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뚱땅 변산 여행기, 산과 들과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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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변산 여행기, 산과 들과 바다로

by 토마토쥔장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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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특집:여름 여행 변산에 다녀오다

 

얼렁뚱땅 변산 여행기, 산과 들과 바다로!

사진 하문희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은 해안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는 곳이다. 해안지역에 평야가 있지만, 면 대부분이 해발고도 300~400m의 산지인 복합 지형이다. <동국이상국집>에서는 변산을 산천과 물산이 좋은 지역으로 노래하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형성된 동네에는 신호등 없는 좁은 도로와 잘 포장된 넓은 도로가 공존한다. 오래된 건물 옆으로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과 바비큐 시설을 제공하는 펜션이 자주 눈에 띈다. 

 

#1. 채석강 

어렸을 적 바닷가에서 자란 탓인지 주기적으로 바다를 찾지 않으면 숨이 막힌다. 폐 속에 바닷바람을 저장하듯이 호흡을 하고 나면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그래서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배추처럼 절여져서 돌아온다. 그걸로 몇 달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변산을 찾은 것도 바다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운전사 겸 가이드로 동행한 친구는 꼭 인생샷을 남겨야 한다며 채석강을 첫 일정으로 잡았다. 채석강은 지질 명소이자 사진 명소로도 유명하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며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해 지어진 이름이다. 변산반도에서 서해쪽으로 가장 튀어나온 해안 절벽으로 7000만 년 전에 생성됐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한다니, 아인슈타인은 옳았다. 고속도로를 2시간 달리고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풀었다. 숙소는 일부로 채석강에서 5분 거리로 잡았다. 채석강은 지질 명소답게 아주 멋진 곳이었다. 오랜 시간 파도가 깎아낸 바위들이 비슷한 듯 다른 모양으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에는 미처 쓸려가지 못한 미역과 바다생물이 있었고, 갈매기 몇 마리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왼쪽으로는 길게 쌓인 방파제 끝에 등대 하나가 서 있었다. 바다를 향해 난 길 오른쪽에는 해식동굴이 있다. 저 안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렇게 잘 나온단다. 다른 관광객들도 잘 아는 모양인지 동굴 앞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으악, 야 여기 벌레 진짜 많아.” “그거 벌레 아니야. 갯강구야. 바다 청소해주는 좋은 애들이야.” 채석강에서 가장 먼저 관광객을 반기는 존재는 갈매기도 주민도 아닌 갯강구다. 가이드를 자처하던 친구는 보자마자 기겁을 하며 그 자리에서 탭댄스를 췄다. 갯강구도 놀랐는지 바위 밑으로 서둘러 숨어 들어갔다. 나름 바다의 청소부라는 별명도 있는데, 외모 하나 때문에 저런 취급이라니. 다리 개수가 많아 슬픈 생물이다. 동굴로 열심히 올라가 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다. 노란 불빛이 켜진 채석강은 낮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줬다. 곧 물이 들어올 시간이라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이대로는 아쉬워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오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도 어김없이 갯강구들이 배웅해줬다. 

해식 동굴에서 사진을 찍으면 이런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2 수성당과 적벽강

수성당 대나무 숲

차 한 대 지나가기도 힘든 비포장도로를 지나면 주차장이 나온다. 입구로 들어가기도 전에 안내 게시판 문구가 눈에 띈다. ‘무속 행위 금지’. 알고 보니 여기, 기운이 남다른 곳이었다. 수성당은 서해를 다스리는 개양할머니와 그의 딸 여덟 자매를 모신 제당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초에 마음의 평안과 풍어를 비는 수성당제를 지낸다. 주차장 위쪽 길에는 대나무숲이 있다. 흙길을 따라가면 바다가 보인다. 변산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관광명소 대부분이 해안길 하나로 다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표지판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면 곧 적벽강에 도착한다. 이름을 듣자마자 적벽대전이 생각났는데, 중국의 적벽강만큼이나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해가 질 때 붉게 물드는 바위가 일품이지만 아쉽게도 이날은 구름이 많았다. 

적벽강

#3 격포해수욕장과 뜻밖의 횡재

해안길 따라 쭉 난 도로는 드라이브에 안성맞춤이다. 스피커 빵빵하게 신나는 노래를 틀고 들썩들썩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침 도로에 차도 없겠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열심히 머리를 흔들며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갔다. 너무 몰입한 탓인지 중간에 길을 한 번 잃었다가 겨우 격포해수욕장에 도착. 이번 여행 테마는 힐링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바다가 잘 보이는 곳에서 만족할 때까지 구경하는 게 목표였다. 예상외로 해수욕장에 사람이 많아 다른 곳을 찾아보던 중 오랫동안 사람 왕래가 없어 보이는 길을 하나 발견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니 놀랍게도 작은 모래사장이 있었다. 채석강과 비슷한 바위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앞에는 탁 트인 바다가 보였다. 사람이라고는 오래된 부부 한 쌍이 전부. 부부는 방금 막 수영을 마치고 나온 듯했다. 물기를 닦고 짐을 챙겨 돌아가는 뒷모습에서 엄청난 내공이 느껴졌다. “저분들 한두 번 와본 게 아닌가 봐. 이 자리 끝내준다” 두 사람이 앉아 있던 자리도 보통이 아닐 것 같아 가자마자 서둘러 앉아 봤다. 성공이었다. 적당히 시원한 바람, 파도 소리, 안정적인 바위 의자까지 완벽했다. 파도가 높지 않아 신발 젖을 걱정도 없었다. 살이 타든 말든 한참 앉아 있다가 요즘 유행한다는 모래사장 사진도 찍어봤다. 

