 찾기를 잘한 곳
여름의 제천은 사방이 초록색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초록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것이 이 여행을 마친 뒤 소감이다. 어찌 보면 참 별거 없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난데없이 비가 퍼부었고, 운전하는 데에 거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보냈으며 굽이굽이 찾아간 카페에는 자리가 없어 그냥 나와야 했다. 자리가 없는 카페에서 나와 차로 돌아가기는 아쉬운 마음에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던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섰다. 그랬더니 갑자기 소낙비가 퍼붓기 시작했는데 거짓말처럼 우리가 서 있는 나무 아래에는 빗방울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허둥대는 사람들 옆에서 특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궂은 날씨 때문에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우려에 옆자리에 앉은 엄마를 쳐다봤을 때 “좋다.”라고 하는 엄마의 한 마디에 안도감이 들었다.

에필로그
“여기 주변에 호수가 있나 보네?”
제천에 다다랐을 즈음 ‘탄풍호’라고 적힌 이정표를 보고 엄마가 한 말이다. 운전하고 오면서 충주호를 끼고 하는 여행이라고 끊임없이 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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