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는 이들을 위한 참고서
본문 바로가기
공간

도시를 걷는 이들을 위한 참고서

by 토마토쥔장 2021. 7. 20.
728x90
반응형

도시를 걷는 이들을 위한 참고서

글 사진 황훈주

 

 

혼자 여행 가는 것을 사랑한다. 혼자 가는 여행은 현실과 상상이 뒤죽박죽이다. 낯선 동네에서 친구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마주치면 그 친구의 일상을 상상하기도 하고, 미술관에서 자꾸 동선이 겹치는 누군가 만나면  혼자 연애 장편소설 하나를 써 내려가기도 한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끊임없이 주위와 소통하며 그 공간에 물들게 된다.

내가 사는 도시를 여행하기로 했다. 물론 이번에도 혼자다. 발터 벤야민 선생님은 파리를 산책했다. 그는 산책이 낯선 도시, 낯선 공간에선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오직 낯선 공간에서 체험하는 아우라가 ‘유실물’처럼 사라진 곳에서 산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거리를 걷기로 한다. 산책처럼 가벼운 여행. 그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거리를 걸으며 들리는 소리를 하나하나 모아 적었다. 거리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소망이다.

마음껏 걸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월평공원

대전은 세 개의 하천이 흐른다. 대전천, 유등천 그리고 갑천. 강은 자연을 붙잡고 도로는 도시를 붙잡는다. 대전은 세 개의 하천이 있기에 도시와 자연의 미묘한 균형을 이룬다. 나는 항상 그런 것을 좋아한다. 너도 좋지만 그렇다고 쟤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 같은 것. 그래서 둘의 경계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대전시청에서 216번 버스를 타고 40여 분을 달리면 가수원육교 정류장에 내릴 수 있다. 이곳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구봉소 하천이 나온다. 이 천 길을 따라 내려가면 갑천에 다다른다. 월평공원 습지 길로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구봉소 하천을 시작으로 월평공원 습지까지 길을 걸었다. 길 왼편으론 건물 짓는 깡깡 소리가 들리고 오른편으론 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 소리가 난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곳 중 어디로도 갈 수 없다. 길 주변은 풀숲으로 막혀있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가 바로 이곳이다. 이 사실은 도시의 일방통행로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길이 깊어질수록 머리 위로 나무가 더 우거진다. 엊그제 비가 왔다. 길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다. 길을 건널 수 없을 것 같으면 옆 풀숲을 헤집고 가면 된다. 그런 길이다. 이것도 좋지만, 저것도 해도 되는 길이다. 걸으면 걸을수록 도시와 멀어진다. 차 소리와 기계 소리는 줄어들고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바람에 부딪히는 풀 소리가 선명해진다.

걷는 목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해진다. 길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길을 걷는 것뿐이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없는 질문도 가끔은 괜찮단 느낌이다. 길을 걷다 먼저 앞서 걷던 사람을 만나지만 길에선 서로 말이 없다. 서로의 갈 길을 계속 갈 뿐이다. 모두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했는지 또  어디로 갈 것인지 알 수 없다. 원래 길은 답이 없다. 길은 답을 찾기 위한 사람들이 잠시 스치는 공간이다. 나도 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어디까지 가고 싶은지 마음을 정해야 했다.

인류 역사는 강에 다다르기 위한 역사였다고 했다. 갑천을 따라 걷는 여행은 천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났을 때 끝냈다. 두 시간이 조금 안 되게 걸었다. 징검다리 위에서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흐르는 강물 위에 푸른 나무와 산이 보이고 그 뒤에 아파트 머리 부분이 보인다.

다리가 조금 아팠고 드디어 도로로 나갈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기까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도시와 자연의 경계를 걸을 수 있다.

길을 건널 수 없을 것 같으면 옆 풀숲을 헤집고 가면 된다. 

