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보고 싶은 작품 속 공간
2021 아트랩대전 김자혜의
《안과 밖의 경계 사이》
ART
2021 아트랩대전 김자혜의 《안과 밖의 경계 사이》
글·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 173.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자혜의 《안과 밖의 경계 사이》를 보러 가기 전, 아트랩대전 아티스트 토크에 참석했다. 프로그램 중 작가가 직접 전시작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화면이 잘 보이도록 회의실 불을 어둡게 하고 만난 작품의 첫인상은 감각적이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점잖은 화면 사이에 들어 있는 강렬한 색은 시선을 사로잡았고, 직선으로 분할된 면은 도회적이었다. 하늘, 물, 그림자, 식물과 같은 그림 속 이미지는 친숙했다. 김자혜의 전시회는 패션쇼같이 화려했고, 개별 작품은 고급스러운 실크 의상 같았다. 아티스트 토크가 끝난 후 전시실로 이동하며, 실물로 보는 김 작가의 작품은 어떤 느낌일지 더욱 궁금해졌다.
이번 전시회 이름은 《안과 밖의 경계 사이》이다. 김자혜는 정형화된 공간을 해석하고 이를 자신의 방식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한다. “여러 작품에서 나타나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 계단은 문, 창문, 거울, 그림 등과 더불어 잠재적 이동을 약속할 따름이다.” (김자혜 작가 노트, 2021) 김 작가의 작품 속 공간이 실내인지 실외인지 구분하는 노력은 불필요하다. <The wind rises>에는 탁 트인 물가와 흰 커튼이 등장한다. 두 개로 나뉜 장면 속에 바람이 양쪽을 관통하며 천을 움직이고 풀을 일렁이게 한다. <The wind rises>와 나란히 있는 작품 <In and out>에는 식물원을 옮겨 놓은 듯한 푸르름과 석양을 조명 삼은 평범한 화분이 등장한다. 캔버스 하단에는 수영장인지 연못인지 알 수 없는 물이 있다. 전시실 긴 복도 정면에 걸린 작품을 보며 두 그림이 짝을 이루어 <In or out>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품 앞에 선 관람객이 실내가 좋은지 실외가 좋은지 스스로 물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나의 선택은 무엇일지 고민하다 이 전시회 제목이 《안과 밖의 경계 사이》임을 기억해 냈다. 어쩌면 김자혜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특정한 현상과 환경을 두고 딱 부러지는 경계를 짓지 말라고 제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 작가의 작품은 여러 장면을 섞어 놓은 콜라주 방식을 사용하기에 화면 구성이 복잡하지만, 오래 바라보면 오히려 차분함이 밀려온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공간은 역설적으로 종착지 또는 목적지 같은 완결성을 연상시켰다.
이번 전시회에서 김 작가는 캡션 대신 전시 배치도를 준비했다. 작품 제목도 한글이 아닌 영어다. 머릿속에서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시간 차이를 확보하려는 것일까? 관람객들이 글자보다 그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정한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전시 배치도를 통해 관람순서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이 가이드를 따라 제일 먼저 메인 룸 앞 벽면에 있는 전시 설명을 읽고, 작품 여덟 개가 있는 방을 돌아다닌다. 메인 룸을 보고 나면 긴 복도에 걸린 서로 다른 크기의 세 작품과 통로 끝 좁은 벽에 있는 두 작품을 감상한다. 마지막으로 전시 설명이 새겨진 벽으로 돌아와 바로 옆에 걸린 열네 번째 작품을 마주한다. 시작과 끝에서 만났기 때문일까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호기심을 자극했던 첫 번째 그림 <Boundary stair; for potential movement>과 파랑을 품은 붉은 색이 있는 마지막 그림 <Crimsonlake>이었다.
<Boundary stair; for potential movement>에는 여러 공간이 혼재해 있다. 캔버스 중심에는 정면과 측면으로 보이는 계단이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계단으로는 하강하고 싶은 욕구가, 측면으로 보이는 계단으로는 상승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마지막 계단은 수채화의 퍼짐을 닮은 대리석 바닥을 만나는데,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는 주제의 신묘함을 얇고 맑은 유화로 처리한 표현이 돋보였다. 김자혜의 작품은 정지된 화면 속에 다양한 시공간을 품는다. 구름이 있는 청명한 하늘, 석양이 지는 분홍빛 하늘, 별이 뜬 밤하늘, 뿌연 하늘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동시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나무, 도심, 집, 건물 등 공간적 이질감을 모아 작품 주제로 삼았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상호작용하며, 작품마다 전혀 다른 사물과 색을 품고 있어도 한 작가가 창작하였음을 느낄 수 있는 동질성을 부여한다.
작품을 둘러본 후 <작가의 방>에 머물렀다. 한쪽 구석에는 콜라주의 모티브가 되는 시각 자료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잡지, 화보, 또는 광고 일부분이었을 종이를 보며 왜 김자혜 작가 작품의 첫인상이 감각적이고 세련되다고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작품의 원형이 미지가 익숙하면서도 상업적으로 평가받는 연출 사진이기에 그녀의 작품도 일정 부분 영향받았을 것이다. 이런 특징 덕분에 김 작가의 작품은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중성과 보편성을 갖추었다고도 볼 수 있다.
얼마 전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미술관에 가 보면 관람객이 많지 않다고 말하였더니, 동료는 사진이 잘 나오는 미술관으로 사람이 몰린다고 하였다. 전시 중인 작품도 중요하지만 해가 잘 들고, 실내가 넓고, 건물 안팎이 멋진 미술관이 명소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SNS를 통한 소식 공유가 일상인 현대인에게 미술관은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말은 피사체가 미술품이 아닌, 작품을 관람 중인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심사를 가지고 미술관 추천을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김자혜 작가의 전시를 사진 찍히고 싶은 곳 1위로 뽑을 것이다. 트렌디하고, 모던한 그녀의 그림은 아트랩대전 기간 동안 햇살 좋은 백색 큐브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으며, 전시회가 끝나면 사무실에서, 호텔에서, 카페에서 마주치고 싶은 생활 밀착형 작품이 될 것이다. 이응노미술관 아트랩대전을 통해 청년 작가의 작품이 더 많이 알려지길 기대하며, 2021년 아트랩대전 마지막 전시인 김자혜의 《안과 밖의 경계 사이》 소개를 마친다.
글•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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