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슬프고, 기묘하게 아름다운이진주의 작품《13번째 망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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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우아하게 슬프고, 기묘하게 아름다운이진주의 작품《13번째 망설임》

by 토마토쥔장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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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게 슬프고, 기묘하게 아름다운

이진주의 작품《13번째 망설임》 

 

예술을 탐하다

이진주의 작품 《13번째 망설임》 


글·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176.


전시정보를 살피던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를 발견했다. 지난 1 동안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진행한 30~40 작가 13명의 그룹전이 막을 내린다는 소식 이었다. 전시가 끝난다는 아쉬움과 젊은 예술가들의 세계관에 대한 호기심이 합쳐져 천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989년에 설립한 아라리오 갤러리는 그간 서울, 상하이, 천안에서 현대미술을 소개했다. 특히 천안에는 갤러리뿐만 아니라 야외 조각공원이 있어 키스 해리스와 데미언 허스트와 같은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무료로 감상할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은 중부권 대표 갤러리로, 이번 전시《13 번째 망설임》을 통해 젊은 작가에서 중견 작가로 진입 중인 허리 세대의 작품을 소개한다. 아라리오에는 한국, 일본, 중국, 인도 미술가 50 명이 전속 작가로 활동 중인데, 이번에 아라리오 전속 작가이며 그룹전에 참여 중인 이진주의 작품을 다룬다. 

이진주 작가의 그림을 관람한 소감은 슬픔과 아름다움의 공존이었다. 오목한 노래〉에는 사람들이 두고 화분 수십 개가 등장한다. 하나같이 볼품없다. 손길을 놓쳐 조형미를 잃은 화분, 지지대만 남은 화분, 화분 위에 포개진 작은 화분, 뒤집어서 돌을 화분이 화면 곳곳을 채운다. 가운데에는 장의자에 앉은 여인과 누워 있는 아이가 있다. 여자는 왼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오른손으로 아이의 눈을 가렸다. 어른의 다리를 베개 삼아 잠을 청하는 아이에게 자장가를 들려주는 걸까? 미사보를 쓰고 눈과 입을 다문 모습을 보니 기도 중일 수도 있겠다. 마이크 스탠드의 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낡은 손수레를 만난다. 위에는 힘없이 가라앉은 포대와 밑으로 새는 끈적한 액체가 있다. 배터리가 되어 빼놓은 탁상시계, 손가락을 쳐든 장갑, 널브러진 뚜껑과 청소용 수세미가 무심히 관람객을 바라본다. 철거촌의 골목처럼 스산하지만, 생명이 멈춘 것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 고추가 열렸고 지금도 하얀 꽃이 피어 있다. 화분이 되어 버린 사람, 버려진 화초, 들리지 않는 노래를 배경으로 천천히 흐르는 시간은〈오목한 노래〉가 회화가 아니라 영상작품 같다는 착각마저 일으켰다. 

<오목한 노래> Korean color of linen, 120×240cm, 2017

이진주의 작품은 크기가 제각각이다. 그녀가 사용하는 캔버스는 동료 예술인이자 배우자인 이정배 작가가 직접 만든다. 작품의 크기, 특성, 공간에 맞게 나무를 다듬고 길들여 제작한 화폭은 소소하고도 일상적인 상에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 이진주 작가에게 강력한 예술적 도구가 된다. 

가짜 우물〉은 폭이 5m 넘는 대형작으로 3층으로 쌓은 비정형 캔버스를 사용한다. 제일 높은 층은 방치된 공사장이다. 하나 들어갈 크기의 구멍은 방수포로 덮여 있다. 군데군데 눌러놓은 모래주머니와 흩어진 전선이 스산함을 더한다. 화폭 상단 구석의 배수로 덮개는 밑으로 내려가 입구다. 하지만 내려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마름모꼴로 재단된 캔버스 모서리의 아래층은 지지대가 없이 허공에 떨어지는 구조다. 얼떨떨한 상황을 벗어나 주위를 돌아보면 가운데층을 가득 채운 장례식 화환을 만난다. 철저하게 앞면만 사용하는 화환은 꽃이 뽑히고 구조가 분해 된 . 있다. 화환 사이로 떼를 지어 등장해 역동성을 주는 돼지는 전체적으로 쓸쓸한 장면 속에서 관객을 웃프게 만든다. 단상 밑에 웅크린 사람, 물고기가 살지 못할 환경에서 쓰레기와 함께 헤엄치는 어른과 아이, 쭈글쭈글한 웅덩이의 낚시 금지 팻말까지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와 상처를 냉정할 만큼 세밀하게 기록했다.가짜 우물〉을 직사각형의 캔버스에 가두었다면 관객들은 지금처럼 강렬한 시각적 효과와 다층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짜 우물> Korean color on linen, 260×258cm, 2017

말이 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는 관점에 따라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장면이 실재함을 인정하기, 이것이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이진주 작가는 관객들에게 사물 하나하나를 보는 것보다 대상이 주는 감각,이야기, 아우라에 관심을 달라고 주문한다. 


글·사진 염주희

월간토마토 vol.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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