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지나간 자리, 사라지고 남은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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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바람이 지나간 자리, 사라지고 남은 것들에 대해

by 토마토쥔장 202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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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지나간 자리, 사라지고 남은 것들에 대해

글 사진 김창연

공원이 새로 생길 옛 동부탕 자리

 

 《월간 토마토》 2019년 10월호에서는 대전 달동네 대동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고요한 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일렁인다.’ 당시 글에선 대동의 종합적인 환경개선 프로젝트를 변화의 바람으로 비유하였다. 대동에 이루어질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발단과 기대감을 담아낸 글이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동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였을까? 성공적인 변신을 마쳤을까? 여러 의문과 함께 마을 현장활동가 배정화 씨를 다시 찾아갔다.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배정화 씨는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어? 그러고 보니 이전 인터뷰 때와 복장이 같네요? (웃음)” 배정화 씨는 당시 인터뷰 때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마을은 새롭게 단장을 마쳐가고 있으나 그녀의 복장은 예전 그대로였다.

 

1. 바람이 지나간 자리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2019년도에는 무엇을 할까의 단계였다면 올해는 마무리 단계에요. 마을 주차장, 주민식당, 공원은 이미 설계가 끝나서 빠르면 8월 중에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고 올해 말에는 완공할 것 같아요. 달빛아트센터는 운영방식부터 건물의 모양까지 주민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어요.” 배정화 씨가 설명한 변화 외에도 대동은 다소 흉물스러웠던 공, 폐가도 많이 사라졌고 오래된 우편함은 깔끔한 우편함으로 교체되었다. 아름다운 벽화는 곳곳에 그려져 마을의 생기를 더하였고 대동의 명소인 하늘공원을 중심으로 각양각색의 조명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배정화 씨는 실제로 대동에 거주하며 센터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이 새로운 변화를 맞이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지역주민들과 현장 지원센터 사이에서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었던 그녀의 역할이 컸다.

또한 현장 지원센터는 7월 6일부로 협동조합을 개설하였다. 조합은 마을 주민들을 위한 주민식당, 주차장, 달빛 아트센터, 공원 설치 등 다양한 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 지어질 주민식당과 공방의 운영, 달빛아트센터 안내직 등은 모두 주민들을 위한 일자리의 일환이다. 배정화 씨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진행하면서 마을 내 일할 사람이 적다는 것을 느꼈다. “일거리를 찾는 주민들은 일하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갔어요. 일하고 싶어도 마을 내부에서는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조합을 만들며 시행한 창립총회에서 마을 내부 일거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이전 마을 회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주민도 얼굴을 비추며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마을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면 밖으로 나설 이유가 없었다. 노령인구가 대부분인 대동에서 비교적 젊은 40, 50대 주부들은 조합을 통해 마을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시도들은 일하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서야 하는 주민들의 고충을 덜어줄 것이라 기대하였다. 협동조합에서는 시설물 설치 외에도 주민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 효과도 있다. 조합은 주민들에게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함께 많은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변해가는 대동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인 집수리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주거환경도 개선되었다. 허물어진 담장이나 오래된 창문과 대문이 사업을 통해 교체되었다. 기존의 낡고 허름했던 거주지가 깔끔한 모습을 되찾자 많은 주민이 기뻐하였다. 하지만 모든 집이 사업의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동에는 벽 사이에 벽 하나를 덧대어 만든 무허가 건물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은 사업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요.” 배정화 씨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그녀가 보여준 지도에서 반듯하게 정돈된 주거지와 그렇지 못한 주거지를 구별할 수 있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진행되는 지역 대부분은 저소득층이 거주한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지 못함에 배정화 씨는 안타까워하며 마을 관계자들과 함께 해당 주민들도 지원 받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하였다.

2. 사라진 것들

 대동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은 전에 없던 문제를 마을에 안겨주기도 하였다. 대동에는 하늘공원과 함께 거리미술관, 연애 바위, 주변 카페 등이 존재한다. 그로 인해 골목을 거닐다 보면 대동을 구경 온 외부인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대전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대동을 찾아준다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새롭게 변해가는 마을과 함께 여러 문제가 생겨났다. 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의 쓰레기 무단 투기, 흡연 문제, 소음공해 등은 평화롭던 마을에 전에 없던 현상을 야기했다. 담배꽁초를 아무 곳에나 버리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심지어 야경을 보러 하늘공원에 방문한 관광객은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야호~!”를 외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새벽일을 하는 한 주민은 수면에 방해를 겪고 벽에 그려진 벽화를 페인트칠해 덮어 버렸다. 마을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쉬고 있는 노인들을 종종 만나 볼 수 있다. 관광객 중 일부는 노인들이 신기하단 듯이 쳐다보기도 한다. 마을의 지리를 잘 모르는 관광객은 그들의 거주지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주민들의 사생활이 우려된다.

