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과학을 곁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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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작가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과학을 곁들인

by 토마토쥔장 202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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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과학을 곁들인

ART

이승미 작가


글·사진 황훈주

월간토마토 vol. 173.


매력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차가운 줄 알았던 사람이 내겐 따뜻하거나,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지에서 인생 사진을 건지거나, 쓰러져 가는 노포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맛을 찾을 때 그렇다. 그리고 편집자인 내겐 무엇보다 재밌게 읽은 글의 저자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타났을 때가 그렇다. 

젊다. 도발적이다. 쉽게 읽힌다. 로와 작가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이다. 로와 작가 글은 《월간 토마토》에서 매달 책 리뷰 글로 만날 수 있다. 처음 만났던 글은 다니자키 준이치로 책 리뷰 글. 처음 글을 읽고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던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제목은 이렇다. <나의 성적 취향은 어느 부위?> 혹시나 궁금해하는 독자를 위해 남기자면 당시 리뷰한 책 제목은 『미친 노인의 일기』다. 

로와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 책 작업을 시작했을 때다. 언제나 그렇듯 작가와 편집자가 만나는 일로 작업이 시작되었고 실제로 만난 작가는 상상 속 모습과 많이 달랐다. 아무리 많아도 나와 동갑이거나 조금 누나라고 생각했던 작가는 나보다 훨씬 어른이었고 무엇보다 직업은 과학자였다. 연구실 가운을 입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작가라. 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가 나온 지도 어느덧 7개월이 지났다. 《월간 토마토》에서 로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는 작가 본명으로 출판했다. 책 출간 후에도 연구소에서 글쓰기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승미 작가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Q. 오늘 오기 전에 유튜브에서 작가님 최근 인터뷰 영상을 봤어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게 인상 깊었던 건 ‘부캐’, ‘사이드 프로젝트’란 단어입니다. 과학자인 작가님이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는 글쓰기는 마치 ‘옷을 갈아입는 느낌’이라고 표현하셨더라고요. 

A. 맞아요. 글을 쓰는 건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아를 찾는 느낌이에요. 과학자의 삶은 언제나 ‘왜 이럴까’란 질문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거든요. 근거와 증명이 필요한 직업이에요. 심지어 내가 만든 결과도 믿지 않아요. 계속 예민하게 신경을 세우고 있어야 해요. 그렇기에 책을 읽는 건 마음을 편하게 해 줘요.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야』에서 리뷰 쓴 책들은 모두 소설이잖아요. 소설은 이미 정해진 이야기가 있고 그 흐름을 독자는 즐겁게 따라가기만 하면 돼요. 또 글을 쓴다는 건 다른 것과는 비교 안 되는 독특한 느낌을 줘요. 그건 다른 활동과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죠. 

 

 

Q.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꾸준히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아요. 저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작가님의 직업 풀 네임을 알게 되었는데요. 나노 구조 시뮬레이션 전문가. 어떤 일인가요? 

A. 나노 물질을 합성하기 전, 컴퓨터로 합성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예측하는 것이라고 보면 돼요. 나노라는 것 자체가 발견된 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1985년. C60이라는 풀러렌을 발견하면서 나노 산업이 시작돼요. 나노 기술은 기계와 사물을 최소화, 경량화하는 데 사용돼요. 나노 기술을 사용해 가벼운 방탄조끼를 만들고, 단단하면서 가벼운 골프채도 만들 수 있죠. 이를 위해 나노 물질 합성이 필요한데 그전에 컴퓨터로 합성 시 어떤 결과가 나올지를 예측하는 것이라고 보면 돼요. 나노 기술은 산업 전반에 상용될 것이라 봐요. 인간은 편하게 살고 싶어 하고 값싸게 사고 싶어 하잖아요. 

 

 

시뮬레이션이란 것 자체가 예측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는 것이지만 언제나 예측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계속 나타나는 현상을 의심하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바쁜 일이다. 그런 삶 속에서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취미라기보단 극한 도전이다. 점심시간, 밥은 간단히 때우고 책을 읽는다. 때로는 커피로 잠을 깨면서 밤새도록 책을 읽기도 한다. 그렇게 매달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체력적으로 지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지치는 것 이상으로 얻는 보람이 있다. 