 

아직 자지 않는 불빛을 따라 어서 움직이자 갈마동

 

어두운 거리 속 밝게 빛나는 주황 불빛은 마치 ‘나 개업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어서 오세요’란 느낌이다. 갈마동 거리에 작은 가게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갈마동 거리는 늦은 밤, 지친 도시 한편에 자리 잡아 밝은 불빛을 반짝인다. 소란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거리다. 그렇기에 누구든 잠시 머물다 가도 좋을 거란 안도감을 준다. 거리는 우연성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장소다. 우연한 인간관계가 이뤄진다. 샤를 보들레르는 이때 필요한 태도는 대상을 향한 감수성이 아니라 우연히 스치는 대상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혼자 술을 마시는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갈마동엔 혼자 술을 마시기 좋은 가게가 여럿 있다. 퇴근 후 마시는 술은 일종의 안도감이다. 아니면 다짐일지도 모른다. 이 술을 마시고 조금 취해도 이후에 일정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안도. 스스로 취하며 그런 안도감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혼자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싶지만 외로워지고 싶지는 않다. 거리를 조금 천천히 걸으며 귀를 기울이면 이곳의 거리가 내게 다가온다.

“사실은 이걸 먹고 싶긴 한데 또 지금 매운 걸 먹고 싶진 않아.”

“가지를 왜 밥이랑 같이 먹는지 오늘 알겠더라.”

“요즘 그 동네가 그래. 저녁 6시인데 이미 솔드 아웃이라고.”

거리 속 대화는 맛있는 음식 이야기로 가득하다. 간판은 영어로, 또는 중국어로, 일본어로 쓰여 있다. 이 거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어 거리 속 대화는 기대감에 차 있다. 저녁으로 적당한 가게를 찾다 대로변에 있는 소바집에 들어갔다. 혼자 밥 먹기 편하게 창가에 테이블이 일자로 놓여 있다. 

창가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가게 안 손님과 가게 밖 행인은 서로가 서로를 구경하게 된다. 창은 경계를 나누기도 하고 동시에 경계를 허물기도 한다. 나는 양극단의 어느 지점에  앉아 있나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갈마동엔 큰 창으로 가게 안을 볼 수 있는 곳이 많다. 시선의 권력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양도된 거리라는 생각을 하며 그릇을 비워간다.

“형님. 비계가 적어서 다행입니다.”

옆 테이블에 앉은 두 남자는 소바 위에 놓인 고기에 만족했다. 흘깃 본 남자의 얼굴은 무섭게 생겼는데 작은 고기 한 점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은 왠지 귀여웠다. 나 또한 저녁을 만족스럽게 먹고 근처에 보이는 술집에 들어갔다. 중국 음식을 파는 가게인데 새벽 한 시까지 문을 연다고 한다. 간단한 안줏거리와 맥주를 시킨다.

"이거 나중에 여자친구 생기면 해주려고 만들어 봤어요. 만들기 쉬워요. 이건 아인슈페너."

“이거 다 안 드시고 가면 서운할 것 같아. 그래서 오늘 좀 더 장사해보려고.”

주방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앉은 자리 뒤엔 디자이너로 예상되는 두 손님이 한 시간 내내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정확히 측정해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분당 ‘인디자인’과 ‘일러스트’라는 단어가 세 번 이상은 사용되는 것 같다. 나는 이야기들 속에서 맥주를 마신다. 일종의 안도감을 느낀다. 각자 한 자리씩 앉아 조금씩 술을 마실 수 있는 이 거리에서 나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뒤에서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린다.

“되게 색이 선명해… 나는 아직도 자다 깨다 해.”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나는 이 거리에서 꿈을 꾸는 것 같다. 이 거리 속에선 그 누구도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

 

 

특별한 건 길들여진 흔적이 아직 남았기 때문에 궁동

 

그 거리가 특별한 건 그곳에서 있던 일을 아직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나는 거리가 있다. 늦게 퇴근하고 방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그렇다. 그 거리를 다시 걷는 것은 현재 속에서 과거를 찾아가는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걷는 것은 현재와 과거가 충돌되고 기억과 상상이 혼재되어 있다.

대학은 한창 시험 기간이다.

“아 맞아. 나 컴퓨터용 사인펜 사야 해.”

“나는 온라인으로 시험 보는데.”

“부럽다.”
“부럽기는. 카메라로 얼굴이랑 손이랑 문제 푸는 종이까지 다 보이게 하고 온라인으로 시험보는데.”

“그것도 골치 아프네.”

