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전시《6개의 벽, 10개의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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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전시《6개의 벽, 10개의 삼각형》

by 토마토쥔장 2021.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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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전시

2021 아트랩대전 고동환의

6개의 , 10개의 삼각형》


ART

2021 아트랩대전 고동환의 6개의 , 10개의 삼각형》

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 172.


이메일에서 열어 본 고동환 작가의 작품 사진은 동그란 시계가 걸린 분홍색 벽이었다. 전시 《6개의 벽, 10개의 삼각형》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벽과 인터넷 중고시장에서 구매한 소품이 등장한다는 설명도 함께였다. 문득 지난주 읽은 신문 기사가 생각났다. 덴마크 작가 옌스 하닝은 Kunsten 현대미술관의 의뢰로 작품을 준비했는데, 그가 가져온 것은 <돈을 갖고 튀어라> 라는 제목의 빈 캔버스 두 개였다. 미술관이 작가에게 지급한 비용은 약 1억 원이었다. 작가가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작품이 아니었던 사물을 어떻게 이해하고 글로 옮길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을 안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Triangle 1~10> 나무합판, 각재, 페인트, Various sizes, 2021

집을 모티브로 다양한 활동을 이어 온 고동환 작가의 《6개의 벽, 10개의 삼각형》 전시회는 제목 그대로 벽과 삼각형의 모음이다. 과거 작품에서 집의 외형을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집의 내부에서 만 날 수 있는 이미지에 집중한다. 고 작가는 전시장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제작했다.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 1층에 자리한 M2 프로젝트룸은 네모반듯한 큐브형 외관과 달리, 복잡한 실내 구조를 가졌다. 긴 복도, 못을 박을 수 없는 유리 벽, 엘리베이터 문, 기둥 등이 있어 전형적인 전시장과는 다르다.

<Triangle 1~10> 나무합판, 각재, 페인트, Various sizes, 2021

작가는 마치 칠교놀이 조각을 찾듯 전시실 구석구석에서 보이지 않는 삼각형을 끄집어냈다. <Triangle 1~10>은 모서리나 기둥 뒤에 두어야 적당한 삼각기둥을 복도 중앙에 배치하여 작품 사이를 거닐도록 관람객을 초대한다. 왜 삼각형일까? 고 작가는 공간 구성에 필수적인 삼각형을 사람들이 간과한다는 점과 복잡함과 대비되는 단출함의 확장성에 주목한다. “단순한 도형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에는 삶의 정서적 흔적은 봉인되어 있습니다.” (고동환 작가노트, 2021) 그는 소유물로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흔한 구조물을 통해 작가만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Wall 1~6> 나무합판, 각재, 페인트, 시계, 거울, 액자, 몰딩 등, 180X91cm, 2021

복도와 벽을 따라 존재하는 삼각형 열 개를 둘러보고 메인 전시실로 들어가면, 이번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벽 여섯 개를 만난다. 화려한 색상과 야트막한 높이 때문인지 인형극에서 쓰는 세트장이나 실내장식 상점에서 모형으로 둔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의 벽 같다. 고동환 작가의 오브제는 벽인 까닭에 미술관에 거는 대신 지지대를 만들어 전시실 가운데에 두었다. 집이든, 무대든, 전시장이든 벽은 한쪽만 쓸모가 있다. 사람들은 벽의 뒷면을 볼 수 없다. 벽의 속성에 반기를 들 듯 양쪽 면을 사용한 고 작가의 작품을 바라보며, 관객은 어느 쪽이 앞인지, 어느 쪽이 뒤인지 헷갈린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벽이 앞면이라면, 이는 레디메이드 오브제이다. 몇 걸음 옮겨 벽의 뒷면으로 이동하면, 화려하고 반복적인 문양을 발견한다. 마치 전시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앞과 뒤, 안과 밖이라는 고정관념을 바꾸어 보라고 주문하는 것 같다.

<Wall 1~6> 나무합판, 각재, 페인트, 시계, 거울, 액자, 몰딩 등, 180X91cm, 2021

신선하고도 낯선 전시를 소화하려고 다른 때보다 길게 미술관에 머물렀다. 작품의 입체적 특성을 살리고자 여러 번 촬영했는데, 만족스러운 컷이 없었다. 한 개씩 찍으면 밋밋하고, 여러 개를 한꺼번에 담기에는 전시실 각도가 여의치 않았다. 작품에서 조금씩 뒷걸음질하며 구도를 찾다가 더 후진할 수 없는 전시실의 네 모퉁이에 다다랐다. 명당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발길을 주지 않았던 두 벽이 만나는 모서리가 이번 취재에는 꼭 필요한 장소였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전시장 벽에 붙어 작품을 바라보니 어쩌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메시지는 오브제 뒷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인 전시실에서 나의 시선을 빼앗은 곳은 콘센트가 설치된 하얀 벽이다. 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품은 액자, 시계, 달력 정도로, 의외로 물건이 많지 않다. 하지만 벽에 빠짐없이 들어있는 것은 콘센트다. 고작 가는 흰 벽에 콘센트 하나를 넣어 최소한의 벽을 지었다. 미술관 전시실에 있는 흰 벽과 고 작가가 만든 하얀 벽은 어떻게 다른가? ‘이 오브제를 접하지 않았다면 내가 매일 보는 벽에 대해서, 나의 동선을 규정짓는 실내 공간에 대해서 이처럼 골똘히 생각해 보지 않았겠지.’, ‘일상의 사유를 시각적으로 바꾸어 가장 평범한 벽을 재구성한 작가의 관념이 예술적 희소성이겠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빈 벽을 설치한 실험에 동참하기로 했더니, 설치미술, 레디메이드 오브제에 대한 나의 떨떠름한 생각이 가벼워졌다. 

작가의 방

아트랩대전에서 빠질 수 없는 관전 요소는 <작가의 방>이다. 《6개의 벽, 10개의 삼각형》 전시 배치도에는 간결하게 a. 벽, b. 삼각형, c. 작가의 방이라고 안내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가가 사용하던 집기 및 기존 작업을 옮겨 와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설명처럼 고 작가는 이번 작품 제작에 사용한 아크릴 물감, 폼 보드로 만든 전시장 모형을 공개한다. 용기에 덜어쓰고 남은 물감은 플라스틱 비닐과 고무줄로 감싸 두었는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시가 끝날 때쯤이면 굳은 덩어리로 변할 것이다. 곧 쓸모없는 재료가 될 테지만, 쓰다만 물감은 <작가의 방>에 포함되어 관객들이 창작자의 공간을 횡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실마리를 주었다. 집을 모티브로 평면과 입체, 회화와 텍스트를 넘나드는 고동환 작가의 작품 세계는, 단순하고 함 축적인 것으로 바뀌는 현대미술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전시 《6개의 벽, 10개의 삼각형》. 사색하는 즐거움을 찾는 이에게 추천한다.


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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