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대신 문화를, 석유비축기지에서 문화비축기지로
문화비축기지
글 사진 김서현
“이게 좀 힘들어 사실은. 좁은 계단 타고 내려가는 게. 겨울에 눈 오면 발판이 얼마나 미끄럽습니까. 그렇다고 열로 녹일 수도 없잖아. 사고 나면 큰 사고라고.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버리면._E씨(1981-1983 석유비축기지 관리팀 근무)”_T3 철창에 붙은 석유비축기지 시절 기억안내판
넓은 대지에 하나씩 박힌 석유비축 탱크 다섯 개. 그리고 생긴 또 하나의 탱크, T6. 그중 당시의 원형을 온전히 보전한 3번 탱크(T3)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발아래가 아찔하게 트인 철창으로 된 짧은 입구만을 허락하고 있었다.
문화비축기지는 본래 마포 석유비축기지로 41년간 1급 보안시설로서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었다. 때문에 문화비축기지의 곳곳에는 기억안내판이 붙어 방문자들이 당시 근무자들의 고독과 김장감을 엿볼 수 있게 해 놨다. 현장 속에 설치된 그런 감정들을 마주하면서 석유 대신 문화로 채운 이곳을 둘러봤다.
문화비축기지에 도착해 마주한 문화마당(T0)에서는 별다른 행사가 진행되지 않아 온전한 마당으로 비어있었다. 한두 달 전쯤 방문했을 때는 광장 빼곡히 마켓이 열려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았었는데 이제는 거센 북서풍이 불어 외부행사는 조금 잠잠해진 것 같았다. 그나마도 따스한 날이었지만 강한 바람에 얼른 시설 내로 들어가야 했다.
보안시설이었던 만큼 문화비축기지는 오랜 기간 베일에 싸인 공간이었다. 2000년에 폐쇄된 후 사실상 방치되며 광장을 임시 공영주차장으로 사용했었는데,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후에야 문화비축기지로서 재단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4차 중동 전쟁(1973년~1974년) 당시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무기화 정책으로 1974년에 제1차 석유파동이 발생했다. 이때 우리나라가 원유 공급에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부는 1978년 매봉산 인근에 수도권 민간 비축유 저장시설을 마련한다. 아파트 5층 높이의 탱크 총 다섯 개에 당시 서울 시민들의 한 달 석유 사용량인 6,907만 리터의 석유를 보관하면서 일반인이 들어올 수 없게 철저히 관리했다. 석유비축기지는 가동되던 기간 동안 주로 비축유 중 일정 물량을 정부나 석유공사, 정유사 등에 대여나 판매를 했으며 정기개방점검과 제품교체를 위한 순환 저장의 기능도 수행하면서 국제 석유 위기, 동절기 이상혹한, 석유 산업 경영악화 등으로 수금차질 발생 시 긴급 필요에 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2002 월드컵 개최 당시 상암의 경기장 인근 500m 이내의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폐쇄가 결정된다. 그렇게 비축기지는 탱크에 저장된 석유를 이전하고 2000년 12월 폐쇄됐다.
그리고 2013년, 서울시가 폐산업 시설이 된 석유비축기지의 부지 활용을 위해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했다. 국제 현상 설계 공모당선작 ’땅으로부터 읽어낸 시간‘을 바탕으로 설계자문위원회와 시민 기획단을 구성하고 시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문화비축기지를 세웠다. 시설이 갖는 원래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며 자원을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2015년 말 공사를 시작해 2017년 9월 1일에 생태문화공원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다섯 개의 탱크는 이제 여섯 개의 탱크가 됐다. T1(파빌리온)은 휘발유를 보관했던 탱크다. 탱크는 지름 15미터~38미터, 높이 15미터다. T1은 5개의 탱크 중 정전기로 인한 화재 위험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더 주의를 기해야 했던 곳이다. 현재는 파빌리온이란 이름을 새로 받아 각종 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공간이 됐다. 파빌리온은 본래 있던 탱크를 해체하고 벽과 지붕을 유리로 얹어 가려졌던 속을 환히 비춘다. T1에 입장해 긴 복도를 지나 펼쳐지는 매봉산 암반은 꽤 장관이었는데 안에서는 다음 행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와서 옆에 있는 T2(공연장)로 향했다. 경사로를 따라 걸어 자연스레 탱크의 상부에 도착하면 탱크의 본체는 사라지고 탱크를 감싸고 있던 매봉산 암벽과 콘크리트 옹벽이 만든 공연장이 나타난다. 사방을 막아주는 탱크 외부의 벽은 사고를 대비한 방어벽에서 공연장을 위한 방음벽이 되어 원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자리하게 됐다.