대학가 거리는 늦은 밤에도 밝게 빛난다.  거리의 분위기는 그라데이션이다. 대학에서 가까운 카페일수록 시험공부 하는 학생이 많이 보이고 대학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일수록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는 학생이 많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카페에서 시험공부 하는 풍경은 여전하다. 길을 지나면 공부 전용 스터디 카페도 보인다. 공간 속 자유도 시간이 지나면 규칙이 생기고 변화한다. 카페와 스터디 카페는 얼마나 닮고 얼마나 다를지 생각했다. 거리 속 여러 카페 중 적당히 어두워 개인적으로 숨기도 좋고 또 남의 이야기를 듣기 좋은 적당한 공간이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학교 다닐 땐 체육 관련한 직업만 갈 줄 알았지.”

“여자가 생각보다 손목이 되게 얇아. 남자, 여자 그릴 때 차이를 잘 잡아야 해.”

“너는 노동자가 아니야. 그건 워라벨이 아니야. 네가 하는 건 노동의 모습이 아니야. 그냥 라이프지.”

“하루하루가 신기하긴 했어. 한인 마트에서 알바를 했지. 맨날맨날 모르는 단어가 들리니까 집 가서 오늘 들었던 단어를 검색해보기도 하고.”

대학엔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다양한 전공이 있는 대학일수록 가만히 카페에 앉아 대화를 들어보면 대화 주제는 다양하다. 한 곳에선 예술을 이야기하고 다른 곳에선 세계 경제를 이야기하고 또 다른 곳에선 대학생 때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대학은 그런 곳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뒤에선 인물화 그리는 것을 서로 가르쳐주다 갑자기 심각해진다. 

“여기 귀를 그릴 때 이 부분은 예전 아가미가 퇴화한 흔적이래.”

“그건 진화론 주장 아니야?”

“그래도 이런 거 하나하나가 디테일이지.”

“그냥 학설이잖아?”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유치해진다. 그 사랑의 대상이 전공과목이여도 똑같나보다.

대학가의 거리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굳이 귀 기울이고 있지 않아도 주변의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거리도 젊은 활기에 맞게 빠르게 바뀐다. 예전에 자주 가던 가게가 다른 모습으로 바꿔 있었다. 예전 친구가 살던 자취집은 철거되고 공터만 남았다. 그래서 대학 거리는 유쾌한 사막과 같다. 일종의 블랙 록 시티. 매일 버닝맨 페스티벌이 열리는 그런 사막. 바람에 따라 매번 바뀌는 풍경 속에서 그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각자는 각자 다른 곳에서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또 쉽게 헤어진다. 노교수부터 갓 대학에 들어온 학생까지 넓은 나이대의 사람들이 함께 거리를 걷는다. 사막을 유쾌하게 건너는 방법이 있다면 대학가를 걷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누가 그랬다.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천천히 걷느니 말을 타고 달리겠다고. 사막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느낌이 뭘까 했는데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아직 이야기가 남은 곳 대동


대전역을 등지고 걸었다. 어차피 대전역에서 대동역까진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다. 정확히 어디로 가야 대동이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무작정 걷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찾는 일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길을 잃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다. 원하는 목적지에 빠르게 갈 수도 있지만, 천천히 길을 잃으며 몰랐던 풍경을 알아가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막연히 대동에 갈 거란 생각으로 길을 떠난다.

대동으로 가려면 기찻길을 건너야 했기에 건널목이 나올 때까지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 기찻길은 내 오른편에 있지만 기차가 지나는 소리는 왼편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거리는 그만큼 좁고 조용하다. 그렇게 길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곳이 정동 마을이다. 조금 열린 문 안으로 할머니 두 분이 나물을 다듬는 게 보인다. 건물은 대체로 2층 건물이 일렬로 쭉 이어있다. 기찻길 옆에 있는 만큼 건물 벽이 두껍다. 일제 시대때부터 있던 건물이 많다고 했다. 기찻길의 소음이 잠잠해지길 바란 만큼 두꺼운 벽처럼 정동은 조용하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걸음을 늦추며 정동 마을을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정동 지하차도가 보인다. 이 길을 통해 기찻길을 건널 수 있다.