 

 

Q. 작가님 글을 보면 한 분야를 깊숙이 캔다는 느낌을 받아요. 한 책이 마음에 들면 작가에 대해 조사하고, 작가가 낸 책이 무엇이 있는지 조사하고요. 또 어떤 책은 번역이 되었고 어떤 것은 절판되었는지까지 아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엄청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이유가 있나요? 

A. 파고들어 가는 걸 좋아해요. 어쩌면 직업병 같은 건데요. 시뮬레이션을 통해 결과 도출하는 것도 맥락을 이해하는 작업이거든요. 어떤 것을 넣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파악하는 일이니까요. 과학적 태도죠. 책을 읽을 때도 이 책의 저자가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어떤 맥락으로 이런 책이 나왔는지 파고들게 되더라고요. 

 

 

역시 과학자는 과학자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런 작가님 글을 좋아한다. 화장품 하나 사러 갔는데 이것저것 써 보라며 샘플을 잔뜩 받았을 때처럼 예상치 못한 든든함이 좋다. 그 후에 과학과 글쓰기를 비교한 작가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과학 실험과 글쓰기에 비슷한 점은 많지만 그중 하나를 뽑자면 삽질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능력과 인내심 바닥까지 밀고 가야 해요. 그렇게 파고 파며 모든 것을 비우고 바닥까지 긁어 글을 쓰고 그 빈 곳에 다시 여러 이야기로 채우는 거예요. 제대로 글을 쓸 땐, 최소 3번 이상 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중해서 했어요. 이건 창조의 영역 같아요. 인내와 지력과 체력이 모두 소모되지만 그래야 완성도가 높거든요.” 

문득 책 출간 전까지 꼼꼼하게 책을 보고 수정과 교정을 계속했던 작가의 모습이 기억났다. 현상에 매몰되지 말고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의심하는 것. 이것이 과학적 태도라고 하였는데 편집자에게도 필요한 태도인 것 같다. 같은 문장을 세 번 읽더라도 또다시 오타가 나올 수 있다고 자신을 의심하는 것. 어쩌면 편집 일도 과학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Q. 앞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A. 과학자로서 과학적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글로 계속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요. 이번 12월 중순쯤에 『눈금 위에 놓인 세계』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와요. 공동 저자 집필로 3년 걸려 나오게 된 책이에요. 기본 단위 7가지에 대해 각자 하나씩 이야기하는 책이죠. 저는 온도 이야기를 맡았어요. 온도를 표기하는 단위는 켈빈인데 왜 이름이 켈빈인지 그 유래부터 시작해 온도 기준이 정해진 이야기를 썼어요. 

 

 

이승미 작가는 아는 지식을 글로 전달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닌 글로 대중을 이해시키는 것까지가 글 쓰는 이의 할 일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끝까지 읽게 할 것인가. 이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다. 

“요즘 과학 연구는 상당한 돈이 들어가는 것이 많아요. 그러니 국가에서 연구비를 받게 되는데 그건 다 세금이죠. 어찌 보면 과학 연구는 공리적인, 국가 발전을 위한 것이 돼요. 그러니 더 많은 대중에게 과학 지식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있어요. 현재 과학 연구비 지원은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에 치중되고 있어요. 이렇게 글로 더 많은 대중과 지식을 공유한다면 보다 더 먼 미래를 위한 과학 연구도 진행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글 쓰는 게 재밌다는 이승미 작가다. 글은 어쩌면 나의 가장 사적인 생각을 담게 된다. 그것을 남들과 공유한다는 것은, 그리고 내 사적 생각이 남들과 공감 요소를 이룬다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쾌감이 있다. 그렇기에 글 쓰기는 계속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를 다루고 내 마음에 존재하는 마음을 글로 표현한다. 모든 학문은 맨 위에 도달하면 서로 만난다는 말은 어쩌면 옳은 말인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이뤄내는 이승미 작가는 천생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 황훈주

월간토마토 vol.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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