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갯길과 골목,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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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고갯길과 골목,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by 토마토쥔장 202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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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에 다녀오다

 

고갯길과 골목,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글 사진 이용원

1.

최선을 다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알람은 7시에 처음 울린 후 대략 10분마다 한 번씩 반복해서 울렸다. 까무룩 잠들었다 깨기를 두세 번쯤 반복한 후에야 간신히 일어났다. 온몸이 빗물을 잔뜩 빨아들인 솜뭉치처럼 무거웠다.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학교는 감옥 같아. 생긴 것도 감옥하고 똑같잖아.”

“그러게 말이야, 좀 신나고 재미나게 짓지!”

학교 앞에 아이를 내려놓고 가게에 들러 커피를 텀블러에 담았다. 춘천에 가야 했다. 올해 한국지역도서전은 10월에 춘천에서 개최한다. 한국지역도서전 조직위원회 발대식에 참여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내년, 6회 지역도서전은 광주 동구가 유치했다. 1회 제주도, 2회 수원시, 3회 전북 고창군, 4회 대구 수성구, 5회 춘천시, 6회 광주 동구다. 그다음 한국지역도서전은 충청권에서 개최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국지역출판연대 안에서 계속 있었다. 출장길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발대식은 춘천시청에서 네 시였다. 점심 무렵에 출발해도 괜찮았지만, 아침에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춘천에 처음 간 건, 25년 전 102보충대에 들어갈 때다. 상황은 암울했지만, 처음 접한 춘천은 아담하고 깨끗하면서도 차분한 도시였다. 그 뒤로 일과 여행 삼아 들른 춘천은 늘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작은 고을에 깊게 뿌리내린 문화 역량도 만만치 않았다.

대전은 한밭이고 광주는 빛고을이며 춘천은 봄내다. 봄내, 참 예쁜 이름이다.

춘천은 들고나는 길이 극적이다. 춘천 나들목에 진입하는 길은 산자락이다.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면 좌측으로 아담한 춘천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오르막을 오르면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춘천이 오른쪽으로 펼쳐진다. 마치 지구에서 다른 별로 이동해 착륙했다가 다시 이륙하는 우주선에 올라탄 느낌이다. 덕분에 ‘이동한다’는 사실이 더욱 도드라진다.

아침 8시 45분께 대전 판암 나들목을 나와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 번 쉬었다. 춘천시 약사천 공영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였다.
발대식 전까지 춘천을 여행할 짬은 대략 세 시간이었다. 여행지는 발대식 장소인 춘천시청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야 했다. 검색 몇 번을 통해 약사천 공영주차장으로 목적지를 설정한 이유였다.

하늘 꼭대기에서 내리쬐는 햇살 때문인지, 도시는 한여름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은 새하얀 이불 홑청처럼 뽀송뽀송했다. 예전보다 높은 아파트가 늘었지만, 춘천은 여전히 아담하고 깔끔했다.

약사천

넓지 않은 약사천 공영주차장에는 일반 차량과 택시 서너 대가 있었다. 택시기사 몇이 차 안에서 잠깐 쉬거나 화장실을 이용했다. 춘천 택시기사에게 약사천 공영주차장은 차를 편하게 세워두고 잠깐 쉴 수 있는 공간인듯싶었다. 도시에 뚫어놓은 숨구멍처럼 보였다.

춘천 대표 하천인 공지천에 합류하는 약사천은, 보기에 대전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대동천 규모였다. 약사천은 1984년 복개했다. 예전 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복개 전에 약사천은 콘크리트로 네모반듯하게 물길을 정리해 둔, 흡사 하수구 같은 본때 없는 모양새였다.

도시 확장으로 녹지가 줄면서 약사천 수량도 함께 줄고 생활하수 등으로 오염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더러워 보기 싫은 것은 가려두곤 짐짓 모른 척했던 시절이다. 복개한 약사천 위에는 풍물시장이 들어섰다. 약사천은 그렇게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혔다. 춘천시는 2008년 약사천 복원을 결정했다. 2010년 공사를 시작해 2013년 준공했다.

지금 약사천은 마치 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본래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운 자연하천으로 흘렀다. 물은 깨끗했고 하천과 주변 생태계는 훌륭했다.

주차장에서 약사천으로 내려서면 바로 징검다리다. 징검다리 가운데서 약사천 상류와 하류를 훑어보고는 약사동 마을로 올라섰다. 하천은 꼭 그 중심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생김을 살펴야 한다. 좌안과 우안에서 거리를 두고 보는 하천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2.

