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취향이 흐르는 곳
‘즐거운커피 X 한쪽가게’
글 사진 양지연
2019년 어느 봄날, 봄볕처럼 따사로운 공간이 갈마동에 문을 열었다. 4월 가오픈을 시작으로 많은 사람의 아지트 같은 장소가 된 이곳은 ‘즐거운커피 X 한쪽가게’다.
경기도 부천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부부가 대전으로 내려와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이유는 뚜렷했다. 아내 나경 씨와 남편 경민 씨는 느리고 조용한 지역의 삶에 대한 니즈가 분명했기에 대전이라는 지역이 들어맞았다. 오래된 집이 많아 소박하고 어지럽지 않은 분위기가 이 동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대전에 내려와서 산책하듯 여러 곳을 다니며 공간을 열 마땅한 자리를 찾았다. 부부는 갈마동 안에서도 애써 찾아와야 하는 이 작고 조용한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 이 공간을 만났을 때는 지금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전혀 관리가 안 된 창고로 쓰레기더미가 쌓여 방치되었는데 지금의 즐거운커피 모습에서는 전혀 그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부부는 기초적인 철거 작업부터 페인트칠 등 공사에 직접 뛰어들었고 심지어는 테이블과 책장 같은 가구를 제작하는 일까지 직접 했다. 과연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지만 하나씩 갖추며 해볼 만하겠다는 의지로 지금의 공간이 탄생했다.
균형을 잡고 걸어가는 일
‘즐거운커피 X 한쪽가게’에는 부부와 손님들의 즐거운 취향이 흐르고 있다. 카페의 한쪽에 알맞게 자리 잡은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이곳은 아내 나경 씨가 직접 읽은 책 그리고 손님과 함께 읽고 싶은 책만 입고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에 주인의 취향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고 그 제안에 마음을 연 손님들의 취향과 손을 잡는다.
실제로 직접 읽고 추천한 책이 다른 책보다 더 많이 판매되는 경험도 적지 않다. 문득, 즐거워서 시작한 큐레이팅 방식이지만, 때로는 많은 독서량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지 않은지 궁금했다.
“독서량은 상대적인 것이고, 새로운 책이 세상에 나오는 속도와 잊히는 속도 또한 너무 빠른 것을 알기에 최대한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저만의 템포를 유지하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이 방식을 유지하려고 해요.”
다행히 나경 씨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마음을 오래도록 지속할 본인만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공간을 운영하며 인연이 되어 응원하고자 하는 독립출판 작가와 창작자들의 작품을 들여놓기도 하는데 이 마음은 소중한 것들이 한자리에서 오래도록 많은 손길을 받기를 바라는 부부의 따뜻한 배려다.
부천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때도 그랬듯이 여전히 부부는 읽었던 책을 카페 한쪽에 놓아둔다. 읽고 나서 좋았던 책을 공유하고 추천하기 위한 부부의 방법이다. 그중 한 권을 집어 읽으면서 이미 밑줄이 그어진 부분에 공감이 갈 때면 함께 하나의 이야기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끄덕인 기분이 든다.
이 부부가 책을 건네는 방식은 또 있다. ‘사려 깊은 밤’과 ‘너그러운 밤’이라는 이름이 붙은 두 책 모임 활동이다.
‘사려 깊은 밤’은 경민 씨가 진행을 맡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생각, 내 관점 그리고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을 내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사려 깊은 밤’에 ‘내 생각을 갖는 것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붙이고, 이런 주제를 고민해볼 수 있는 책들을 많이 읽고 나누려고 해요.” 경민 씨는 설명했다.
‘너그러운 밤’은 문학을 사랑하는 나경 씨가 진행한다. 인문 사회 계열의 책을 좋아하는 경민 씨와 나경 씨의 책 취향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두 ‘밤’의 색깔도 확실히 다르다. 보통 본인의 취향에 맞는 모임에 신청하는 손님들은 때로는 호기심에 다른 취향을 경험해보는 일을 시도하기도 한다. 누구든지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부는 온라인 책 모임을 일요일 저녁에 진행한다.
