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대신 문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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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석유 대신 문화를

by 토마토쥔장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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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대신 문화를, 석유비축기지에서 문화비축기지로

문화비축기지

 

글 사진 김서현



  이게 좀 힘들어 사실은좁은 계단 타고 내려가는 게겨울에 눈 오면 발판이 얼마나 미끄럽습니까그렇다고 열로 녹일 수도 없잖아사고 나면 큰 사고라고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버리면._E(1981-1983 석유비축기지 관리팀 근무)_T3 철창에 붙은 석유비축기지 시절 기억안내판

 넓은 대지에 하나씩 박힌 석유비축 탱크 다섯 개그리고 생긴 또 하나의 탱크, T6. 그중 당시의 원형을 온전히 보전한 3번 탱크(T3)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발아래가 아찔하게 트인 철창으로 된 짧은 입구만을 허락하고 있었다

문화비축기지는 본래 마포 석유비축기지로 41년간 1급 보안시설로서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다때문에 문화비축기지의 곳곳에는 기억안내판이 붙어 방문자들이 당시 근무자들의 고독과 김장감을 엿볼 수 있게 해 놨다현장 속에 설치된 그런 감정들을 마주하면서 석유 대신 문화로 채운 이곳을 둘러봤다.


 문화비축기지에 도착해 마주한 문화마당(T0)에서는 별다른 행사가 진행되지 않아 온전한 마당으로 비어있었다한두 달 전쯤 방문했을 때는 광장 빼곡히 마켓이 열려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았었는데 이제는 거센 북서풍이 불어 외부행사는 조금 잠잠해진 것 같았다그나마도 따스한 날이었지만 강한 바람에 얼른 시설 내로 들어가야 했다.

T0 문화마당

 보안시설이었던 만큼 문화비축기지는 오랜 기간 베일에 싸인 공간이었다. 2000년에 폐쇄된 후 사실상 방치되며 광장을 임시 공영주차장으로 사용했었는데그렇게 10여년이 흐른 후에야 문화비축기지로서 재단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4차 중동 전쟁(1973~1974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으로 1974년에 제1차 석유파동이 발생했다이때 우리나라가 원유 공급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부는 1978년 매봉산 인근에 수도권 민간 비축유 저장시설을 마련한다아파트 5층 높이의 탱크 총 다섯 개에 당시 서울 시민들의 한 달 석유 사용량인 6,907만 리터의 석유를 보관하면서 일반인이 들어올 수 없게 철저히 관리했다석유비축기지는 가동되던 기간 동안 주로 비축유 중 일정 물량을 정부나 석유공사정유사 등에 대여나 판매를 했으며 정기개방점검과 제품교체를 위한 순환 저장의 기능도 수행하면서 국제 석유 위기동절기 이상혹한석유 산업 경영악화 등으로 수금차질 발생 시 긴급 필요에 응하기도 했다그러나 이후 2002 월드컵 개최 당시 상암의 경기장 인근 500m 이내의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폐쇄가 결정된다그렇게 비축기지는 탱크에 저장된 석유를 이전하고 2000년 12월 폐쇄됐다

 그리고 2013서울시가 폐산업 시설이 된 석유비축기지의 부지 활용을 위해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했다국제 현상 설계 공모당선작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을 바탕으로 설계자문위원회와 시민 기획단을 구성하고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문화비축기지를 세웠다시설이 갖는 원래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며 자원을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2015년 말 공사를 시작해 2017년 9월 1일에 생태문화공원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T1 파빌리온 내부

 다섯 개의 탱크는 이제 여섯 개의 탱크가 됐다. T1(파빌리온)은 휘발유를 보관했던 탱크다탱크는 지름 15미터~38미터높이 15미터다. T1은 5개의 탱크 중 정전기로 인한 화재 위험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해야 했던 곳이다현재는 파빌리온이란 이름을 새로 받아 각종 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공간이 됐다파빌리온은 본래 있던 탱크를 해체하고 벽과 지붕을 유리로 얹어 가려졌던 속을 환히 비춘다. T1에 입장해 긴 복도를 지나 펼쳐지는 매봉산 암반은 꽤 장관이었는데 안에서는 다음 행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와서 옆에 있는 T2(공연장)로 향했다경사로를 따라 걸어 자연스레 탱크의 상부에 도착하면 탱크의 본체는 사라지고 탱크를 감싸고 있던 매봉산 암벽과 콘크리트 옹벽이 만든 공연장이 나타난다사방을 막아주는 탱크 외부의 벽은 사고를 대비한 방어벽에서 공연장을 위한 방음벽이 되어 원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자리하게 됐다