징검다리를 건너서 만난 약사동은 오래된 주택 단지였다. 주변에 강원대학교도 있고 춘천시청도 있는 원도심이었다. 징검다리를 건너 올라섰을 때 오래된 주택을 수리해 카페나 사무실 등으로 활용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제일 먼저 만난 카페 ‘봄빛’이 그러했고 극작 플랫폼 작두(作 do)가 운영하는 공간 작당(作堂)이 그러했다. 이제 막 손을 댄 주택도 여러 채다.

카페 ‘봄빛’은 여행을 끝내며 들르기로 했다. 여행과 업무 사이에 부드러운 전환을 위해 반드시 틈이 필요했다. 카페 ‘봄빛’ 옆에 작당(作堂)은 문이 닫혀 들어가지 못했다. 작당은 2019년 강원문화재단이 추진한 <2019년 문화예술공간지원사업>으로 문을 연 공간이었다. 춘천에서 활동하는 극작가의 집필 공간이면서 낭독극 콘텐츠를 개발하는 낭독극장으로 사용 중이었다.

카페 '봄빛' 외관

주거 공간이 그리 변모한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공간을 소비한 느낌은 아니었다. 진지하게 해석하며 맥락을 가져가려 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약사동은 이웃이 집으로 찾아와 모여도 어색하지 않았던 시절을 살아낸 마을이었다. 공간은 변모했지만 마을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우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이미지만 소비하려는 상업공간과는 결이 달랐다.

주택을 리모델링해 사용하는 비슷한 예술 공간은 뒷골목에서도 발견했다. 마당과 골목 경계가 모호했다. 사적 공간이라 생각하면서도 마당에 발을 디디는 데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집은 테라스와 마당, 골목, 앞집 담벼락으로 물리적 경계 없이 이어졌다. 온통 푸른색으로 뒤덮은 앞집 담벼락에는 노란색 페인트로 자유롭게 우주를 유영하는 커다란 고래 두 마리와 물고기 몇 마리를 그렸다.

춘천문화재단에서 2020년 문화도시예비사업으로 조성한 ‘인생공방 1호점’이었다. 주민을 대상으로 빈집을 공모해 7년간 무상임대 계약을 맺었다. 수리와 리모델링을 한 뒤에 예술가에게 활용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프로젝트였다. 이 인생공방 1호점에 ‘스무디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처음으로 입주한 팀이 ‘몸의 대화’였다. ‘몸의 대화’ 김예니 대표와 이도하 씨는 2016년부터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아예 사업자를 춘천으로 옮기고 2023년 말까지 이곳에 거주하며 ‘예술치유워크숍’을 진행할 계획이다. 테라스에 세워 놓은 구조물에 붙은 프로젝트 설명문을 흥미롭게 읽는 사이에 집에서 ‘몸의 대화’ 이도하 씨가 나왔다.

“마침, 1차 프로젝트가 끝나서 홍보물을 철거하려고 나왔는데, 다행이네요.”

도하 씨는 그 시각에 나오지 않았으면 우리가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던 모양이다. 한낮 우연한 만남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여행 중 만남은 일상에 그것보다 훨씬 신나는 일이긴 하다.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던 도하 씨는 여행자에게 집 안으로 들어가기를 청했다. 맑고 유쾌한 청년이었다. 따라 들어간 집안에서 앞서 진행한 프로젝트 흔적을 볼 수 있었다. 길었던 빈 시간을 보상하듯 감각적으로 탈바꿈한 공간도 흥미로웠다. 도하 씨는 방문을 열고 나오는 김예니 대표에게도 낯선 사람을 우연히 만난 극적이었던(?) 상황을 싱글벙글 웃으며 또 설명했다.

빈집을 활용한 문화예술공간 '작당(作堂)'

“대전에서도 불러주시면 언제든 갈게요~”

역시, 대표님은 달랐다. 춘천 햇살만큼이나 환하고 밝은 두 사람이 궁금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 ‘몸의 대화’ 과거 행적을 뒤져보았다. 서울에서 폐 목욕탕, 폐 병원, 캬바레 등에서 그들이 벌인 프로젝트를 어렵지 않게 확인했다. 그들이 펼친다는 ‘예술치유프로그램’ 핵심은 ‘눈치 안 보고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 마주하기’처럼 보였다. 무척 흥미로웠다.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은 그곳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지만, 이번에는 예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대화' 이도하 씨(좌), 김예니 씨(우)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번듯하게 깔린 4차선 도로와 만났다. 예전에는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조붓한 길이었을 게다. 이곳을 약사리고갯길이라 불렀다. 조선 시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약사리고개 우측으로 약방이 줄지어 있어 ‘약사리’라는 마을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도 있다. 아무리 평범한 4차선 도로일지라도 품은 이야기를 알면 다르게 보인다. 이야기를 기록하고 공유해야 할 이유다.

