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교감하고 호응하는 에너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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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교감하고 호응하는 에너지가 중요하다

by 토마토쥔장 2021.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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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교감하고

호응하는 에너지가 중요하다

비대면이 싫다

뮤지션 디안


이용원

사진 디안 제공

월간토마 vol. 171.


1. 

10년 만이었다. 그보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정확하게 햇수를 헤아릴 기준이 될 만한 기억조차 떠오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 《월간토마토》를 창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념 공연을 열었다. 그 공연에 ‘타묘’라는 팀을 초대했더랬다. 

타묘는 이락, 소리, 디안, 세 명이 모여 만든 팀이었다. 공연장이 셋의 에너지로 가득 찼다. 이후 월간토마토가 운영했던, 북카페 이데에서도 몇 번인가 공연했다. 본인들이 가진 에너지를 음악에 실어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탄탄한 팀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만남이 뜸했고 간혹 들려오던 소식도 슬며시 사라졌다. 타묘는 기억 창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지난해 태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타묘 멤버 중 한 명과 함께 있다며, 전화를 바꿔주었다. 10년 만에 창고에서 꺼내온 기억은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 경계가 흐릿했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기억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으레 그렇듯 안부를 묻고 훌쩍 지나가버린 세월의 무상함에 관해 함께 탄식하다가 ‘조만간 만나 밥이라도 먹자’라는 말로 짧은 대화를 마무리했다. 타묘를 구성했던 셋 중 디안이었다. 키가 껑충하게 컸던 그녀가 떠올랐다. 들장미 소녀 캔디를 닮은 디안이었다. 씩씩해 보이는 사람 뒤에는 종종 그림자처럼 쓸쓸함이 따라오곤 한다. 과거에 디안이 주는 느낌이 그랬다. 그녀는 고향 서울을 떠나 대전에 정착 중이었다. 

다시 연락이 닿은 지 1년이 훌쩍 지나서야 만나기로 했다. 현실에서 밥 한번 먹는 일은, 일을 사이에  두어야 가능성이 높다. 일상이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니 그렇다. 썩 유쾌한 현실은 아니다. 

어디를 그리 바삐 가시나요/ 지붕 없는 카페에 서서/ 진한 커피 한잔해보시죠/보슬비도 촉촉이 맞춰~”( 자연스럽게〉 , 작사 디안, 작곡 디안&마린

약속을 잡은 날, 퇴근하며 유튜브를 검색했다. 디안 솔로곡을 찾아 듣고 타묘가 부른 노래를 들었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열쇠는 다양하다. 향기일 수도, 볼에 닿는 바람일 수도, 귓속을 파고드는 목소리일 수도 있었다. 오래전 기억은 늘 홀로 오지 않는다. 오래 닫혔던 기억 창고 문이 열리자, 같은 시기 벌어졌던 사건과 감정 등 정리하지 않은 채 처박아 두었던 다양한 흔적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코끝이 매웠다. 기억 창고에 오래 쌓인 먼지가 풀썩거리며 날렸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만난 디안은 기억 속 디안보다 훨씬 차분해 보였다. 그녀가 무대 위에 있을 때, 아니면 공연 시작 전이나 후가 아닌 일상에서 만난 건 처음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대동천 우안에 아담한 2층 주택을 개조한 ‘little wing’ 카페에서 디안을 만났다. 카페 2층은 묘한 공간이었다. 금방이라도 공연이 열릴 듯 작은 무대에 각종 악기를 세팅해두었고 음악 소리에 파묻힌 엔지니어가 밤새 작업할 것만 같은 공간도 있었다. 디안에게도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한쪽 구석에 놓인 편한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디안이 물었다. 

“근데, 우리 인터뷰는 한 거예요?” 

“아마도요?” 

2. 

디안은 서울내기다. 아버지는 유명한 화가였다. 디안은 웃으며 아버지는 ‘무책임의 극치’라고 말했다. 이번 호 《월간 토마토》를 뒤져 보면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간 시인 아빠에게 안일함을 배운 친구 이야기도 있다. 무책임의 극치와 안일함, 이쯤 되면 예술가의 본질은 ‘무책임하고 안일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직계 후손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삼자 입장에서는 무척 매혹적이다. ‘무책임하고 안일한 마음가짐’은 달콤한 유혹이다. 

디안이 자기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쓸 돈은 내가 벌었어요. 중학교 3학년인가, 고등학교 1학년인가, 아빠에게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아빠가 딱 ‘됐어, 조용히 살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삐딱선을 탄 거죠. 저는 진짜 아빠한테 처음으로 진지하게 말했거든요.” 

야생에 던져진 대가는 ‘자유로움’이었다.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그림을 포기하고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가끔 축제 노래자랑에 나가서 상품으로 냄비도 타고 코러스를 넣어 주거나 CM송을 부를 때도 있었지만 가수를 꿈꾸지는 않았다. 연기 영역 안에 뮤지컬이 포함되니 음악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연기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서울역에서 노숙자들 사이에서 밤을 보내고 그랬어요. 다양 한 경험을 하자는 생각으로 살 때였죠. 어렸을 때는 깡이 있었어요. 그때 제 주변에서 ‘너는 눈에 레이저를 쏘고 다닌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디안을 처음 보았을 때, 들장미 소녀 캔디를 떠올린 게 완전 생뚱맞지는 않았던 셈이다. 깡이라면 캔디가 최고다. 

