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깨우는 전시《찬미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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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감각을 깨우는 전시《찬미의 정원》

by 토마토쥔장 2021.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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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을 깨우는 전시

2021 아트랩대전 천찬미의

《찬미의 정원》


ART

2021 아트랩대전 천찬미의 《찬미의 정원》

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 170.


이글거리는 8월의 오후, 2021 아트랩대전 세 번째 전시회에 다녀왔다. 지난 두 번의 관람으로 아트랩대전의 변하는 분위기가 즐거웠기에 이번 전시도 기대됐다. 안내에 쓰인 《찬미의 정원》이라는 제목에서 자연, 싱그러움, 꽃, 나무를 떠올렸다. 전시를 보는 동안 뜻밖의 일, 즐거운 일이 벌어졌으면 싶었다.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 M2 프로젝트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코로나 19가 한창일 때 시작했다. 대전은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로 4명까지 사적 모임이 가능하다. 미술관은 관람객 수를 조절하려고 전시실 복도에 대기용 의자를 비치했다. 메인룸은 두 명씩 관람할 수 있고, 그 외의 공간은 4인이 넘지 않도록 서로 동선을 살피며 관람한다. 체온 측정과 방문자 체크인에 대기 줄까지 더해져 진입 장벽이 높았지만, 전시장 내부는 의외로 상쾌했다. 천찬미 작가는 프로젝트룸에 에너지와 생기를 불어 넣었다. 입구부터 환한 벽이 관람객의 눈길을 끈다. 그녀의 작업은 직사각형의 메인룸 출입구를 꽃나무 정원 아치로 탈바꿈시켰다. 하늘색 천에 새긴 노란 아치는 정원으로 들어가는 문의 역할을 하며 경계를 만들었다. 환영 인사 같은 커튼을 열고 메인룸으로 입장하면, 레몬, 라임, 흰색의 벽을 배경으로 크기가 다른 회화, 설치, 영상 작품이 있다.  

<찬미의 정원> 아크릴, 혼합재료, 1,610X1,300mm, 2021

천 작가는 자연과 성경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정원은 작은 공간에 축약한 자연이다. 그녀는 파리에서 만났던 정원을 기억하며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 “정원이 뭔가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다. 넓지 않은 땅에서 엄청 크고 짙은 나무가 담장을 넘어서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 집의 정원을 보면서 나도 나의  정원을 상상해 보았다.” (천찬미 작가 노트, 2021) 전시회 제목과 같은 이름인 그림 <찬미의 정원>은 크기가 다른 네 개의 천 조각으로 이루어졌다. 한 면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식탁 도면이 있고, 다른 면에는 식탁보로 제격인 연두색 격자 천 위에 새들이 날아다닌다. 남색 어둠과 노란 밝음을 배경으로 꽃과 별이 공존하며, 작품 전체를 둘러싸는 주황과 보라 붓질이 정원에 생동감을 선사한다. 

<시작> 캔버스에 아크릴, 530X405mm, 2021

천 작가의 회화 중 <시작>은 나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이 작품은 출발선에 있는 누군가의 시작을 응원하는 듯하다.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짙은 파란색과 선명한 노란색의 결합으로 생긴 에너지가 캔버스 밖으로 튀어 나올 것 같다. 내 눈에는 멀리서 바라보는 화산 폭발 장면 같기도 하고, 밤바다 위로 떠 오른 보름달 같기도 한데, 작가는 이 작품에서 천지 창조 같은 심오한 의미를 담았을 수도 있겠다. 

<인간의 형성> 흙, 도자, 물, 2021

성경이 천 작가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주었음은 그녀의 설치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형성>에서는 삼각형으로 높낮이가 다르게 배치한 도자, 식물, 수조가 하나의 오브제가 되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구절을 읽으며 인간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건을 떠올렸다. 새싹에 생명력을 공급하는 흙과 물고기가 살 수 있는 물을 합하면 생명의 탄생에 충분한 조건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그녀는 흙과 물로 만드는 작품인 도자 그릇을 중앙에 배치하여, 인간의 형성을 완성했다. 

<The tree of life> PVC 비닐, 아크릴, 스프레이, 혼합재료, 3.3m, 2021

전시실 복도 끝 중앙에 있는 <The tree of life>는 성경과 족보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천 작가는 영혼의 양식이 곧 성경 말씀이고,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기에 마태복음 1장에 담긴 예수의 족보를 토대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광목천에 작가가 직접 쓴 예수의 족보 위에 투명한 초록 필름을 내려뜨려 완성한 이 오브제는 나무의 뿌리를 형상화했다. 영어로 족보는 family tree인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곧 생명의 족보(The tree of life)임을 말하고자 했다. 

작가의 방

아트랩대전에서 빠질 수 없는 관람 요소는 <작가의 방>이다. 천찬미 작가의 작업실을 옮겨 온 이 공간은 작가와 관람객이 같이 꾸미는 공간이다. 《찬미의 정원》을 준비하면서 느꼈던 즐거움을 관객들도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녀는 사과 궤짝만 한 책상을 준비했다. 바닥에는 미술 재료와 장난감 소품을 무질서하게 배치했다. 꼬마 관람객은 그림을 그리다가 팔을 뻗어 장난감을 만지기도 하며, 작가의 의도대로 이 시간을 즐겼다. 

 담당자에게 《찬미의 정원》에 있는 총 작품 수가 몇 개인지 물어 보았다. 목록에 적힌 개수로는 23개인데, <작가의 방> 한쪽 벽에도 작품이 걸려 있으니 실제로는 그것보다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메인룸의 하늘색 커튼도 이름은 없지만,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액자가 없는 작품이 여러 개 있었고, 종이와 천을 혼용하며 경계를 허무는 자유분방함이 드러났다. 첫 개인전을 하는 천 작가는 크기, 형식, 재료,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어 관람객을 초대했다. 전시장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무더위를 날려 줄 청량감을 얻었다. 《찬미의 정원》은 시원한 레모네이드 같은 상큼함을 선사하며 시각, 촉각, 청각, 후각을 자극하는 한여름의 오아시스였다.


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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