한 주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한 주를 앞둔 시점에서 서로의 생각을 듣고 나누는 일은 차분하게 시간을 꽉 채우게 한다. 다른 지역에서 심지어는 해외에서도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에서 진행하는 책 모임의 큰 장점이다. 공간을 초월해 모일 수 있다는 것이 온라인 책 모임의 장점이라면 오프라인 책 모임에서는 가까이 둘러앉아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여기에 성심당 빵이 더해지면 완벽한 주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요책빵’이라는 이름으로 부부는 매달 한 번씩 야외에서 소수의 인원과 함께 책 모임을 진행한다. 5월에는 성심당 DCC점에서, 6월에는 한밭수목원에서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도 부부가 사랑하는 대전의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먹거리와 함께 시도해볼 예정이라고 했다. 각자의 영역을 바쁘고 때로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씩씩한 개인들이 즐거운커피에서 만큼은 편안함을 느끼고 느슨한 ‘함께의 가치’를 나누었으면 하는 것이 부부의 바람이다.
김브루씨네 즐거운 식탁과 편의점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곳에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이 빠질 수 없다. 맛있는 음식을 나누기 위해 식당 영업 허가를 받았다. 덕분에 매주 토요일은 즐거운커피에서 김브루씨(남편 경민 씨의 별명이다.)가 선보이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매달 다른 음식을 준비하는 김브루씨는 최근 고기를 적게 먹는 삶을 시도하며 비건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 이미 버터와 계란이 들어가지 않는 즐거운커피의 쿠키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로 북페어, 플리마켓 등 창작자들이 활동할 기회가 많이 사라진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아내 나경 씨는 재밌게 봤던 ‘김씨네 편의점’이라는 제목의 캐나다 시트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서 ‘김브루씨네 편의점’을 공간에서 열어 독립출판 작가가 북토크를 열기도 하고, 재능 넘치는 지역 예술가들이 플리마켓을 열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이 공간이 창작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때 부부는 곁에서 음식을 준비해 포장하여 판매한다. 항상 즐거움과 취향을 나누는 일에 마음을 쏟고 싶은 것이다.
“공간을 열고 1년 동안 정신이 없어 하지 못했던 일들을 코로나가 오히려 저희를 푸쉬한 것 같아요. 점점 어려워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고 해서 책방도 열고 식탁, 편의점도 시도하게 됐죠.”
용기를 내야 할 때입니다
지나가고 마는 유행보다는 깊고 진한 취향이 공간 곳곳에 더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부부는 공간을 찾아주는 손님들과 같은 자리에서 긴 시간을 건강하고 즐겁게 서로를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계속해서 환경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테이크아웃 컵과 뚜껑을 종이로 대체하고, 음식을 포장 판매할 때는 손님에게 용기를 가져오기를 부탁한다. 그렇지 않으면 용깃값을 받는다. 용기를 다시 반납하면 지불했던 용깃값을 돌려받을 수 있다. 서로의 건강한 일상을 위한 선순환을 고민하는 이들의 마음을 아는 단골손님들은 이 실천에 함께 익숙해졌다.
부부는 ‘즐거운커피 X 한쪽가게’를 거쳐 먼 훗날 대전 근교 지역에서 스테이를 운영하는 꿈을 꾼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부천에 있을 때 저희 공간을 찾아주시던 분들이 아직도 정기적으로 대전까지 찾아와주세요. 그래서 저희만의 공간을 만들면 계속 인연을 이어나갈 친구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를 들으며 아마 이런 마음씨의 부부가 있는 곳에는 어디라도 따뜻한 마음과 발길이 닿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가는 공간, 주인을 알고 나면 더 좋아지는 공간. 대체로 그런 공간들은 계절마다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게 만든다. 봄에 내리는 봄비처럼 싱그럽고, 여름의 나무처럼 푸르며, 가을에 부는 바람처럼 기분 좋은 그리고 겨울 볕만큼 포근한 모습으로 ‘즐거운커피 X 한쪽가게’가 부디 그 자리를 오래 지켜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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