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으로의 나홀로 유람, 그리고 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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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으로의 나홀로 유람, 그리고 유희

by 토마토쥔장 202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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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특집: 여름 여행 문경에 다녀오다

 

문경으로의 나홀로 유람그리고 유희

 

 글 사진 이창원 

 

왜 하필 문경이었느냐면열차에서KTX매거진 6월호에 실린 문경을 보았기 때문이다직장에 다닐 때는 나도 떠나고 싶다.라는 부러움만 가졌는데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백수라는 직업은 여러모로 참 좋다.

대학 시절유람&유희라는 팀명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기획을 추진했었다개인적으로 여행과 관광이라는 낱말보다 조금 더 행위 중심 낱말인지라 좋아한다각각의 단어는 돌아다니며 구경함(=유람), 즐겁게 놀며 장난함 또는 그런 행위(=유희)라는 사전적 정의가 있다.



유람 전여행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괴상한 인간

인생의 첫 직장, 3년 7개월을 여행사에서 일했다다만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사에 들어간 건 아니다어쩌다 보니 그리되었다고등학교는 이과대학은 지질환경과학과를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들어간 직장에서 고졸치고는 꽤 선방한 근속년수다.

지금도 수많은 기성 언론과 속칭 인생 선배들은 대학졸업장이 없고토익점수가 낮으며자격증이 없으면 세상에 뒤처질 것처럼 말하지만 인생에는 수많은 기회가 있다전적으로 절 믿으셔야 합니다.라는 사악하고 달콤한 외침 속에서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늘 그랬듯이라는 과정 중심의 사고방식이 더 건강한 삶의 방식이지 싶다.

여행사에 들어가면 항공 티켓을 발권하는 담당이 있고코스 기획을 하는 담당이 있고인솔만 하는 전문 인솔자가 있다는 편견은 과감히 버릴 것을 추천한다혼자서도 모두 가능하다는 걸 깨우친 직장에서 그동안 작성하고 진행했던 여행 사업계획서가 백 장이 넘는지라 익숙하다문제는 내 여행이 아니라 고객님의 여행을 짜는 행위에서 오는 간극그 간극이 꽤 많은 인간에게 불행하다라는 단어를 상기시킨다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는 어느 직장에서건 퇴사를 결심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발상의 전환이란 이럴 때 필요하다아무리 쓸모없다고 뇌에서 주장하여도 언젠간 나에게 도움이 될 테지라는 마인드 셋돈 없고 빽 없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을 투자해서 유·무형의 자산을 취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사업계획서는 3년 7개월간 취득한 유·무형의 자산 중 하나다’ 말고도 세상에는 취득할만한 자산이 다양하다.



근데 문경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다

문경 유람의 발단이 된 KTX매거진을 제외하고는 내 삶에서 문경과 연관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유람하는 지역에 지인 혹은 스쳐 지나간 장소라도 있으면 계획하기 수월한데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없어서 당황했다이런 지역을 유람하는 건 마치 복권을 긁는 느낌이랄까. 97% 꽝이 나올 확률과 3%의 당첨 확률 같은 유람은 옳지 않다결국 3년 7개월간 취득한 유·무형의 자산을 떠올렸다.

문체부에서 추진하는 관광두레라는 사업이 있다국내 여행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을 통한 질적 도약을 목적으로 주민주도 관광사업체를 육성함이 목적인데바로 옆 나라인 일본만 하더라도 여행 후 또 방문하고 싶은 나라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인식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게 국내 관광의 한계점이었다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비단 외국인만이 아닌 자국민조차 동의하는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는 사실이다한국의 관광명소는 육중하고 거대한 느낌이 강하다전반적으로 비슷한 관 주도 운영방식에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소소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한번 여행한 뒤 재방문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일회성의성수기에 치솟는 바가지요금일상적이지 않고 뭔가 한탕 이벤트 같은 관광이 주를 이뤘다.

