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섬은 사라질 듯, 그곳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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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모든 섬은 사라질 듯, 그곳에 머문다

by 토마토쥔장 202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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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섬은 사라질 듯, 그곳에 머문다

연홍도

글 사진 이용원

 

1.

'환상의 섬'이라는 정의를 굳이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모든 섬은 '환상적'이다.

물로 둘러싸인 그 한 점은 마치 지구에서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무엇처럼 고고(孤高)하다. 물 위로 솟은 면적이 좁을수록 그 느낌은 더욱더 강하다. 한참을 물 가운데 우두커니 섰다가 큰 날개 휘적휘적 내저으며 미련 없이 날아오르는 백로처럼, 섬도 언제든 바다 위에서 사라져 다른 세계로 가버릴 기세다. 발걸음조차 섬에서는 조심스러운 이유다.

'연홍도'는 고흥군에 속한 섬이다. 육지에 붙은 고흥군에서 남서쪽으로 소록도, 거금도, 연홍도 순으로 바다 위에 떴다. 이중 소록도와 거금도는 다리로 육지와 연결했다. 불안한 속박이다. 이 속박 덕에 연홍도는 이제 거금도에서 짧은 시간 배를 타면 들어갈 수 있다. 거금도 신양 선착장에서 연홍도 선착장은 건너다 보인다. 직선거리는 500m 남짓이다. 수영 실력이 좋다면 헤엄쳐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도 3분이면 족하다. 주민으로 보이는 승객 빼고는 네댓 명 정도 배에 올랐다. 평일 오전 시간이었다.

연홍도 선착장에서 유독 사륜 전기차가 많이 눈에 띈다. 연홍도 주민이 이용하는 주요 이동 수단인 모양이다. 조그만 바퀴가 네 개 달리고 뒤에 한 명 정도 더 태우거나 짐을 싣도록 간결하게 만든 차다. 배에서 내린 선장도 자그마한 사륜 전기차를 타고 휭허케 사라진다. 오전 11시 배를 운항했으니 다음 배가 출발하는 12시 30분 무렵까지는 시간이 있던 셈이다. 들어올 때 지불한 뱃삯 2,000원과 시설관리비 3,000원을 더한 5,000원은 왕복 요금이다. 섬을 둘러보고 적절한 시간에 다시 선착장에 나와 배에 오르면 그만이다. 배가 떠나는 시간만 잘 기억하면 될 일이다.

선착장에 세워 둔 섬의 역사를 살펴보면 연홍도는 400여 년 전에 밀양 박씨가 처음 입도해 마을을 형성했다고 한다. 처음 섬에 들어온 밀양 박씨 일가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섬 이름은 애초에 바다 위에 뜬 연(鳶)과 같다 하여 연홍도(鳶洪島)라 부르다가 일제강점기에 거금도와 맥이 이어졌다 해서 이을 연(連) 자를 써 연홍도(連洪島)라 불렀다. 이외에도 섬이 말 형상을 닮았다 해 마도(馬島)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연홍도 전체 면적은 0.411㎢, 해안선 길이는 4km다. 아주 조그맣고 예쁜 섬이다.



2.

연홍도 선착장에서 오른쪽으로 걷든 왼쪽으로 걷든 큰 의미는 없다. 심지어 마을을 가로질러 건너편 해안으로 넘어가도 상관없다.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결국 돌아오기 마련이다. '선택'이 무의미하다.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참담한 무기력과는 사뭇 다르다.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 줄이 느슨하게 풀린다.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바람과 햇볕을 느끼고 몸을 뒤척이는 바다와 물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육지 해변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캄캄한 장롱에 들어가 바짝 말려둔 이불에서 나는 햇볕 냄새를 맡으며 느꼈던 두근거리는 안도감과 비슷하다. 연홍도 해안을 걷는 동안 다양한 작품을 만난다. 건장한 청년 어부와 아름다운 인어는 청동 조형물이다. 구릿빛은 재료가 만들어낸 색이 아니라 태양이 만든 듯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선 작품은 다른 공간에서 만나는 유사한 작품과는 자아내는 느낌이 다르다. 바람과 햇볕과 바다와 하늘을 읽은 예술가는 적절한 위치에 틈을 벌려 흔적을 남겼다.