“원래는 마을 주민분이 운영하는 카페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외부 카페가 맞은편에 들어서며 기존의 카페를 가리게 되고 그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그렇다고 주민이 가게 설치를 막을 수는 없어요. 좋은 자리를 선점해서 장사하겠다는데 주민은 물론이고 법으로나 정책으로나 대처할 방안은 없죠.” 배정화 씨는 원주민들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도 우려하였다. 

사업과 함께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 지원센터와 마을에서는 대동 인근 대전대학교 학생들과 지속해서 도시재생 원도심 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문제 해결에 힘을 쏟았다. 조명회사와 협업하여 귀여운 캐릭터 조명을 설치하기도 해 외부인들에게 경각심과 마을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끌어내기도 하였다. 조폐공사, 공원녹지과 등 다양한 기관과 부서에서도 대동 하늘공원과 함께 마을의 주거환경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귀여운 캐릭터 조명

하지만 고질적인 문제는 잔존한다고 배정화 씨는 말했다. “사업을 통해 CCTV도 많이 생기고 공공근로 하시는 분들이 더욱 신경 써주고 계시지만 앞서 말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어요.” 여러 가지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나 시민의식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를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와중에 한 가지 재밌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최근 기존의 CCTV보다 높이가 낮은 CCTV가 설치되면서 쓰레기 무단투기를 하는 사람들이 소폭 줄었다고 한다. 키가 작아진 CCTV가 마치 무단투기를 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 나타난 현상 같다고 설명하였다. 

이렇듯 마을의 가치가 상승하며 일어나는 현상을 대동만이 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부산의 감천마을을 들 수 있다. 감천마을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통해 부산의 마추픽추, 산토리니라는 애칭이 붙으며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마을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기도 하며 매년 관광객의 수는 늘어났다. 하지만 이런 유명세 때문에 감천마을 주민은 골머리를 앓았다. 마을 주민들의 사생활은 물론이고 그들만의 풍경이 사라진 것이다. 외부인이 달갑지 않았던 주민이 할 수 있던 일은 대동과 마찬가지로 벽화를 페인트로 덮어 버리는 것뿐이었다. 대동이 감천마을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소망한다.

3. 남은 것들

 주민들의 삶의 애환과 추억이 깃든 마을은 새 단장을 마쳐가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진행되며 대동에는 주민들을 위한 공원과 카페, 식당 등 새로운 시설들이 생겨나고 있다. 변해가는 마을의 모습에 기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쉬움이 큰 주민도 있다. 사업 이전에도 대동만의 아름다운 풍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동의 많은 풍경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동부탕’이다. 동부탕은 약 60여 년의 역사가 있는 동네 목욕탕이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철거가 된 동부탕은 동네의 이야기, 주민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공공의 장소였다. 고령 주민들이 대부분인 대동에서 동부탕은 주민들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일부 주민은 떠나갔고 동부탕이 있던 자리는 공원이 생길 예정이다. 공원은 여러 사람들이 공연도 할 수 있고 주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좋은 취지를 담고 있으나 동부탕을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주민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닿았을까 동네의 사랑방 동부탕이 청년 예술가들의 손으로 재탄생하였다.

제로사이는 로컬복합문화 공간으로 대전의 지역 번호인 042에서 착안해 서로의 사이가 제로(zero)가 되길 바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로사이는 5월에 철거된 동부탕의 모습을 담고 있다. 청년 예술가들은 당시 동부탕의 사진과 철거과정이 담긴 영상을 전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었던 사물함부터 옷걸이 등의 물품을 그대로 전시하였다. 전시된 사물함 속에는 실제로 동부탕을 이용하였던 주민의 메시지가 붙어 있었다. ‘동부탕은 저에게 함께 늙어가는 동지였어요.’ 사라진 목욕탕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주민들이 기억하는 동부탕은 단순히 목욕탕을 넘어선 그들만의 추억과 삶이었다.

동부탕에서 사용했던 사물함과 푯말 

그래서일까 마을주민은 전시에 대한 호기심과 지난 동부탕의 기억을 따라 제로사이에 방문한다. 비록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동부탕은 철거되었지만, 전시를 통해 원주민들은 그들의 삶과 기억을 되짚어 볼 수 있고 새롭게 마을을 찾아가는 누군가에겐 주민들의 추억이 깃든 동부탕을 만나볼 수 있다. “제로사이는 추후 대전을 소재로 여행 프로그램이나 공연 프로그램을 시도할 예정이에요. 대동의 마을 이야기를 마술로 풀어내는 공연도 계획하고 있어요.” 제로사이 대표 이단비 씨는 대전 지역과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고 주민들의 추억과 그리움이 영원하길 바란다. 로컬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야기를 기록하며 문화 공간을 만드는 제로사이는 대동 주민이 간직하고 있는 동부탕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영원하길 바란다.

 

변화의 바람은 마을의 그것을 앗아간 것이 아닌 주민들에게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선물을 해주었다. 서로의 사이가 제로가 되길 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제로사이가 이름 그대로 옛 풍경을 그리워하는 주민과 새로움을 맞이하는 대동의 연결고리가 되길 소망한다. 

 

월간토마토 vol.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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