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맞배집에서 열린 치료적 공연 <마이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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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대흥동 맞배집에서 열린 치료적 공연 <마이 민>

by 토마토쥔장 2021.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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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동 맞배집에서 열린 치료적 공연

<마이 민>

연극 <마이 민> 리뷰 in 맞배집


글•사진 김예은

월간토마토 vol. 171.


   입구에서 관객을 맞는 스태프 움직임이 분주하다. 직접 만든 리플릿은 2천 원. 기사 쓰는 데 참고하기 좋을 것 같아 샀다. 예약 확인 후 입장해 보니 생각보다 협소한 공간에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따스한 조명과 분위기를 돋우는 배경 음악. 오랜만의 연극에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 앉는다. 스무 명 이상은 되어 보이는 관객. ‘이 많은 사람이 연극을 어떻게 알고 한자리에 모이게 된 걸까?’ 생각하는 도중 공연이 시작된다. 

   배우는 두 명. 무대 양 끝에서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아무런 소개 없이 갑작스레 시작한 공연에 여럿 당황했지만, 신선함에 감탄한다. 비장한 음악에 맞추어 서로를 마주 보고, 서로서로 감싸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몸짓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민: 혼자 있으면 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진: 누가 가까워지면 복잡한 생각이 가득 차서 힘들어요. 

   민과 진은 연인 사이다. 민은 온종일 출근한 진의 연락을 기다리며 초조해한다. ‘왜 연락이 안 되지? 왜, 왜, 왜?’ 민은 참다못해 진의 회사 앞으로 찾아간다. 왜 연락을 하지 못하냐며, 적어도 밥 먹을 땐 연락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진을 다그친다. 그러나 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지친 진은 그를 상대하기 버겁다. ‘민아, 나 하루종일 일하느라 지쳤어. 방금 회사에서 나왔어. 방금!’ 서로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관계는 막을 내린다. 

   그들은 과거 어디선가로부터 얻은 상처로 인해 불안한 외로움에 휩싸인다. 외로워서 사람을 찾지만, 같이 있어도 그가 떠날까 늘 불안한 민과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면 버려질까 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는 진. 사실 이건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계로부터 오는 상처의 형태는 무수히 다양하다. 그리고 그로부터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테니. 

   〈마이 민〉은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공연은 약 30분간 이어진다. 그 후엔 관객이 직접 내 안의 민과 진을 만나 볼 차례다. 관객은 민과 진 팀으로 흩어지고 각자 내 안에 있는 민과 진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생각해본다. 사람 형상이 그려진 큰 도화지와 색연필, 사인펜이 준비된다. 처음엔 머뭇거리던 관객들. 몇 초의 정적을 지나 하나둘씩 일어선다. 각기 다른 색을 집어 들고 새하얀 종이 위에 내 마음을 적어 본다. ‘버려진 기분’, ‘가정의 불화’, ‘왕따’ 등등... 읽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릿해지는 단어가 도화지 위에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가슴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면 이제는 자신의 민, 진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본다. ‘넌 소중해’, ‘네 잘못이 아니야!’, ‘다 잘 될 거야’ 등 이번에는 따뜻한 말을 메모지에 적는다. 글에는 힘이 있다. 충분히 메모지에 적은 글을 바라보며 그 힘을 느낀다. 

   글을 적은 후 돌아가며 자신에게 한 마디씩 내뱉는다. ‘난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뒤처지는 것 따윈 별거 아니야.’ 이때 몇몇 관객 눈에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공연에 진지하게 임하며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 배우가 의자에 꽁꽁 묶여 있는 줄을 보여 준다. 이 줄은 상처의 줄이다.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어쩌면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던 상처. 하지만 우린 이제 그 줄을 풀 수 있는 용기가 있다. 공연은 상처의 줄을 풀며 끝난다. 

   “오늘 우리가 같이 이 상처의 줄을 풀었지만, 내일이면 다시 묶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내일모레엔 다시 풀리겠죠. 그러다 한 3개월 꽁꽁 묶여 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린 그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거예요.” 