언덕을 조금 타야하는 T3에는 학교에서 소풍 나온 아이들이 아래로 구르며 놀고 있었다. “도심 속에 석유를 비축하는 곳이 있을 줄 몰랐어요. 옛날 이곳에서 근무하시던 분들이 대단하다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이제 저희가 문화를 즐길 수 있으니 좋아요.”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제법 됐다. 문화비축기지 내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이들도 있었고 마련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시민들도 있었다. 문화비축기지에 막 도착했을 땐 줄지어 나오는 유치원생들을 봤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고, T6(커뮤니티센터)를 배경으로 모델 촬영하는 걸 보기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마음껏 공간을 쓰고 있었다.
T4(복합문화공간)로 향했다. 탱크에서 나와 외부의 옹벽을 걸었다. 옹벽에 붙은 기억안내판에는 약 30명의 경비원들이 7개 초소에서 교대 근무를 했고, 정문 근무자는 수시로 기지 곳곳을 순찰했는데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가량 소요되었다고 안내 되어 있다.
“옹벽 넘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으스스 하잖아요. 어쩔 땐 정말 무서워요. 혼자 밤에. 막 비는 오고. 거기에 순찰함이 있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어요. 그러면 등에 식은 땀이 쫘악 나는 거예요._D씨(1983-1989 석유비축기지 경비대 근무)”_옹벽에 붙은 기억안내판
옹벽과 비축탱크에 묻은 시간 덕에 근무자들의 인터뷰 내용이 더 선명해진다. 한낮임에도 탱크 주변과 옹벽 사이를 걸을 땐 스산한 바람이 분다.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아 쌓인 찬 기운이 도처에 깔렸다. T4의 복합문화공간에서는 전시가 한창이었기에 둘러보고 나왔다.
“석유를 신주단지처럼 꽁꽁 싸매놓고 모셔놨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엄청난 재앙이니까. 몇 겹으로 싸매놓은거지._E씨 (1981-1983 석유비축기지 관리팀 근무)”_T5이야기관
“식사하니까 에피소드 생각나네. 여기 미군기지 쓰레기장 있었다 했잖아요. 음식찌꺼기 같은게 많이 실려와요. 그래서 파리가 엄청 많았어요. 정문근무자들이 여기서 식사했다잖아요. 천장에 파리가 새카맣게 붙어가지고 밥에 떨어지고 그랬어요. 실제 그랬어요. 파리가 그렇게 많았어. 밥에 물을 말아먹으면 파리가 물에 빠지고._윤OO 1983-1990년 근무 경비대”_T5이야기관
T5에는 옛 석유비축기지의 자료와 구술채록 등 2013년 5월부터 2017년 9월 1일 문화비축기지 개원까지의 1,582일을 기획 전시해 이 같은 근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들이 가득하다. 이어 T6(커뮤니티센터)다. 기존 탱크들의 이름을 이어 새로 만든 이곳을 T6라 부르는데, T6는 해체된 탱크의 철판을 활용해 시민 커뮤니티 공간이 됐다. 1층에는 카페가 운영되고 있고, 나선으로 된 경사도를 올라가면 작은 도서관 등이 마련돼 있다.
잊힌 공간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유산으로 만드는 것. 또 다른 도시재생의 한 사례로서 많은 이들이 찾는 문화비축기지는 과거를 양분으로 어떤 현재가 됐나 볼 수 있는 괜찮은 공간이다. 이곳을 방문한다면 T5-T4-T3-T2-T1-T6순으로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문화비축기지는 NO플라스틱을 실천하는 친환경 공원이다. 당연히 금연이며 공원 내에서는 텀블러를 사용하길 권하고 있다. 유모차와 휠체어, 우산은 안내동에서 대여할 수 있다. 해설사와 함께하는 시민투어도 운영 하고 있으며, 오디오 가이드도 대여할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T1~T6의 정기휴관일이다.
월간토마토 vol.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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