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하게 감상하는 전시 2021 아트랩대전 강철규의《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
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

느슨하게 감상하는 전시 2021 아트랩대전 강철규의《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

by 토마토쥔장 2021. 10. 1.
728x90
반응형

느슨하게 감상하는 전시

2021 아트랩대전 강철규의

《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


 

2021 아트랩대전 강철규의 <<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

글•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 171.


   전시를 보러 가기 전, 미술가 강철규가 소설책을 낸 이력이 있음을  게 되었다. 미술관에는 작품을 소개하는 오디오북도 준비되었다고 했다. 그는 화가일까 작가일까? 강철규의 그림과 글은 어떻게 상호보완적으로 작품 세계를 완성하고 있을까? 궁금증을 가지고 이응노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위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작가 노트에서 발견했다. “나는 소설의 형식 (주제를 선정하고 소재를 고르고 사건을 만들어 가상의 이야기를 전개) 을 회화에 적용한다.” (강철규 작가 노트, 2021). 그는 소설을 짓듯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작 중 글을 먼저 쓰고 나중에 그림을 그린 경우와 그 순서를 바꾸어 진행한 경우는 반반 정도이다. 강 작가에게 문학과 회화는 들어가는 형식이 흡사하므로, 무엇을 먼저 창작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관람객은 단편집, 회화, 오디오북이라는 형태에 구애받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강철규의 작품을 감상하면 된다. 

   전시를 보러 간 날, 마음 상태가 뾰족했는지 전시장에 없는 것부터 보였다. 강철규의 작품에는 캡션이 없다. 입구에 놓여 있는 전시 배치도에서 제목과 연도를 살펴볼 수 있다. 작품 옆 캡션은 감상의 흐름을 방해 할 수 있기에 필요한 사람만 찾아볼 수 있도록 별도 자료를 준비한 것이다. 전시장의 모든 콘텐츠를 꼼꼼히 보는 나의 감상법 때문인지, 관람객에게 선택권을 준 작가의 배려가 부담되었다. 그림을 보고, 전시 배치도에서 제목을 찾고, 작가 노트를 읽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답지를 접고 보기로 했다. 

   관람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주기 위한 장치인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캡션 없이 전시를 관람하니 작품이 슬프게 다가오는지, 쓸쓸하게 다가오는지, 부끄럽게 느껴지는지와 같은 나의 경험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전시 배치도와 작가 노트를 참고하여 다시 돌아보았는데, 내가 느낀 감정이 〈죽지 않는 것〉, 〈솔리튜드〉, 〈수치〉와 같이 제목 속에 있어서 동질감을 느꼈다. 

   전시장의 분위기를 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빛이다. 《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에서는 작품을 강조하는 천장 핀 조명 대신, 메인 전시실을 골고루 밝히는 LED 등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몰입감을 주는 조명의 부재가 아쉬웠는데, 연작이 다수 포함된 이번 전시의 특성을 살려 M2 프로젝트 룸의 백색 깔끔함을 활용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강철규 작가는 적게는 3개, 많게는 9개의 캔버스를 이용한 시리즈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벽을 분할 사용하여 관람객의 시선을 인도한다. 벽 하나에 작품 시리즈가 하나씩 있어서 관람객은 90도 몸을 돌릴 때마다 다른 주제를 접한다. 마치 단편 소설 하나를 마치고 다른 이야기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기묘한 인간들의 출처>, 캔버스에 유채, 33X53cm, 2021

   메인 전시실의 넓은 벽에는 〈기묘한 인간들의 출처〉가 전시 중이다. 특이하게도 이 작품은 긴 벤치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공간을 비우고 벽에 걸려 있다. 벽 전체를 골고루 사용하지 않고 오른쪽에 무게 중심을 실은 방식과 연작과 연작의 거리, 연작 내 작품의 거리를 자유자재로 바꾼 강 작가의 독창성을 보면서 글 쓰는 사람이기도 한 그가 전시장에 문장부호를 사용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기묘한 인간들의 출처〉가 있는 벽은 소괄호, 쉼표 8개, 그리고 마침표 1개가 될 것이다. 

