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거대한 캔버스에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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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거대한 캔버스에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by 토마토쥔장 2021.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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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거대한 캔버스에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공주 예술공간 ‘서천상회+갤러리 쉬갈

글 사진 이용원

 

 

 공간 곳곳에 드러낸 흔적을 살피는 일이 즐겁다. 출입구 쪽 한쪽 벽을 털어내며 남겨둔 일부가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두툼한 무게감이다. 건물을 튼튼하게 지으려 노력했던 건축가의 고민과 그 긴장, 설렘이 읽힌다. 공간 내부 벽면에 발랐던 얇은 미장 일부를 떼어낸 자리에 질감은 훌륭한 인테리어 효과를 준다. 내버려둔 나머지 카페 벽면은 두꺼운 붓으로 덧칠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주었다. 바깥으로 면한 커피 머신 뒤편에는 길쭉한 물고기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물고기 한 마리로 차가운 스테인레스 기계 질감은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지하 갤러리로 들어서는 계단 중간에서 만나는 물고기 작품과 이어지는 느낌이다. 두 곳에 물고기는 한 건물 안에서 다른 기능을 하는 두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장치 구실을 한다. 이런 요소 덕분에 1층 공간 전체가 거대한 캔버스에 그려 넣은 하나의 작품 같다. 넓은 유리로 바깥 풍경을 최대한 끌어들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본래 막혀 있었을 전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과감하게 터버려 인도와 내부 공간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 것도 특별하다. 가만히 앉아서 작품을 감상하듯, 공간을 오래보면 볼수록 좋다.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은 후 2층에 바로 올라가는 것보다는 1층에 앉아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감상하기에 적절한 풍경이다.

카페 ‘서천상회’는 건물 1층과 2층을 사용한다. 1층에도 좌석 두어 개와 팝업스토어를 들였다. 도예작품과 골동품, 소품을 넓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판매한다. 오래 머물 손님이 선호할 만한 카페 주요 공간은 2층이다. 2층 계단 공간 유리창 앞에는 순박해 보이는 두상 작품을 하나 두었다. 그 밖으로 봉황산 자락에 있는 ‘풀꽃문학관’이 보인다. 과거 살림을 하던 2층 공간은 훌륭한 카페 공간으로 변모했다. 세련된 공간 중에 무언가 과하고 이질적이어서 사람을 밀어내는 느낌을 주는 곳도 적잖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처음 만난 공간임에도 오래전부터 자주 찾았던 공간처럼 왠지 익숙하다. 남쪽으로 낸 창을 통해 공주 구도심 풍광이 보인다. 사각으로 뚫린 창 덕분에 작품처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들어선 대지는 네모반듯하지 않다. 골목길에 면한 한쪽이 사선을 그리며 잘렸다. 그런 대지 모양에 맞춰 건물을 올렸다. 반듯하지 않은 2층 공간이 주는 비정형성이 무척 자극적이다. 최근에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카페나 음식점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는 무척 많다. 설계 당시에 고려한 이용 목적과 다른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질감을 주면서, 소위 ‘힙한’ 감성을 끌어낸다. 우우죽순 늘어나는 이런 공간을 경험하면서, 공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느낀다.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대상 공간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경우와 인문학적 시각으로 공간을 해석하고 기억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다. 소비하는 공간은 가벼운 천박함이 공간을 장악한다. 쉽게 질린다. 심하면 거부감까지 든다. 반면에 존중을 기반으로 기억하려는 공간은 묵직한 감성이 담긴다. 그 감성이 곧 품격이다. 카페 ‘서천상회’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은 명확했다.

건물 지하공간은 ‘갤러리 쉬갈다방’이다. 이 카페와 갤러리, 두 공간이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아트스페이스로서 기능한다.

갤러리 쉬갈(SHIGAL)에서는 박상남 작가 작품을 전시 중이었다. 10월 5일까지다. 지하 갤러리 공간 역시 네모반듯하지 않다. 사선으로 끊긴 것이 아니라 ㄷ자 형태다. 구석에 숨은 공간이 재미를 준다. 과거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은 계단을 없애고 조그만 직육면체 공간으로 재창조했다. 그곳 바닥에 잔자갈을 깔고 ‘윌슨’이라는 조형 작품을 두었다. 계속 바뀔 갤러리 전시와 상관없이 그 자리는 윌슨 자리다. 윌슨 머리(?) 위로, 지상 1층에 해당하는 부분을 투명 아크릴로 막아 채광이 좋다. 별다른 조명이 없어도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적절한 조명 구실을 한다. 윌슨은 건물이 생기기 전,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공간과 일체감을 준다.

“이제 문을 연 지 2년 정도 되었어요. 이 건물 1층에 본래 ‘서천상회’라는 슈퍼마켓이 있었어요. 지하에는 쉬갈다방이 있었고요. 예전에 이 앞에 법원과 검찰청이 있어서 장사가 잘 되었던 모양이에요. 그러다가 두 기관이 이전하면서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았고요. 옛날 그 공간을 그대로 재생하고 싶었어요. 예전에 이 건물에 있던 가게 이름을 그대로 쓴 이유죠.”

건물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한 사람은 공주대학교 미술교육과 임재광 교수다. 임 교수는 공간 리모델링을 외부에 맡기지 않고 인부와 함께 직접 손 보았다. 그 과정에 중요한 콘셉트가 ‘재생’이었다. 건물이 간직한 역사를 단절시키지 않고 적절하게 연결지점을 찾아 이어가려는 취지다. 건물 1층과 지하에 들였던 슈퍼와 다방에서 사용했던 이름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나, 껍데기를 살짝 뜯어내 속살을 드러내고 그 다른 층위에서 시간을 느끼도록 배려한 것이나, 벽 한쪽을 허물어 단면을 노출시킨 것에서 그런 의도가 읽힌다. 캔버스를 앞에 둔 작가처럼 임 교수는 공간 전체를 치밀하게 기획했다. 공간 구석구석에 걸어두고 설치한 다양한 작품과 골동품을 찾아 감상하는 것은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심지어 화장실 소변기 위에 걸린 작품조차 예사롭지 않다. 예술 작품이 우리 삶의 품격을 어떻게 향상할 수 있을지를 이곳 서천상회와 갤러리 쉬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흔히 공주를 백제의 고도라고 이야기하죠. 그와 관련한 왕릉이 있고 박물관도 있고요. 하지만, 공주 역사가 그것이 시작이자 끝은 아니잖아요. 역사는 계속 이어져, 근대 역사도 품고 있고요. 구도심에서 활발하게 도시재생 사업을 펼치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니겠어요. 공주시 구도심에서 펼쳐지는 도시재생 사업이 모범사례로 전국에서 회자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공간도 그런 측면에서 조성했습니다.”

공주시 구도심에서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재래시장 상권 활성화 관련 사업도 펼치고 도시재생 사업은 물론이고 한옥마을 조성을 위한 지원 사업과 경관 개선 사업도 활발하다.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사업에 차별성을 주는 건, 서천상회와 갤러리 쉬갈 같은 문화예술공간이다. 지금껏 우리가 조성한 마을살이 생태계에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이다.

 

월간토마토 vol.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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