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에 떠나는 가벼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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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휴일에 떠나는 가벼운 여행

by 토마토쥔장 202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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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게 늘어진 감각을

팽팽하게 당긴다


휴일에 떠나는 가벼운 여행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 등

글•사진 이용원

월간토마토 vol. 171.


1.

   보통 여행 중 점심은 오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먹는다. 누구나 아는 주요 포인트를 찍는 거점 점령형 여행을 즐긴다면 더욱더 그렇다. 새벽부터 일어나 과업을 수행하듯 최대한 둘러보고 12시를 전후해 식당을 찾는다. 거점 점령형 여행이 지닌 피곤함과 일종의 허무함을 안다면 여유를 좀 부린다. 우선, 느지막이 일어난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늦은 점심과 저녁을 먹는 식으로 식사 때가 뒤로 밀린다. 한 끼 정도는 건너뛸 수도 있다. 그 사이사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거점을 즐긴다. 때론 아무럴 것도 없는 공간을 배회하며 산책한다. 여행 거점은 ‘낯섦’이면 충분하다. 그래도 오전 시간대에 여행에 어울리는 어떤 가벼운 행위를 한 후에 식당을 찾는 게 보통이다. 

   아침에 너무 여유를 부렸다. 일주일 간격을 두고 반복하는 일상조차 몸은 쉽게 기억한다. 대전에서 이웃한 공주까지는 어디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짧은 여행을 시작하기 전 식당부터 찾는다. 제민천 주변에 즐비한 괜찮은 식당은 대부분 일요일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은 알았다. 예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곰골식당’에 가기로 했다. 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공주사대부고)와 골목을 사이에 둔 모퉁이 집이다. 공주사대부고 앞에 공사가 한창인 걸 전에 보았는데 담장은 돌담길로 정비하고 정문에는 충청감영 포정사 문루를 재현했다. 고등학교 정문으로 쓰기에는 좀 과한 감이 있지만, 이곳이 1707년 충청감영이 있었던 곳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실제 포정사 문루는 일제 강점기 이후 우여곡절을 겪다가 해체해 옛 공주 군청에서 보관하다가 1993년 웅진동에 복원해 두었다. 충남 무형문화재 제93호다. 

   11시가 조금 넘은, 일요일 오전이었지만 곰골식당은 적잖은 사람이 찾았다. 식당 정원에 마련해 둔 야외테이블은 거의 꽉 찼다. 식당은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보였다. 넓은 마당에는 다양한 나무가 자랐고 그 사이사이 테이블을 두었다. 생선구이와 갈치조림, 참숯제육석쇠한판이 대표 메뉴였다. 1인분 주문이 가능해 모두 시켰다. 주문 후 음식이 나올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기다리는 시간, 두리번거리며 다른 테이블을 둘러보았다. 말투와 음식을 기다리는 자세 등에서 공주시민과 여행자를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대부분 여행자였다. 홀로 앉은 20대 청년 여행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주문 후 20여 분쯤 지나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식당 정원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점원의 몸짓은 화려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식당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함이었다. 고등어 한 마리와 임연수어 한 마리, 갈치 두 토막, 고추장 양념을 바른 돼지고기가 한 판이 나왔다. 생선구이와 갈치조림에는 공깃밥이 딸려 나왔다. 갈치조림 노란색 양은 대접에 조려 냈다. 가격대비 맛은 무척 훌륭했다. 

   곰골식당이 있는 감영길은 조금씩 변하는 중이다. 곳곳에 신축한 현대식 한옥 건물이 보였고 그곳엔 치킨집과 카페 등이 문을 열었다. 공주 제민천을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는 주변으로 범위를 넓히며 확장한다. 충청권 중심도시로 오랜 역사·문화 역량을 갖춘 공주시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기대감이 인다. 한적한 길을 걸으며 지난해 《월간 토마토》가 소개한 ‘서천상회’를 찾았다. 서천상회는 예술공간이다. 지금 공주에 이는 변화에 다양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지하에 ‘쉬갈갤러리’를 운영하고 1, 2층은 카페로 사용한다. 1층에는 팝업 스토어를 두고 도예 작품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한다. 무엇보다 오래 운영한 슈퍼 건물을 매입한 작가가 건물이 지닌 역사성을 살리며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다. 지하 쉬갈갤러리에서는 임재광 개인전 《표상하기》 전이 열렸다.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해 두고 지하로 내려갔다. 

   이번 전시는 2주씩 두 번에 걸쳐 9월 한 달간 열렸다. 1부 전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나무 채반이나 여물 바가지, 작은 문짝 등 용도를 알 수 있는 것부터 도무지 용도를 모를 물건까지 임재광 작가 손을 거치며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월과 생활감이 묻어나는 재료에 직선으로 경계를 나누고 각 구역에 색을 입혔다. 하얀색 캔버스가 아닌 물성이 느껴지는 재료가 주는 인상이 강렬하다. 작가가 진행한 ‘표상하기’가 어렴풋이 읽힌다. 나무 채반이나 여물 바가지는 오랜 세월 제 기능을 하며 기억을 간직했다. 그 기억 위에 작가는 경험을 통해 생성한 주관적인 지각을 선과 색으로 덧입히며 새로운 표상을 만들어냈다. 그 일련의 과정이 ‘표상하기’다. 지하 전시장 한쪽 구석에서 밖으로 이어진 조그만 공간에 ‘윌슨’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반가웠다. 