   마지막 멘트였던 말이 와닿는다. 오늘 잠깐 상처를 이겨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상승과 하강 곡선을 그릴 것이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깊은 구멍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보다 더 소중한, 더 강한 힘을 우리의 내면에 가지고 있다면 그것들과 함께 할 수 있을 테니,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치료적 공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연극과는 다른 공연이다. 작은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서로 호흡하고 관객이 무대에 나가 직접 참여하는 형식의 공연. 

   관계로부터 발생하는 상처는 모두에게 불가피하다. 인간은 모두 다 다르기에 고려해야 하는 점이다. 그런데도 각자는 서로가 필요하고, 결국 모든 상처를 떠안게 된다. 상처를 품은 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온전히 맺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랑을 갈구하고, 불안해하며, 외로워한다. 〈마이 민〉은 많은 이가 겪었을 상처와 갈등을 공연으로 느끼게 해 주고, 상처받은 이를 만나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결국엔 그 상처의 줄을 풀게 해 주었다. 단순히 ‘공연’이 아닌 ‘치료적 공연’이라는 이름이 걸맞은 순간이었다. 인상적이었다. 

 

 

 

배우 윤종은 님(진)과의 인터뷰. 

이번 공연을 기획하게 의도나 참여한 계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기획하지는 않았고요. 은성 배우님과 총괄 피디님이 연출 겸 기획을 하신 거예요. 저는 기획 이후 참여 권유를 받았고요. 혹시 배우를 같이 할 생각이 있느냐면서요. 제가 은성 배우님이랑 학교 선후배 사이고, 그 학교에는 연극 치료 수료 과정이 있거든요. 물론, 공부를 충분히 한 후에 연극 치료사가 되는 거지만, 저도 학교 다닐 때 조금 배웠죠. 제가 연극 치료사는 아니지만, 배우이니 아무래도 관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부르시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는 흔쾌히 받아들였죠. 사실 코로나 19 상황이라 공연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대전에서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하셔서 뭔가 더 뜻깊고 꼭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서울에서 공연했을 때 저도 느꼈던 게 있었거든요. 그때는 조금 어렸지만요. 제가 느꼈던 것을 대전 분들도 같이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아주 조금! 생각했는데, 정작 공연을 하게 되니깐 제가 더 감사한 것 같아요. 

리플릿을 보니까우리는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라고 쓰여 있는데, 상처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장’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를 두고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것 같기는 해요. 저는 상처를 ‘딛고’라 는 말을 좋아해요. 사실 상처를 계속 받다 보면 보통은 성장이 아니라 상처가 더 커진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오늘 한 것(공연)처럼 내겐 상처의 줄을 푸는 힘이 있을 테니, 딛고 올라가면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성장이라는 말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상처를 지우기보다는 그것을 딛고 올라선다는 뜻으로 말씀하시는 거죠

   네. 왜냐하면 저희도 공연하면서 관객에게 항상 하는 말이 ‘상처의 줄은 풀릴 때도 있고, 묶일 때도 있다’예요. 완전히 치유된다기보단 상처의 줄이 언제나 감길 때도 풀릴 때도 있으니까 그것을 알고, 딛고, 풀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공연에 주신 관객이 공연을 통해 얻어 갔으면 싶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상처가 있으면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공연을 하면서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그 상처의 줄을 풀 힘이 내 안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저도 하게 되더라고요. 치유하고, 극복하기보다는 상처를 받아들이고, 상처의 줄을 잘 풀 힘을 관객이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 중에 자신이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그게 상처인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도 어렸을 때 상처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 크고 보니까 나에게 상처가 되어서 이렇게 지금의 내가 된 거구나. 그 작은 것들이, 상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것들이 점점 커져서 지금의 나에게 이만큼의 상처가 되었고, 이렇게 땅 구멍을 파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오히려 그걸 회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좀 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내가 어떤지를 많이 보살펴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잘 안 되긴 하지만요. 저를 사랑해주고 저를 보살펴주고 내가 어떤지 확인하는 것. 이런 생각을 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글•사진 김예은

월간토마토 vol.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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