관광두레를 몸소 경험했던 건 2018년이다사업의 추진 연차와 내재한 가치에 비해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관광두레 사업의 인식확산을 목적으로관광두레 아카데미’ 모집공고를 당시 운영사인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발표했다전국 지자체의 관광 관련 부서에서 모집에 지원하는 가운데 대전에서는 대덕구와 동구가 동시에 이 사업을 신청하면서 수탁 운영사로 내세운 게 마침 내가 재직 중인 회사였다회사생활이란 본디 나대는 만큼 일을 받는 구조이기에 조용히 넘어가는 게 상책이지만이 사업은 무언가 미지의 영역이라 왠지 욕심이 났다제일 바쁜 연말에 이 사업을 맡아 운영하고 정산하며 밤을 새우다 속으로는 휴먼왜 그런 사고를 했나요?를 되뇌던 시기가 있었지만아카데미 운영을 통해 대전시 자치구 중 제1호로 대덕구 관광두레 PD가 선정되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관광두레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걸 꼽자면 관광두레 PD. PD 활동을 3년 차 정도 진행하면 지자체별로 질적 도약을 마친 주민주도의 관광사업체가 생긴다지역별 편차가 있겠으나 이번 문경 유람 코스는 관광두레의 흔적을 살피면서 짜기로 했다

 

관광두레 사업 추진 체계

늘 하던 대로 여행 사업계획서를 쭉 써 내려갔다언제 갈지어느 유람지를 갈지밥은 어디서 먹고카페는 어디로 갈지숙소는 어디로 잡을지뭘 타고 이동할지장소와 장소 사이의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인근에 위급상황 시 병원은 몇 시까지 운영하는지챙겨가야 할 물품은 무엇인지추정 예산은 얼마인지, 1박 2일간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를 찬찬히 살폈다.

 

출발문경 속으로① 파밀리아

문경새재 도립공원 진입도로 옆에 있는 이 식당은 평소의 인기와 달리 한적했는데 평일 방문에 더해 오후 2시 반에 도착해서 그렇다고 한다아무 손님 없이 고요한 식당에서 메뉴를 주문한 후밖에 나와 찬찬히 일대를 둘러보는데 문경새재 아니랄까 봐 백두대간 높은 산에 뒤덮인 분지 형태가 가히 절경이다이런 경치에서 식사는 그간의 허겁지겁 해치운 식사를 돌아보게 했고한 인간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했다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가살기 위해 먹는가.

파밀리아 전경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이라면 후자이겠고감성적이라면 전자라고 말함이 맞는 것 같다바깥을 돌아보고 주문한 메뉴가 나와 한입을 떴다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맛이다주문한 메뉴는 치킨 크림 파스타리코타 치즈 샐러드엘리사 레드 와인이다양이 무척 푸짐했으나 별로 중요치 않았고뱃속으로 알뜰살뜰히 잘 집어넣었다행복은 별것 아니다.

 

출발문경 속으로② 단산모노레일

혈기왕성한 이십 대와 달리서른에 접어들며 새로이 생긴 취미는 고지에서 느긋이 전망하며 사유하는 행위다즐거울 때 가는 것이 아닌근심 걱정이 가득할 때 기타를 등에 메고 고지를 향해 올라간다힘겹게 정상에 올라 은은한 멜로디를 치고 노래한 후 전망을 내려다 본다머리가 선명해지고 정리가 됨을 느낀다개인적으로 독자들께 추천하는 충청권의 전망 명소로 낮엔 대청호의 노고산성밤엔 청주의 수암골이다.

