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는 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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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글을 쓰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는 여자는

by 토마토쥔장 202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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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남자와 그림을 그리는 여자는 

고스트북스

  글 사진 이지선

  

  

남자는 공과대학에 다니면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남자는 늘 마음 한편에 자신의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가던 책방 SNS에 홍보물이 하나 올라왔다. 고스트북스라는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독립출판물 수업 ‘진 메이킹 클래스’였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수업을 신청했고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작업을 하던 여자는 고향인 대구로 내려왔다. 독립잡지 에어에디션스를 만들던 여자는 ‘책’이라는 물성에 집중하고자 고스트북스라는 출판사를 만들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책을 한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진 메이킹 클래스’를 열었다. 

여자는 수업을 했고, 남자는 그 수업을 들었다. 진 메이킹 클래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고 함께 책을 만들기로 했다. 남자는 단편 소설을 쓰고, 여자는 그림을 그렸다. 지난 2016년 11월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이 세상에 나왔다. 책을 내고 난 다음 해에 출판사와 같은 이름인 책방을 열었다. 대구 동성로와 인접한 동문동엔 책방 ‘고스트북스’가 있다.

 

작가와 유령, 그 사이 어디쯤 

거의 1년 만에 대구를 다시 찾았다. 찾아온 목적과 이유는 달랐지만, 어딘가로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 대구 중구 동문동은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이 곳곳에 많이 자리한 동네다. 몇몇 눈에 익은 가게를 발견하고 나서야 작년에도 왔던 동네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건 왜인지 모를 위안을 준다.

대구시청에서 교동먹거리타운으로 가는 길목에는 유령이 책을 읽고 있는 간판이 하나 있다. 사거리에 있는 건물이지만 입구가 골목 쪽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주인은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입구 앞에 입간판 하나를 세웠다. 입간판에는 책 읽는 유령과 함께 ‘Ghost Books’라고 쓰였다. 대구 중구 경삼감영길 212, 3층에 위치한 고스트북스는 책 읽는 유령이 먼저 반겨 주는 책방이다.

입구를 지나 고스트북스까지 가기 위해선 3층까지 올라가야 한다. 계단에는 각종 포스터와 알림판 등을 배치해 놨다. 일부러 책방을 찾아온 손님을 위한 배려가 느껴졌다. 계단을 살피면서 올라가 책방의 문을 연다. 

“고스트북스라는 이름은 류은지 작가가 지은 이름이에요. 평소에는 작가들의 존재감이나 영향력을 느끼지 못하잖아요. 작가들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면서 자신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드러내죠. 평소에는 숨어있듯 조용히 있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점이 작가와 유령의 비슷한 점이라고 생각해서 고스트북스라고 이름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고스트북스는 글을 쓰는 김인철 작가와 그림을 그리는 류은지 작가가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다. 김인철 작가가 진 메이킹 클래스를 들었을 당시 취업준비생이었다. 진 메이킹 클래스는 김인철 작가를 독립출판물의 세계로 이끌어 줬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자신과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서 울산에 있는 조선소에 취업해서 1년 반 정도 일했어요. 물론 그 일도 배울 게 많았지만, 환경적으로 저랑 맞지 않았던 거 같아요. 몸보다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다른 일을 경험하면서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더 깨달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할 수 있었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때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조금씩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먼저 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그것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김인철 작가와 류은지 작가의 첫 번째 이야기 《좋은 것을 아껴두려는 성질》은 2016년 11월 세상에 나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세상에 선보인 책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주변의 좋은 반응과 평가는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첫 단행본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따로 또 같이 작업하며 책을 만든다. 김인철 작가가 글을 쓰면, 류은지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을 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고스트북스의 두 사람은 단행본 이외에도 잡지 《미미매거진》을 발행한다. ‘미미(美味)’매거진은 그 이름처럼 일상 속에서 ‘좋은 맛’을 찾아가는 잡지다. 《미미매거진》은 지난 2018년 10월 20일 2호부터 발행했다. 《미미매거진》의 1호는 《샌드위치페이퍼》다. 

“《샌드위치페이퍼》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식재료를 선정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예요. 원래는 샌드위치페이퍼의 김민지 작가가 혼자 만들던 잡지였는데, 아무래도 혼자서는 계속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제가 에세이도 기고했었는데, 잡지의 콘셉트를 좋게 봤던 류은지 작가가 김민지 작가에게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그렇게 《미미매거진》도 만들고 있어요. 

일상에서 만나는 재료를 대상으로 소설, 에세이, 드로잉 에세이, 인터뷰, 기획 기사 등을 다루는 《미미매거진》의 최근호 주제는 ‘꽃’이다. 