4차선 약사리고갯길을 사이에 두고 약사동은 둘로 나뉘었다. 고갯길 우측 마을보다 좌측 마을 면적이 더 넓다. 골목 여행을 즐기는 마니아 사이에서 춘천 약사동 망대길로 불리며 제법 유명한 곳이다.

약사천 곁으로는 복원 공사를 하며 만들어 둔 아담한 공원과 함께 프로젝트로 진행한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 끝이 마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도 여럿이다. 골목이 집을 만든 것인지 집이 골목을 만든 것인지 늘 헷갈린다. 골목 안에서 발견하는 감성은 특별하다. 골목 안에서 그 감성과 마주하며 다양한 영감을 받는다. 위대한 예술 작품을 감상하듯 말이다. 오랜 세월이 쌓여 형성한 그 정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이 시대 얼마 남지 않은 ‘골목’은 지켜야 할 소중한 자원이다.

약사리고갯길 좌측 마을 약사천 옆에서 만난 ‘터무니창작소’는 오래된 집을 예쁘게 수선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조그만 공간을 알차게 활용해 안현옥 작가 개인전을 열었다. 그전에는 약사동에 있던 옛 춘천교도소를 촬영한 류은규 작가의 <약사기억_춘천교도소 100년의 기억> 전시도 열고 주민 여럿이 그린 서양화를 모아 전시회를 개최했다. 춘천시가 문화도시로 지정을 받으면서 진행한 프로젝트, ‘도시가살롱’ 1기 운영공간으로도 참여한다. ‘터무니창작소’가 약사동 마을에서 어떤 기능을 담당하며 구성 요소로 녹아드는지 잘 읽힌다.

복합문화공간 '터무늬창작소'

오랜 시간이 쌓인 약사동은 우리가 살아낸 과거 어느 즈음을 여전히 기억한 채 남았다. 이 기억을 바탕에 두고 춘천시는 이곳에서 ‘문화’를 열쇳말로 도시재생뉴딜사업을 벌인다. 여기에 다양한 ‘문화도시 춘천’ 사업이 결합해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채웠다.

평일 한낮 약사동 골목은 한없이 조용했지만, 에너지를 조금씩 그러모으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후 어떤 콘텐츠를 가진 마을로 정체성을 다시 만들지 무척 궁금했다. ‘지루하고 압박감 심한 일상에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영감을 주는 마을’이 아닐까, 기대감이 생겼다.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

3.

깊은 산중 사찰과 도심 속 오래 머문 성당이 자아내는 빛깔은 묘하게 비슷하다. 대웅전 한쪽 구석에 가만히 눈 감고 앉아 있는 것과 성당 구석 자리 의자에 조용히 앉았을 때 찾아오는 위안도 유사하다. 다양하게 기능하는 ‘공간’은 우리 삶 주변에 늘 있어야 한다.

비상업 공간마저 상업 공간으로 기가 막히게 바꾸는 현 세태를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이유다. 모든 공간을 상업화하려는 시도는 도시를 점점 사막으로 만든다. 사막처럼 변하는 도시 속에서 만나는 오래된 ‘성당’은 정신적 갈증을 달래는 오아시스일지도 모르겠다. 종교적 동의와 무관하게 존재로서 그렇다. 상업성과 비상업성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다.

약사리고개 날맹이로 올라가면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이 있다. 성당 본관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54호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건립을 시작해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전쟁 말기인 1953년 완공한 건물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성직자가 행방불명이거나 죽음을 맞이한 아픈 역사도 간직했다.

날망은 펑퍼짐하게 넓지만 완벽한 수평도 아니다. 입체감이 도드라진 공간에 필요한 건축물을 들였다. 치열한 삶이 펼쳐지는 공간과 높이를 달리하며 적절한 거리감을 두고 들어선 모양새가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잘 관리한 잔디밭을 앞에 두고 아담한 성당이 당당하게 섰다.

석조 고딕 양식인 성당은 강가에서 오래 뒹군 돌멩이만큼이나 단단해 보인다. 성당 좌∙우측으로 길게 세운 ‘회랑’도 독특한 풍광에 느낌을 더해준다. 주변에 엄청네 크고 넓은 수형을 자랑하는 나무 몇 그루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지극히 평화로운 분위기를 완성해 준다. 그 순간, 그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성당의 회랑

춘천은 구릉 지대 위에 들어선 도시가 틀림없다. 곳곳에 지형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고개 이름도 여럿이다. 약사리고개에서 멀지 않은 곳이 육림고개다. ‘고개’이니 당연히 꼭짓점을 두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존재한다. 한쪽 경사면은 오르막이기도 했다가 다시 내리막이기도 하다.