 

#4 슬지제빵소

여행의 묘미는 역시 맛있는 음식이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음식 하나쯤은 먹어줘야 다녀갔다고 할 수 있다. 부안에는 다양한 맛집이 있지만, ‘슬지제빵소’는 출발 전부터 가려고 벼르던 곳이다. 슬지제빵소는 약 20년간 찐빵을 만들어온 곳이다. 찐빵 안에 팥과 생크림이 같이 들어있는 ‘생크림 찐빵’과 크림치즈가 들어간 ‘크림치즈 찐빵’, 국산 밀과 팥으로 만든 오색 찐빵 등이 유명하다. 평소 손님이 많아 가게 밖으로 대기 줄이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날은 운 좋게도 붐비지 않아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여행 갔을 때만큼은 돈 아끼는 거 아니라고 배웠다. 찐빵은 종류별로 커피 두 잔까지 포함해 주문했다. 주방은 한쪽이 통유리라서 찐빵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크림치즈 찐빵은 비닐 속에 넣어 차갑게, 나머지는 작은 찜기 속에 담겨 나와 먹음직스럽다. 맛은 예상대로 좋았다. 솔직히 생크림과 팥이 같이 있는데 맛없을 수가 없다. 커피는 원두와 고창 검정보리를 블랜딩했다는데 찐빵과 합이 기가 막혔다.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나길래 결국 사이트를 방문했다. 알고 보니 택배 주문도 가능하단다. 며칠이 지나도 생크림 호빵이 계속 품절이길래 질문까지 남겼다. “혹시 생크림 찐빵 이제 택배 배송 안 하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친절한 답변이 달렸다. “안녕하세요! 생크림 찐빵은 일시적으로 생크림 수요가 원활하지 않아 품절입니다! 재고가 안정되면 바로 판매 재개할 예정입니다!” 다행이다. 변산까지 다시 찾아가지 않아도 되겠다. 

 

#5 직소폭포

직소폭포

직소폭포는 변산국립공원 품 안에 들어서 있다. 산림지역인 내변산에 있는데, 차로 구불구불한 길을 열심히 오르고 나면 피톤치드 향이 나는 초록빛 공간이 펼쳐진다. 입구로 들어서면 코스 안내문 표시가 나온다. 두 코스 중 마음에 드는 길로 골라 가면 된다. 우리는 내소사 코스로 갔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대나무 숲이 보인다. 대나무 잎이 바람에 사르르 흔들렸다. 간밤에 내린 비 때문인지 한층 더 진해진 대나무 향이 마스크 틈으로 들어왔다. 전망대를 지나면 탁 트인 직소천이 나온다. 푸른빛으로 가득한 이곳은 물도 푸른 녹색이다. 내소사 코스 시간이 짧은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여기 분명 산책로라고 하지 않았어?” 슬슬 폭포가 나올 때도 됐는데, 아무리 걸어도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물어봤다. “그러게, 우리 왜 갑자기 산 타고 있냐?” 분명 하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너무 좋았는데 갈수록 계단이 많아진다. 길도 점점 가팔라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렇게 계단을 3번 정도 탄 후에야 저 멀리서 시원한 소리가 들렸다. “야 물소리 들린다. 거의 다 왔나 봐” 앞서가던 친구 목소리가 밝아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지막으로 계단을 올라가니 폭포가 보였다. 흰 물줄기가 떨어지는 걸 보며 성취감을 느꼈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옷도 땀에 젖었지만 마음만은 상쾌했다. 자연이 주는 선명한 행복이다. 이후 우리는 여기까지 온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며 15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다시 일상으로

“아, 돌아가기가 싫네”

친구는 이번 여행이 좋았나 보다. 하루만 더 있고 싶다며 돌아가지 않으려는 걸 겨우 말렸다. 나도 더 있고 싶지만 그거 렌터카라서 오늘까지 반납 안 하면 큰일 나. 돌이켜보니 알차게도 돌아다녔다. 운이 좋아 물 때도 잘 맞추고 기다리는 일도 없었다. 장마철이었는데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나는 비 맞을 운명이 아니라고 주문을 외우고 다녔더니 통한 모양이다. 다시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다. 이번엔 스피커를 끄고 대화를 한다. 다음번에는 꼭 내가 면허를 따서 다시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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