 

선호와 취향을 담아 

고스트북스에 도착하면 유리문 너머로 빛이 잘 들어오는 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창가에 마련해 놓은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15평 남짓한 공간에는 책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공간은 본래 여행사 사무실로 사용했던 공간이다. 마땅한 공간을 찾기 위해 온종일 돌아다니다 밥을 먹기 전 마지막으로 찾았던 곳이다. 3층이었지만, 공간의 크기도 적당했고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집과 가까운 거리였다. 지금은 대구 외곽으로 이사했지만, 그때만 해도 책방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살았다.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계약을 진행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전기나 수도 같은 큰 공사는 전문가에게 맡겼고 페인트칠과 선반 달기 등은 두 사람이 직접 했다. 책방 곳곳에 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책방 안에 놓인 책상과 책장에는 분야별로 책이 정리되어 있다. 책장을 따라 책을 둘러보다 보면 주인이 어떻게 책을 배치했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책을 펴보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구경하는 것도 고스트북스를 구경하는 재미다. 

책방의 계산대 옆 한 부분에는 리틀룸(little room)이 있다. 리틀룸은 류은지 작가의 작업을 기반으로 만든 굿즈 브랜드이다. 키링부터 엽서, 티셔츠까지 다양한 굿즈를 판매한다. 류은지 작가의 시선이 담긴 그림은 귀여우면서도 따듯하다. 책방을 타고 들어오는 햇살과도 잘 어우러진다. 

리틀룸(little room) 굿즈

“보통 저희가 좋아하는 책을 입고해요. 아무래도 각자 개인의 취향과 선호가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단행본의 경우도 베스트셀러보다는 흥미로운 책 위주로 입고하려고 해요. 독립출판물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보기에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사진이나 드로잉, 예술 책들도 많이 들어오는데 대부분 류은지 작가의 큐레이션이에요. 아! 꾸준히 독립출판을 하는 분들의 책을 많이 입고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책방을 처음 시작한 2017년에 비해 독립출판을 하는 분들이 많이 늘었어요. 그래서 참 좋아요.”

책을 판매하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지 잘 안다. 책을 만들면서 책을 보는 순서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목차를 펼쳐 책의 이야기를 먼저 봤다면, 이제는 판권지를 먼저 펴본다. 판권지에 들어간 작가의 이름부터 디자이너, 편집인의 이름을 꼼꼼히 살핀다. 

“이젠 책을 가벼운 마음으로 소비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인철 작가는 이야기한다. 지난 3월에 취재했던 대전인쇄거리가 불현 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책 한 권엔 쓰인 글 이외에도 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간혹 그 사실을 잊곤 한다. 

  

오롯이 나만의 작업 

지난 2월 코로나19가 대구 지역에서 확산하면서 고스트북스 역시 영향을 받았다. 거리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질 않았고 북토크, 진 메이킹 클래스, 독서모임 등 진행하던 프로그램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전국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지만, 잃어버렸던 생기를 조금씩 되찾는 중이다.

“진흥원에서 지원을 받아서 북토크나 전시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달에도 진행했고, 다음 달에도 진행할 예정이고요. 진 메이킹 클래스는 2014년부터 진행한 프로그램이에요. 5주 과정으로 진행하는데 20대 중후반도 있고, 장년층도 많이 오세요. 자기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은 거 같아요. 최근에는 결과물을 내는 분들도 많아요. 지금 대구문학관에서는 대구 독립출판 문예지를 소개하는 전시를 진행하는데, 고스트북스도 참여해서 진 메이킹 클래스에 참여한 10명이 출판한 책을 전시하고 있어요.”

대구문학관은 지난 16일부터 다가오는 11월 7일까지 〈오늘의 문장들〉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진행한다. 〈오늘의 문장들〉은 2016년 2월 출간해 2020년 7월 폐간한 대구의 대표 독립출판문예지 《영향력》을 중심으로 독립출판책방인 고스트북스, 더폴락, 차방책방과 함께 독립출판의 현실을 살펴보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선 대구 독립출판 문예지를 비롯해 대구에서 발행한 동인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저는 원래 단편소설을 좋아해요. 읽는 것도 좋아하고 쓰는 것도 좋아하죠. 읽었을 때 재밌고 소재도 신선한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지금의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저만의 작업을 꾸준히 할 생각이에요. 다음 작품으론 단편소설을 꼭 선보이고 싶어요.”

책을 만들면서 만난 두 사람은 여전히 책을 만들고 있다. 따로 혹은 같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자신의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책방을 운영하고,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업을 연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만든 이야기로 공간의 틈을 채운다.

 

월간토마토 vol.160

 

고스트북스 홈페이지 http://www.ghostbook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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