반듯하지 않은 고갯길은 늘 매력적이다. 고개 너머를 예측할 수 없다는 현실이 그렇다.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화가 더욱 극적일 풍광도 절대 뻔하지 않다. 반듯하고 평평하게 밀어버리는 짓은 경제성 뒤에 숨은, 빈곤한 상상력 때문이다. 그 결과는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상상력마저 말살한다.

오래전부터 육림고개 상권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기름집 옆에 경양식집이 들어와 함께 공존한다. 한 건물 1층을 둘로 나눠 한쪽에는 강냉이를 튀겨주는 가게고 다른 쪽은 와플가게다. 생경한 조화는 최근 시작한 변화다. 빈 점포에 청년 상인이 입주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모양이다. 다른 지역에서 이미 많은 실패 사례를 본 뒤라 이곳의 결과도 궁금했다. 조금 더 기다려볼 일이다.

생경한 조화의 와플가게와 강냉이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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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면 중간 즈음에 문을 연 식당으로 들어섰다. 때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다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넓지 않은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올 즈음에 하나둘 들어온 손님이 어느새 공간을 가득 채운다. 육림고개 시간은 조금 뒤로 밀려 흐르는 모양이다. ‘온찬’이라는 식당에서 처음 맛본 ‘마제소바’는 독특했다. 일본식 비빔국수라는데 생각보다 간이 세다.

식사 후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육림고개를 너머 약사리고개를 찾고 그곳에서 약사천 부근으로 가야 했다. 1km 남짓 떨어진 거리일 텐데, 도심에서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하는 상황이 비현실적이다. 이런 순간과 맞딱트리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다. 

육림고개 끝자락에 더는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육림극장’ 건물이 지금은 용도를 달리한 채 섰다. 수려한 곡선과 직선이 어우러진 건물 꼴이 아름답다. 여전히 영화를 상영하는 곳으로 되살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준다. 아마, 문화도시 춘천시는 계획이 다 있을 듯하다. 

약사천으로 곧바로 가는 길은 없다. 이 역시 구릉 지대라는 특성 때문이다. 뛰어난 방향 감각을 가지지 못했지만 곧바로 가려면 죽림동 주교좌성당 아래로 터널을 뚫어야 가능하지 싶다. 상관없다. 구릉이 만든 지형에 필요에 따라 건물을 짓고 길을 냈으니, 그사이를 비틀비틀 방향 바꿔가며 걸으면 그만이다.

약사리고개마루가 보일 즈음에 멋진 복장을 갖춘 어른이 골목에서 나온다. 아저씨가 나온 골목을 보니 ‘한미사’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 앞에 ‘미제매니아’라는 수식 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골목에 들어가 한미사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저씨만큼이나 멋진 아주머니가 카운터를 지킨다. 아저씨도 따라 들어온다.

'한미사'의 김진환 씨 부부

“얼마 전까지 탑차에 물건을 싣고 양양이나 원통 이렇게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는데, 마침 차가 퍼져서 이렇게 가게에 들어와 있던 참이야.”

이야기를 들어보니 춘천 약사명동에 가게를 두었지만, 주로 탑차에 물건을 싣고 강원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팔았다. 정확하게는 물건을 팔기 위해 돌아다닌 것이 아니라 돌아다니기 위해 물건을 팔았다. 출장길에 세 시간 짬을 낸 여행자 눈에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부부가 사는 법은 특별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을 둘러보았다. 항공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응, 그건 트럼프가 입어서 유명해진 옷이지. 요즘 잘 나가는 제품이야. 일반적인 항공 점퍼보다 주머니가 많아. 입어 봐.”

미군 밀리터리룩은 나름 마니아층을 형성한 모양이다. 한창 대화를 나누며 아저씨가 젊을 때는 중장비를 운전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을 때, 카운터 유리장 안에 넣어둔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미군이 사막에서 신는 군화라고 얘기해주었다. 여행지에서 챙긴 유일한 기념품은 그렇게 우연히 습득했다. 제품은 중국산이었다. 정말 미군 사막화를 중국이 만드는 게 맞는지 묻고 싶었으나, 입을 다물었다.

춘천시청으로 출발해야 할 시간을 30여 분 남겨두고 ‘꽃비’에 앉았다. 여행에서 일상으로 전환하기에 적절한 시간이었다.

 

 

월간토마토 vol.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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