문경에서 전망 명소를 찾다가 단산모노레일을 발견했다백두대간의 산세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람지로 선정했다. 8인승 모노레일이고 시간대별로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다만하루 전까지만 온라인 예약이 가능하다성수기에는 온라인 예약이 필수나현재는 평일이고 코로나로 인해 한산하다고 하여 현장 발권을 진행했다. 12,000원의 입장료가 있고그중 2,000원은 문경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하부 승강장에서 티켓 발권 후모노레일을 타고 상부 승강장 도착까지는 35분이 소요된다시속 3km/h의 느린 속도지만 42°의 급경사로 인해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다모노레일로 올라가면서 장관이 펼쳐질 것 같지만 울창한 나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다상부 승강장에 하차한 후 정상에 걸어 올라가야 진정한 전망을 볼 수 있다

단산모노레일 상부승강장, 정상에서의 전경

중등교육에서 종종 나왔던 문경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을 가졌다조선 태종 시기(1414)에 개통해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떠날 때 반드시 거쳤던 관문이다시간이 흘러 문경새재 옆 단산에 모노레일을 설치하는 기술력을 가진 시대의 인간들이 정상에 올라 문경새재를 내려다보며 유람한다자그마치 600년의 세월이 담긴 단산의 정상에서 인류의 진보를 느끼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통기타를 가지고 올라온 나는 어린왕자 옆에 앉았다굳이 노래하진 않았다조용한 멜로디로 클래식 기타를 치니 신기한 듯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간다바로 옆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었고 눈앞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태생이 쫄보인 나는 언제 저리도 과감히 하늘에서 날아보려나.

 

출발문경 속으로③ 경체정

유람 장소를 정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면주로 사람 많고 복잡한 곳이 아닌 홀로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누구나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좋아한다그런 장소를 찾다 발견한 경체정은 경북 문경시 산양면의 중심을 관통하는 금천(錦川)변에 있다

조선 시대를 지배했던 성리학에서 핵심 문화로 알려진 구곡(九曲)은 산속 계곡의 아홉 굽이라는 뜻이다구곡은 12세기 남송의 성리학자인 주자로부터 발원되었다고 알려졌는데단순하게 풍광이 빼어난 곳을 선정함에 그치는 것이 아닌 아홉 장소를 매개로 구곡시를 짓고구곡도를 마련해 걸어놓고 봄으로써성리학의 이상을 정립하고 실천하는 조선 시대 선비들의 문화였다고 한다경체정은 청대구곡 중 2으로써지금의 정자는 1935년에 현리마을 안에 있던 정자를 197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현리마을은 인천 채씨 집성촌이기도 하다.

경체정 입구는 때때로 닫혀있을 때도열려있을 때도 있다는 후기가 있어 조마조마했으나 유람 당일에는 다행히 열려있었다입구를 지나서 경체정에 올라 금천을 내려다보니왜 이곳을 구곡으로 선정했는지를 한 눈에 알았다바로 앞엔 금천이 흐르는 물소리와 경치적당한 그늘과 선선한 바람을 맞을 수 있는 정자가 있다면선비들이 사유하기 딱 좋은 환경이 아닌가다만종종 낚시하러 오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마을 어르신들이 통기타 가방을 낚시 가방으로 오해하며 깔끔하게만 잘 정리하고 가시라는 웃픈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자에 가만히 앉아 사유하다 뻗어 나간 생각의 갈래가 인상 깊었다대학 주변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면 시대의 정의와 사회구조의 변혁을 위해 선·후배 간 격한 논의를 끝으로밤새 술을 곁들이며 민중가요를 부르고 풍물패와 함께 노닐다 끝내 해돋이를 보는 예술적인 삶을 살았을 텐데못내 아쉽구만.

역시 태생과 근본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출발문경 속으로④ 카페 가은역

2000년대 초반 즈음, 10살이 채 안 된 나이의 어린 꼬마는 아주 희미하게 통일호를 타고 외가에 간 기억이 있어요당시의 열차 종류는 최소 역 정차를 하는 빠른 순서로 새마을호·무궁화호·통일호·비둘기호가 있었죠기차역은 일반적으로 앞문과 뒷문이 있었는데 앞문으로 들어가서 종이 티켓을 발권한 후열차가 도착하기 전에 역무원이 펀치로 티켓을 뚫어준 고객을 뒷문으로 안내함으로써 열차에 탑승하는 구조로 기억해요.” 