   전시를 보고 올라왔을 때 음료와 디저트는 이미 나왔다. 카페 서천상회는 2층 내부 공간도 좋지만, 날이 좋아 1층 전실에 앉기로 했다.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으로 이어지는 사이에 존재하는 틈이다. 그곳에 앉아 한가로이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낯선 공간은 매 순간 파고드는 일상의 잡념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쉼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2. 

   매년 이맘때면 공주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을 찾는다. 2년에 한 번은 금강자연미술미술비엔날레가 열리고 그사이에 프레비엔날레가 열린다. 매년 공주로 짧고 가벼운 여행을 떠나는 이유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휴일을 맞아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았다. 

   연미산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잊었던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다. 오만한 인류가 결국 멸망하고, 살아남은 생존자가 모여 조성한 최후의 생존지라는 생각에서 뻗어 나가는 이야기다. 《숲속의 은신처》라는 주제로 열린 2018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를 보고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 연미산 숲속 곳곳에는 다양한 꼴의 셸터가 들어섰다. 인류가 구성한 사회는 ‘주거 공간’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숲속에 들어선 셸터는 그곳을 인류 주거지로 보기에 충분한 형태를 만들었다. 셸터를 항구적인 주거 공간으로 볼 수 있을지에 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멸망한 인류가 처한 상황이라면 셸터가 오히려 적당하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 끝자락은 금강에 닿는다. 금강을 곁에 둔, 너무 거칠지도 너무 완만하지도 않은 연미산은 마지막 인류가 생존지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산과 물이 함께 하는 연미산은 인류가 생존하기에 꼭 필요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공원을 방문한 관람객도 생존지 거주민으로 작품 속에 녹아든다. 연미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다. 셸터를 중심으로 연미산자연미술공원 곳곳에 새로 설치하는 작품과 오래전 설치해 햇볕과 바람, 비와 눈에 스러지는 작품까지, 모두 마지막 생존지에 필요한 구성요소로 다가온다. 어떤 작품은 아이들 놀이 시설, 어떤 작품은 벌을 지키며 꿀을 얻기 위한 시설, 어떤 작품에서는 주술적 의미를 읽었다. 2018년 처음 상상한 이야기는 해를 거듭하며 점점 확장했다. 지난해는 하나의 몸통에 머리 둘 달린 당나귀와 알록달록 형광색을 띤 말도 새로운 구성원으로 생존지에 들어왔다. 

   지난해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서 작품인 〈노아의 방주 오래된 미래, 서기 2200년 어느 날...〉도 이런 상상을 더욱더 강하게 부채질했다. 이 작품은 인간이 21세기 기후 위기를 잘 대처하지 못해 수면이 70m 상승한 미래인 2150년에 산꼭대기에서 좌초한 방주 형태 배가 2200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스토리를 가진 작품이다. 지난해 비엔날레 현장을 좀 일찍 찾았을 때 작품 설치가 막바지에 치닫고 있었다. 그 모습조차 50년 전 좌초한 방주를 발굴하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올해는 새로운 셸터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생존지는 숲속의 은신처에서 점점 마을의 모습을 갖추는 듯했다.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사이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숲속에 흩어져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주변 셸터로 비를 피했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신기할 정도다. 잘 정리한 연못에 파문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빗방울이 아름답다. 하늘도 비엔날레에 참여해 작품을 완성하는 듯하다. 자연 미술이 지닌 매력이다. 내연기관으로 사용했을 무거운 엔진룸에는 국화꽃이 예쁘게 피었다. 인류가 저지른 과오를 반성하며 하늘을 향해 피운 향처럼 보였다. 공원 중심부에 놓았던 〈렛잇비 창의적 수분 스튜디오: 지식 공간을 시도하다〉는 실제로 벌이 날아다니는 작품이었다. 작년에 말벌 몇 마리가 공격하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올해는 꿀벌을 볼 수 없었다. 말벌 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인류는 다시 그곳에 벌이 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연미산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며, 언젠가 이 공간에서 설치 작품과 연계한 거대한 퍼포먼스를 연출하면 어떨까? 배우와 시인, 무용가 등 다양한 장르 예술가가 참여해 연미산 숲속에서 펼치는 퍼포먼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2022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주제는 《또, 다시야생(多視野生)》이다. 이번에 금강자연미술센터에 서는 내년 비엔날레와 관련한 특별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내년 비엔날레 참여를 희망하는 국내를 비롯한 전 세계 자연 미술가가 보내온 작품공모 참여 계획서다. 자연에 관한 새로운 예술적 아이디어를 표현한 현장 설치 작품 계획서다. 마음껏 상상하고 공유하는 과정은 상상을 현실에서 구현해내는 유효한 방법이다. 지금, 우리 삶이 팍팍한 현실은 누구나 마음껏 상상할 힘을 잃어서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인류의 올바른 진보는 건강하고 기발하며 유쾌한 상상에 기반한다. 예술가가 마음껏 상상해야 할 존재라면, 우리는 그 상상을 힘껏 공유해야 할 존재다. 

   금강자연미술센터에서는 《자연 미술 큐브전12×12×12+자연》 전시도 함께 열린다. 가로, 세로, 높이가 모두 12cm인 큐브 안에 자연에 관한 생각을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담아낸 큐브전이다. 다양한 생각과 기발한 표현 방식이 일상에서 지루하게 늘어진 감각을 건드려 팽팽하게 당긴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많이 탐난다.


글•사진 이용원

월간토마토 vol.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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