<솔리튜드>, 캔버스에 유채, 53X33cm, 2021

   《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은 특정한 위치에 작품이 존재함으로 그 의미가 두드러지기도 한다. 10호 캔버스 세 개를 가로로 사용한 연작 〈솔리튜드〉가 그 예시이다. 고독을 뜻하는〈솔리튜드〉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홀로 담배를 피우는 이를 그렸다. “라이터를 끄고 담뱃불 하나만 남은 고독만큼 기분 좋은 고독은 없어. 그건 일종의 안정감이야……. 난 정말로 그 검푸른 고독 안에서 희미하게 흔들리는 것이 좋아.” (강철규 작가 노트, 2021) 콘크리트 기둥 폭과 정확히 일치하는 크기의 〈솔리튜드〉는 반전 매력이 있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후면 또는 측면인 좁은 기둥에 작품이 숨어 있다는 점과 뜻밖의 공간에서 발견한 그림이 커튼 뒤에서 몰래 흡연 중인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후미진 데서 고독을 즐기는 끽연가를 찾은 관람객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그림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숨고 숨기는 관계를 파악한다. 

<유령>, 캔버스에 유채, 45X53cm, 2021

   또 다른 작품〈유령〉은 작품의 소재뿐만 아니라 진열 방식에서도 여운을 남겼다. 운전 중 힐끗 보였다 사라진 사람. 유령을 본 건 아닌지 등골이 서늘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유령〉은 벽에 걸려 있지도 않고, 안정감 있게 세워져 있지도 않다. 허술하게 서 있는 그림이 외부 자극으로 툭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관람객이 작가의 작품 훼손을 걱정하는 상황과 그 작품의 이름이 유령이라는 것은, 연출 의도가 정말 잘 통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으스스했다. 

   이번 전시에 작은 그림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작품은 체력 소모가 큰데 《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은 상실, 부재, 불안, 트라우마를 담았기에 심적으로도 부담스럽다. 강철규 작가는 소품 크기에 해당하는 10호 캔버스를 여러 개 사용함으로써 연작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었다. 그는 큰 캔버스를 두꺼운 책, 작은 캔버스를 얇은 책 또는 책 속에 있는 단편에 비유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 보니 전시회명이 단편집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작은 그림 여러 개를 통해 강철규의 작품을 둘러보는 과정은 단편집을 읽으며 작가의 창작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는 것 3>, 캔버스에 유채, 73X73cm, 2021

   《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의 소재는 무겁지만, 강 작가가 구사한 회화 기법은 가볍다. 그의 유화는 층짐이나 두께감이 없다. 사용하는 색은 진지한데 칠하는 기법은 맑아서 전체적으로 튕기지 않는 색감을 표현한다. 연작〈죽지 않는 것〉 중 세 번째 작품인 위의 그림에는 나무 아래 누워 있는 여인의 숨통을 조이는 폭력적인 손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몇 년 전 유행한 멜로 스릴러〈동백꽃 필 무렵〉의 한 장면 같았다. 트라우마를 떠올리는 작품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강 작가가 얼마나 얇고 세밀하게 나무의 질감을 표현했는지 감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이번 전시회는 나무를 보았다 숲을 보았다 하는 것 같았다. 연작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가, 연작 속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평소 의지하던 캡션 없이 자유롭게 돌아보다가, 전시 설명을 들고 꼼꼼히 챙겨 보았다. 나무와 숲 둘 다 보면 좋겠지만 나무를 보고 싶을 땐 나무만 보고, 숲을 보고 싶을 땐 숲만 보아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 감상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단편집: 죽지 않는 것들》을 관람하면서 전시장에 가는 내 마음의 나사를 조금 풀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술 작품이 나에게 느슨해져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글•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 171.


월간토마토 구독하기

https://tomatoin.com/app/request/index?md_id=request 

 

토마토

 

tomatoin.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