서른이 되어 카페 가은역에 도착해 주변을 돌아보니 어렸을 적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유람 기획 단계에서는 떠올리지 못했으나 현장에 도착하고 둘러보면서 몸소 느꼈으니만큼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음을 의미할 테다. 1955년에 지은 현재의 역사는 개업 당시엔 근처에 위치한 은성탄광의 이름을 따 은성역이라 불렸으나 1959년부터 가은역으로 바뀌었다. 2004년에 가은선 폐선으로 인해 폐역된 후 문경시가 매입하여 지자체 소유가 되었고 2006년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가은역의 전환점은 2017년 발표한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활용 공모사업에 가은읍 일대 주민들이 힘을 합쳐 가은역을 로컬푸드 카페로 개조하고 싶다는 의견을 모은 아이디어가 선정되면서부터다이로부터 1년 후문체부 관광두레 사업에 문경PD가 선발되고 최소 3년에서 최장 5년간의 지원 기회를 얻으며 관련 사업이 날개를 단다문경 관광의 질적 성장을 위한 지역특화 메뉴 개발브랜딩 작업경영개선 등 종합적인 컨설팅이 이루어졌다. 3년이 지난 지금은 명실상부한 문경의 대표 관광사업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카페 가은역 정문

카페 가은역은 문경의 지역 특산물 중 하나인 사과를 활용하여 사과 밀크티사과 모히또사과 라떼사과차사과버터 등을 판매한다여기에 디저트로는 마들렌 도시락스콘 도시락 with 사과버터사과 쿠키가 있다점심시간 이후에 방문했더니 밀크티는 품절인지라사과모히또와 스콘 도시락을 시켰다혼자서는 카페에 가지 않는 나의 가치관을 훼손시킬 만한 맛과 풍경을 준 카페 가은역에 고마울 따름이다.

사과모히또와 스콘 도시락 with 사과버터



당신은 다음에도 문경을 재방문할 의사가 있나요?

일반적으로 유람을 마치고 나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냉정하게 평가하고자 함이다뭐 그리 복잡하고 까다롭게 여행하냐 할 수 있지만여행사에 다닌지라 어쩔 수 없는 한계다전반적으로 여행 코스는 깔끔하고 좋았으나그 밖의 지역 상황이 여러모로 안타까웠다.

여행 코스를 제외한 도시의 활력이 떨어짐을 느꼈다숙소를 점촌역 인근으로 잡은지라 저녁식사를 위해 8시 반에 돌아본 문화의 거리는 네이밍 치고 일대의 식당이 대부분 문을 닫아서 의아했다운영 중인 프랜차이즈 식당 역시 이용객이 많지 않았고거리에 청년층은 대부분 보이지 않았다궁금하여 대학을 찾아보니 외곽 산골에 사립 문경대학교’ 하나가 존재한다.

문경시의 인구는 1995(95,778)에서 2020(71,406)으로 지속적인 감소가 일어나고 있었다경상북도에 존재하는 10개의 자치시’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기도 하다. 2019년 기준으로 문경시 전체 인구 중 20~29세의 비율은 2.4%이다지방소멸론과 함께 향후 10년 내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앞둔 작금의 상황에서 지자체 스스로는 내세울만한 타개책이 딱히 없어 보였다문경도 나름 관광자원이 많은데 코로나로 인한 관광객 감소도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없진 않을 테다

이러한 와중에 도시재생 뉴딜사업 선정은 그 의미가 크다도시재생 사업 중 가장 규모가 큰 경제기반형을 바탕으로 올해부터 6년간 3,500억 원이 투입된다는 소식이다어쩐지 돌아다니다가 문경시 도시재생 지원센터’ 건물만 눈에 대문짝으로 들어오더라니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했던 곳이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더 나아질 필요도 없다그대로만 있어주면 안 될까그것만으로도 참 어렵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월간토마토 vol.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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