디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사회에 나왔다. 일찌감치 ‘돈’을 알아 버린 그녀에게 대학은 그리 중요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이런저런 회사에도 다니고 모델 에이전시 회사에서 일했다. 일도 열심히 하고 더 많이 하는데 월급이 동료보다 적었다. 요목조목 따지는 거 좋아하는 디안은 참지 않았다. 부당한 대우에 항의했다. 돌아온 답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였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수능을 보고 야간에 다닐 수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새벽에는 신문을 배달하고 주말에는 공연하러 다니고 낮에는 회사에 다녔다. 하루에 몇 시간 잠을 못 잘 때였다. 당시, 라이브 카페에서 여성 가수가 많지 않아 나름 주가도 올라갔다. 벌이가 제법 괜찮았다. 모델 에이전시 회사를 나와 본격적으로 기획 이벤트 일을 하면서 노래를 계속했다. 무대도 기획하고 직접 사회도 보고 때로는 기타를 들고 올라가 노래도 불렀다. 이런저런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도 음악을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을 뿐이다. 

디안이 진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서른 살을 훌쩍 넘긴 때였다. “그때까지 정말 많은 일을 했지만, 마음이 들쑥날쑥하지 않고 꾸준했던 건, 음악이었어요. 진짜 하고 싶은 걸 선택한 거죠. 경제적으로는 조금 어렵고 안정적이지 않은 길이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충실해지고 싶었어요.”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즈음 첫 싱글 앨범을 냈다. 지금은 유행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했던 크라우드 펀딩 방식이었다. 펀드를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UCC 엔터테인먼트 사이트 위챌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노래를 불러 사이트에 응모하면 엄격한 심사를 통해 우승자를 결정하는 시스템이었다. 우승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유명 작사 작곡가가 만든 노래로 싱글 앨범을 제작해주었다. 디안은 이 프로젝트 1호 가수였다. 첫 번째 싱글 앨범은 〈오늘만큼만〉, 〈고마워요〉 두 곡이 수록되었다. 

고마워요 우리 추억마저도 내겐 슬픔보단 기쁨으로 남아 아름다운 기억들만 내게 주고 그대가 싶네요” (〈고마워요〉, 작사 이기수, 작곡 최용선, 노래 디안

3. 

디안은 첫 싱글 앨범을 내고 소리와 이락을 만난다. 모두 라이브 카페와 각종 공연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할 때였다. 같은 물에서 만나 합이 잘 맞았던 셋은 홍대와 신촌 등지에서 함께 공연을 시작한다. 여행도 함께 다니고 기분이 울적할 때는 버스킹도 하면서 놀았다. 2010년 끝자락에 타묘 첫 번째 앨범 《The Ethnic Flavours》를 발매하기 전부터 그랬다. 타묘라는 이름으로는 3년 정도 활동을 함께했다. 지금도 타묘로 일상적인 활동은 하지 않지만 디안이 개인 콘서트 할 때, 두 사람을 게스트로 초대해 함께 노래를 부른다. 

타묘 1집을 낼 때는 아직 앨범을 내지 않았던 소리와 이락을 중심에 두고 작업했다. 타묘로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디안은 개인 정규 앨범 1집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즈음 홍대 쪽에서 활동하면서 마음에 크게 상처를 받는 일이 있었어요. 큰일이 터지면 여행을 하면서 문제 원인을 찾는 스타일이거든요. 여행 삼아 대전에 가서 곡도 쓰고 작업도 하면서 앨범을 내려고 했죠. 근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내려와서 그랬는지 많이 아팠어요.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지 못했죠. 대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지 못했어요. 서울에 있는 집 빼서 내려왔으니까요.” 

적잖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계획한 시간보다 뒤로 밀린 디안의 첫 정규 앨범 《시월애》는 2017년 발매한다. 

기억하니 적지 않은 얘기들 누구나 추억들은 있지만, 마음을 그려가며 작은 꿈을 노래했던 너와 나는 기억할 거야/ 흘러왔던 세상 속에 우리는 조금 변해왔지만, 아직 느낄 있어 아직 그대로인걸/ 현실 또한 꿈이 많은 우리야 나인 중요치 않아 이제 다시 시작해 이제 내가 지킬게” (〈지금도 우린〉, 작사/ 디안

짧지 않은 대화 중 많이 힘들고 아팠던 시절 이야기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디안은 읊조리듯 빠르게 내뱉었다.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빼기 어려운 조사를 적어 넣듯 심드렁했다. 

“제가 사실 내성적이에요. 대화하는 걸 잘 모르고요. 근데, 음악으로는 대화를 할 수 있잖아요. 좋은 기분과 좋은 마음 좋은 사람을 알고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음악을 통해 받은 게 너무 많아요. 저는 노래를 부르며 그 받은 걸 돌려주는 거죠.” 

디안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 무대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디안이 무대에서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했다. 노래를 듣는 이들이 본인 선택을 믿고, 본인을 아끼고 사랑하라는 이야기다. 디안, 자기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리도 많기에 코로나 19 상황에 비대면으로 만나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음악은 같이 교감하고 호응하는 에너지가 중요한데 화면을 통해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주변에서 유튜브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는 않는 이유다. 

“글쎄요. 계획은 그만둘 생각이니까 세우는 거 아니에요? 그냥 팔 움직이고 목소리 나오면 계속 음악 하는 거죠. 뭐 가깝게는 2집 정규 앨범을 낼지 디지털 싱글을 낼지 고민하고 있지만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에너지 소비가 덜 되더라고요.” 

계획 따위,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면 되는 거다.


 이용원

사진 디안 제공

월간토마 vol.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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