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봐도 좋고 저리 봐도 좋다
이도저도 책방
글 사진 황훈주
회사에서 신성동 까진 한 시간 거리다. 가는 길이 만만치 않겠다 싶지만 다행히 대흥동 성당 맞은편에서 604번 버스를 타면 환승 없이 한 번에 갈 수 있다. 신성동에 가본 적은 손에 꼽는다. 처음 대전에 이사 왔을 때 시민 천문대에 올라가 태양의 흑점을 봤던 정도이려나. 지도에서 신성동을 찾아보니 갑천을 건너고 연구단지를 지나는 곳에 조그맣게 마을처럼 모여 있다. 대전의 작은 섬 같다. 타지로 나갈 때 사가는 성심당 빵을 특별히 몇 개 고르고 버스에 올라탄다. 그럼 이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다. 버스에서 잠자기. 한 시간은 쭉 잘 수 있다.
책방에 들어서면 입구 양 옆으로 책장이 나란히 있다. 책장에 알록달록 꽂힌 책을 보는 것은 수많은 점들로 이뤄진 모자이크를 보는 것 같다. 통기타가 책방 한 구석에 있고 작은 앰프가 있다. 캐치볼 할 때 쓴 야구 글러브가 있고 농구공이 의자 밑에 뒹굴 거린다. 작은 주방엔 커피머신이 있고 주전자와 냄비가 있으며 한 구석엔 라면 봉지가 빨갛게 보인다. 부쩍 추워진 탓에 가게에 들어와 잠시 몸을 비빌 때, 책방 앞 공방 사장님이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 나간다. 혹시 이곳은 커피 맛집일까? 대표는 커피도 좋지만 요즘은 겨울이 다가온 만큼 책방에선 핫 초코가 인기라고 한다. 초콜렛을 녹이고 우유를 데운 후 초코 파우더를 넣어 잘 저어준다. 마지막에 마시멜로우를 불에 살짝 구워 잔 위에 띄운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라 대표가 음료를 만드는 동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원두를 부수거나 초콜렛 녹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그 적당한 거리감 속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는 순간은 마치 산 속 대피소에서 만난 산장 주인의 위로 같다. 날씨가 추워서, 신성동이 내겐 먼 동네라 더 그런 느낌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책방 한 면엔 과학 관련 서적이 많이 꽂혀있다. 근처가 연구단지기도 하니 혹시 대표가 철저한 이과생이 아닐까 했지만 정말 아니었다.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수많은 정보들이 있고 그 중 가짜 정보도 많은 이 시대 속에 합리적으로 분별하기 위해선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과학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 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이 있다면 수용 할 줄 아는 태도인거죠.”
책방을 운영하는 태병건 대표는 과학적 태도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과학책을 찾았다. 어떤 사건이던 정보에 대해 성급한 판단은 보류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서도 수용할 줄 아는 태도를 과학을 통해 배운다. 이 책방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물어보니 ‘재미’란 것도 여러 측면에서 정의를 내릴 수 있어 딱 한 가지 책을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이런 게 과학적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책방엔 같은 책이 없다. 공간은 제한되지만 대표가 소개하고 싶은 책들은 많다보니 그렇게 됐다. 잘 팔리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손님에게 책을 추천할 수도 있다. 그러는 편이 더 매출에 도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 건 부족한 책은 다시 주문하면 되지만 책방에 들어오는 손님에겐 최대한 많은 다양성을 누리게 하고 싶은 대표의 마음이다.
“다시 못 볼 것 같다는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하곤 해요. 책방에 올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곳까지 오긴 어렵잖아요.”
인터뷰 도중 손님이 들어왔다. 터키 여행 가기 전 꼭 한번 오르한 파묵의 책을 읽고 가고 싶다는 손님이다. 이런 저런 농담을 하며 책을 추천하는 대표의 표정엔 활기가 넘친다. 오르한 파묵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부터 시작해 책장 한 칸에 있는 책들을 다 소개할 정도로. 이곳의 특색은 책방 대표에게 있다. 책방엔 특별하거나 희귀한 책은 없다. 어느 서점을 가던 찾아 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이 어떤 책이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는 이곳에서 대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어렸을 땐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도 성인이 되면 한 달엔 한 권 읽기도 어렵다. 그런 분들이 다시 책 읽기에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대표는 자신이 좋았던 책, 찾고 싶은 책을 추천해 준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 더 빠르고 더 싸게 살 순 있지만 책이란 건 단순히 값으로만 따질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있다. 대표는 책방을 통해 분위기, 사람, 공간과 같은 또 다른 가치를 얻어가길 바란다.
책방은 목요일에 문을 닫는다. 보통은 주말이나 월요일에 문을 닫는데 목요일이라니. 별 뜻은 없었다고 한다. 남들 다 쉬는 주말에 쉬고 싶지 않아 고민하다 목요일에 쉬기로 했다. 가끔은 목요일에 책방에 왔다 돌아가는 손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이제와 다시 쉬는 날을 바꾸자니 그것도 기존 손님에게 피해가는 것 같아 이도저도 못한 채 계속 목요일에 쉰다. 17년 10월에 처음 책방을 오픈했다. 태병건 대표가 작년 여름부터 만든 자작곡으로 음악회를 연다. 이것을 해도 좋고 저것을 해도 좋다.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거나 가끔은 캐치볼도 좋다. 꼭 무엇이 될 필요는 없기에 이도저도다.
월간토마토 vol.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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