지하차도를 건너면 작은 하천이 보인다. 대동천이다. 투박한 천변이 마음에 든다. 근처에 있는 다리는 가제교라고 쓰여 있다. 1986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하천엔 흙물이 흐른다. 화장하지 않은 도시의 맨 얼굴을 보는 것 같다. 내가 보고 싶던 것이다. 나는 이 천길을 따라 걸으면 대동과는 더욱 멀어질 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그러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누가 그랬다. 길치는 이 길이 아닌 걸 알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거라고. 나는 어쩔 수 없는 길치인가보다. 걷다 보니 외제 차가 보이기 시작하고 길가에 젊은 사람이 갑자기 많다. 아차. 소제동이다. 처음 우리가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소제동은 도로 정비가 한창이다. 도로 정비 바로 옆 건물에 노란 플래카드가 보인다. “도로 신설이 왠 말이냐. 기존 도로 환경정비부터 똑바로 해라!” 대창이용원이 그 옆에 보였다. 도로 정비 바로 옆에 건물의 옆 모습이 다 드러난 이용원 모습은 예전 <찰리와 초콜릿 공장> 영화에서 본 찰리 집을 보는 느낌이다. 가파른 언덕 위 가냘프게 남아있던 그 집. 소제동을 나와 대동천을 건넜다. 나는 더 한적한 곳으로 외롭지 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간다.

“이거 먹으면 업어줄게. 어우야, 어우야. 빨리빨리.”

골몰으로 들어가니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다. 거리에서 사람의 이야기는 자꾸 치워지고 정리된다. 제한된 공간으로, 건물 안으로 이야기는 밀려 들어간다. 그래서 아기 울음소리가 그리워질 때면 나는 또 이렇게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아직 여행객이 찾지 않는 그런 평범한 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듣고 싶다. 삶에 대한 이야기. 그냥 오늘 저녁 뭘 먹을지 고민하는 이야기를.

“여길 넘어가면 대동 오거리가 나와요. 여기는 자양동이지. 맞나? 나도 요즘 막 헷갈려.”
이용원 앞 넓은 소파에 할머니 세 분이 쪼르르 앉아 있고 아저씨 한 분은 이용원 옆 슈퍼 화단에 있는 화분에 고무호스로 물을 주고 있다. 자양동은 작은 골목이 담쟁이 넝쿨처럼 뻗어있다. 예상치 못하게 우물도 만날 수 있었다. 비록 쇠줄로 묶어놓았지만, 이전 동네 사람들이 모여 하루 마실 물을 퍼갔을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아저씨가 알려준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대동이 나왔다.  한 시간을 넘게 걸으며 도착했다. 지도로는 걸어서 17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오후 다섯 시를 넘기고 있다. 마을 어르신도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거 잘 잠가야 되것더라고. 문이 너무 세게 닫아도 안 잠겨.”

“어차피 가져갈 것도 없잖여?”

“이게 청와대 정문보다 더 완벽해야 하는 거여.”
“가보지도 못한 사람이 뭘.”

할아버지 일행은 작은 문밖으로 나와 각자 집으로 헤어지고 있었다. 

“자. 갑시다. 각자 호남선 남행열차 타고, 거 아저씨는 여기 ktx 타고 가고.”

개인적으로 어르신의 농담을 좋아한다. 서로 툭툭 던지는 말속에 장난이 섞여 있다. 아무에게도 무해한 그런 말장난을 들으며 대동 하늘공원으로 올라간다. 길을 올라가다 부채질 하는 할머니와 마주쳤다. 좁은 길이기에 가볍게 목례를 한다는 것이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덥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할머니도 딱히 내게 덥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서로 애매하게 안부를 물으며 길을 올랐다.

대동 하늘공원에 오르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보인다. 목이 말라 근처 슈퍼에서 음료수 하나 사 평상에 앉았다. 어르신은 종종걸음으로 각자 길을 걸어가고, 앞 가게에선 단골로 보이는 아저씨가 가게에서 쓰는 기계 관리를 걱정했다. 평상 옆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나도 그 옆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밥솥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서로 잘 가라는 인사 소리가 들리고, 어느 집인지 티브이 소리도 들린다. 거리엔 이야기가 남아 있다. 가만히 들리는 이야기만 들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동네다. 눈을 뜨니 옆에 있던 할머니는 다시 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일어나 다시 내가 있던 도시로 걸어 들어갔다.

728x90
반응형

댓글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