T2 공연장

 

 언덕을 조금 타야하는 T3에는 학교에서 소풍 나온 아이들이 아래로 구르며 놀고 있었다도심 속에 석유를 비축하는 곳이 있을 줄 몰랐어요옛날 이곳에서 근무하시던 분들이 대단하다 생각해요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이제 저희가 문화를 즐길 수 있으니 좋아요.”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제법 됐다문화비축기지 내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이들도 있었고 마련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시민들도 있었다문화비축기지에 막 도착했을 땐 줄지어 나오는 유치원생들을 봤었다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고, T6(커뮤니티센터)를 배경으로 모델 촬영하는 걸 보기도 했다다양한 사람들이 마음껏 공간을 쓰고 있었다.

 T4(복합문화공간)로 향했다탱크에서 나와 외부의 옹벽을 걸었다옹벽에 붙은 기억안내판에는 약 30명의 경비원들이 7개 초소에서 교대 근무를 했고정문 근무자는 수시로 기지 곳곳을 순찰했는데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가량 소요되었다고 안내 되어 있다.

옹벽 넘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으스스 하잖아요어쩔 땐 정말 무서워요혼자 밤에막 비는 오고거기에 순찰함이 있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어요그러면 등에 식은 땀이 쫘악 나는 거예요._D(1983-1989 석유비축기지 경비대 근무)_옹벽에 붙은 기억안내판

 옹벽과 비축탱크에 묻은 시간 덕에 근무자들의 인터뷰 내용이 더 선명해진다한낮임에도 탱크 주변과 옹벽 사이를 걸을 땐 스산한 바람이 분다햇볕이 거의 들지 않아 쌓인 찬 기운이 도처에 깔렸다. T4의 복합문화공간에서는 전시가 한창이었기에 둘러보고 나왔다

석유를 신주단지처럼 꽁꽁 싸매놓고 모셔놨지무슨 일이 일어나면 엄청난 재앙이니까몇 겹으로 싸매놓은거지._E씨 (1981-1983 석유비축기지 관리팀 근무)_T5이야기관

식사하니까 에피소드 생각나네여기 미군기지 쓰레기장 있었다 했잖아요음식찌꺼기 같은게 많이 실려와요그래서 파리가 엄청 많았어요정문근무자들이 여기서 식사했다잖아요천장에 파리가 새카맣게 붙어가지고 밥에 떨어지고 그랬어요실제 그랬어요파리가 그렇게 많았어밥에 물을 말아먹으면 파리가 물에 빠지고._OO 1983-1990년 근무 경비대_T5이야기관 

 T5에는 옛 석유비축기지의 자료와 구술채록 등 2013년 5월부터 2017년 9월 1일 문화비축기지 개원까지의 1,582일을 기획 전시해 이 같은 근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들이 가득하다이어 T6(커뮤니티센터)기존 탱크들의 이름을 이어 새로 만든 이곳을 T6라 부르는데, T6는 해체된 탱크의 철판을 활용해 시민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 1층에는 카페가 운영되고 있고나선으로 된 경사도를 올라가면 작은 도서관 등이 마련돼 있다.

 잊힌 공간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유산으로 만드는 것또 다른 도시재생의 한 사례로서 많은 이들이 찾는 문화비축기지는 과거를 양분으로 어떤 현재가 됐나 볼 수 있는 괜찮은 공간이다이곳을 방문한다면 T5-T4-T3-T2-T1-T6순으로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문화비축기지는 NO플라스틱을 실천하는 친환경 공원이다당연히 금연이며 공원 내에서는 텀블러를 사용하길 권하고 있다유모차와 휠체어우산은 안내동에서 대여할 수 있다해설사와 함께하는 시민투어도 운영 하고 있으며오디오 가이드도 대여할 수 있다매주 월요일은 T1~T6의 정기휴관일이다



월간토마토 vol.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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