아이 스케치북에서 튀어나온 듯 냄비 뚜껑으로 만든 커다란 눈과 체인을 이빨로 삼은 커다란 입을 가진 물고기는 버려진 엔진 비슷한 거로 속을 채웠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톱니바퀴와 나무판자, 철망 등을 주워다가 귀여운 물고기 한 마리를 만들었다.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 물고기는 그래서 어리둥절하다. 정크 아트 작품이나 자연 미술 작품을 보면 늘 '지구 종말 이후'가 떠오른다. 왜인지 그 상황에서도 늘 적은 생존 인류가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함께 든다. 그렇게 남은 인류가 만들어낸 예술 작품처럼 보여서다. 마지막 생존 인류가 남을 곳은 아무래도 외딴 섬이나 깊은 산속이 잘 어울린다. 해안 둘레길 끝에 다다르면 섬의 등 부분으로 올라 건너편으로 가는 길을 만난다. 부서진 간이 화장실을 지나고 문을 닫은 체험 공방을 좌측에 두고 잠깐 오르면 주택 지붕과 그 앞으로 펼쳐진 바다, 맞은편 섬인 금당도 해안 절벽이 보인다. 마을 산책에 나선 연홍도 할머니가 의자를 겸한 밀차에 의지해 낮은 언덕을 넘는다.

"안녕하세요~"

"아, 이 무서운데 모타러 여기까지 왔소?"

"섬이 예쁘기만 한데, 뭐가 무서워요. 할머니?"

"아, 병이 돌아서 이 난리인데…."

걱정스럽게 말하는 섬 주민 앞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하나도 무섭지 않고 예쁘다'라고 대답할 만큼 섬에 하선하는 순간, 애써 부여잡고 있던 정신을 빼앗겼다. 마스크를 제대로 고쳐 쓰고 길옆으로 비켜서 빠른 걸음으로 할머니를 지나쳤다. 조그만 푸른 별 지구에 침범한 외계인이 된 기분이다.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주는 공포는 생각보다 훨씬 무섭다.

 

3.

좀바끝숲길이라 이름 붙은, 섬 북단으로 향하는 둘레길을 포기하고 그냥 언덕을 넘어 좌측으로 방향을 잡았다. 12시 30분 배에 오르기로 작정했다. 섬에서 체류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언덕 끝에서 좌측으로 돌면 바로 '연홍미술관'이 나온다. 본래 학교였던 공간이다. 금산초등학교 연홍분교장이었다. 1998년 폐교한 학교는 미술관으로 기능을 달리해 2006년 문을 열었다. 100m 달리기 트랙도 그릴 수 없을 만큼 좁은 운동장에서 축구라도 했다면, 마당을 벗어난 공이 걸핏하면 학교 앞바다에 빠지곤 했겠다. 운동장 마른 땅에서 놀던 아이들에게는 바닷물로 뛰어들 좋은 핑곗거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물장구쳤을 학교 앞바다에는 철제 골격이 도드라진 물고기 한마리가 노닌다. 골격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각도와 높이에 따라 물고기는 다양한 몸통으로 변화무쌍하게 갈아입었다. 나중에 알았다. 이 물고기 이름은 <은빛물고기>였다.

운동장은 잔디를 심고 다양한 작품을 설치해 야외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을 비롯해 미술관에서 선착장 쪽으로 가면 만나는 '환경스틸 작은 조각 공원'에서 만나는 작품 대부분 철을 주재료로 사용했다. 대부분 우리 일상 주변에서 보는 철제다. 가스통이나 쇠스랑, 수도꼭지, 철근, 배수관, 냄비, 자전거 바퀴 등을 조합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다. 여전히 운동장 한쪽에 남은 이순신 장군 동상과 책 읽는 소녀상이 무척 이질적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멋진 해송 두 그루가 한쪽에 자라고 그 옆 오래된 부속건물 벽에는 김도엽 작가가 '그리드'라는 작품을 페인팅했다. 본관 건물 하나는 실내 전시관으로 사용한다. 다른 건물은 펜션과 카페로 활용했다. 해송 아래 의자에 앉아 종일 바다를 바라보아도 당분간은 질리지 않을 풍광이다.

700m 남짓 떨어진 선착장 가는 길 해안가 곳곳에도 철판을 잘라 만든 다양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마을 안길에 접어들어도 다양한 작품은 계속 이어진다. 나무와 돌, 철사, 어망 등 마을 안에서 발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재료를 활용했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주를 이루는 낮은 양철지붕과 민트색, 분홍색, 흰색을 칠한 담벼락이 모두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다. 구불구불한 골목과 자투리땅을 일군 밭, 푸른 하늘, 언덕 위에 오르면 보이는 바다와 주변 섬까지 바라보면 연홍도 전체가 고스란히 하나의 작품이다. 어느 순간, 그 안에서 작품을 굳이 구별해낼 필요를 못 느낀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과 훌륭한 예술 작품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무척 닮았다. 인류는 이런 경외감을 경험하며 겸손을 배운다. 이 겸손은 지금껏 인류를 존속게 했던 원동력이다.

출항 시간이 조금 남아 여전히 선착장에 묶어 둔 배 위에 앉았다. 파도와 바람 따라 몸도 함께 흔들렸다. 문득, 연홍도에 다시는 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세상을 걱정하는 섬에서 만난 할머니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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